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화. 빚진 것은 응당 갚아야 한다
마차들이 연이어 소씨 집안 하인들에 의해 정문 앞으로 끌려왔다. 각기 대창의(*大氅衣: 외투)와 가죽과 솜을 넣어 만든 피풍(*披風: 망토와 비슷한 외투)을 걸친 소씨 부자도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두장생이 있는 곳까지 다가와, 왕소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국사의 세 분 제자께서도 오셨군요? 어서 마차에 오르시지요. 곧 성을 나설 겁니다.”
두장생은 맞은편 골목에 더는 눈길을 주지 않고, 세 제자를 데리고 함께 마차에 올랐다. 반면 소씨 부자는 하나는 마차에, 하나는 말에 올랐다. 그렇게 반각(半刻) 뒤, 세 대의 마차와 마부들, 늙은 하인 한 명을 포함해 단 네 명만이 소씨 부자와 두장생과 함께 부성 동문 방향으로 향했다.
오늘 일은 아는 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이에 소씨 집안에서는 많은 이들을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권세를 부리거나 사람 수가 많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마차 세 대는 각기 말 두 필이 이끌고 있었고, 소릉은 단독으로 말 위에 올라타 있었다. 석양이 지는 시각인 경기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그들을 보자 행인들은 모두 비켜서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 속도를 내지 않아, 사람들 모두 마지막 마차에 제사용품이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릉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무 늦기 전에 끝나면 좋을 텐데. 다행히 오늘 날씨가 맑아서, 밤이 된다 해도 그렇게 어둡지는 않겠어.”
바로 그때, 인적 드문 통천강 기슭에는 응약리가 찻잔을 들고 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응약리가 찻물을 가볍게 위로 흩뿌리자, 물방울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비바람을 몰려왔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비구름이 석양이 지는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에 아직 강변을 노니던 사람들도 얼른 배에 오르거나 부둣가로 가서 비를 피하려 했다.
잠시 뒤, 폭우가 솨아아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래도 아직 밝았던 하늘이 금방 밤처럼 어둑어둑해졌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앞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소도 일행은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 없어,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통천강으로 향했다. 하지만 혹여 천둥소리가 말이 놀랄까 봐 마부들이 내려 말을 직접 끌기 시작했다.
진흙탕이 된 길과 추위, 장대비와 번개, 또 광풍에 의해 기슭으로 높이 치솟은 강물 때문에 그들은 반 시진(1시간)하고도 한참 뒤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작 마차에서 내려 길을 안내하던 두장생은 마침내 인적 드문 강기슭에 도착했다. 멀리 부둣가의 등불은 광풍과 폭우 때문에 희미하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간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국사, 이곳입니까?”
소릉이 두장생 가까이 다가가며 이렇게 소리쳤다. 날씨 때문에 이렇게 소리 높여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아예 들을 수도 없었다.
“바로 이곳이오!”
두장생은 강물을 한번 훑어본 뒤, 멀지 않은 곳에서 계연이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응약리는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풍과 폭우는 그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등불이 없어도 사위는 어느 정도 분간이 되었지만, 두장생을 제외한 소씨 일행은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르신, 어르신 조심하십시오!”
소도가 마차에서 막 내려선 순간,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전에 그의 피풍이 바람에 의해 끌려가며, 소도가 강가로 내던져졌다. 이에 놀란 하인이 얼른 다가가 자기 집 어르신을 붙잡았다.
한 노복이 소도를 위해 우산을 폈으나, 우산살이 곧바로 부러져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등불을 찾아 불을 켜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휘이이- 휘이잉-!
바람에 의해 마차 세 대가 끼익끼익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통천강에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 때때로 강기슭을 세차게 때렸다. 파도가 기슭에 부딪혀 사방으로 물방울이 튕기자 일행도 온몸이 폭삭 젖어 버렸다.
