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9화. 의식을 이끌어 함께 유람하다
한편, 통천강에서는 오숭이 강바닥에 엎드려 반은 꿈을 꾸고 반은 깨어있는 상태로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들었던 <소요유>에 대해 떠올리다가, 다시 잊고 있던 옛일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예전 그 소씨 성을 가진 서생의 후손은 지금쯤 몇 대나 이어져 내려왔을까? 지금쯤 대정국 조정에서도 권세가 혁혁하겠지.’
하지만 오숭 자신은 하마터면 수행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고 완전히 무너질 뻔했다.
이런 경험을 한 오숭이 이 일을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하, 되었다. 사람의 화복(禍福)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그나저나 선생님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을까……. 만약 기회가 있다면 소씨 집안 후손을 한번 만나보고 싶군. 대체 어떤 이들인가…….’
오숭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예전에 들은 <소요유>와 잠깐 의식 세계를 엿본 경험에다 춘목강 정신(正神)에게 전수받은 물의 족속들만의 수행법으로, 이제 오숭의 몸과 마음 모두가 제대로 된 수행의 궤도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발전이 그리 빠르지는 않았으나, 더는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이 막연하지 않았다. 오숭은 서두르지 않고 산을 보고 풍경을 감상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수행을 닦고자 했다.
오숭은 고요히 수행의 상태에 들어있을 때, 별안간 기이한 감각이 느껴져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강바닥의 어두컴컴하고 흐릿한 광경만이 그의 눈에 들어올 뿐, 그는 어떤 특별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오숭은 시선을 돌리다가 어느새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를 자세히 바라보던 오숭은 곧 대경실색하며 소리쳤다.
“계 선생님?! 늙은 거북 오숭,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그가 뱉어내는 거품에 물살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서둘러 뒷다리로 일어나 계연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앞발을 모아 예를 취했다. 그의 움직임 때문에 모래가 일어 시야가 혼탁해졌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로 사라졌는지 계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마음이 소요(*逍遙: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로이 거닐다)하면 의식도 소요하고, 의식이 움직이면 그것이 바로 소요의 경지라.”
계연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숭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자, 그는 너무 놀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오숭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환각이 아님을 확신하고는, 방금 겪은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육 산군만큼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치는 정도의 능력은 없었으나, 수백 년간 수행을 닦아온 만큼 절대 보통 수준의 요괴가 아니었다. 오숭은 즉시 강바닥에 누워 조용히 입정(入靜)에 들었다.
한 차례, 두 차례 깊이 심호흡을 이어가던 찰나, 오숭은 소요의 뜻이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홀로 수행하던 때보다 그 감각이 더욱 강렬했다. 오숭은 심지어 자기 몸이 가볍게 둥둥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오숭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계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자 계연이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감각을 거스르려 하지 마세요. 깨어있는 의식 한 줄기를 뽑아낸 것뿐이니.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그러자 오숭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수행에 들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천천히 떠올라 수면 위를 벗어나 계 선생님을 따라 물살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기도 했다. 만약 그가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았다면, 강바닥에 누워있는 거대한 거북의 몸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몽>은 본질적으로 <소요유>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오숭이 수행 상태에 있던 것은 계연을 좀 더 수월하게 해줬을 뿐이다. 계연은 덕분에 그리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고도 오숭의 의식을 끌어낼 수 있었다.
꿈속에서 검을 뽑거나 다른 술법을 펼치지 않아도, 유몽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했다. 이에 계연은 어떤 부분을 개량할 필요가 있거나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유몽술을 사사롭게 쓰려 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계연에게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고, 오숭의 인연법과 관련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마침 오숭이 <소요유>의 뜻을 빌어 수행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계연은 생각보다 손쉽게 이러한 시도로 오숭의 의식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럼 남은 일은 이제 한 가지뿐이었다.
계연이 오숭을 경기부에 오도록 한 것은, 윤씨 집안에 불리한 형세를 도우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오숭의 수행 때문이었다. 계연은 윤씨 일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본 적은 없었으나, 아마 소씨 집안은 이번 권력 싸움에서 크게 질 확률이 높았다. 까딱하면 앞으로 소씨 집안의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 오숭이 200년간 소씨 집안과 이어온 은원을 해결하기에 적절한 때였다.
물론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계연도 모르고, 후에 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나, 계연은 이왕 자신이 이 일을 알게 되었으니 오숭을 도와 인연을 끝맺을 생각이었다.
계연이 만난 많은 중생 가운데 오숭이 계연에게 남긴 인상은 무척 강렬했다. 그는 열심히 수행을 닦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았고 억울한 일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수행에 대한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았고 본성도 선했다. 아무리 고된 길이어도 그는 언제나 정도를 걸으려 하는 수행자였으므로, 계연은 이 점에 대해 그를 무척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오숭은 자신이 걸음을 떼지 않는데도, 몸이 계연을 따라 뭍으로 올라오더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요혼(妖魂)이 육신을 떠난 것과는 또 달랐다. 이에 그는 자신의 원신(元神)이 육체를 이탈한 줄로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 선생님, 지금 제 원신은 육체를 떠난 것입니까?”
