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83화 (583/892)

583화. 천사의 중책

계연이 웃으며 찻잔 두 개를 뒤집어 직접 두장생과 그의 제자를 위해 차를 따라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계연이 직접 건네기를 기다리지 않고, 얼른 탁자로 걸어가 직접 차를 가져왔다.

“윤 훈장님의 병세는 확실히 위중하지만, 제가 여기 있으니 당연히 돌아가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두 천사께서는 홍무제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윤 훈장님이 완쾌되면 이는 두 천사의 공로로 치는 걸로 하죠.”

“감, 감히요! 제가 어찌 감히 계 선생님의 공로를 가로채겠습니까? 제가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만약 천사께서 이 공로를 가져가지 않으면, 제가 가서 황제께 이 공로를 인정받아야 하나요?”

계연의 말에 두장생은 휙 고개를 들었다가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듯한 회백색의 두 눈과 마주쳤다. 속세의 황권이 내리는 포상은 계 선생님 같은 분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이에 두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공은 그동안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윤 재상을 돌본 의원들과 나누겠습니다. 감히 제가 홀로 그 공을 다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계연은 저도 모르게 두장생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곧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의 작은 동작에 두장생은 마음 깊이 환희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계 선생님과 같은 고인(高人)의 앞에서는 결코 탐욕스러운 태도를 드러내선 안 되었다.

“의원들의 공로도 물론 있을 테지만, 그래도 윤 훈장님이 병에서 완쾌되기 위해서는 두 천사의 신묘한 술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겠지요.”

두장생은 계 선생님이 이 공로를 자신에게 주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로서는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이를 거절하면 더욱 위선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황상의 앞에서는 자신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보여주며 반드시 곤란해하는 기색을 드러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상께서는 사람을 구하는 게 자신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고, 그리되면 앞으로 온갖 곤란한 일이 따라올 것이다.

두장생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국사의 지위에 오른 모습을 상상했다. 한쪽에 서 있던 제자 왕소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그러자 두장생은 깜짝 놀라 즉시 웃음기를 거두고 애써 담담한 체했다.

이 두장생은 과연 난 사람이었다. 계연은 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윤씨 집안 두 아이도 이를 보고 쿡쿡 웃었다가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두 천사께서는 이만 가보셔도 돼요.”

“어…… 예?”

두장생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되물은 뒤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다시 이렇게 물었다.

“저, 선생님, 따로 더 분부하실 것은 없으신지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은 다 했어요.”

“저, 저, 선생님, 혹시 제 수행이 어떤지 한번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소련>으로 부지런히 수행을 갈고 닦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나 고칠 만한 부분이 있는지요?”

두장생이 찻잔을 내려놓고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계연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발전이 있었네요. 의식 세계에 단로를 만들어냈으니, 이제는 진정한 선도(仙道)의 수선자라 불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수준을 아직 더 끌어올려야 해요.”

말을 마친 계연은 다시 탁자 위에 놓인 서적을 들어 올렸다. 이는 분명히 손님을 내보내는 태도였다. 이에 두장생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제자와 한쪽에 서서 입을 가리고 웃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희미한 탄식을 내뱉더니 다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장생은 이렇게 말한 뒤 곧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계 선생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는가. 윤 재상의 병세가 나아지기 전까지는 선생님도 여기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기회를 찾아 선생께 가르침을 청할 수 있을 터였다.

두장생과 왕소가 막 떠나려던 순간, 눈도 돌리지 않고 서책을 읽던 계연이 돌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차는 다 마시고 가세요.”

그러자 두장생은 눈을 반짝이더니 돌 탁자 위에 놓인 뚜껑도 열리지 않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왕소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찻잔 뚜껑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러자 맑고 단내가 나는 향이 은은하게 풍겨와, 사라질 듯 말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 찻물에 무언가 남다른 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차 온도를 한번 재봤다가 한입에 다 마셔버렸다. 그러자 뜨끈한 감각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내려갔다. 뒤이어 맑은 기운이 두장생의 사지 전체로 펴지더니, 두장생의 온몸이 편안하고 상쾌해졌다.

“자, 그럼 이만 가셔도 돼요. 지야, 전아, 나 대신 두 손님을 배웅해주고 오렴.”

계연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하자, 두장생이 아직도 멍하니 신기한 차의 효능을 느끼고 있던 제자를 끌어당겨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뒤로 몇 발짝 물러난 후 몸을 돌려 뜰을 나섰다. 두 아이도 고분고분하고 공손한 태도로 그들을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서자 두장생은 얼굴 가득히 어린 화색을 더는 감출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그는 이미 웃고 있던 제 제자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이를 본 두 아이도 몰래 킥킥 웃었다. 그러자 두장생이 얼른 왕소에게 말했다.

“크흠, 조금 자제하거라.”

이들이 채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다시 아원이 나타났다. 이들이 보아하니 내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그의 뒤를 따라 마차에 오르고 나서야 두장생은 마침내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공중을 향해 주먹을 몇 번 휘둘렀다.