이 대단한 위력의 비바람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요괴가 불러낸 것처럼 느껴졌다. 소씨 부자는 이것이 아마 그 거북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도우! 오 도우! 소씨 부자가 왔습니다. 어서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휘이이-!
강물은 온통 새카맣게 보여, 번개가 떨어지는 순간에만 살짝 수면 위를 볼 수 있었다.
우르릉……!
다시 천둥이 치고, 번개가 통천강을 환히 비추자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수 장(丈) 정도 떨어진 강물 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 안에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엎드려 있는 듯했다.
솨아아아……!
강물이 위험하게 일렁이고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그 검은 형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어느새 200년이 되었군. 나는 하마터면 소정에 의해 수행의 근본이 무너질 뻔했는데, 소씨의 자손들은 잘 먹고 잘산 모양이구나!”
우르릉……!
거대한 거북이 강기슭에 오르며 번개가 떨어지는 강물을 뒤로 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북의 주위로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눈빛은 섬뜩하여 혼이 다 빠져나갈 듯했다.
두장생도 흠칫했으나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는, 일행이 놀라 굳어버린 것을 보고 즉시 이렇게 말했다.
“오 도우, 소씨 가문의 부자가 왔습니다. 이들은 조상을 잘못 두었을 뿐, 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어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무엇 하십니까? 300번에서 단 한 번도 생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들은 소씨 부자는 망설이지 않고 비가 쏟아지는 강기슭에서 질척이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선조의 잘못을 저희는 미처 알지 못했으니, 부디 거북 어르신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부디 거북 어르신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퍽, 퍽, 퍽……!
부자 두 사람이 연신 진흙탕에 머리를 떨구자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겼다. 다행히 그리 아프지는 않았으나 이들은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졌다. 이를 본 하인들도 감히 서 있지 못하고 함께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오숭은 소씨 부자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응약리와 두장생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고, 계연만이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바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쯤, 소씨 일행은 머리가 어지러워 가만히 꿇어앉아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머리를 부딪친 것도 아마 300번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중심을 잃은 소도가 진흙탕에 아예 쓰러지자, 두장생이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헉…… 허억……. 거북 어르신, 또 원하시는 게 있는지요?”
소릉이 부친을 대신해 이렇게 묻고는, 용기를 쥐어짜 거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때 계연도 고개를 들어 오숭을 바라보았다.
오숭은 곁눈질로 계연이 고개를 든 것을 보고는, 계 선생님이 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더는 전처럼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웃으며 소씨 부자를 향해 말했다.
“너희 선조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으로서의 도의를 지키지 못했다. 늙은 거북인 나 오숭은 비록 요괴이나, 시비를 분명히 가릴 줄 아는 자이다. 나는 분명 소씨 집안에 200년 묵은 원한이 있지만, 막상 너희들을 보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하하하…… 아하하하하…….”
거북의 웃음소리는 천둥소리와 비바람을 뒤덮을 정도였다. 그것은 곧 통천강 양쪽 기슭까지 퍼져나가 멀리서는 무언가 울부짖는 것처럼 기괴하게 들려, 듣는 이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게 했다.
“하……. 너희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나는 오늘 살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희가 내게 빚진 것은 돌려주어야겠지. 오늘 이후로 소씨 일가는 관리가 될 수 없으며, 선량한 집안 백 곳에서 등불을 모아 춘목강에 띄워야 할 것이다!”
“관, 관리가 될 수 없다니…….”
소도는 덜덜 떨며 이렇게 중얼거렸고, 소릉이 큰 소리로 물었다.
“등불 말씀이십니까? 딱 백 개의 등불만 원하시는 겁니까?”
“하하하하, 그렇다. 200년 전과 마찬가지로, 등불 백 개면 된다! 그럼 이제 썩 꺼지거라!”
