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이렇게까지 솔직하다니
“하하하하…….”
위행은 그의 말을 듣더니 즉시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와 계연의 어깨를 두드리려 했다. 하지만 계연은 그의 손을 곧바로 쳐낸 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수십 년간 관아에 있었던지라, 남에게 어깨와 등을 친밀히 맞댄 적이 없소.”
“하하, 하긴, 그러시겠군요. 싸움 끝에 정이 든다는 말처럼, 이번에 위모도 철 선생과 겨루면서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선생께서 위씨 집안을 찾아주신 데는 무언가 원하시는 것이 있었을 테니, 단순히 둘러보러 온 것이라면 제가 직접 선생을 보시고 장원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참, 철 선생과 여러분 모두 일단 응접실에 앉아서 차를 좀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계시지요. 저는 가서 옷을 좀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위행은 그를 마치 오랜만에 만난 벗을 대하듯이 친밀하게 행동했다. 그는 몹시 친근한 태도로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는 하인들에게 손님들을 응접실로 안내해 드리라고 명한 뒤 자신은 서둘러 떠나갔다.
“철 선생, 그럼 함께 가실까요?”
“좋소, 모두 함께 가시지요!”
“이쪽입니다, 선생님!”
계연과 강통을 비롯한 다른 손님들은 주위 구경꾼들의 시선을 받으며 다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계연은 걸음을 옮기며 멀찍이 사라지는 위행을 잠시 바라보았는데, 속으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위행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줄 알았으나, 그가 느끼는 분노와 악한 기운만은 숨겨지지 않아서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올 듯했다.
계연 등이 떠나고, 위행은 서둘러 장원 뒤편으로 향했다. 백 걸음 정도 걸어간 곳에는 건물 한 채가 있었는데, 위명이 때마침 건물 뒤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위행은 방향을 바꿔 위명을 향해 걸어갔다.
“넷째 숙부, 그자의 무공이 대체 어느 정도입니까?”
위명이 이렇게 묻자 위행의 얼굴에는 모순적일 정도로 분노와 기쁨이 교차하며 괴이해졌다.
“아주 대단하더구나. 그자와 비견할 만한 자는 몇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선천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더구나.”
“선천의 경지라고요?”
위명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사실 본질적으로는 사람이 탈바꿈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무인이 선천의 경지에 들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우연히 그런 고수 한 명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넷째 숙부님, 반드시 그를 잘 접대해야 합니다. 장원에 머물도록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가 여기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녹평성 어디에 숙소가 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분명 바라는 게 있을 텐데, 그가 무슨 요구를 하든 전부 들어주십시오! 넷째 숙부, 비무에서 진 것 때문에 그에게 원한을 드러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위명이 재차 당부하자 위행도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를 접대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 내내 그를 존경하는 태도로 정중히 대했으니, 그도 필시 내 태도에 감화되었을 것이다. 저 철형공이 정말 대단하긴 하더구나. 원래는 내가 이전보다 열 배는 넘게 강해졌으니, 손쉽게 그를 굴복시킬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추태를 보이게 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구나!”
말을 하면 할수록 위행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원한에 차 우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넷째 숙부!”
“아,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 화를 실컷 내야 그를 만날 때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 아니냐. 음, 그럼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가 봐야겠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말이야.”
“네, 부디 그를 대할 때 각별히 조심해 주세요.”
“그래, 내 결코 일을 망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친 위행은 다시 서둘러 자신이 머무는 거처로 향했다. 위명은 장원 앞쪽을 바라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기(眞氣)를 밖으로 내뿜고, 격공취물(*隔空取物: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옮기는 능력)을 하는 선천의 경지라. 나도 그런 신선에 가까운 수단을 부릴 수 있었으면…….”
다른 한쪽에서는, 계연이 변신한 철막이 원래 함께 있던 손님들과 함께 하인의 안내에 따라 새로운 응접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은 좀 더 장원 안쪽에 가까운 위치에 자리해 있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시녀와 하인들이 맑은 차와 여러 다과를 내왔다. 그중에는 심지어 얼음을 올린 과일도 있었다. 중호도는 현재 늦가을이라 얼음이 무척 희귀한 시기였다.
“하하하하, 이 빙진압리(氷*鎭鴨梨: 배 속을 파서 대추와 생강 등을 넣고 찐 뒤, 설탕과 얼음을 더해 차갑게 먹는 음식)는 아주 먹기 힘든 것인데, 저희가 모두 철 선생님 덕을 보는군요. 이건 황궁의 총애받는 비빈도 자주 먹지 못하는 것인데, 보아하니 위씨 집안에 얼음을 보관하는 지하실이 있는 모양입니다!”
강통이 사양하지 않고 얼음을 채운 과육을 떠먹기 시작하자, 다른 손님들도 저마다 수저를 들었다. 다 함께 앉아 있는데 계연에게만 이것을 올릴 수 없으니 모든 사람 앞에 하나씩 놓은 것이었다.
“음, 아주 맛있군요. 철 선생의 실력에 위씨 일가도 무척 놀란 게 분명합니다. 덕분에 저와 다른 이들도 이렇게 먹을 복을 누리게 되었네요. 참, 철 선생께서는 그저 둘러보러 오신 것입니까, 아니면 실력을 겨루러 오신 것입니까?”
