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하하하하……. 좋소, 철 모(某)는 오랫동안 무공을 쓴 적이 없었는데, 오늘 선생 같은 고수와 겨룰 수 있다니 참으로 잘된 일이오. 그러면 여기서 시작하겠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서 시작하겠소?”
그러자 위행이 자신에 찬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공간이 좁아 무공을 펼치기가 어렵겠습니다. 장원 뒤쪽의 연무장으로 가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가시지요!”
“가시지요!”
위행과 계연 두 사람이 잇따라 나가자, 영풍당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흥분한 얼굴로 그들을 뒤따라갔다. 그들이 연무장으로 가는 길에는 이 일을 들은 이들이 모두 흥미를 보였다. 뒤이어 위씨 집안의 자제며 외부에서 온 인사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들었나? 넷째 할아버지께서 어떤 사람과 비무(比武)를 하려고 한다네!”
“뭐? 그게 참말인가?”
“물론 참말이지. 그 사람은 대정국에서 온 무인이라는데, 철형공을 배웠다는군!”
“호오…….”
…….
“어이, 어서 연무장으로 가세! 넷째 할아버님께서 대정국에서 온 무인과 비무를 하신다고 하네!”
“뭐? 그럼 가서 봐야지!”
“그렇지, 자, 어서 서두르세!”
…….
소식이 퍼져나가자 곧 장원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계연이 연무장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척 봐도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무장을 둘러쌌고, 지금도 계속해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위명의 모습도 보였다.
연무장 안쪽은 목인장이나 매화장(*木人樁, 梅花樁: 나무로 만든 커다란 말뚝으로, 무술을 수련할 때 쓰는 용도)이 바깥 축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중간의 공터에 석판이 깔려 있지는 않았지만, 대신 찹쌀풀에 모래흙을 섞어 지면을 고르게 만든지라 이를 발로 밟아보면 무척 단단했다.
계연과 위행 두 사람은 팔 두 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연무장 중앙에 섰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러자 위행이 웃는 얼굴로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 포권했다.
“철 선생,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도 그를 향해 포권한 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소.”
그렇게 두 사람은 몇 초간 가만히 서 있다가 동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퍽, 퍽, 퍽……!
양측의 주먹이 나아가고 교차되는 모습은 너무 빨라 눈으로는 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손바닥과 주먹이 맞닿을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났다. 권법(拳法)과 장법(掌法)이 교차하며 서로 상대방의 관절이나 경혈을 공격하려 했다.
위행은 공격할 때마다 상대를 몰아세웠고, 흉악하기로 이름 높은 철형공 수련자는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 이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계연은 위행과 접촉할 때마다 그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렇게 수십 합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 사람의 몸은 허약하거나 텅 비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운이 왕성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삿된 성질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계연의 눈에는 거의 사람이 아닌 수준이었다.
이때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위행이 우세를 점했다고 생각했지만, 위행은 오히려 공격하면 할수록 더욱 마음이 급해지기만 했다. 그가 주먹이나 손바닥, 혹은 다리로 공격을 날릴 때마다 상대는 이를 완벽히 막아내어 조금도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상대에게는 공격하려는 열망도 별로 없어 보여, 분명 상대는 그를 봐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위행은 제 주먹과 발차기가 무척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의 힘은 강호 고수들의 힘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공격에 맞은 상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충격을 분산하려 살짝 뒤로 후퇴하는 게 고작이었다. 만약 다른 이가 그의 주먹이나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았다면 진작에 연무장 뒤편으로 멀리 날아갔을 것이었다.
“철 선생, 부디 봐주지 말고 저와 맞붙어 주십시오. 제 실력은 이게 다가 아니니, 후에 초식이 변하면 그때는 저를 공격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위행이 이렇게 말하자 내내 무표정이던 계연의 얼굴에 미소가 드러났다.
“좋소!”
한편, 강통은 연무장 바깥쪽에서 자신이 데리고 온 하인과 영풍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함께 서 있었다. 이때 철막의 표정 변화를 본 그는 가슴이 덜컹하여 저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쳤다.
“넷째 어르신께서 위험하겠군!”
“음? 넷째 어르신은 지금 한창 우세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그때 연무장에 있던 철막의 기운이 폭발하는 듯하더니, 그의 동작과 속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위행은 손바닥 날을 세워 공격을 날리려다가 철막에게 가로막혔고, 철막은 그 여세를 몰아 위행의 오른쪽 어깨를 턱 잡아챘다. 그는 응조권(*鷹爪拳: 독수리가 사냥하는 동작을 본떠 만든 권법)을 이용해 위행의 어깨를 단단히 고정한 후, 손목이 있는 곳까지 죽 긋고 내려왔다. 그러자 위행의 소매가 산산이 찢어지며 그 아래로 핏빛이 비쳐 보였다.
끼기긱-!
“크아악!”
뼈가 날카로운 것에 긁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위행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위행이 왼팔로 공격을 흩뜨리려는 순간, 돌연 그의 몸이 앞으로 당겨지더니 기우뚱 기울어졌다. 그는 왼쪽 무릎으로 공격을 가해 이 위기를 타개해 보려 했으나, 계연은 가볍게 몸을 피해 그의 공격을 피한 뒤 발로 그의 오른쪽 무릎을 쳤다.
터억-!
“아윽……!”
