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화.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
두 명의 두장생이 다시 한번 양호를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소신의 시연이 끝났습니다.”
예를 올린 그들은 서로를 향해 걸어가더니 마침내 다시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 그의 주위에 아직 남은 안개로 인해 그 모습은 더욱 신령스러워 보였다.
양호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천사의 능력이 대단하구려! 이게 바로 선인의 수단인가?”
양씨 황제들 중에는 선인을 찾으려 한 이가 몇몇 있어, 그들이 남긴 기록이 꽤 있었다. 하지만 양호는 그가 읽은 기록들보다 오늘 직접 목격한 이 장면에 훨씬 더 전율을 느꼈다. 두장생의 능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에 두장생은 감히 허풍을 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최대한 겸손한 표정과 자세로 대답했다.
“소신이 방금 한 것은 물을 다루는 술법을 이용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감히 선인의 수단이라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자 양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렇군, 그럼 천사는 혹 점괘나 치료술에도 통달했나?”
두장생은 황제가 그에게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거나 진선(眞仙)을 찾아내라 할까 봐 겁이 나, 무척 조심스럽고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소신의 도행이 미미하여, 약간 배운 바는 있으나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으음!”
양호는 두장생의 태도에 무척 만족해했다. 그러고는 한쪽에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언상을 바라본 뒤, 다시 천사에게 말했다.
“그럼 혹 천사가 짐이 아끼는 윤 경을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한번 점을 쳐보게. 우리 대정국에는 그가 없어서는 안 되네!”
이 말에 두장생은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황제와 그 옆의 눈썹을 찌푸린 언상을 바라보았다. 언상의 안색이 엄숙한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이 조정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장생은 자신이 윤 재상의 병을 고치지 못하면 행여 벌을 받을까 봐 겁이 났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은 일찍이 윤 재상께서 문곡성이 강림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문은 비록 헛소리일지도 모르나, 소신이 분명히 아는 것은 윤 재상께서는 호연정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연정기는 그분 주위의 3리(里)를 밝게 비춰, 모든 사악한 기운을 몰아냅니다. 예로부터 호연정기를 지닌 자는 세간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데, 그런 이들은 모두 천고(*千古: 오랜 세월을 통해 드문 일)의 현신(*賢臣: 어진 신하)이 될 상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백 가지 병을 이겨내고 귀신의 비호를 받는다고도 하였지요. 그런 분의 병세가 위독하다면, 이는 혹, 혹……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지요.”
“하늘의 뜻이라…….”
양호는 약간 멍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두장생을 향해 물었다.
“천사의 그 말에는 깊은 뜻이 있는 듯하군?”
그 말에 두장생은 당황했다.
‘깊은 뜻? 뭔 깊은 뜻? 얼버무리려고 했던 말인데…….’
“폐하, 오해이십니다. 소신의 말에는 결코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에 조금 전과 달리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수십 년간 황제에 자리에 앉아있던 양호가 어찌 그것을 놓치겠는가?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이 자가 무언가가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두 천사, 숨길 생각 말고 곧이곧대로 고하라! 짐의 명이다!”
‘무엇을? 대체 무엇을 곧이곧대로 고한단 말인가?’
두장생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아는 온갖 고명한 도리가 담긴 말들을 떠올렸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눈 딱 감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어…… 폐하, 실은 소신도 정말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무언가 말씀을 드려야 한다면…….”
두장생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황제를 슬쩍 올려다본 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윤 재상과 같은 천고의 현신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입니다. 존재만으로 나라의 성세(盛世)와 대길(大吉)을 나타내지요. 하, 하지만 범인(凡人)의 수명이란 모두 끝이 있어,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윤 재상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리는 말을 듣고 있던 양호는 노기가 치솟았다. 두 천사는 지금 분명히 숨기고 있는 게 있었다.
“짐은 분명 곧이곧대로 고하라 말했다! 이따위 얼버무리는 말은 그만두고 당장 말하라!”
황제가 분노를 내뿜자 두장생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동시에 마치 머리 위로 산이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더니, 두장생은 지금 그것을 생생히 체험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던 두장생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한껏 얼굴을 찡그리다 하마터면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좋은 말을 해주면 싫다고 하니, 그럼 듣기 싫은 말이라도 해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도성에 돌아오지 말걸!’
두장생은 양씨 황제들의 흉포함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먹고는 눈 딱 감고 말을 뱉었다.
“페,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이 방금 아뢴 바와 같이 윤 재상의 명이 위태로워진 것은 하늘의 뜻인 듯합니다. 천고의 현신이 속세에 강림하니, 나라의 성세를 이루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의 목숨이 위중하니 이는 일종의 경고인 듯합니다. 수행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魔漲道消: 사악한 세력의 힘이 강해지면 정의로운 세력의 힘이 약해진다는 뜻)……. 소신, 소신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두장생이 손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하자, 양호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
황제가 계속 그 말을 반복하는 걸 듣고 두장생은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이 틀린 말을 했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한 말은 윤 재상에게 유리한 말이었고, 저런 천고의 현신을 두둔하는 말이 도리로 보든 이치로 보든 결코 틀릴 리가 없지 않겠는가?
