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93화 (593/892)

593화. 대정국의 국사 (2)

“소신, 폐하께 감사드리옵니다!”

황제를 향해 깊이 예를 올린 뒤 고개를 든 두장생은 흥분감 외에 무언가 아주 독특한 감각이 덧씌워진 게 느껴졌다. 자신의 법안과 영각(靈覺)이 더욱 예민해진 듯이 주위에 떠오른 각종 기운의 색채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가 무심코 대전 안을 훑어보니 적지 않은 대신들에게 검은 기운과 핏빛이 드러나 보였다. 특히 맞은편 가장 앞에 서 있는 한 나이 든 신하가 그러했다.

한편 소도도 두장생의 시선이 자신에게 잠시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문 관원들은 지금 모두 이 새로운 국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사는 예를 거두시게. 조정의 일은 국사가 깊이 관여할 필요 없으니, 하던 대로 열심히 수행을 닦고 필요한 때가 오면 도움을 주기만 하면 되네.”

양호의 이 말이 뜻하는 말은 명백했다. 국사의 지위는 네게 주겠지만 국사가 조정의 일에 참여할 권리는 없으니, 그럴 만한 권력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하하하, 좋소.”

양호는 기분이 퍽 좋아 보였다. 곁에 서 있던 태감은 황제의 뜻을 읽고는 이렇게 소리치며 진정한 조회의 시작을 알렸다.

“상주문이 있으면 올리시오!”

오늘 열린 대조회에서는 대신들도 특별히 중요하게 보고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맨 처음 두장생을 국사에 책봉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비록 종5품이 도성에서는 그리 높은 관직에 속하지 않는다지만, 국사의 지위 자체는 대정국 전체로 보면 앞줄에 드는 관직이었다. 게다가 조서에 쓰였던 내용이 두장생에게 어느 정도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이곳에 자리한 노신들은 당금의 성상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자들로, 홍무제는 원덕제와 달리 구체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만약 두장생이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결코 국사의 지위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조회가 끝난 후, 조정 대신들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최근 들은 소식과 오늘 조회에서 들은 말을 생각해보면 윤재성은 정말로 건강을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에 어떤 이들은 기뻐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깊이 우려하기도 했다. 둘째는, 바로 새로 생긴 국사에 관한 것이었다.

조회가 끝나자, 두장생은 대신들의 축하 인사를 들으며 대전을 나섰다.

소도는 약간 뒤에 떨어진 위치에서 두장생과 언상이 함께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주위의 대신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늘 들은 조서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황궁 안 마차를 대어놓는 곳에 이른 소도는 마차에 탄 뒤에도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내내 오늘 들은 소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의 명을 기다리던 하인이 마침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어사대로 향하십니까, 아니면 곧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어사대의 우두머리인 소도가 매일 어사대로 가서 일할 필요는 없었다. 하인의 물음에 소도는 마침내 정신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사천감으로 가자. 국사를 만나야겠다.”

“예!”

하인이 이렇게 대답하자 소도가 탄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각(7-8분) 뒤, 사천감에 도착한 소도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두장생이 머무는 거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사대부가 방문했다는 말에 관차들을 부리며 짐을 정리하던 두장생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다 그는 마차 옆에 서 있는 소도를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가 인사했다.

“소 대인, 안녕하십니까, 두장생이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

두장생은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홍무제 앞에서는 어느 정도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소신’이라 자칭하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다른 대신들을 대할 때는 별로 두려움이나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비록 실권은 없다지만 이제 국사의 지위까지 받았으니, 조정의 다른 관원들과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위치였다.

소도는 머리와 수염이 온통 하얗게 센 선풍도골의 모습을 갖춘 두장생을 보고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자신도 가까이 다가가 양손을 맞잡으며 정중히 인사했다.

“국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미리 알리지도 않고 찾아와 국사를 귀찮게 한 것은 아닌지요? 곧 새로이 하사받은 저택으로 이사하실 텐데, 가구나 하인 등 뭐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두장생은 예를 거두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어사대부처럼 높은 직위의 고관이 이토록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걸 보니, 자신의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그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소 대인과는 그리 교분이 없는데 오늘 이리 오신 것을 보니 필시 무언가 상의할 일이 있는 것이군요? 소 대인께서는 괘념치 말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하지만 성상께서 하교하셨듯이 저는 조정과 관련된 일에는 간섭할 수 없으니, 그 점은 소 대인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두장생이 보기에 아마 소도는 조정에 관련된 일로 자신을 찾아온 듯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이런 말을 하며 혹시 모를 난처한 상황에서 몸을 뺀 것이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제가 어찌 국사를 난처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상의 뜻을 거스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시지요!”

소도가 손을 뻗어 그를 이끌며 한발 앞서자 두장생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뒤따랐다. 두장생이 따라오는 것을 본 소도는 그가 들어온 대문 쪽을 흘끗 바라본 뒤 한껏 소리를 낮춰 말했다.

