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02화 (602/892)

602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실제인가?

양호가 계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계연이 돌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폐하의 생사에 간섭할 생각도 없고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어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 외에 다른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양호는 마치 그의 이 질문만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고는 혹여 무슨 뻔뻔한 요구를 했다가 선생의 화를 살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이왕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니, 고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다과를 한 점 집어 맛보았다. 그러자 양호도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로, 고는 스승님을 꼭 다시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하지만 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마 곧 소원을 이루겠지요.

둘째는, 고가 비록 명군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점입니다. 국고는 충분하고, 백성들이 굶어 죽을 정도의 재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황께서 재위해 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정의 강산은 정말로 변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은 변화가 없는 것일까요? 또한 고도 조정의 어떠한 개혁들이 후대에 큰 도움이 되리란 것은 알고 있으나, 미래의 일이 어찌 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만약 고가 저승에 가게 되면, 양씨 조상님들께 이를 어찌 설명해야 좋겠습니까? 세 번째는…….”

양호는 별안간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자신이 세 번째 문제에 관해 물을 때 좀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 입 근처까지 올라오니 오히려 별 부끄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계연이 손에 든 소설책을 바라보며 소탈한 태도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에게는 평생 무슨 취미랄 게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흥미를 지녔던 것이라면 아마 여색(女色)일 것입니다. 하지만 군왕의 책임이 있고, 윤 재상과 같은 올곧은 신하가 지켜보고 있어 멋대로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집정한 지 20여 년이 되었는데 후궁의 비빈은 몇 되지 않으니, 명군 노릇이 참 쉽지 않습니다! 고가 궁금한 것은, 이왕 선생과 같은 선인도 있으니, 이 책 속의 요염한 여우 요괴 같은 존재가 실존하냐는 것입니다.”

노태감 이정춘은 한쪽에 서서 황제의 질문을 들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언제나 점잖았던 폐하께서 선인을 눈앞에 두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 무척 의외로 느껴졌다.

“하하하하하……!”

계연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든 책으로 탁자 모서리를 탁탁 가볍게 두드렸다.

“폐하, 폐하께서는 제게 어떤 사람…… 아니, 어떤 대단한 요괴 하나를 떠오르게 하시는군요. 그자도 폐하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취미랄 것은 없지만, 오직 하나 여색을 밝히는 성격이지요. 하하하하…….”

어서방은 언제나 고요한 장소로, 이곳에 들어온 조정 관료와 심지어는 황족들까지도 누구도 감히 함부로 입을 여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계연처럼 어서방에서 폭소를 터뜨린 이는 역대 황제 중에서도 몇 없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웃자, 양호는 물론이고 이정춘마저 왠지 모르게 어서방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연은 곧 웃음기를 거두고는 양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폐하의 스승께서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어, 혼백이 이미 하늘과 땅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승에 어떤 유언을 남겨두었을 수도 있으니 한번 물어보시지요.

폐하의 공적에 관해서는, 조정 중신들의 말처럼 공이란 천추(*千秋: 오랜 세월, 먼 미래)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평가는 후세의 몫입니다. 세 번째 질문에 관해서는, 제가 폐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겠군요.”

계연은 손에 들린 소설책을 잠시 바라본 뒤,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그 위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퉁……!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홍무제 양호와 늙은 태감 이정춘은 그 소설책에서부터 수묵화를 닮은 흑백의 색채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천천히 탁자와 연탑을 뒤덮고는, 곧이어 어서방 전체를 물들였다. 뒤이어 빛과 색이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서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시야가 광활해지더니 황제가 쓰는 연탑이며 온갖 화려한 기물이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앉아 있고 한 사람은 서 있는 그 상태 그대로, 길가에 있는 어느 오래된 찻집의 풍경이 펼쳐 졌다.

계연이 펼친 술법은 보기에 간단한 환술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펼친 술법 가운데 가장 정교한 것 중 하나였다. 만약 기술성과 독창성으로 논한다면 뒤에 붙은 ‘것 중 하나’라는 말도 뺄 수 있었다.

계연이 만들어낸 묘법(妙法) 중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 수행의 난이도가 너무 높거나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계연의 술법들은 대부분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몽>과 <천지묘법>이 바로 이에 속했다.

유몽술을 천지화생과 결합하여 사람을 그 안에 들어오게끔 하면, 마치 또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하여 진위를 판별할 수 없게 했다. 최소한 계연과 함께 있는 홍무제와 태감 이정춘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이때 주위의 광경이 점차 또렷해지자 내내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던 양호와 이정춘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두장생이 예전에 물을 부리는 술법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환술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떡입니다!”

“자자, 길은 지나가도 이것은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 상등급의 질타주(*跌打酒: 타박상에 바르는 약)와 금창약(*金瘡藥: 칼이나 창 등 날붙이에 의해 입은 외상에 바르는 약)이 여기 있습니다!”

“빙탕후루(*氷糖葫蘆: 산사나무 열매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설탕과 물엿 등을 발라 굳힌 것) 팝니다, 빙탕후루!”

