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81화 (581/892)

581화. 천사 노릇 하기 쉽지 않구나!

사천감 인근의 한 저택 안, 두장생은 자신이 머무는 원락(院落)의 방 안에 앉아 수행을 닦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세 제자도 함께 앉아있었고 그들의 정신 집중을 돕기 위해 방 안에는 단향 하나가 조용히 타고 있었다. 두장생은 지금 막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힌 후였다.

“천사 대인! 천사 대인!”

바깥에서 사천감 하급 관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장생을 포함한 실내의 네 사람은 수행의 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들이 바깥으로 나가보니, 나이 든 태감 하나가 뜰 안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황상을 지척에서 모시는 태감인 것을 알아본 두장생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두장생은 이미 이 늙은 태감의 무공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기혈은 너무나 왕성하게 움직여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두장생의 현재 도행으로도 이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공 고수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두장생은 어명을 받들라!”

두장생은 얼른 허리를 숙인 채 공손히 태감의 말을 기다렸다. 곧이어 나이 든 태감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상의 어명을 전하노라. 천사 두장생은 즉시 윤 재상의 집으로 가서 윤 재상의 병을 고치도록 하라. 만약 윤 재상의 병을 고친다면, 두장생에게 국사의 지위를 내리겠노라.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소신 두장생,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두장생이 명을 받들자 나이 든 태감이 그제야 미소 띤 얼굴로 덧붙였다.

“그럼 어서 가시지요, 두 천사. 천사의 능력으로는 분명 문제없을 것입니다. 후에 국사의 지위에 오르시게 되면 제게도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폐하께 보고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예. 조심히 가십시오, 공공…….”

“예!”

태감이 경공을 이용해 곧 시야에서 사라지자, 두장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체 자신이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윤재성의 병을 치료한단 말인가? 이미 호연정기를 지닌 자는 천고의 현신이며, 백 가지 병을 막아내고 귀신의 비호를 받는다고 말했거늘, 그런 윤 재상이 지금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었다.

국사의 지위는 무척 탐이 났지만, 황제의 어명에는 만약 실패했을 시에 상응하는 죄의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아서 두장생은 더욱 두려웠다.

게다가, 국사는 그저 이름뿐인 직위일 수도 있었다. 대정국에는 대대로 이런 관직이 없었으므로, 품계는 어떻고 권리는 얼마나 되는지, 봉록은 어느 정도인지도 미지수였다.

국사는 그림의 떡일 뿐, 실제로 이 일을 떠맡자니 너무 위험했다.

‘계 선생님, 선생님께서 예전에 제게 천사가 되어보라고 말씀해 주셨었지요. 그런데 이 일로 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게 생겼습니다.’

“사부님, 사부님!”

두장생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제자가 그를 불러댔다.

“으음?”

“저희는 그럼 이제 윤 재상댁으로 가면 됩니까?”

“휴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가기 싫어도 가야겠지…….”

두장생은 한숨을 쉬며 태양혈을 문질렀다. 그는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가 필요한 물건 몇 개를 정리한 후, 첫 번째 제자와 함께 영안가의 윤 재상댁으로 향했다.

‘천사 노릇 하기 쉽지 않구나!’

잠시 후.

늙은 태감은 다시 황제의 어가를 따라잡아, 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고했다.

“폐하, 두 천사가 어명을 받들고 떠났습니다.”

“음.”

양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두장생이란 자는 얼마간 실력을 지닌 자이니, 그가 가서 윤재성을 돌본다면 병이 낫지는 않더라도 보통 의원들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 * *

한편, 황궁 안에서는 모후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양성이 두 명의 시위만을 거느리고 동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윤중과 함께 자랐는데, 윤중의 무예 실력이 출중한 만큼 자연히 그와 어울려 놀던 양성 또한 실력이 그렇게까지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천하의 다른 황제들과 비교하면 아마 그가 가장 출중한 무예 실력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멀찍이서 어가가 궁 바깥에서부터 들어오더니 점차 멀어져가는 것을 발견했다. 양성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가가 예를 올리지는 않고 황제가 떠나는 방향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황, 소자가 하고 싶은 말이 한마디 있습니다. 예로부터 황조의 흥망성쇠의 원인은 많고 많았지만, 그 원인 중 군주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양씨의 천하가 어느 날 무너지게 된다면, 그는 분명 군주 된 자의 잘못일 것입니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가 제위에 오르는 것, 아둔한 후계를 길러내는 것, 충신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간신을 중용하는 것 모두가 군주의 무능함 때문입니다. 자손이 무능하다면 황조가 어찌 흥성할 것이며, 어찌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양성은 이렇게 말하며 그의 곁에 있던 두 심복에게 물었다.

“내 말이 어떠냐?”

그러자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참으로 영명하십니다!”

“하하, 영명은 무슨! 부황께는 말씀드릴 엄두도 못 낸다! 가자.”

* * *

이때, 소씨 가문의 저택 응접실에는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상석에는 어사대부인 소도가 앉아있었고, 아래쪽에는 도성 밖 임지에서부터 업무 상황을 보고하러 온 대신들이 앉아있었다.

“소 대인, 윤 재상의 상태가 날로 나빠진다던데, 저희도 이제 슬슬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소도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되오! 윤재성이 하루라도 살아있다면 우리는 그 단 하루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오. 그의 숨이 정말로 끊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황상께서도 우리를 한두 번은 지켜주실 수 있겠으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서서 보호해주시는 않으실 것이오. 그러니 각자 집안 단속 잘하고 어떤 방식이든 법을 어기지는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사대가 가장 먼저 나서 잡아들이겠소!”