두장생은 고개를 들어 황제의 곁에 서 있던 언상을 바라보았다. 언상은 그를 향해 희미하게 고개를 저으며 더는 말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두장생도 감히 더 입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상도 황제가 계속 두장생에게 질문을 할까 봐 겁이 나서 양손을 맞잡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폐하, 두 천사는 수행자이니 조정 일을 보는 시각이 저희와는 다르옵니다.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홍무제는 언상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아래쪽의 두장생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언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면 이 사천감은 정말 능력 있는 자였다. 그는 자신이 맡은 소임을 완벽히 처리해낼 뿐만 아니라, 부황이 몇 번 진정한 선연(仙緣)을 마주친 것도 모두 이 사천감과 관련이 있었다.
“두 천사, 이만 물러가 보게. 오늘 일은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지 말도록.”
“예.”
두장생은 사면을 받은 사람처럼 대답하고는 얼른 물러났다.
그가 떠나자, 자미전 안에는 황제 양호와 언상, 나이 든 태감 하나만이 남았다. 그때 양호가 언상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언상, 두 천사의 말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그러자 언상이 살짝 눈썹을 찡그린 뒤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신이 방금 아뢴 바와 같이, 두 천사는 그저 작은 부분만 보고 말을 내뱉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수행자이니 조정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소신 또한 한마디로 단정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양호는 언상의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보고 별안간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언 경,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그러자 언상이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소신 올해로 68세가 되었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양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친애하는 언 경은 정말 그 나이로는 안 보이는군…….”
“과찬이십니다, 폐하. 소신은 조정의 일에 발을 들이지 않으니 마음 쓰일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그다지 나이 든 티가 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도 폐하의 강건하신 모습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양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언상과 한쪽에 서 있던 태감이 얼른 다가와 좌우로 그를 부축했다. 양호는 몸을 일으킨 후 돌연 언상을 향해 물었다.
“언상, 예전에 자네가 한 선인께 얻은 월병을 부황께 바쳤었지. 자네 혹 그것을 먹었는가?”
이 갑작스러운 물음에 언상은 덜컹 심장이 내려앉아, 얼른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황공한 얼굴로 답했다.
“소신, 억울하옵니다! 소신이 어찌 감히 그것을 사사로이 취할 수 있겠습니까? 선인께 그 월병을 얻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 바로 폐하께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양호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그를 친히 부축했다.
“언 애경, 어서 일어나게. 짐은 그저 한번 물어본 것뿐이라네.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 발설해선 안 되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언상이 일어나 이렇게 대답한 뒤 황제의 뒤를 따랐다. 자미전 입구에 다다르자 양호가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정말로 남은 게 한 개도 없는가?”
이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언상이 다시 한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알겠네, 알겠어. 자네 놀란 꼴 좀 보게. 그저 농담이었을 뿐이니 일어나게. 배웅나올 필요 없다네.”
황제가 떠나자 언상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그가 조정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별이나 연구하는 것이었다.
* * *
황제의 어가가 황궁을 향해 떠나고, 양호는 그 위에서 갖가지 생각을 떠올리다가 곧 요즘 조정의 국면과 두 세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윤씨 일가는 황가에 충심이 깊은 이들이었지만, 소씨 집안도 그 못지않았다. 어사대를 이끌려면 똑똑해야 할뿐더러 과감해야 할 때도 있었다. 즉, 어느 정도 손속이 악랄한 자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도는 아주 적임자였고 황제가 편히 쓸 수 있는 칼이었다.
다른 ‘반(反)윤’파의 관료 중에도 진짜 간신이라 할 만한 이들은 몇 없었다. 최소한 황제의 각도에서 보자면, 그들은 간신배라기보다는 오히려 아주 유용한 이들이었다. 황제가 보기에 간신이라 불릴 만한 자들은 그동안 윤씨 일가와 다른 대신들에 의해 숙청된 지 오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황제의 뇌리에 다시 두장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다시 그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 마가 득세하면 도가 쇠한다…….”
그는 두장생이 펼친 신기한 술법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다시 자신이 그를 다그쳐 듣게 된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는 곧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양호는 돌연 가림막을 걷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그러자 어가의 뒤를 따르던 늙은 태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폐하, 분부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양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사천감을 흘끗 바라본 뒤 이렇게 말했다.
“어명이다, 천사 두장생에게 즉시 윤 재상에게 최선을 다해 친애하는 윤 경의 병을 치료하라 전해라.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짐은 그에게 국사(國師)의 자리를 내리겠노라!”
황제의 말이 끝나자 태감이 즉시 허리를 숙이고 그의 명을 받들었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태감은 이렇게 대답한 뒤 다시 걸음을 서둘러 사천감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은 가볍고 민첩해서, 보통 사람이 뛰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이 늙은 태감은 선천(先天)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