오숭은 소씨 집안이 대가 끊기리라는 걸 알았으므로, 굳이 그들에게 손을 써 죄업을 쌓고 싶진 않았다. 등불 백 개는 이제는 그에게 그리 큰 효과가 없었지만, 그는 이것만은 자신이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솨아아-!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자 소도와 소릉을 비롯한 이들은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다시 번개 빛에 드러난 수면 위를 보니, 거북은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거북이 사라진 후에도 소씨 일행은 번개가 내리치는 폭우를 맞으며 강물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두장생이 소리 내어 그들을 일깨웠다.
“소 대인, 소 공자, 오 도우는 이미 떠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부자(父子)는 모두 혼란스럽고 멍한 상태였다. 이에 두장생은 그들을 위해 빗물을 조금 흩트려, 그들이 잠깐이나마 비에 젖지 않도록 한 후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서 돌아가 보세요. 제사는 제자들에게 준비하라 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 예…….”
소도가 얼떨떨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자, 소릉이 얼른 제 부친을 부축해 마차로 모셨다. 두 사람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비틀대다 겨우 마차에 올랐다. 비를 피해 안에 앉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어르신, 이제 돌아갑니까?”
“어서 가자!”
“예, 예!”
마부는 말머리를 돌려 흔들거리는 마차를 이끌고 부성으로 되돌아갔다.
마차에 탄 소씨 부자는 엉망이 된 꼴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소릉은 나이도 젊고 무공을 익힌 몸이라 그나마 나았지만, 소도는 이미 입술이 퍼렇게 되어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상태였다.
“헉…… 허억…….”
“아버지, 일단 젖은 옷을 벗는 게 좋겠습니다. 담요를 덮고 불을 좀 쬐세요. 참, 이 술도 한 잔 드시고요!”
소릉은 진기(眞氣)를 운용해 손발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부친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마차는 비를 완벽히 막아주었고, 안에 놓인 작은 화로에도 아직 불씨가 살아 있었다. 게다가 보온을 위한 담요까지 준비되어 있어,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젖은 옷을 벗은 뒤 담요를 덮고서 불을 쬐었다. 반면 마차 밖의 하인들은 그저 독한 술을 마시며 억지로 추위를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술이 몇 잔 뱃속으로 들어가고, 담요를 덮은 뒤 불길을 쬐자 소도는 마침내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부자의 표정에는 근심 어린 기색도 있었고 홀가분한 기색도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소도는 좀 더 근심에 찬 표정이었고 소릉은 좀 더 홀가분해하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부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오래도록 침묵에 잠겨있었다. 강변을 떠나 경기부 부성으로 향하는 관도(官道) 위에 올라서자, 착각인지 아닌지 폭우와 바람이 좀 더 약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선량한 집안 백 군데서 등불을 모으기만 하면, 저희 소씨 집안과 거북 요괴 사이의 은원은 마침내 사라지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소씨 집안에 다시는 관직에 오르지 말라 했다……. 그러니 이제 관리로서의 길은 끊긴 셈이다. 두 국사의 모습을 보니, 이 일에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더구나…….”
“관직을 얻지 말라 하면 안 하면 되죠! 저희 집안이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니, 그저 편안히 세월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요즘 조정이 어지러운데, 빨리 몸을 빼는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더는 그 일에 집착하여 마음 쓰지 마십시오!”
소릉이 이렇게 달래자 소도도 마침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목숨을 잃으면 관직이 다 무슨 소용이냐. 다만 황상과 다른 이들이 우리 소씨 집안이 온전히 몸을 빼내도록 놔둘지 모르겠구나…….”
소릉도 조정의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므로, 그 말에 놀라 이렇게 물었다.
“윤 재상께서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리(落穽下石: 이미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뜻함)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윤 재상이 아니다…….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 일은 부딪혀야만 하니까.”
직접 요괴를 마주한 공포를 느끼자, 그들도 더는 요행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다만 어떻게 해야만 무사히 조정의 권력 다툼에서 몸을 빼낼 수 있을까 고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