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74화 (574/892)

574화. 꿈속을 거닐며 검을 뽑다 (1)

반 시진(時辰: 1시간) 후, 계연은 마침내 성황신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성황신이 직접 귀문관까지 나와 계연의 일행을 배웅했다.

왕립과 장예는 백록의 양쪽에 서서 계연을 따라가다가, 고개를 돌려 점점 멀어지는 귀문관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성황신과 각 기관장이 여전히 계연을 향해 예를 올리는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다시 주위의 모든 것이 모호해지더니, 어느 순간 그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게 되었다. 왕립이 이승에 한발을 디딘 후 다시 뒤를 돌아보니,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안쪽에 걸린 장명등 덕에 환히 빛나는 성황당이 보였다.

“휴우……. 드디어 빠져나왔군요! 저 같은 일개 서생이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저승에 갔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자 높다란 백록의 등 위에 앉아있던 계연이 고개를 옆으로 내려 왕립을 향해 말했다.

“그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에요, 선생이 오늘 보고 들은 것은 수행자들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것이거든요.”

“하하, 오늘 보고 들은 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두었습니다. 적당한 곳을 찾기만 하면 얼른 종이에 기록해 놓으려고요.”

왕립은 이렇게 대답하며 앞쪽의 백록을 바라보았다. 만약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 백록이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백 부인’이라고는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참,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토지신당으로 가요, 제 육신을 찾아야 하거든요.”

백록이 고개를 돌려 왕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사슴으로 변하기 전, 아름다운 부인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다만 좀 더 신비롭고 고결한 느낌이 들었다.

토지신당은 성황당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미 신당이 저 앞에 보였다. 신당 앞에는 거대한 형상의 경기부 토지신이 앞에 나와 양손을 맞잡은 채 서 있었다. 그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계 선생님,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풍채가 더욱 좋아지셨군요!”

그러자 계연도 백록의 등에서 내려와 그를 향해 예를 올렸다. 계연도 이 토지신과는 얼마간 교분이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토지신!”

그는 단 몇 걸음 만에 이미 토지신 앞에 가까워졌다. 백록은 앞다리를 구부려 토지신 앞에 꿇어앉았다.

“토지신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경기부 토지신은 계연이 만나본 토지신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가장 호탕한 성격의 토지신이었다. 그는 백록의 말에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오늘 백 부인의 모습을 보니 이 늙은이와 계 선생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듯하군.”

<백록연> 이야기는 토지신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었고, 그도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백록을 백 부인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는 말을 마친 후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퉁’하는 소리와 함께 땅 표면이 가라앉았다 다시 솟아오르더니, 깊은 잠에 빠진 듯한 거대한 백록이 토지신의 발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백약과 조금도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다.

뒤이어 계연이 백약을 향해 말했다.

“어서 가보렴, 육신을 되찾아야 하니.”

“네!”

백약은 깊은 잠에 빠진 제 몸으로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누웠다. 그러자 두 백록의 모습이 완전히 하나로 녹아들 듯이 합쳐졌다. 백록이 육체를 되찾은 후 고개를 몇 번 털고 눈을 뜨자, 백록은 주위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는 동시에 마음속의 잡념 대부분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계연은 토지신과 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고, 토지신도 계연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백록이 되찾은 육신에 적응하자 계연과 토지신은 그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물과 같다(<장자(莊子)>의 한 구절)는 말이 있듯이, 계연과 토지신의 관계가 그러했다.

계연은 다시 백록을 탄 채로 어두운 밤길을 따라 걷다가, 묘사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오자 사슴의 등에서 내려선 뒤 그녀를 향해 말했다.

“<백록연>은 이렇게 일단락 짓게 되었네요. 백약, 앞으로는 성실히 수행을 닦도록 하세요.”

왕립도 기쁜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제 <백록연>도 드디어 진정한 결말을 맺게 되었군요! 다음에 <백록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오늘 일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분명 좌중을 감동케 할만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계연은 백록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왕립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나갔다. 그러자 장예를 비롯한 세 사람은 깜짝 놀라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계연의 뒷모습은 이미 천천히 희미해져, 곧 완전히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언니, 저희는 이제 어쩌죠?”

장예는 왕립은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으므로 마음이 조급해져 백약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백약이 약간 넋이 나간 듯한 모습으로 계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꾸했다.

“어르신은 진정한 선인이시니 어차피 우리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 거야. 우리가 저분과 이렇게 인연이 닿은 것만 해도 이미 무척 얻기 힘든 기회지…….”

* * *

계연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무척 소탈한 태도로 떠났지만, 정말로 그곳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골목길을 돌아 윤씨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그는 걸음을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텅 빈 도성의 거리를 홀로 경쾌한 걸음으로 걸으니 그리 느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딩-! 딩, 딩, 딩…….

딱……!

그때, 시간을 알리는 징 소리와 경탁(*警柝: 두 개의 나무토막으로 만든 타악기로, 야경꾼들이 들고 다니며 쳤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고, 뒤이어 야경꾼의 목소리가 적막한 도성 안에 널리 퍼져나갔다.

“엄동설한이오!”

어두운 밤거리를 거닐며 두 야경꾼은 각기 징과 경탁을 들고서 시간을 알렸다. 뒤이어 그들은 길 한쪽을 따라 걸으며 쉴 새 없이 손을 비벼댔다.

딩- 딩, 딩, 딩…….

