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90화 (590/892)

590화. 강가의 등불

한편 소씨 저택의 다른 한쪽에서는 소도도 마찬가지로 잠이 들어있었다. 그는 서재의 연탑(*軟榻: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좁고 긴 의자) 위에 앉아 등불을 빌려 서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로써 복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는 몇 번 하품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소도를 모시는 노복이 뜨거운 차를 따르러 왔다가 그가 잠이 든 것을 보고는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렇게 소씨 부자 두 사람은 꿈속에서 각자 잠에서 깼다. 한 사람은 침실의 침상에서 일어났고, 다른 사람은 서재의 연탑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이들의 옷차림은 무척 단정했다. 이들은 이곳이 어디이며 시각은 언제인지도 잊은 듯했고, 주위는 온통 안개로 흐릿해 정신도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몽롱했다.

“오씨 어르신! 오씨 어르신!”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도와 소릉은 살짝 정신이 들었다. 이들은 각자 방문을 열고 천천히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바깥은 소씨 가문의 저택 내부가 아니었고, 온통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소씨 부자는 서로를 보지는 못하고 각자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오씨 어르신! 어디 계십니까, 접니다! 제가 왔습니다, 어르신!”

그자의 목소리는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힘껏 소리치고 싶으면서도 또 소리가 너무 클까 걱정하는 듯하여 무척 수상쩍었다.

소도와 소릉은 서로를 볼 수는 없었지만, 옅은 안개가 깔린 밤길을 걷다가 눈앞에 넓은 강물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이들은 경기부 부성 안에 살았으므로, 집 문을 나서자마자 이렇게 큰 강이 흐르는 것은 원래라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처 그 점까지 생각하지는 못하고 그저 목소리의 주인을 따라 강을 향해 다가갔다.

“오씨 어르신……. 어르신, 소 모(*某: ‘모’는 이름 대신 쓰여 자기를 낮춰 부르는 말)가 어르신께 드릴 술을 갖고 왔습니다…….”

그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아 헤맸고, 소도과 소릉 부자도 마침내 안개 속에서 그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서생이 입는 푸른 장삼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방건(*方巾:문인들이 썼던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비록 거리와 안개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늘씬하고 키가 큰 사내였다.

그의 걸음걸이에서 초조함이 묻어나긴 했으나 어느 정도의 품격이 느껴져, 소씨 부자는 분명 그의 외모가 그리 뒤떨어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이도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오씨 어르신, 소 모가 왔습니다…….”

그가 두 번째로 이렇게 외치자, 소도와 소릉은 그제야 그자의 성이 소씨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자신들과 같은 소씨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더 가까이 가지 않고, 옅은 안개에 가려진 살짝 떨어진 곳에서 서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생은 손에 든 술 단지 두 병을 내려놓고는, 그중 한 단지 위의 끈을 풀고서 붉은 천으로 감싸인 마개를 힘껏 뽑아냈다. 그러고는 강변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술을 강물에 부었다.

줄줄줄…….

마개를 뽑자 주위에는 이미 그윽한 술 향기가 퍼져나갔고, 강물과 섞이자 물살에 의해 더욱 멀리 향기가 퍼져나갔다. 서생은 단지 안의 술을 반 정도 들이부은 후, 땀을 닦으며 아무런 변화가 없는 강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강 어딘가에서 물보라가 일었다.

촤르르-!

물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가르고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술을 따른 젊은이도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뒤이어 그가 서 있던 기슭에 ‘찰싹!’ 하고 파도가 부딪쳐오며 거대한 거북의 모습이 반쯤 드러났다.

거북은 뒷발은 강물 안에 남긴 채로 앞발만을 기슭에 올려 몸을 지지한 채로, 놀라 뒤로 자빠진 서생을 바라보았다.

“오, 오씨 어르신! 드, 드디어 오셨군요, 접니다. 저, 소정이에요! 아, 아직 저를 기억하시지요?”

“하하하하……. 당연히 기억하지. 왜, 드디어 내게 보답할 생각이 났느냐? 하지만 이 술 반 단지로는 어림도 없다!”

거대한 검은 거북이 사람의 말을 하는 걸 보고 어두운 곳에 숨어 이를 지켜보던 소도와 소릉은 깜짝 놀랐다. 한편 젊은 서생은 맨 처음의 놀라움이 가시자 다시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술 단지를 들어 거북의 앞에 갖다 놓았다.

“오씨 어르신, 여기 아직 반이 더 남아 있습니다. 비록 이름난 술은 아니지만, 맛은 제가 보장합니다. 춘혜부 밖에 대대로 술을 빚는 집안에서 사온 술인데, 그들은 배합을 계속 손보면서 맛을 개량하고 있습니다. 그 집안에서는 매년 봄에 새로 만든 술을 내놓는데, 보통 사람들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강물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오더니, 기슭에 있는 술 단지 두 개를 강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동안 거북의 시선은 내내 서생에게 박혀 있었다.

“좋은 술이군. 하지만 너는 전에 내게 백 개의 집안에서 등불을 모아주겠다고 약속했었지. 그걸 강물에 띄워주겠다고 한 지가 이미 반년이 지났다. 너는 그동안 내가 벌어다 준 재물을 신나게 쓰고 다녔겠지만, 내 등불 백 개는?”