“예!”

“소 대인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그중 한 관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복잡한 감정이 섞인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휴우, 만약 윤 재상께서 이대로 병으로 돌아가신다면, 저희에게는 그게 가장 좋을 겁니다. 책 읽는 서생 중에 윤 재상과 진정으로 적이 되고 싶어 하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상, 윤재성과 정적(政敵)인 관원들조차 그에게 탄복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 관원의 말에 소도조차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진 신하로 이름난 이들 중에서도, 윤재성은 분명 청사에 오래도록 그 위명을 남길 사람일 것이다.

* * *

그때, 소릉은 막 집으로 돌아와 응접실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바깥을 지키고 선 호위들과 꽉 닫힌 대문을 보고는 대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막 시선을 떼려던 순간, 응접실의 문이 열리더니 평상복을 입었지만 누가 봐도 관원인 자들이 연달아 소도에게 예를 올렸다. 그런 후, 그들이 소씨 가문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떠나는 것이 소릉의 눈에 보였다.

“흥!”

소릉은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돌려 저택 뒤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부친이 이렇게 소리쳤다.

“거기 서거라!”

소릉이 천천히 몸을 돌려보니, 제 부친이 응접실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들어오거라, 할 말이 있으니.”

소도는 그렇게 말한 뒤 먼저 몸을 돌려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릉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마지못해 응접실로 향했다.

안에는 관원들을 대접했던 찻잔과 다과가 이미 치워져 있었고, 두 사람을 위해 차는 새것으로 준비된 상태였다.

소릉이 안으로 들어서자, 자기 부친이 아래쪽 의자에 앉아 자신을 향해 여기 앉으라는 듯이 옆 의자를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소릉이 자리에 앉자, 소도가 차를 한 입 마신 뒤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릉아, 내가 네게 새 혼사를 준비해 두었다. 도홍부(都洪府) 지부 집안의 소저인데, 올해 16살이 되었으며 자태가 아주 곱다더구나. 분명…….”

“아버지!”

소릉은 화를 참느라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이렇게 소리쳤다. 그는 최대한 차분한 말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부친인 소도를 향해 말했다.

“아버지! 겨우 16살이라니요. 저는 그 아가씨의 아버지뻘 나이입니다. 게다가 저는 첩실이 셋이나 있다고요. 뭐 하러 멀쩡한 아가씨를 또 하나 집에 들여 그 아가씨가 일생을 손해 보게 한단 말입니까!”

“손해라니? 우리 소씨 집안은 어사대를 손에 쥔 권세 있는 집안이다. 우리 집안에 시집오면 끝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테고, 그 소저의 집안에도 많은 이득이 따라올 것이다. 너는 문무를 모두 갖추고 외양도 단정하니, 어디를 보더라도 이 혼사는 그 소저에게 있어 손해는 아니다.”

부친의 말을 들은 소릉은 기가 차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 말씀에도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저는 그 말씀을 따를 수 없습니다.”

소도는 아들이 반대하리라는 걸 알았으므로 그다지 화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비가 이미 류 지부와 상의를 끝냈다. 이미 정한 혼사를 어찌 네 말 한마디로 물러버릴 수 있겠느냐? 되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이 일은 이미 정해졌다. 나는 네 의견을 물어보려던 게 아니라 그저 알려주는 것뿐이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말이다.”

소릉은 주먹을 꽉 쥐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아버지,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만약 이 혼사를 물리지 않으신다면, 제가 직접 사람을 보내 설명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 혼사를 강행한다면 그 아가씨는 살아있는 과부가 될 것입니다.”

쾅!

소도가 옆에 있던 차 탁자를 내리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이놈! 너는 정말 소씨 집안의 대가 끊기도록 내버려 둘 셈이냐?”

그러자 소릉이 고개를 돌려 부친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다 시도해보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제가 첩을 몇 명 더 들이는 것보다, 선행을 베푸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응접실을 나섰다. 그러자 소도는 입구까지 달려가 아들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우리 소씨 집안은 성상께 충심을 바치고 있고, 황실과 나라에도 충성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만민을 위한 선행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 예전에 네가 그 청루의 계집을 정처(正妻)로 맞아들이도록 허락해 주었는데도, 여태 자손 하나 낳질 못하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죄를 지은 것이다! 네가 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당장 그 계집을 내쫓아 버리겠다!”

소릉은 그의 말에 제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다 잠시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남겨진 소도만이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공자께서도 어르신의 마음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한쪽에 서 있던 늙은 하인이 얼른 다가와 그를 위로했다. 소도는 잠시 후 화를 진정시킨 뒤,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응접실 안으로 돌아왔다. 소도가 다시 진정한 듯 보이자, 늙은 하인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어르신, 그간 공자를 진료한 의원들 모두 보약을 지어 주는 것 말고는 공자께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공자께서는 건강하시고 혈기가 왕성하시다고요. 그런데 부인 가운데 어느 분도 회임하지 못하시니, 이는 아무래도 병이 아닌 듯합니다. 제가 듣자 하니 최근 도성에 돌아온 두 천사의 실력이 뛰어나시다던데, 그분을 모셔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소도를 가장 괴롭게 한 문제는 조정에서의 알력 싸움이 아니라 소씨 일가가 대를 잇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며느리가 계속해서 회임하지 못하니, 소도는 소릉을 위해 연달아 첩실을 맞아들였고, 의원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 그런데도 그중 누구도 회임하지 못했다.

이에 소도는 심지어 바깥에서 몰래 젊은 여인 몇몇을 만나 늦둥이를 얻어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회임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그는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노복의 말에 소도는 귀가 솔깃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