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화. 다음 생을 기다리다
그러나 음양사 기관장은 의혹 어린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수행을 닦지 않은 보통 사람의 혼은 무척 취약합니다. 어느 고인(高人)이 하늘의 도를 역행할 정도의 법력을 펼치더라도, 그 혼을 모두 모으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삼혼(三魂)이 흩어지는 순간에야 그 눈물을 던졌지요.
계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지혼이나 명혼(命魂)에 그 눈물을 섞지 않으셨는지요? 음양의 도로 보자면 천혼과 지혼은 서로 평형을 이루는 것이 맞지만, 중생의 감정으로 보면 명혼이 더욱 중한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이는 계연에게 대놓고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대정국의 다른 귀신들에게는 이만한 담이 없을 테지만, 영안현 귀신들과 계연은 오래된 고향 친우 같은 사이였다. 그들은 서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지혼과 명혼이 사라지던 순간에는 그의 혼과 매어둘 만한 적당한 물체가 없었거든요. 그 둘이 모두 흩어지고 나서야 백약이 눈물 두 방울을 떨어뜨렸고요. 실은 눈물 한 방울을 천혼에 섞지 않았어도, 주염생과 백약은 서로 아주 깊이 이어져 있었어요.”
“그럼 선생님께서도 정말 어쩔 수 없었겠습니다!”
“이 일이 될지 말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군요.”
“과연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것이 문제로군요.”
“다행히 선생님께서 눈물 한 방울을 갖고 계시니, 방향도 잡지 못할 정도로 헤맬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성황대전 안의 모두가 계연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황을 분석했지만, 이보다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판관은 붓을 들어 쉬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예전에 남긴 기록 위에 계연이 오늘 한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대전 안에서 오간 대화는 협의 같기도 했고 도를 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귀도(鬼道)를 닦는 이들 중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이 상황에 대해 그들은 허심탄회한 태도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다. 또한 그들의 추측이 사실로 증명될지 아닐지,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또 인간의 전생과 현생이 얼마나 큰 관계가 있을지 등등을 논하기도 했다.
계연이 저승을 떠날 때가 되자,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성황신은 직접 계연을 귀문관까지 배웅해주었다. 여기까지 나오자 성황신은 그제야 낮은 소리로 계연에게 말했다.
“계 선생님, 선생님께서 다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혹 이 가능성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계연은 걸음을 멈춰 송세창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천혼이 상공을 배회하고 백약의 연정이 담긴 눈물이 천혼과 합쳐진 순간, 그때 저는 이미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어요. 아마…… 가능성이 9할은 될 거예요.”
송세창은 깜짝 놀라 경악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실 계연이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해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9할이라는 답을 듣게 된 것이다. 그는 계연이 단언을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9할이라고 했다면, 이는 사실 속으로는 확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말씀은, 이미 이 역천(*逆天: 하늘을 거스르다)의 이치를 예측하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물었다.
“역천? 성황신께서는 이것이 천리(*天理: 하늘의 바른 이치)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확신하십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는 성황신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더 나오지 마세요, 성황신.”
그러자 송세창도 살짝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저승을 나섰고, 별빛을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른 벗들과 달리, 계연과 송세창의 교분은 마치 <장자(莊子)>에 나오듯이 군자의 사귐처럼 담백하기가 물과 같았다.
계연은 거안소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현성의 이웃들을 찾아갈 생각도 없었으므로 곧장 바람을 부려 영안현을 떠났다. 밤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뒤를 돌아보니, 거안소각의 대추나무가 푸른빛 아래 이리저리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마치 계연을 배웅하는 듯했다.
* * *
계연이 조월국에 대해 지닌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이곳은 많은 지방이 혼란한 상태였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조월국으로 가면서 계연은 예전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일단 중호도의 위씨 집안을 방문할 생각이었다.
상공을 날아가는 계연의 눈에는 지나는 곳 대부분이 인적이 드문 것이 보였다. 중호도의 녹평성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사람의 화기(火氣)가 왕성해졌다.
계연은 성밖에 내려서서 기억을 더듬어 위씨 집안의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위씨 집안은 그간 큰 변고가 없었던 듯했다. 행인들도 별다른 기색 없이 길가를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원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장원이 있는 방향은 화기가 왕성하긴 했으나, 그의 예민한 후각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냄새가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아주 괴로운 냄새는 아니었으나, 마치 아주 오랫동안 밀폐되어있던 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계연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법안을 전부 열었다. 그러자 위씨 장원에서 하얀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기운을 살필 때 흰색이 보이면 이는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저 장원 위의 흰색은 계연의 마음을 어딘지 불편하게 했다.
이때, 위씨 장원으로 이어진 길가에는 계연 한 사람만이 아니라 드문드문 행인이 있었다. 그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기운을 살핀 뒤, 그가 장원에서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얼른 다가가 공손히 인사한 뒤 물었다.
“대형, 저는 중호도 위씨 집안을 방문하고자 먼 길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저 앞에 있는 것이 위씨 가문의 장원입니까? 혹시 제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해서요.”