위행은 오른팔이 잡힌 자세로 몸을 비틀다가 결국 오른쪽 무릎이 풀려 땅을 쿵 내리찧었다. 그는 왼손을 땅바닥에 대고 균형을 유지하며 고통에 차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허…… 허억…….”
“승부가 갈렸네요. 이제 놓아주시지요, 위 선생!”
철막은 위행의 오른손을 휙 던져 그것이 아무렇게나 앞뒤로 흔들리는 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두 걸음 물러나 상대에게 포권했다. 비무가 끝났다는 걸 알리는 인사였다.
이때 이 비무를 둘러싼 구경꾼들은 누구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위행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국면이 변하더니 위행이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그의 오른손과 오른 다리는 아예 망가진 듯했다.
“과연 흉악하군…….”
“저게 바로 철형공인가?”
“정말로 매서운 수단일세. 저들의 손에 꺾인 옛 고수들도 그리 억울하진 않겠군!”
계연은 공손히 포권한 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끔찍한 몰골의 위행을 쳐다보았다. 방금 그가 보여준 힘은 절대 보통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는 말로는 사정을 봐주겠다고 했지만, 보통의 무인이 그를 상대했더라면 그의 매 초식이 모두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혀 손속에 자비를 두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고도의 기교를 익힌 고수들이라 할지라도 위행의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말이다.
위행에게는 안타깝게도, 그가 덤빈 것은 선도(仙道)에서 나름 대단한 경지에 이른 자였다.
지켜보던 구경꾼 중 위씨 일가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위행이 입은 상처를 살피러 연무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넷째 어르신, 넷째 어르신!”
“넷째 할아버님, 괜찮으십니까?”
“어서 가서 넷째 어르신을 살펴라!”
계연은 그들이 위행의 상처를 살피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연무장을 둘러싼 구경꾼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상태가 아주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들에게 좀 더 길게 머물렀다. 그는 전에 자신에게 남긴 인상이 꽤 괜찮았던 위명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괜찮다……. 전부 외상일 뿐이다. 철형공은 과연 대단하구나!”
‘뭐?’
계연은 그 목소리에 무척 놀란 표정으로 위행을 바라보았다. 위행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친 다리와 손을 쓰다듬고 있었고, 별일 아니라는 듯 오른쪽 어깨와 팔을 움직였다. 응조권에 당한 혈흔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비록 비무는 졌지만, 위행은 철막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했다. 그는 주위에 모여든 집안 자제들을 물러나게 한 뒤, 아주 품위 있는 태도로 철막을 향해 포권했다.
‘하, 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이라고? 절대 인정할 수 없지!’
위행이 이 정도이니, 괴이한 기운이 그보다 더 왕성한 위씨 집안 사람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상태일 것이다. 고작 십여 년 만에 이렇게 되다니, 그들 집안에서 무슨 천재를 배출해 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바뀔 수는 없었다.
근골 자체가 사람 같지 않게 강한 것은 일단 뒤로 하고, 이 삿된 성질을 띠는 하얀 기운은 그들의 뼈와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정기(精氣)임이 분명했다. 계연은 법안을 뜨고 있었으므로, 위행이 내뿜는 하얀색 기운이 그가 순식간에 중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정기는 사람의 기운과 완벽하게 같았으나, 위행 본인과는 완전히 융화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무척 간단했다. 이 정기는 분명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나, 위행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연은 위행이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이 명확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런 수단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이 일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계연은 본능적으로 이 일의 배후가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위씨 집안의 많은 사람은 위행보다 훨씬 삿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집안사람들에게 목숨을 잃은 것일까?
하지만 이 위씨 집안의 장원 안팎으로는 그 어떤 원기(怨氣)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삿된 존재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원기가 나타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선도, 불도, 신도를 닦는 이들이 원기를 흩트리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그것은 잘 들어맞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어떤 자인지 알아봐야겠어. 왜 하필 위씨 집안인지도.’
무공을 겨루기 전에 위행이 맹세한 데다, 그도 그리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철막에게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보는 눈길에 경외가 더해졌을 뿐이었다.
비무(比武)가 끝나자 그들 주위에는 이 장원 안에서 신분이 남다른 이들이 몰려들었다. 위행은 이때 완전히 상처를 회복한 상태처럼 보였다. 그는 계연에게 정중히 포권한 뒤에도 내내 기품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과연 대단하십니다, 철 선생. 이 정도 실력이시라면 대정국 관아에서 일했을 때도 최소한 한 주(州)를 담당하는 포두셨겠지요?”
그러자 강통도 가까이 다가와 그의 말에 찬동하며 거들었다.
“철 선배의 철형공은 과연 사납고 모질더군요. 필시 대정국에 많은 제자를 거느리셨겠습니다.”
계연은 그에게 한번 웃어 보인 뒤, 그들을 둘러싸고 선 구경꾼들 사이에서 위명의 상태를 훑고는 다시 위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무척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철모(某)는 한 주의 총 포두라는 대단한 직위는 얻지 못하였소. 그 당시의 신분은 차마 남들 앞에 드러내놓고 말할 수가 없소. 외려 위 선생의 무공이 철모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대단하더이다. 분명 마지막 두 번의 공격에는 조금도 자비를 두지 않았는데, 위 선생은 그저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니 말이오!”
계연의 말은 전부 사실만을 담고 있었다. 관부에서 일했다는 신분 자체가 거짓이었으므로 어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아주 은밀한 관부 조직에서 일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물어봤자 계연이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