소설리스트

난가기연-567화 (567/892)

567화. 미쳤구나

화살을 쏜 남자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이 재빨리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활 위에 올린 뒤 이번에는 말의 다리를 조준했다.

그러자 화살을 맞은 말의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말이 땅에 쓰러짐과 동시에 그 위에 타고 있던 사람도 땅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뒤를 쫓아오던 다른 추격자 두 명도 쓰러진 말에 걸려 땅으로 떨어졌다.

다만 화살통의 화살은 딱 세 대뿐이어서, 세 발 가운데 두 발이 명중했어도 추격자들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다. 그들은 어느새 남자의 지척에 다가왔다.

“류(劉)승언, 얌전히 죽어라!”

우두머리 남자가 손에 칼을 든 채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화살을 쏘던 남자는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서 마찬가지로 성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순 없지, 네 놈을 내 저승길 동무로 삼아주마!”

그는 이렇게 소리친 뒤 말을 달려 적들에게 맞섰다.

계연은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면면과 소리가 마치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또렷했다. 게다가 계연이 의아하게 여겼던 것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류승언의 오관(*五官: 눈, 코, 입, 눈썹, 귀를 일컬음)이 왕립과 무척 닮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이 사내의 수염이 더 길고 머리 모양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류승언은 결국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머리가 잘렸다. 추격자들은 류승언의 수급을 들고서 그의 시신을 황야에 버려둔 채 다시 도망친 자들을 뒤쫓아갔다.

계연은 원래 ‘류승언’의 죽음과 함께 이 꿈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꿈은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여인을 뒤따라 도망치던 다른 두 남자의 모습도 점차 왕립의 얼굴처럼 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뒤쫓던 이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홀로 남은 여인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강변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깜짝 놀랐다. 비록 꿈에 등장한 유역은 달랐지만, 이 강은 바로 춘목강이었다.

“안 돼, 광동(廣同)은? 배는? 광동은 대체 어디 있지? 배가……!”

그러다 여인의 용모 또한 왕립의 얼굴로 변하여, 계연은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왕립의 얼굴을 한 여인에게서 절망에 찬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눈앞에는 어떤 배도 보이지 않았고, 추격자들은 이미 자신을 따라잡은 후였다. 이에 여인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기다란 칼 한 자루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왔다.

푸욱!

칼날이 여인에게 꽂히던 순간, 여인은 조건반사적으로 아기를 들고 있던 팔을 멀리 앞으로 뻗었다. 그렇게 해서 칼이 아기까지 관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힘이 다 빠져 버린 여인은 결국 아기를 놓쳐버렸고, 그렇게 아기가 강물을 따라 멀어져가는 것을 초점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옥 안에 있던 계연은 이를 보고 감은 눈을 약간 찡그렸다. 한편 의식 세계 안에서는 아기가 물살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목, 저 아이는 어찌할까요?”

“강물을 따라가자, 절대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악역이 확실한 이 인물의 얼굴도 왕립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말을 탄 기수들이 강변을 따라 아기를 쫓기 시작했고, 그중 몇몇은 배를 찾으러 곳곳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백 장(약 300m) 정도의 거리를 쫓아가던 그들은, 암류가 소용돌이치는 구간에서 아기를 둘러싼 강보가 완전히 젖더니 아기가 강물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목격했다.

뒤이어 계연의 시선은 강물 아래로 향했다. 등이 검은 커다란 거북 한 마리가 강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고, 거북의 등 위에 놓인 아기는 거품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편 이 커다란 거북의 얼굴에도 천천히 왕립의 오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기괴한 장면에 계연은 잠깐 마음이 스산해졌다.

“휴우…… 일찍 알았으면 손을 썼을 텐데…….”

거북이 깊이 탄식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는 오숭과 무척 비슷한 데가 있었다.

한편 감방 안에 있던 계연은 다시 눈을 떴다. 왕립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꾸는 꿈은 그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왕립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계였다. 이 세계는 계연이 함께 감방 안에 있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왕립이 바둑돌이 되기 전에도 이미 이와 비슷한 상태였을 것이었다. 다만 지금은 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었다.

“어쩐지 선생의 이야기가 무척 생동감이 넘치더라니!”

계연은 이렇게 중얼대며 감탄했다. 이렇게나 크고 넓은 천지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 것도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왕립이 지닌 꿈의 세계와 그를 감싼 빛에는 그 외에 특별한 작용이 없었지만, 계연은 이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예전에 읽고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운중유몽>이라는 서책을 떠올렸다. 왕립의 현재 상황과 그 서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던 계연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좀 더 세세히 다듬어봐야 할 듯했다.

* * *

다음 날 아침, 계연은 탁자 앞에 앉아 필묵과 종이, 벼루를 꺼내 놓은 뒤 글을 써 가며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왕립은 곁에서 경탄하는 얼굴로 계연이 쓰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립, 누가 또 찬합을 보내왔다.”

왕립은 조심스럽게 계연을 살피다가 다시 바깥에 서 있는 옥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절 볼 수 없을 테니. 안심하시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세요.”

“예!”

