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화. 두장생이 술법을 부리다
한편 계연은 오숭이 이미 통천강에 도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오숭이 자신을 존경하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최대한 서둘러 3, 4일 정도 걸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이 조금 지나 도착한 걸 보니, 오숭은 소식을 받자마자 다른 일을 제쳐두고 곧바로 출발한 듯했다.
계연이 이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제쳐두고, 통천강 측에서는 어쨌든 이 사실을 계연에게 알리려고 했다. 현재 통천강의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 모두는 계 선생님도 오숭이 도착했음을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예를 다해야 했다.
지금 용궁에는 용왕은 물론이고 강신마마나 응풍 전하도 자리를 비워, 통천강에서는 야차 통령 몇 명이 대리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장원 나루터 근처의 강바닥에 오숭을 머물게 한 뒤, 야차 통령 중 하나가 뭍으로 올라 계연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한 야차 통령이 강기슭으로 올라와 가벼운 옷차림을 한 무인의 모습으로 경기부로 향했다. 그는 부성에 들어선 후에 곧바로 영안가를 따라 윤재성의 저택 앞에 이르렀다.
평소 통천강에서 용왕과 강신을 가까이에서 시중드는 데다 도행도 꽤 높았던 야차통령은 뜻밖에도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윤재성의 저택을 뒤덮은 호연정기는 마치 밀물처럼 몰려와 쉴 새 없이 그를 밀어내는 듯했고, 동시에 커다란 산이 그를 아래로 짓누르는 듯도 했다.
만약 그가 정도(正道)를 닦는 요괴가 아니고, 오랫동안 강신의 신령한 빛에 감화되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그가 그간 쌓아온 수행이 아예 무너져내릴 위험도 있었다.
무인의 행색을 한 사내가 대문 앞에 서서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자, 저택 앞을 지키던 호위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이곳은 윤 재상의 저택이다. 멈춰선 자는 누구냐?”
야차 통령은 그 물음에 호연정기가 가져온 환상 속에서 깨어나 얼른 인사하며 말했다.
“소인의 성은 야(夜) 씨로, 통천강에서 왔습니다. 부디 저택에 계시는 계 선생님께 오 선생께서 도착하셨다는 말을 좀 전해주십시오.”
“계 선생님께 전해 달라?”
호위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지금 저택 안에 계 선생님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없었다.
“그렇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소인은 다른 일이 있어 도성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실 야차통령은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을 하면서도 오숭이 왔다는 것을 계 선생님이 알고 계시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계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않고 돌아가려는 것이기도 했다. 윤씨 가문의 저택에서 느껴지는 압력이 너무 커 저택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호위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순간, 남자는 이미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호위가 그의 걸음걸이를 보니 무공이 뛰어난 자가 확실했는데, 그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더니 종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래서 호위들은 서로 멀뚱멀뚱 눈빛을 교환하다가, 마침내 그중 한 사람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 계 선생님께 이를 보고하기로 했다.
* * *
한편, 저택 안에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지금 윤재성의 저택 후원의 상황은 황제인 양호의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계연은 여전히 뜰 안에 앉아있었으나, 오늘은 두 아이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 호위가 다급히 후원의 객사에 들어오다가 계연이 홀로 바둑을 두고 있는 걸 보고는 멀찍이서 예를 올린 뒤 이렇게 보고했다.
“계 선생님, 조금 전에 자신이 통천강에서 왔다는 무인이 한 사람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통천강 남쪽에서 왔는지 서쪽에서 왔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자가 소인더러 오 선생이 도착했다는 것을 선생님께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계연은 손에 바둑돌을 쥐고서 깊이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잠시 뒤, 계연은 고개를 돌려 호위를 향해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돌아가 보세요.”
“예,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호위는 원래 계연에게 재상 어르신의 상태를 묻고 싶었으나,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계 선생님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엄밀히 정해진 규정은 없었으나, 누구나 이를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손으로 흰 바둑돌을 집고서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온 세상의 산과 하천을 굽어보는 듯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이든 마음속의 광경이든, 그 모든 것은 표상에 불과했다. 그의 의식 안에서 기국(棋局)이 펼쳐짐에 따라 드러나는 갖가지 변화야말로 그가 상대하는 진정한 국면이었다. 계연은 이와 동시에 윤재성이 머무는 저택 뒤편에 내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윤재성이 머무는 곳의 뜰에서는 법포를 입은 두장생이 엄숙한 얼굴로 세 제자와 함께 법단(法壇) 앞에 서 있었다. 그 위에는 향초와 법기(法器), 제사를 올릴 때 필요한 공물 등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두 종류의 기이한 식물이 자라난 분재 화분 두 개도 놓여 있었다.
하나는 인삼이었는데 여러 개의 붉은 끈이 인삼 줄기를 감싸고 있었고, 끈의 다른 한쪽 끝은 탁자 위의 동으로 된 자물쇠 여러 개에 이어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붉은 꽃 모양의 식물이었는데 끈이 달려 있진 않았지만, 꽃송이 위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와 무척 신기했다. 척 봐도 이 꽃은 엄청난 보배임이 분명해 보였다.