“손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몇 분이십니까?”

…….

그들이 있는 곳은 전후좌우로 6, 7장(丈) 길이의 차를 파는 노점이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네모난 식탁이 열 개 정도 놓여 있었고, 양쪽에는 노점 안팎을 차단하는 돗자리가 걸렸으며 다른 양쪽은 활짝 트여 있었다.

주인장이 앉은 계산대는 그들에게서 약 일고여덟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노점 바깥은 그리 번화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인파가 북적이는 거리였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은 대부분 오래되어 보였으며, 그 외에도 그들이 앉은 노점 찻집과 같은 천막이나 가판대가 적지 않았다. 물론 제대로 된 건물에 자리 잡은 점포도 있었다.

주위의 시끌벅적한 소음에는 시정의 냄새가 물씬 느껴졌으며, 양호가 힐끔 옆을 바라보자 찻집의 일꾼이 손님 두 명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스쳐 지나간 세 사람이 몰고 온 바람도 느낄 수 있었고, 새로 들어온 손님들에게서 나는 땀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노태감 이정춘도 그와 마찬가지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도 다물지 못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여기에 무공을 지닌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과장된 표정과 동작 때문에 다른 손님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이를 알아차린 그는 재빨리 자신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런데도 적지 않은 이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이정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자신과 황제의 의복이 너무 눈에 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행히 조금 전에 그들이 어서방에 있었기 때문에, 황상께서는 용포를 입지 않고 여름에 적합한 시원하고 편안한 평복을 입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화려하긴 했지만, 다행히 옷이 황금색은 아니어서 그다지 눈에 띄진 않았다.

다만 이정춘이 입은 태감의 관복은 그렇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이러한 의복을 본 적이 없는 듯이 누구도 즉시 그것이 관복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은, 의복이 화려해서이기도 했지만, 이정춘이 내내 서서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어디서 온 귀한 나리와 그를 따르는 늙은 하인인 듯했다.

이정춘이 사방을 관찰하고 있을 때 양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앉은 탁자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어서방에서 정성껏 준비한 다과와 차가 아니라, 찻잎 부스러기가 가득하여 색이 혼탁한 차와 형태가 조잡하고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간식이 놓여 있었다. 그러니 이에 쓰인 다기와 접시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양호가 손을 뻗어 찻잔을 잡으니, 따뜻한 촉감이 손에 전해져왔다. 가볍게 찻잔을 들어 올리자 차향이 코끝에 전해져왔다. 그가 막 맛을 보려던 순간, 늙은 태감이 이를 알아차리고 얼른 소리쳤다.

“황…… 삼(三) 공자, 조심하십시오! 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위의 모든 게 너무나 현실적이라 혹은 정말 현실일지도 몰라서, 나이 든 태감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곳에는 황상을 지킬 칼을 찬 시위나 금군이 없고 오직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허리를 숙인 채 품 안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계연은 곁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정춘은 은침을 가볍게 찻물에 적신 뒤, 다시 그 위의 찻물을 맛보았다. 그러고는 내공을 운용해 독을 감별한 뒤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 공자, 차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양호는 이미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이 든 태감이 독을 검사한 후 그는 곧바로 찻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찻물이 입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평소 마시던 차의 향긋함이 아니라 쓴맛이었다. 차라고 하기에는 너무 썼고, 그 뒤로는 약간 짭짤한 맛이 느껴졌으며 그다음에야 차 맛이 났다.

맛은 없었지만, 확실히 찻물이었다. 맛과 냄새가 모두 무척 사실적이었다.

차를 마신 양호는 경악한 표정으로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 이게 대체…… 고를 어디로 데려오신 겁니까?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까, 아니면…….”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손에 든 서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면서, 뭐 하러 물으세요?”

그의 대답에 양호와 이정춘 두 사람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고 지나간 듯이 고개를 숙여 탁자 위의 서책을 바라보았다. 책장 앞에는 <야호수>라고 적혀 있었다.

<야호수>는 장편소설로 권수가 꽤 많았다. 계연이 들고 있던 것은 그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어쨌든 그것이 펼쳐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했다. 잔뜩 흥분한 양호는 책 속의 배경을 떠올리며 점점 더 심장이 빨리 뛰었다.

“계 선생님, 그러니까, 제, 제가 꿈을 꾸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로 <야호수>의 세계로 들어온 겁니까?”

그러자 계연이 웃음을 그치지 않고 대답했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실제인가요? 만약 자신의 감각과 생각이 보고 느낀 것을 모두 진실이라 말하고, 그 모든 사소한 부분이 마음에 명확히 남는다면, 후에 ‘깨어날’ 것이라는 걸 알더라도 이것이 꿈인지 실제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으신가요?”

계연의 이 말은 아예 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하지만 양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감각을 돌이켜보며, 이것이 진짜 세계라고 믿고 싶어 했다. 다만 이 세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자신의 소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선인이 엄청난 법력으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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