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71화 (571/892)

571화. 여한을 전부 다 보상해 줄 수는 없다

문판관이 계연의 옆에서 살짝 앞서 걸어가며 계연 일행을 이끌었고, 무판관은 이들 뒤를 따라갔다. 이들이 저승의 길을 따라가는 내내 주위는 온통 어두웠다. 이들이 저승의 귀신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구역을 지나자, 그제야 산이며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저 멀리에 있는 성의 윤곽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귀성(鬼城) 앞에 이르자 계연의 옷 안에 있던 작은 주머니가 살짝 부풀어 오르더니, 종이학 한 마리가 안에서부터 날아올랐다. 종이학은 계연의 주위를 몇 번 돌다가 곧바로 귀성 안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아무 곳이나 날아가면 안 된다. 그러다 잃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널 찾느라 고생해야 하잖니.”

그 말에 종이학은 공중에서 잠시 멈칫한 채 위아래로 날갯짓을 했다가, 다시 성 안쪽으로 향했다.

물론 계연이 한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일 뿐이었다. 혹시 종이학이 길을 잃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계연이 그를 찾지 못할 리는 없었다. 도시에 오기만 하면 종이학은 항상 품속에서 날아올라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즐겼다. 종이학의 눈에는 귀성도 보통의 도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듯했다.

계연의 일행은 잠시 종이학에게 눈길을 던졌으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고 계속해서 귀성 안쪽으로 향했다. 계연과 문판관은 때때로 저승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뒤쪽의 무판관은 장예와 왕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저승 안의 풍경은 왕립이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왕립의 생각보다 훨씬 더 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왕립의 상상과 같았던 점은 자신들 주위로 내내 음산하고 소름끼치는 감각이 감돌고 있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 저승의 관리들은 대부분 악귀처럼 흉악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왕립은 저승에 대한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계연에게서 3척(약 90m) 이상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장예도 약간 긴장한 상태이긴 했으나, 그녀는 장양부 저승에도 가봤었기 때문에, 저승 내의 환경에 대해 매우 놀라지도 않았고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왕립이 시종일관 불안해하는 걸 보고, 내내 침묵하던 무판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심하게. 저승은 망자들이 사는 곳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질서가 있으니.”

그러자 왕립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지나는 두 무리의 관리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허리춤에 쇠사슬을 차고 있었고, 어떤 이는 칼을 차고 있었으며 손에 창을 들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보기만 해도 무서운 얼굴을 지녀, 외모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판관은 왕립의 시선을 따라 지나가는 관리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저승의 관리들이 가장 많이 맞닥뜨리는 것은 사람의 혼백이나 악귀일세. 저들이 음기와 살기를 뿜어내는 것은 그것을 이용해 악귀들을 제압하기 위함이지. 바로 그런 이유로 악귀를 비롯한 삿된 존재들이 저승의 관리들을 보면 그렇게 도망치거나 순순히 끌려오는 것이라네. 겉모습은 비록 흉악할지라도 그 속까지 나쁜 이들은 아닐세. 됨됨이가 옳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절대 저승의 관리가 될 수 없다네.”

“아, 그렇군요.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왕립은 무판관의 설명을 듣고는 주위의 저승 관리들에게 간략히 예를 올렸다. 무려 저승의 무판관이 한낱 평범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왕립이 설령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왕립이 자신들에게 공손히 예를 차리는 걸 보고, 지나가던 저승 관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어 주었다. 다만 그들이 웃으니 무표정이었을 때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앞서가던 계연은 이런 왕립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그는 저승의 관리들이 왕립과 장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쪽이 바로 <백록연>을 쓴 설서선생 왕립입니다. 여기 장예 낭자는 일전에 제 백록에게서 은혜를 입은 바 있고요. 신도(神道)를 닦고 있긴 하지만, 음……. 지금은 수행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계 선생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장예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겸연쩍어했다. 이는 마치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어른에게 꾸중을 듣는 느낌이었다.

백록연은 지난 20년 동안 대정국 곳곳에 널리 퍼져, 경기부에서도 당연히 모르는 이가 없었고 이는 저승의 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계연의 설명을 들은 저승의 관리들이 왕립을 보는 눈길이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 일행이 귀성에 들어서자 저승 관리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두 판관만이 계연의 일행과 함께 남아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왕립은 도성 안의 백성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귀성 안의 행인들을 살폈다. 그도 이들이 모두 귀신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다 한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자, 그는 깜짝 놀라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큰 길가를 따라 걷다가 작은 골목을 통과한 뒤, 다시 나온 큰길을 지나쳐 작은 다리를 건넜다. 그러며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도 수려한 광경을 뽐내는 귀성 안을 걸었다. 그러다 마침내 계연의 눈에 비교적 위엄 있는 저택 한 채가 눈에 들어왔는데, 문판관이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 선생님, 저곳이 주씨 집안의 음택(陰宅)입니다. 주 노야는 지금 음기가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갈까요, 아니면…….”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부부의 마지막 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요.”

계연이 이렇게 대답한 뒤 법안을 활짝 열자, 귀성 안의 풍경이 즉시 모호해졌다.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늘어선 음택들과 주변 거리에는 무덤의 허상이 겹치기 시작했다.