한 사람이 징을 치자 다른 한 사람이 곧바로 경탁을 치며 크게 소리쳤다.

딱!

“엄동설한이오!”

두 사람이 길모퉁이를 돌자 저 멀리 윤재성의 집 대문 위에 걸린 등롱이 보였다. 야경꾼 중 하나가 손을 비빈 후 그 위로 따뜻한 입김을 불다가 낮은 소리로 다른 이에게 물었다.

“어이, 윤 공께서 쾌차하실 수 있을 것 같은가?”

만약 지금이 대낮이거나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면 그들은 절대 이런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빈 거리에 두 사람만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이런 대화를 조심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주의를 분산해 추위를 조금이라도 물리쳐 보려는 의도였다.

“글쎄, 의원이 그렇게 많이 왔다 갔는데도 호전되는 기미가 없다고 하니…… 궁중의 어의는 물론이고 온갖 명의들도 윤 공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왔었다지 않나!”

그의 말에 동료가 이렇게 탄식하며 대답했다.

“휴우! 서생들이 하는 말이, 당금의 성상께서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들을 얻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윤 공 덕분이라더군. 만약 윤 공께서 이대로 떠나시면, 간신배들로 인해 성상의 눈과 귀가 흐려지실지도 모른다지.”

“누가 아니라던가. 백성 중에는 윤 공께서 오래도록 사시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지. 듣자 하니 완주에서는 수만 명이 광동호에 모여 등불을 놓고 윤 공께 복이 오길 빌었다더군.”

“오,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네. 하지만 윤 공의 병세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대체 앞으로 어찌 될지…….”

두 야경꾼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이어 탄식했다. 조정에 몸담은 고관대작들의 사정은 백성들로서는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원래라면 그들의 의논 거리가 되지도 못했고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윤재성처럼 전설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백성들도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현 조정에 몸담은 관리가 아니고, 전대 황조의 대신이었거나 이미 고인이 된 후였다면 이미 그의 생애에 대한 갖가지 서책이 출판되었을 것이다.

야경꾼이 다시 뭐라고 입을 떼려는 순간, 동료가 팔꿈치로 그를 쿡 치르며 조심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에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 맞은편에서 흰 장삼을 입은 선생 하나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딩- 딩, 딩, 딩……!

딱……!

“오늘은 엄동설한이오!”

두 사람은 얼른 징을 때리고 경탁을 치며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계연은 이미 멀리서부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후였지만,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지나쳤다. 그러자 두 야경꾼도 무의식적으로 미소 지으며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걸 후회하고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걸어갔다.

계연은 다시 모퉁이를 돌아 넓은 큰길로 들어섰다. 그곳은 황궁 앞 오른쪽을 따라 난 길로, 명성이 자자한 윤씨 가문의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계연이 저택 대문 앞에 도착하자, 대문 양옆에 걸린 커다란 등롱 두 개만이 환히 불을 밝히고 있을 뿐 저택 안쪽에서는 아무런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이 법안을 활짝 열자, 저택은 안팎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의 정체는 바로 윤재성이 가진 호연정기였는데, 그것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상공을 환히 밝힐 정도였다.

“하하, 윤 훈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람. 아마도 8할은 윤청이 생각해낸 꿍꿍이겠지.”

계연은 오랜 친우의 건강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얼굴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계연은 저택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을 테니 굳이 지금 대문을 두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시진만 더 있으면 해가 뜰 시각이었으니, 굳이 돈을 내고 객잔을 이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연은 맞은편에 난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어느 집의 처마 아래 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한쪽 다리를 구부려 앉은 뒤,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서 손을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이 든 그는 휴식을 취하는 동시에 ‘유몽(*游夢: 꿈속을 거닐다)’의 신묘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계연은 어느새 자신의 육신에서 빠져나와, 깊은 잠에 빠진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걸음을 떼니 맑은 바람이 일어났는데, 이는 계연이 바람을 부린 게 아니라 계연의 생각에 따라 사방에서 불어오는 것이었고 조금도 인위적인 느낌이 없었다.

이는 계연이 <유몽>을 써낸 이래, 처음으로 유몽에 담긴 신묘함을 순조롭게 펼친 것이었다. 전에 계연은 곧바로 실패하거나 육신에서 빠져나왔어도 몇 걸음 걸은 뒤 깨어나곤 했다. 그래서 계연은 붓을 들어 <유몽>을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로 손볼 데 없이 완벽한 방법을 찾아낸 듯했다.

그때, 야간 순시관 두 명이 거리를 따라 순찰을 돌다가 꿈속의 계연을 지나쳤다. 계연은 그들을 피하지도 숨지도 않고, 법력을 이용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계연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법이었다. 계연은 자신이 가진 수단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번 시험해왔었다. 게다가 그도 예전과는 눈높이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과 신통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비교적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계연은 진정한 ‘입몽술(入夢術)’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명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간 들은 것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유몽’도 대체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게다가 아예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늙은 용이 펼쳤던 ‘신형대법(*蜃形大法: 신(蜃)은 기운을 토하여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교룡. 신기루를 만드는 술법)’을 참고할 수도 있었다.

‘유몽’과 같은 신통한 묘법은 그저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이 육신을 떠나는 수준의 간단한 묘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몽’과 같다고 볼 수 있거나 심지어는 그 수준을 초월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때 계연의 육신과 원신은 모두 한곳에 앉아있었다. 심지어는 계연의 기운에도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오직 계연의 의식만이 육신을 빠져나온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