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98화 (598/892)

598화. 파란이 일다

강기슭에는 제사용품을 가득 실은 마차 한 대가 아직 남아 있었다. 두장생과 그의 세 제자는 빗속에 서서 멀어지는 마차 두 대를 전송했다.

“너희 셋은 이제 준비를 시작하거라.”

두장생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뒤, 얼른 한쪽으로 걸어가 계연과 응약리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계 선생님, 강신마마, 이 일은 이렇게 끝나게 될 듯합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통천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건 저한테 물어보실 필요가 없는 일이에요.”

응약리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늘을 향해 넓은 소매를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세차게 퍼붓던 빗줄기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보슬비가 되었다. 구름 사이로 번쩍거리던 번개도 자취를 감추었다.

“나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계연은 탁자와 그 위에 놓인 바둑판 등을 거둬들인 후 응약리와 두장생을 향해 말했다.

“저는 이만 먼저 돌아가 볼게요.”

말을 마친 계연은 몸을 돌려 경기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응약리는 두장생과 그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는 세 제자를 바라본 뒤, 두장생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인 후 강물에 인 파도를 밟고 멀리 떠나갔다. 그러더니 강가 중심에 이르러 천천히 수면 아래를 향해 가라앉았다.

“사부님, 조금 전에 저기서 누구와 이야기하고 계셨던 겁니까?”

두장생이 다시 돌아오자 마차에 실린 물건들을 옮기던 제자가 이렇게 물었다.

“별일 아니다, 강신마마께서 조금 전까지 저곳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자, 서둘러라. 얼른 제사를 지내야 우리도 돌아가서 한숨 잘 수 있겠지.”

“예!”

왕소는 조금 나았지만, 다른 두 제자는 아직 도행이 얕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통 수선자로서 간단한 피수술은 모두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약한 빗줄기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 *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소도는 결국 풍한에 걸리고 말았다. 함께 돌아온 하인 가운데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병이 났고, 소릉과 다른 두 하인만이 튼튼한 체력을 가진 덕분에 이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튿날, 소도는 병든 몸으로 정성 들여 쓴 사직서를 사람을 시켜 황궁으로 보냈다. 이 일은 빨리 처리하면 할수록 좋았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곧바로 관직에서 내려올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방에서는 홍무제가 소도의 사직서를 읽고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소도가 정말로 관직을 내려놓으려 하다니!”

양호는 사직서를 손에 쥔 채 한쪽에 선 태감 이정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요물이 정말 그렇게 대단하더냐?”

“폐하께 아룁니다, 그 거북은 건물 한 채에 버금가는 크기로, 무척 흉흉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내린 폭우도 무척 사이하기 짝이 없었으니, 아마 팔 할은 그 요괴가 불러낸 것일 겁니다. 소신 비록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그 요괴에게는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양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사직서를 읽었다. 그 위에는 대략 소신이 연로하여 정무를 처리할 체력도 없고 기력도 나날이 쇠약해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집안 선조와 거북 요괴 사이에 얽힌 은원에 대해서는 조금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는 따지자면 기군(*欺君: 군주를 속이는 것)의 죄가 아니겠느냐?”

황제의 말에 이정춘은 등허리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황제는 정말로 그에게 물었던 것은 아닌 듯, 그렇게 중얼거린 뒤 웃으며 말했다.

“이왕 소 경이 정무를 처리할 힘이 없다고 하니, 짐도 마땅히 그의 뜻을 받아들여 줘야겠지.”

소도는 황제가 일단 그의 사직서를 물리고 병이 나으면 입궁하라고 명한 뒤, 어사대부의 관직을 내려놓는 일을 두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게 될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황제는 곧바로 붓을 들더니 이를 윤허해버렸다.

며칠 뒤, 어사대부 소도가 관직에서 물러나는 일을 황제가 허락했다는 소식이 도성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는 조정에 거대한 파란을 일으켰다.

지금 이 시기에 어사대부가 사직을 청한 것은, 다른 재상 중 누군가가 사직을 청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대정국은 제도에 의해 재상이 많은 나라였다. 하지만 다른 재상들은 어사대부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민감한 시기에 소도가 사직을 청하자 마치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돌을 떨어뜨린 듯한 파란을 일으켰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조정과 재야의 형세는 쉼 없이 변화했다.

먼저 도성 하늘에 밤낮이 뒤바뀌더니 은하수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고는 윤재성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사대부 소도가 이 와중에 사직을 청했다.

뒤이어 당금의 황상께서는 어사대부의 사직을 윤허했다.

이에 조정의 관원들은 서로 간에 빈번히 오가기 시작했다. 조정 관료와 외지 관료들 사이의 사적인 만남도 늘어났다. 그러자 이미 퇴직을 청한 소도도 이런 흐름에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조정 관료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은밀히, 또는 드러내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도의 저택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한 달 뒤의 어느 날, 윤 재상부의 계연이 머무는 작은 객사 뜰에서는 여우 가면을 벗은 윤재성이 계연과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휴우, 계 선생님의 실력은 이미 저를 훌쩍 뛰어넘으신 지 오래군요. 다음 판은 제게 열 수 물러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연은 입을 삐죽이며 어째 물러주어야 하는 바둑돌 수가 계속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그건 안 되지요. 제 실력이 윤 훈장님보다 조금 더 뛰어나기는 하나, 그렇다고 열 수나 물러주고 시작하라니요. 그럴 바에는 그냥 훈장님께서 이긴 거로 하세요. 여섯 개면 모를까.”

“좋습니다, 그럼 여섯 개로 하죠. 다시 한 판 둡시다!”