백약의 남편 되는 이의 이름은 주염생으로, 이는 늙은 거지인 노염생과 성만 빼고 완전히 같은 이름이었다. 덕분에 계연도 그에 대해 특별한 인상이 남아있는 편이었다. 계연은 명의상 선수(仙獸)인 백약보다도 오히려 주염생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군, 그것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누군가와 얽힌 것이 있어야 하는 거였어!’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며 멀찍이서 주염생의 음택을 법안을 열어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종이 인형 몇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비켜주세요, 여러분. 비켜주세요…….”

종이 인형의 목소리는 무척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웠으며, 걷는 모습도 기괴했다. 반면 얼굴에 과장되게 그려진 화장은 보는 이를 소름 돋게 할 정도였다. 왕립과 장예는 한쪽으로 물러났고, 계연도 두 판관과 함께 길을 내주었다. 그러자 종이 인형들이 그 길을 따라 주씨 가문의 음택으로 향했다.

그들이 주씨 가문의 음택에 점점 가까워지던 순간,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하인의 모습을 한 종이 인형들이 나와 입구에 커다란 흰색 등롱을 걸었다. 대문 좌우에 걸어 놓은 등롱 위에는 모두 ‘희(*囍: 기쁠 희(喜)가 두 개 붙은 글자로, 혼례에 쓰임)’ 자가 적혀 있었다.

“계 선생님, 저게 뭐죠?”

장예가 이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의 두 판관을 바라보았다. 남녀 간의 애정사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를 보고 느끼는 바는 있었다.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한단 말인가(問世間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금(金)나라 시인 원호문(元好問)의 시 <안구사(雁丘詞)>의 한 구절)…….”

그러자 종이 인형들을 보고 내내 소름 끼쳐 하던 왕립의 두 눈에 번쩍 빛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지금 당장 붓을 들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후에 잊지 않도록 가슴에 잘 새겨두었다.

계연의 말을 들은 장예는 아리송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두 판관은 계연을 향해 짧게 양손을 맞잡았다. 고인(高人)의 가벼운 한 마디에 세상사의 이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주씨 음택에서는 남녀가 섞인 3, 40개의 종이 인형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비록 조금 멍청하고 둔한 면이 있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등을 달고 있었고, 어떤 이는 흰 천을 가져다 걸었으며, 어떤 이는 뜰 안을 청소했다. 집안이 온통 새하얀 것이, 만약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봤다면 초상이 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붙인 글자는 분명 ‘쌍 희(囍)’ 자였다.

만약 주씨 음택에 붙이고 걸린 흰색을 모두 붉은색으로 물들인다면 아주 성대한 혼례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만 이들은 혼례에 하객들을 초청할 뜻이 없었다.

* * *

그 시각, 주염생은 더는 귀기(鬼氣)를 뿜어내지 못하고 힘없이 침상 위에 누워있었다. 이때 그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젊었을 적의 모습이었는데,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 채로 방 안의 백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백약이 흰 웃옷에 흰 치마를 입은 채 화장대 앞에 앉아 단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록 백약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백약이 무척 마음 아파하고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약(若), 슬퍼하지 마오. 최소한 내 가기 전에 당신과 혼례를 올릴 수는 있을 테니.”

이승에서 백성들이 혼례를 할 때는 중매를 통해 정식으로 배우자를 맞아들이는 것 말고도, 하늘과 땅에 자신들의 결합을 알리고 부모에게 인사를 올리는 등 갖가지 절차가 아주 많았다. 그래서 예전에 이들은 살아 있었을 때 골치 아픈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평생 혼례를 올리지 않았었다. 그때의 여한을 이제 와 완벽히 풀 수는 없겠지만, 이 혼례는 얼마간 마음의 위로는 될 터였다.

“다만 정식으로 매파를 보내지도 않고, 절을 올릴 집안 어르신도 없으니…….”

“그만……. 상공(相公: 옛날, 부인이 자기 남편을 높여 일컫는 말), 그만 말씀하세요…….”

백약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머리 장식을 들고 멍하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시 화장대를 내려다보더니, 마침내 고개를 돌려 주염생을 향해 힘겹게 미소 지었다.

“상공, 연지랑 수분(*水粉: 액체로 된 분)을 사 왔는지 가서 보고 올게요.”

“알겠소.”

백약은 주염생의 쇠약한 목소리를 들으며 방문을 닫은 뒤, 문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저승에서 그와 26년을 함께 하며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 순간이 오자 그녀는 생각했던 대로 평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종이 인형은 편리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무척 아둔했다. 백약이 앞뜰로 가보니, 심부름을 보낸 종이 인형들이 그곳에서 왔다 갔다 하며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있던 종이 인형이 바구니를 엎질러, 그 안에 있던 만두들이 굴러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종이 인형이 땅에 떨어진 만두를 줍는 사이, 바구니가 기울어지며 몇 개가 또 떨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만두 줍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종이 인형들도 뒤뚱뒤뚱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저택 안팎으로 준비가 거의 끝났기 때문에, 백약은 그다지 답답해하지 않고 맨 앞에 있던 종이 인형의 바구니를 잡아챘다. 그러자 다른 종이 인형들이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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