“국사, 아무래도 저희 소씨 집안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 곧 큰 화를 입을 듯합니다. 제 말은, 조정 당파 간의 분쟁이 아니라 어떤 요사스러운 것에 의한 화, 말입니다. 그간 제 아들놈이 후사를 보지 못한 것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국사를 뵙고 나니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사스러운 것이라?”

예상치 못했던 말에 잠시 놀라던 두장생의 눈빛이 다시 진지해졌다.

“소 대인, 잠시 가만히 서 계십시오. 제가 법안으로 좀 살펴보겠습니다.”

두장생의 말을 들은 소도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두장생은 뒤로 살짝 두 걸음 물러나더니 두 손으로 결인(結印)을 맺고서, 검지로 단전에서부터 이마까지 그어 올리는 동작을 했다.

그런 뒤에 두장생은 두 눈을 감고 법력을 끌어올리며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소도의 시야에 두장생의 두 눈에 금빛이 반짝이며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눈빛은 마치 소도를 안팎으로 샅샅이 꿰뚫어 보는 듯하여, 소도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차기 시작했다.

한편, 소도는 조정의 명관이었으므로 국사가 된 두장생의 눈에 소도의 기운이 더없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관원들을 꿰뚫어 보는 능력만은 두장생이 지닌 도행의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이에 두장생은 곧 대전에서 보았던 검은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소도의 아래쪽에 불길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비록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색깔이 괴이한 촛불의 빛처럼 보였으며 그 위에서 아주 오래된 요기(妖氣)가 느껴졌다.

눈을 감았던 두장생이 한참 뒤 눈을 다시 뜨자, 뭐든 꿰뚫어 볼 듯한 눈빛은 어느새 그의 눈에서 사라져 있었다.

“국사, 어떻습니까?”

두장생은 눈썹을 찌푸린 채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소도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 대인, 그 요사스러운 존재와 얽힌 것은 꽤 오래된 일인 듯합니다. 혹, 그것이 무슨 불빛과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본 바에 의하면, 커다란 불길은 아니고 촛불의 빛 같은 것이 많이 모인 형태였습니다.”

그러자 소도는 심장이 덜컹하여 무의식적으로 두장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국사의 말씀대로입니다. 바로 맞히셨습니다. 이 일은 오래된 원한으로, 불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 집안에 화가 닥치겠군요. 저는 이 일로 인해 집안의 대가 끊길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두장생은 조정의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나, 대략적인 대립 관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고, 이제 국사가 되기까지 했으니 조정의 관원이 요사한 것과 관련되었다면 이는 분명 자신의 관할이었다. 이에 그는 소도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서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소 대인을 따라 저택에 한번 가봐야 할 듯합니다. 가서 보고 다시 얘기하시지요.”

“아, 물론입니다! 제 마차에 오르시지요, 이쪽입니다, 국사 대인!”

소도는 크게 기뻐하며 얼른 두장생을 자신의 마차에 태웠다. 조정의 고관이 자신에게 이토록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두장생은 무척 흡족한 얼굴로 생각했다.

‘암, 이래야 국사의 체면이 서지.’

마차의 속도는 무척 빨랐으므로 그들은 잠시 뒤 소도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장생의 요청으로 소도는 하인에게 일러 소릉을 불러오라고 한 뒤, 직접 두장생을 이끌고 저택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일각(약 15분)가 흐른 뒤 그들은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국사, 무언가 발견하신 게 있으십니까?”

소도는 두장생이 차에는 손도 대지 않고 깊이 생각에 잠긴 듯이 보이자, 잠시 기다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두장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대답했다.

“저택 안에는 어떤 사특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직 그 요사한 것이 집까지 찾아온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때,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소릉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는 선풍도골의 외양을 지닌 두장생을 보고는 곧바로 이렇게 예를 올렸다.

“아버지, 이분이 바로 국사 대인이시군요. 소릉이 대인을 뵙습니다!”

소릉이 두장생을 향해 인사하자, 두장생은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릉을 위아래로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다 마침내 두장생의 눈빛에 변화가 생기더니, 그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이상하군. 몸에 손상을 입긴 했지만 어떤 요사한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야. 이건 신벌(*神罰: 신이 내리는 벌)이군! 게다가, 흥…….”

두장생은 차갑게 코웃음을 친 뒤 한쪽에 앉은 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게다가 이는 신도(神道)의 고묘한 수단 중 하나로, 소 공자는 두 번이나 손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첫 번째로는 근본이 되는 원기(元氣)가 상했고, 두 번째는 그 신령이 남기고 간 후속 조치 때문입니다. 공자는 분명 어떤 맹세나 약속을 위반해 지금 후사가 끊기게 된 것입니다!”

신령의 수단은 정정당당하여 요괴가 남긴 것과 달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는 도행이 어느 정도 있는 수행자들은 모두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흥! 소 대인, 요사한 것과 관련된 일은 제가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신령께서 내린 벌은 저도 쉬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두장생은 소릉의 몸에 이런 여지를 남겨둔 신령의 도행이 무척 높으리란 것을 직감했다. 신령의 흔적은 아주 옅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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