옥졸은 문을 열고 들어와 찬합과 술을 전달했다. 이번에는 술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독을 탄 상태였다. 그러자 계연은 그저 소매를 한번 쓱 휘둘러 음식과 술을 정화해버렸다.

왕립은 찬합을 잘 내려놓은 뒤,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술을 한 잔 따라 계연에게 건넸다.

“계 선생님,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멀찍이서 몰래 그를 감시하고 있던 옥졸은 그의 이런 모습을 목격해버린 후였다. 왕립은 내내 무언가가 조심스러운 듯 행동하다가 때때로 무척 정중하게 앞쪽을 향해 술잔을 건넸다. 심지어는 공중을 향해 젓가락을 건네기도 했다.

다음 날, 요리와 술이 전달되었다. 왕립은 설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음 날 또 한 번 요리와 술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이번에도 왕립은 설사를 하지 않았다. 이제 왕립은 점점 더 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옥졸들이 확실히 계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그와 계 선생님의 대화와 행동을 보고 들을 수 없다고 확신한 후로는, 점점 더 꺼리는 게 없어졌다.

“왕립, 누가 찬합을 보내왔다.”

“예, 예, 갑니다!”

왕립은 잔뜩 흥이 오른 얼굴로 찬합을 받아 갔다. 옥졸은 찬합을 건네자마자 즉시 손을 움츠린 뒤 문을 단단히 잠갔다. 하지만 왕립은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찬합을 열어 술과 요리를 꺼냈다.

“오, 헤헤헤, 선생님! 오늘은 닭 구이가 올라왔네요. 닭 다리 하나 드릴까요? 아, 안 드신다고요? 그럼 저 먼저 먹겠습니다. 아, 참!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왕립은 잔뜩 흥분한 얼굴에서 겸손한 표정으로, 또 기뻐하는 얼굴에서 갑자기 눈썹을 찌푸리기도 하며 감방 안에 있는 ‘사람’과 친근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찍이 서 있던 옥졸뿐만이 아니라 주위 감방의 다른 죄인들은 이를 보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모습은 누가 봐도 연기가 아니었다.

옥졸은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다가 그가 탄 약이 드디어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왕립이…… 미쳤구나…….’

왕립은 닭 다리를 물어뜯으며 감히 계 선생님께 너무 딱 붙을 수는 없었으므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의 서법을 감상하고 있었다. 왕립은 설서 선생이었지만 스스로를 문인으로 여겼고, 원래 자기의 글씨가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서 선생은 주로 이야기를 하는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듣거나 떠오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자신의 글씨에 자부심을 느낀다 해도, 계 선생님의 글씨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였다. 과연 신선의 글씨였다.

왕립이 보기에 계 선생님은 그저 글을 적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왕립은 이전에 계 선생님에게서 실은 계 선생님이 추론하고 연구하는 과정으로서 글을 적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계연은 이것을 연서법(衍書法)이라고 불렀다.

그런 심오하고 복잡한 것은 알지 못했던 왕립은 한창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단한 기개를 지닌 한 서생이 화를 입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는 곧 선풍도골(*仙風道骨: 뛰어나게 고아한 풍채를 이르는 말)의 자태를 지닌 한 선생과 이 환난을 함께 하게 된다. 원래는 그저 그 선생이 고인(高人)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선생은 신선이었던 것이었다…….

이야기의 각종 세부 사항이 왕립의 머릿속에 연이어 떠올랐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를 떠올린 왕립은 흥분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입 주위에 잔뜩 묻은 기름기와 입가에 달린 닭 껍질 때문에 무척 괴이쩍고 음흉해 보였다.

한편 멀리 감옥의 복도 안에서 왕립이 갇힌 감방을 조심스레 감시하던 옥졸은 갑작스레 소름이 돋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휴…….”

옥졸은 주위의 감방을 둘러보다가, 왕립의 감방 맞은편 세 곳에 갇힌 죄수들이 모두 구석 자리에 잔뜩 몸을 말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어떤 이들은 몸에 볏짚을 뒤집어쓰고 있기도 했다. 보아하니 그들도 왕립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 떨고 있는 듯했다.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옥졸은 다시 한번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고는 곧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 후, 바깥으로 나와 대청으로 들어간 옥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교차해 소름이 끼친 두 팔을 연신 문질렀다.

“왜 벌써 왔느냐? 이번엔 먹은 게 확실해?”

탁자 앞에 앉아 반주를 마시던 간수장이 옥졸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옥졸은 억지로 미소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었습니다. 술도 요리도 전부요. 아직 설사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가,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옥졸은 제 머리를 가리키며 왕립의 정신 상태를 묘사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대인, 요즘에는 왕립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간수장은 눈썹을 찡그린 채 다시 술을 한입 마셨다. 물론 그도 요즘 왕립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실은 그도 약간 겁에 질린 상태였다.

“대인, 왕립의 모습이 아무래도 너무 괴이쩍습니다. 예전에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저런 이들이 죽으면 아주 대단한 귀신이 된다고 하셨어요…….”

“어휴……!”

간수장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떤 뒤, 술병을 들어 빈 그릇에 술을 부었다.

“자, 너도 술을 좀 마시고 진정해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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