윤재성이 재빨리 바둑판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계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를 도왔다. 윤 훈장님은 호연정기를 지녔으면서도, 유독 자신과 바둑을 둘 때만큼은 아주 세세하게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바깥에 전해지는 신화 속의 윤 문곡이 아니라, 그가 가까운 이에게만 드러내는 본모습이었다.

그때, 윤청과 윤중이 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 계 선생님.”

“아버지, 선생님.”

두 형제는 두 어른에게 나란히 인사한 뒤 가까이 다가섰다. 윤청이 바둑판을 살펴보니, 위에는 자기 아버지가 이미 돌 여섯 개를 깔아둔 뒤였다. 이를 보고 윤청도 단박에 어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는 두 사람이 바둑 두는 걸 보려고 온 게 아니었으므로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소씨 집안사람들이 곧 도성을 떠날 듯합니다.”

그동안 윤청은 소씨 집안의 동정을 줄곧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과감한 결단력을 보고 그들이 진격을 위해 퇴각한(以退爲進: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사소한 것을 양보한다는 뜻)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정말로 조정의 알력 다툼에서 깨끗이 몸을 빼내려면 이 방법 말고도 좋은 방법이 있을 터였고, 황상께서도 단번에 윤허하기까지 했으니 더욱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후에 계연에게서 이 일에 숨겨진 내막을 듣게 되자, 윤재성과 윤청은 그제야 그들이 진심으로 조정에서 물러나려 하는 것임을 믿게 되었다.

소씨 집안은 그동안 국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아먹는 짓을 많이도 저질러 왔으므로 모은 재산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사실 조정 대신 중에서 정말로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이는 몇 없었다. 그런데 소씨 집안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니, 이는 윤씨 일가의 적잖은 골칫거리를 덜어주는 셈이었다. 이에 윤씨 집안은 과거의 잘못은 굳이 들춰내지 않고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정에 퍼진 사사로운 여론에는 갖가지 내용이 다 있었고, 이에 각계 관원들은 모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황상이 이토록 과감히 소도의 사직을 윤허한 데다 때맞춰 윤 재상의 병이 낫기까지 했으니, 이는 무언가 숨겨진 내막이 있다는 유언비어도 돌았다. 이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최고조에 이른 날은, 바로 중병에서 완쾌한 윤재성이 조회에 처음 참석한 날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매일 수많은 관원이 어떻게든 소씨 집안과 접촉해보려 애쓰기 시작했고, 곧 소씨 일가는 무척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윤청의 말을 들은 윤재성은 막 바둑돌을 내려놓으려는 계연을 살펴보다 나지막이 탄식했다.

“휴, 소도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러자 내내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윤중이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소씨 집안이 고향인 계주로 돌아가면 약속을 지키기에 쉽다는 점 말고는 그들에게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 아닐까요?”

그러자 윤청이 웃으며 윤중의 어깨를 두드린 뒤 대답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너도 나름대로 보는 눈이 늘었구나. 하지만 소도는 너보다 한층 더 깊이 생각한 거다. 지금 조정에는 소씨 집안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이 아주 많지. 그들이 도성에 머물면 아무리 사직했더라도 조정 관원이며 외지 관원들이 끝없이 그들을 찾아올 거야…….

하지만 황상께서는 아주 통찰력 있고 총명한 분이기 때문에, 지금은 옛정을 생각해 그들을 놓아준다 해도 곧 많은 생각을 하게 되실 거야. 그리고 소도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지. 그는 더 이상 어사대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뒤에서 황상을 부채질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이를 막아낼 수 없어. 게다가 소도는 자기 체면에 우리 아버지께 와서 도움을 청하지도 못할 테지.

그러니 도성을 떠나는 건 그들에게 있어 일거양득이야.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지. 그래도 그간 쌓아온 재산이며 인맥이 있으니까.”

윤청이 이렇게 설명하자 조정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계연조차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고, 조정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윤중은 더 말할 필요 없었다.

이렇게 설명한 윤청은 다시 윤중에게 말했다.

“호야, 너는 몰래 소씨 집안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이 무사히 계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렴.”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윤중은 곧 어찌하여 자신이 예전의 정적을 도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게. 그럼 아버지, 계 선생님, 그리고 형님, 저는 먼저 물러나 보겠습니다.”

윤중은 뜰 안의 세 연장자에게 살짝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한 뒤, 몸을 돌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떠났다.

* * *

소씨 가문 후원의 마구간에는 마차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하인들은 깨지기 쉬운 귀한 물건들을 마차에 실었고, 소도도 자기가 특별히 아끼는 것들을 손수 옮겼다. 소릉은 제 부인들을 데려와 일일이 마차에 태웠다.

비록 도성의 저택에도 하인들을 남기고 떠날 예정이긴 하지만, 그들은 언제 다시 도성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히 아끼거나 값진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려고 했다.

“콜록콜록…….”

소도가 기침을 하며 종이와 그림 두루마리를 몇 개 들고 이를 잔뜩 실은 마차로 향했다. 그의 뒤를 늙은 하인이 잰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어르신, 제가 들겠습니다. 아직 몸이 완쾌하지도 않으셨으니, 안에서 좀 쉬고 계시지요. 아직 날씨가 춥습니다.”

“콜록…… 괜, 크흠, 괜찮다. 이 물건들은 모두 내가 아끼는 것이라, 스스로 옮기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소도는 이렇게 말하며 마차 뒤편으로 다가가 덮개를 열어 두루마리를 기다란 나무 상자 안에 넣었다. 그 옆에는 모서리를 구리로 마감해 정교한 조각을 새긴 녹나무 상자가 텅 비어있었다.

“잘 지켜보거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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