곧이어 두장생은 법단 앞에서 불진(*佛塵: 짐승의 털이나 삼(痲) 등을 묶어 자루 끝에 매어 단 총채와 같은 것으로, 수행자(修行者)가 마음의 번뇌를 먼지처럼 털어버림을 상징하는 도구)을 휘두르며 술법을 펼쳤다. 그가 가진 법력을 법단 위로 끌어내고 탁자 위 두 영초(靈草)의 힘까지 빌리니, 주위로 영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뜰 안에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법단이 마련된 뜰 바깥쪽에는 윤재성을 돌보려고 파견된 어의와 황제를 지척에서 모시는 태감 이정춘(李靜春), 사천감 감정 언상, 태자 양성, 그리고 윤씨 일가가 서 있었다. 이번 일은 소식이 새어나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한 터라, 최대한 바깥에 알리지 않기 위해 그들 외에 다른 외부인은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는 두장생을 아직도 미심쩍어하는 자들이 많았다. 원덕제 시기에 두장생을 비롯한 천사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게 남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장생은 그들의 그런 생각을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
법단 위로 빛이 번쩍이는 데다 알 수 없는 맑은 바람이 불어와 호흡까지 편안해졌다. 이것만 봐도 두장생은 절대 사기꾼이나 일반적인 수준의 수행자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어의들은 저들끼리 속삭이며 윤재성의 병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 재상의 병세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더라니, 지금 이 상황을 보니 확실히 일반적인 병이 아닌 모양이었다.
양성은 윤씨 형제의 곁에 서 있었는데, 그는 이 두 사람보다 더욱 흥분한 얼굴이었다. 뜰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에 그는 때때로 고개를 돌려 윤씨 형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윤씨 집안의 노부인을 포함한 그들 일가는 이런 상황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무척 담담한 표정이었다.
“윤 상서, 자네는 언제나 지혜로웠지. 이번에는 스승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양성이 작은 소리로 이렇게 묻자, 윤청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낮추며 이렇게 대답했다.
“부친께서는 병을 앓아오신 지 오래된 데다, 두 천사가 비록 대단한 법력을 지니고 있으나 본인도 말했다시피 이는 하늘과 다툼을 벌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결과가 어찌 될지는 저로서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태자 전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를 비롯해 저희는 모두 각오한 상태입니다. 여기까지 이룬 것만도 이미 대단한 것이니, 설령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더라도 별로 아쉬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윤중이 이렇게 말했다.
“태자 전하,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하늘이 보우하고 계시는 분이시니, 분명 쾌차하실 겁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 두장생은 불진을 휘두르다가 이내 크게 소리쳤다.
“천사(天師) 호법(*護法: 불교의 용어로, 4대 천왕 등을 비롯한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호법신(護法神)을 뜻함. 후에 이런 호법신들의 이미지를 점차 종교, 무술 문파, 무협 소설에서도 인용하게 됨)은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불진이 법단의 네 모서리를 훑고 지나가자, 사람의 형체를 본뜬 종이 부적 여섯 장이 떨어져 내리더니 곧 희미한 사람 그림자로 변했다.
그러자 주위에 모여든 영기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고, 여섯 개의 그림자는 점차 부풀어 올라 단번에 반 장(丈) 넘게 치솟았다. 게다가 그들 주위로 빛이 흐르고 있어 그 모습이 무척 신령스러워 보였다.
이를 목격한 윤씨 집안의 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을 떡 벌렸다. 동시에 아이들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 천사 대인께서는 계 선생님보다 훨씬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이의 순수한 감탄에, 한껏 장엄한 모습으로 술법을 펼치던 두장생은 하마터면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다행히 그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던 순간, 재빨리 반응하여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한 뒤 다시 왼손으로 땅 표면을 밀어내며 가볍게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런 뒤에 ‘호법’ 중 하나의 어깨를 발로 살짝 디디고는, 다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호법의 어깨를 밟으며 가볍게 법단 앞에 내려앉았다.
이 모든 동작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전혀 그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땅에 내려선 뒤 누구도 자신이 당황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마에 삐죽 솟아난 식은땀을 물을 부리는 수법으로 흩뜨려버렸다.
‘침착하자. 어린아이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계 선생님께서는 분명 개의치 않으실 거야, 분명…….’
두장생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로한 다음 계속해서 술법을 이어갔다. 그가 끌어모은 영기가 계속해서 뜰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때, 내내 탁자 위 해시계를 바라보던 첫째 제자가 왕소가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
두장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태자 전하, 윤 교위(校尉), 이 공공, 세 분께서는 기혈이 왕성하시니, 세 호법을 따라 함께 사(死), 경(驚), 상(傷), 이 세 문(門)을 막아서 주십시오(*음양가·점술가가 구궁(九宮)에 맞추어 길흉을 점치는 여덟 개의 문(門)이 있는데 이를 팔문(八門)이라 부르고, 여기에는 휴문(休門)·생문(生門)·상문(傷門)·두문(杜門)·경문(景門)·사문(死門)·경문(驚門)·개문(開門)이 속함)!”
법단 한쪽에서는 형체가 모호한 거대한 호법 세 사람이 각기 뜰의 어느 곳을 향해 걸어갔다. 세 사람은 담장이 앞을 가로막자 가볍게 담장을 뛰어넘어 윤재성이 머무는 침실 뒤편으로 향했다.
양성과 윤중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경공을 펼쳐 호법의 뒤를 따랐고 노태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들은 정말로 흉문(凶門)을 넘는 것처럼, 자신들을 향해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이 각기 호법을 따라 지정된 위치에 가서 서자, 마침내 한기가 이들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에 그들은 진기(眞氣)를 운용하여 한기를 몰아냈고 이로 인해 주위의 바람도 약간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