계연이 불러세운 남자는 차림새를 보니 하인인 듯했다. 그도 걸음을 멈추고 계연의 행색을 살폈다. 계연은 무공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책을 좀 읽은 서생처럼 보였다. 그래서 남자도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한 뒤 자신이 온 방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길을 따라 1리 정도 가다가 오른쪽 갈림길로 꺾은 뒤, 백 보 정도 걸으면 바로 위씨 가문의 장원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나 만나주진 않으니, 만약 선생께서 무슨 특별한 신분이 없으시다면 아무도 만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럼 위씨 집안은 아직도 위헌 어르신과 위명 대협이 이끌고 있나요?”
남자는 별로 의심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요즘 위 어르신의 무공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걸 누가 모릅니까? 이에 그분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남자는 다시 녹평성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아마 계연이 더 들러붙을까 봐 자신이 위씨 집안의 장원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은 듯했다.
계연은 다시 위씨 집안의 장원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원래 계연은 곧바로 그들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위씨 집안의 장원이 상황이 어딘가 이상했다. 이에 그는 생각을 바꿔 다른 방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계연은 망설이지 않고 옆길로 빠져 커다란 나무 뒤편으로 향했다. 그가 다시 나무를 돌아 나왔을 때는 거친 회색의 무명옷을 입은 남자가 되어있었다.
계연은 보통 남자들보다 체격이 우람했다. 노인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젊은이도 아닌 얼굴이었고, 머리카락에는 간간이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머리는 간단히 묶어 올렸으나 어떤 장식품도 없었고, 피부는 거뭇했으며 비스듬히 앞머리를 내리고 있었다. 앞머리 아래에는 얼굴 반을 뒤덮은 진한 색깔의 모반(*母斑: 자연적으로 살갗에 나타난 얼룩무늬나 반점)이 있었다. 그는 무표정을 담담히 짓고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계연의 지금 모습은 예전에 그가 위무외를 구할 때 보았던 관아 사람의 외모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그때 그는 약간의 변장을 하고 장안법을 섞어 쓴 게 다라서, 몸의 기골과 윤곽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번에 계연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변화술이 지닌 진정한 힘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정도였다. 계연은 이 분야에 큰 진전을 이뤘기 때문에, 그리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 이 술법을 꿰뚫어 볼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행인들이 계연에게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계연은 멀리 떨어져 자신을 볼 수 없는 이들을 빼면, 맞은편에서 오는 행인이나 근처의 행인들 모두가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피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옷차림은 소박했으나 계연이 본능적으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걸음을 서둘러 곧 위씨 집안의 장원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마치 세외의 도원 같은 풍광을 뽐냈었는데, 지금은 전답이나 작업장도 그대로고 풍경도 마찬가지로 수려했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느낌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계연은 감각을 통해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연 문제가 있군.’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장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문을 지키던 호위가 즉시 이렇게 소리쳤다.
“거기 멈추십시오. 여기는 중호도 위씨 집안의 장원입니다. 찾아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장원 입구에 서 있던 호위는 이미 이 남자가 보일 때부터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자는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으므로 말도 공손하게 나갔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호위는 “거기 서라, 목적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것이다.
남자는 호위의 말에 곧장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장원 대문 위에 걸린 편액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중호도 위씨’라고 적혀 있었다. 전에 왔을 때는 분명 ‘위가(衛家) 장원’이라고 되어있었다.
편액을 바라보던 계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호위를 향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안에 말을 전해주시오. 내 이름은 철막(鐵幕)으로, 그간 중호도 위씨 집안의 위명을 오래도록 흠모하고 있었소. 그러다 오늘 녹평성을 지나게 되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소.”
남자는 거친 무명옷을 입었으나 그 기세만 봐도 고수임이 분명하여, 문을 지키던 호위는 정중히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어느 집안 혹은 문파에서 오신 고인이십니까? 만약 괜찮으시다면 사용하는 무공이 무엇인지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안에 말을 전달하기 쉽도록 말입니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거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어디에도 속한 곳은 없소. 전에는 관아에서 일했었소. 잘 쓰는 것은…… 철형전첩이오.”
‘철형공!’
문을 지키던 호위들은 그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위씨 집안에서 무공을 닦았지만, 조월국의 무인들치고 철형공의 위명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철형공은 대정국 관부(官府)에 몸담은 무인들이 배우는 무공으로, 입문은 쉽지만 깊이 통달하긴 어려우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악랄하기로 유명했다.
수십 년 전, 대정국과 조월국 사이에 빈번히 교전이 오가던 때, 바로 이 철형공 때문에 조월국의 강호인들과 조정의 무관들은 하나같이 쓴맛을 봤다. 특히나 이 철형공을 익힌 대정국 무관의 손에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거죽이 한 꺼풀 벗겨진다는 말 정도로는 그 처참한 말로를 형용할 수조차 없었다.
대문 앞에 서 있던 호위들은 남자의 거친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외모와 기백만 보고도 그가 엄청난 고수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