원신은 수행자의 정신, 의식, 생각이 모여 마음(靈臺)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혼백과 식신(*識神: 희로애락과 칠정육욕(七情六慾)을 관장함)을 능가하는 영혼의 산물이었다. 수행자가 지닌 천성은 바로 이 원신에 드러나고, 원신은 혼백과 육신보다 높은 경지의 것이었다. 보통은 심신이 강할수록 원신이 강해져 수행자, 특히 정도를 닦는 수행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원신이 육신을 이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오숭의 도행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정도였다. 게다가 원신이 자유로이 세상을 떠도는 기회를 이용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육신과 혼백의 보호가 없는 원신은 무척 취약했다. 수행이 얕은 이들이 원신을 이용해 육신을 떠났다간, 찬바람만으로도 원신이 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행이 높은 이들도 보통은 원신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으며, 육신과 혼백의 수행만을 중시했다.
오숭의 물음에 약간의 걱정이 담긴 걸 느낀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신이 몸에서 이탈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아무렇게나 끌어낼 수 없죠. 이건 그저 당신의 의식 한 줄기일 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설령 흩어진다 해도 깨어난 후 조금 피로함만 느낄 뿐, 큰 문제는 없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저, 그럼 오늘 저를 데리고 가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계연은 오숭을 데리고 뭍으로 오른 뒤, 멀리 윤곽이 보이는 경기부 부성을 바라보았다.
“당신 옛 친구의 후손을 보러 가도록 하죠. 최근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편히 잠을 자고 있을 것 같진 않군요.”
* * *
비록 깊은 밤이 되어 도성 전체가 고요했으나, 계연의 말대로 소씨 가문의 저택에서는 소도는 물론이고 소릉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소릉과 달리 그의 곁에서는 그의 부인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가 첩실을 또 하나 들여야 하는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윤재성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소식 때문에 이러는 것이기도 했다.
바깥에 도는 말들을 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소릉이 생각건대 자신의 부친이 황궁에서 돌아와 한 말을 들어보니 이는 사실임이 분명했다.
사실 소릉은 그 자신도 서생으로서 윤재성을 무척 존경하고 있었다. 소릉은 윤재성보다 거의 20살 가까이 어렸으나, 윤재성과 함께 과거를 치렀던 동기였다. 그리고 조정의 생각 있는 이들은 윤씨 일가가 가진 포부가 무엇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눈치챌 수 있었다.
윤재성은 황제에 대한 충심이 깊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애쓰는 충신이었다. 자신의 부친처럼 평가에 각박한 이조차, 사석에서는 윤재성을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어도 그의 인품이며 재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의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라, 윤재성이 지금의 위치에 이르러서도 곧고 바른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능력이 있고 큰 뜻을 품은 서생들은 관리가 되기 전에는 모두 공명정대한 관리가 되고 싶어 했다. 후에 타락해버린 관리들조차 처음에는 모두 그러했다. 그런 이유로, 이미 처음의 마음가짐을 저버린 이들 또한 모두 윤재성을 존경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그런 추세로 변하고 있었다.
이는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다. 윤씨 집안 사람들은 그동안 대정국 각 부문의 발전에 힘써왔지만, 특히 글 읽는 이들의 뿌리부터 깨끗하도록 교화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윤재성의 말에 따르면 이는 ‘서생이 갖춰야 할 품격’이었다. 덕분에 아래로는 풍기가 단정하게 잡혔고, 위로는 윤재성과 같이 천고에 이름이 빛날 인물이 ‘우상’처럼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위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아래는 이를 존경하며 따르니, 온 나라 서생들의 품행이 단정하고 기개가 넘쳤다.
이 점은 양씨 황족은 물론 사대부 계층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백성 중에서도 이치를 깨우친 이들은 이를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아래로는 학풍을 다스리고, 중간에서는 율법을 엄히 따르며, 위에서는 일관된 정책을 펼쳤다. 윤씨 집안과 그 제자들, 각계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20여 년간 노력하였으니 국력이 나날이 흥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발전이 자기 가문의 이익과 충돌하게 되자, 소릉은 마음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더욱이 그는 소씨 집안에 본질적으로 어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휴우…….”
소릉이 이렇게 한숨을 내쉬자 그 소리에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잠에서 깼다. 어쩌면 그녀도 잠이 든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소릉의 부인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에 부녀자들은 바깥일에 함부로 간섭하면 안 되었고, 특히나 그것이 조정에 관한 일처럼 자신이 아예 알지도 못하는 방면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나 때문에 깼소?”
그러자 단목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공, 어서 주무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생각하시고요.”
“음.”
소릉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이불을 잘 덮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단목완은 손으로 남편의 뺨을 쓸어보다가 의아한 얼굴로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뒤척였으면서 이렇게 빨리 잠이 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