“철 선생님, 만약 실력을 겨루러 오신 거라면, 사실 위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이 이 장원에서 가장 강한 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관계를 두텁게 다지려 했다. 한편 이 말을 들은 계연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위 선생이 정말로 위씨 집안 가운데 무공이 가장 뛰어난 이가 아니란 말이오? 철모는 그가 그저 겸양의 말을 한다고 생각했소!”
강통은 조각낸 배 한 조각을 집어 들고는 계연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만약 위씨 집안의 장원에서 무도(武道)의 경지가 가장 높은 자를 고르라면, 분명 장주(庄主)인 위헌과 그 아들인 위명 대협일 것입니다. 그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동안 적지 않은 고수들이 그들과 실력을 겨루러 오거나 무자천서를 구경할 겸 가르침을 청하러 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수로 소문났던 이들 대부분이 너무나 처참한 패배를 맛본 탓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은둔했다고 하더군요.”
계연은 그 말을 들으며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다 계연은 그제야 강통의 말에서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알아차린 듯 퍼뜩 정신을 차린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방금 무자천서라고 했소? 위씨 일가가 무자천서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이오?”
계연이 이렇게 묻자 다른 한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사실이지요! 무자천서가 없었으면, 위씨 일가가 예전의 위치에서 과연 지금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이리 오랜 세월 웅크리다, 무자천서의 내용을 알아내자마자 명성이 올랐으니 그 책이 있는 것은 필시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철 선생. 무자천서는 정말로 존재하는 게 확실합니다. 듣자 하니 강호의 비적들과 고수들이 몰래 장원에 잠입해 천서를 보려 했으나, 그들 중 살아 돌아간 자가 거의 없다더군요. 그것만 봐도 위씨 일가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런 일이 있었군…… 혹시 그 무자천서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도 줍니까?”
계연이 이렇게 묻자 강통이 다시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원래는 모두에게 보여줬으나, 요즘엔 조건이 까다로워졌습니다. 위씨 일가와 사이가 막역하거나 그들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답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철 선생 같은 분 말입니다. 만약 선생께서 무자천서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면 아마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강통의 말을 이어받아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의 뜻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계연은 웃으며 그들의 뜻에 따라 이렇게 물었다.
“그럼 여러분이 위씨 집안의 장원에 방문한 것도 무자천서를 보기 위해서입니까?”
“하하하하…….”
“아하하…….”
그러자 손님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저희도 당연히 무자천서가 궁금하고, 언젠가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재는 저희에게 그 정도의 명성은 없습니다. 다만 위씨 집안과 관계를 돈독히 쌓아, 후손들은 위씨 집안의 장원에 들어 무공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저희 강씨 집안에서 위씨 집안의 장원과 합작으로 사업을 하려는 데에는 확실히 그런 목적이 있긴 하지요.”
속내를 털어놓자 그들은 어느새 서로 간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그러자 계연이 찻잔 안의 찻물을 한입에 비운 뒤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 후에 철모가 한번 물어보겠소. 어쩌면 무자천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오.”
“예, 예. 꼭 물어보십시오!”
“예, 이 기회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얻기 어려운 기회이니까요.”
그들의 대화에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위행이 마침 옷을 갈아입고 응접실에 도착했다. 그의 모습이 채 보이기도 전부터 그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위모가 돌아왔습니다. 소인이 철 선생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여러분들께서 부디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하하하하…….”
위행은 대청 안으로 들어가 웃으며 공손히 예를 행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조금 전 비무에서 일어났던 참상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위행이 계연을 이긴 거라고 여길 수도 있을 정도로 상쾌한 모습이었다.
위행이 오자, 계연을 포함한 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넷째 어르신.”
그런 와중에 강통을 비롯한 몇몇이 계연을 향해 넌지시 눈짓을 보냈다. 위행은 계연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 기품있고 친근한 태도를 가장해 말했다.
“철 선생님께서는 무예가 고강(高强)한 데다, 조금 전 소인을 상대할 때 한 수 접어주신 것을 보니 무덕(*武德: 무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도 출중하신 분입니다. 이에 위모는 철 선생님이 마치 오래간만에 만난 벗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조금 시간을 지체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큰형님께 가서 선생님을 소개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큰형님께서는 반드시 선생님을 잘 접대해야 한다고 당부하셨고, 후에 시간을 내서 반드시 선생께 문후를 여쭙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철 선생께서는 이곳 타지에서 아는 이도 없으니, 굳이 객잔에서 묵으며 돈을 쓰지 마시고 저희 장원에서 묵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참! 저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무자천서도 선생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계연이 원래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위행이 무척 친근한 태도로 먼저 물어봐 주었다. 이에 강통을 비롯한 손님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 되었다.
“아, 철 선생과 함께 방문하신 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으니, 여러분도 다 함께 가서 보셔도 됩니다. 아, 미리 말씀드려야겠군요. 바깥에서는 무자천서가 한 권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 두 권입니다. 한 권은 진짜 무자천서이고, 다른 한 권은 예전에 선인께서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무자천서의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조금 놀란 듯한 눈길로 위행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