두장생 일행이 떠나자 계연이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작은 종이학이 그 안에서 빼꼼 모습을 드러내더니 날갯짓을 하며 계연의 어깨 위에 앉았다.

“춘목강으로 가거라. 이걸 오숭에게 전해주고, 도성으로 오라고 알리렴.”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종이를 꺼낸 뒤 낭호필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종이 위로 여덟 글자가 나타났다.

《計緣勅命 持此通行.(계연의 칙령이니, 이것을 지닌 자를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종이 위로 빛이 한번 번쩍이더니 곧 먹물이 완전히 말랐다. 계연이 종이를 잘 접어 종이학에게 건네자, 종이학은 부리 사이에 그것을 끼웠다.

뒤이어 계연은 종이학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댔다. 그러자 종이학이 날개를 펄럭이더니 날아올랐다.

“얼른 갔다 오렴.”

우웅……!

넝쿨검의 그의 등 뒤에서 희미하게 진동하자, 종이학이 아주 익숙한 듯이 칼자루로 가서 자리를 잡은 뒤 날개 두 쪽으로 푸른 넝쿨을 꼭 쥐었다. 다음 순간, 검광(劍光)이 번쩍이더니, 선검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계연은 넝쿨검과 종이학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떠들썩한 걸 보니 확실히 도성은 도성이라고 생각했다.

* * *

두장생은 흥분과 기쁨을 느끼며 마차를 타고 사천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기도 전에, 궁에서 나온 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과연, 그자는 두장생을 보고는 입궁해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에 두장생의 기분은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이 곤두박질쳤으나, 그는 곧 소식을 전한 태감과 함께 황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입궁하는 길 내내, 그는 대체 황상께 어떻게 고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각(二刻: 30분) 후, 어서방 안에서는 홍무제 양호가 두장생의 보고를 듣고 있다가 엄숙한 얼굴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친애하는 윤 경의 상태가 아주 위급하다는 소린가?”

두장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윤 재상의 호연정기는 여전히 사방에 빛을 내뿜으며 폐하께서 지닌 자미의 기운과 서로 돕는 형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재상의 생명의 불꽃이 곧 꺼질 듯하니, 재상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입니다. 만약 태의원의 어의들께서 전심전력으로 재상을 돌보지 않았다면 이미 저승의 신령들이 재상을 방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양호는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 얼른 이렇게 물었다.

“천사에게 그를 구할 방도가 있는가?”

그러자 두장생이 심호흡을 하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황제를 향해 고했다.

“폐하. 소신이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윤 재상과 같이 천고에 한번 나오기 힘든 현신은 백 가지 병을 이겨낼 수 있고 귀신들조차 비호하는 분입니다. 그런 윤 재상의 병세가 이렇게까지 위독하다는 것은 분명 하늘의 뜻일 것이고, 하늘의 뜻은 되돌리기 어렵지요…….”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천사는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양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두장생을 주시했다. 그러자 두장생은 심장이 덜컹했으나 억지로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며 눈썹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긴 체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 양호를 바라보며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폐하, 소신 백 년 동안의 도행을 걸고 한번 부딪혀 보겠습니다. 이는 소신이 헛된 국사의 자리를 바라서가 아니라, 천고의 현신을 구하고 대정의 강산을 지켜내기 위함입니다!”

“천사…….”

그의 대답에 양호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두장생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예를 올리고 있었다.

“소신, 비록 수행자이나 그 마음만은 여전히 천하 창생(蒼生)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게 윤 재상을 구할 기회가 있는데도 온 힘을 다해 시도해보지 않으면, 소신은 남은 삶 동안 후회를 금치 못할 것이고 앞으로의 수행도 모두 망치게 될 것입니다! 소신, 여기서 폐하를 더 모시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만 가서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두장생은 이렇게 말하며 이를 악문 뒤,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어차피 이렇게 황제가 자신을 마음껏 주무르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국사가 되더라도 일개 노비인 태감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이다.

“천사, 그렇다면 천사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황제가 등 뒤로 이렇게 물어오자, 두장생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양호는 두장생이 만 근이나 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수(*天數: 하늘의 뜻)’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황제도 아예 모르지는 않았다. 양씨 황족들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사천감 역대 감정들도 그저 장식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천수는 속칭 천의(*天意: 하늘의 뜻)라고 할 수 있었고, 글자의 의미만 봐도 그 뜻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옛말이 있듯이, 하늘에 닿는 것은 몹시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감히 닿지도 못하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어찌 되겠는가?

만약 두장생이 자신이 아주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대답했거나, 이러이러한 정도는 대가로 치를 수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면 양호가 받은 충격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신도 잘 모르겠다는 말은 오히려 그를 뒤흔들었다.

예전에 있었던 일과 사천감에서의 술법 시연을 떠올려보면, 두 천사는 그래도 황권을 경외하는 인물이었다. 오래전, 어전에서 자신의 부황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담담히 말하던 늙은 비렁뱅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랬던 자가 방금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휙 떠나 버렸다. 이는 그가 더는 황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혹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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