거대한 거북이 그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묻자, 요사스러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서생은 두려운 마음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사실 급하게 오느라 등불 백 개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다 그는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라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어르신, 진정하세요. 부디 진정하세요! 소인은 그간 외지에 나가 있느라 이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등불 백 개를 준비하려면 이곳 춘혜부에서 선량한 이들을 찾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럭저럭 괜찮은 집안은 적지 않지만, 소인은 혹시나 실수하게 될까 두려워 신중을 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인,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춘혜부 인구만 해도 수만 명에 이르니, 만약 어르신께서 원하신다면 소인, 백 개의 등불이 아니라 천 개의 등불이라도 띄워드릴 수 있습니다!”

“아하하하……!”

그러자 거북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오랜 세월 수행을 닦아온 데다 점괘에도 능하다. 네가 나와 한 약속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응?”

거북이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묻자 그의 요기가 사방에 바람처럼 날리고 살기가 드러났다. 그러자 공포가 순식간에 소정을 뒤덮었고, 이는 소도와 소릉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빙고(*氷庫: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 안에 들어가 있거나, 금방이라도 절벽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곧이어 소정이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그에게 애걸했다.

“어르신,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 저는 정말로 어르신을 위해 천 개의 등불을 모으려고 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강에 사는 요선(妖仙)이신데, 저 같은 일개 범인이 어찌 어르신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하하…….”

거북은 젊은 서생을 내려보다가 한참 후에야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말해라, 원하는 게 무엇이냐? 천 개의 등불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등불 백 개면 족하다. 선량한 집안사람들이 밤에 켰던 등불 말이다. 알겠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소인, 확실히 기억했습니다!”

소정은 연신 예를 올리더니 곧 고개를 들어 거북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대단한 신통력을 지니고 계시지요. 소인은 서생으로서 언젠가 출사하여 천하 만민을 이롭게 하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약 어르신께서 절 도와주신다면, 후에 제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등불 만 개를 모아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거북이 휙 고개를 내리며 소정을 노려보았다.

“처음에 만약 네가 내 말대로 하여 큰 재물을 얻는다면, 이번 생에는 부유하고 한가로운 노인으로 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젠 관리가 되고 싶다? 왕조의 기운과 관운의 길을 살피는 것은 결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점괘를 쳐서 네 관도(*官途: 관리의 길)를 열어주는 건 불가능하다. 너는 그럴 만한 학문도 재능도 없다.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마라!”

“그러나 다른 이들은 관리가 되기 위해 온갖 삿된 방법을 씁니다. 어르신께서는 요선이시니…….”

“뭐?”

거북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삿된 방법? 그 말은 지금 요괴인 나를 가리키는 것이냐?”

“아, 아, 아,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요선이신데, 어찌 삿된 방법을 쓰시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그저…….”

그러자 거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 이 일은 다시는 내 앞에 꺼내지 마라. 나는 이미 네게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곳, 부자가 되는 방법, 사주에 맞는 미인까지 점괘로 알려주었다. 너는 이미 속세에서 누릴 수 있는 갖가지 복을 누리고 있다.”

이렇게 말한 거북은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소정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너는 이미 내게 여러 번 식언(*食言: 약속한 대로 지키지 않음)을 한 바 있다. 게다가 내게 보답하기는커녕, 끝도 없이 탐욕을 부리고 있지. 너 같은 것이 관리가 되었다간 엄청난 화가 될 것이다. 내게 등불 백 개를 모아오기 전까지는 찾아올 생각도 하지 마라!”

거북은 이렇게 말한 뒤 천천히 몸을 돌려 촤르르 물살을 가르며 사라졌다.

한참 후 수면이 잠잠해지자, 소정은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에 그는 하마터면 자기가 요괴에게 삼켜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도와 소릉도 이를 보고 너무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무공을 할 수 있거나 세상 물정을 잘 아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잠시 후, 기슭에 있던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대며 떠났다. 소씨 부자가 멀리서 바라보니, 그의 얼굴은 온통 무섭게 구겨져 있었고 얼핏 체념도 담겨 있었다.

소도와 소릉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갑자기 하늘이 여러 번 변하며, 긴 세월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두 부자는 꼭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다시 어느 날이 되어 주위가 온통 우중충한 시각.

말발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다가온 이들은 대략 20여 명의 기수(騎手)였는데, 차림새로 보니 꼭 관차(*官差: 관아에서 파견한 아전) 같았다. 그들은 텅 빈 강변에 이르자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대인, 이곳이 분명합니다.”

“음, 맞는 듯하군! 모두 갖고 온 것들을 꺼내라.”

“예!”

그들은 말 등에 달린 자루를 뒤적이더니 곧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소도와 소릉이 자세히 보니, 그들이 꺼낸 것은 전부 양초로 붉은색, 흰색 갖가지 색이 섞여 있었다. 어떤 흰 양초에는 붉은 무언가가 묻어있기도 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두 사람은 그 붉은색이 핏자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인, 대체 왜 죄인들의 집에서 가져온 초로 등불을 놓는 겁니까? 사람도 전부 죽어 없어졌는데, 굳이 먼 길을 달려 이 강까지 와서 등을 놓게 하다니요? 저는 왜 자꾸 소름이 돋지요?”

“쓸데없는 말 그만해라. 윗분들의 뜻이니 우리는 알 것 없다. 아마 여기에 서린 원한을 흩어 보내는 거겠지, 서둘러라!”

“예!”

“예!”

반각(7~8분) 뒤, 3백여 개의 불붙인 꽃등이 수면 위를 뒤덮었다. 그러나 그 불빛에는 언뜻 핏빛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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