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화. 살고 싶다면 구해주지
“내가 누군지 이제 알겠어요?”
계연을 보자마자 위씨 일가의 고위층은 즉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속에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자를 잡아라! 저자를 잡으면 공력(功力)에 큰 진보가 있을 것이다! 모두 공격해라, 전부 앞으로!”
위헌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마력이 담긴 듯, 이를 들은 수많은 위씨 자제들이 흉악한 얼굴로 계연을 향해 덤벼들었다. 원래 도망치려던 이들조차 그의 명령을 따랐다. 이 상황에 몸을 내뺀 이들은 위헌, 위행을 비롯한 십여 명의 고위층뿐이었다.
그중 하나인 위명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덮쳐오는 공포심을 억누르며, 갖가지 생각을 떠올리다가 본능적으로 무릎을 털썩 꿇었다.
“공격해!”
“저자를 잡아라!”
“죽여!”
“전부 빨아먹자!”
위씨 일가의 제자들이 다 함께 계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定).”
계연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흉악한 표정으로 주먹을 휘두르려던 이들이 모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뒤이어 계연이 소매를 휘두르자, 사람 형태의 종이 부적이 한 장 떨어져 나오더니 제자리에 굳어버린 ‘인형들’ 옆에 우람한 체격을 지닌 금갑 역사가 나타났다.
“주인님!”
역사는 공손히 예를 올렸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주위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도망간 이들을 모두 잡아 와라. 위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생사를 따지지 않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금갑 역사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콰앙-!
지면에 균열이 생기더니, 한 줄기 금빛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
금갑 역사가 떠나자 그가 디딘 걸음에 의해 지면이 흔들릴 정도였다. 계연은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중 누가 위헌인지 말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차!”하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금갑역사는 그들이 지닌 삿된 기운만 보고도 그중 누가 위헌인지 쉬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종이학이 위헌 등이 도망친 방향으로 즉시 떠났으므로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계연은 다시 정신법에 당해 굳어버린 위씨 가문의 자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중에는 안색이 창백한 채 바닥에 꿇어앉은 위명도 있었다. 바닥에 남은 그의 무릎 자국으로 보아, 조금 전 계연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몇 번이나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장(仙長),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처음에 집안의 가보인 무자천서와 그깟 요괴가 건네는 절세의 수행법을 교환하자는 것에 반대했었습니다. 후에는 그 사특한 것을 수련하는 것도 반대했었습니다!
게다가 그 요괴는 거짓말에 능해, 저희 위씨 집안이 오만을 떨다가 기회를 놓쳤다며, 선장께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다시 찾아주셨군요, 부디 이 점을 헤아려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계연은 아무런 말 없이 위명에게 다가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선한 것을 따르고자 했다던 말을 저도 믿습니다…….”
그러자 위명은 너무 기뻐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가 막 감사하다고 인사하려던 순간 계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지금 당신의 수련 상태는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에요. 저도 당신이 옳은 결정을 내리려 했다는 걸 믿을 테니, 대신 당신도 저를 한번 믿어보세요. 진화(眞火)로 당신의 육신을 불태우면 혼백은 아직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승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고요.”
위명은 그 말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는 멍하니 계연을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러다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지며, 두려움과 갈등이 교차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그는 땅바닥에 쉼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했다.
쿵, 쿵, 쿵……!
“선, 선장, 저는 정말로 옳은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쿵, 쿵, 쿵, 쿵…….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선장!”
그러다 위명은 별안간 더는 머리를 아래로 내릴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계연이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위명의 얼굴을 들어 올려 흙모래와 먼지가 잔뜩 묻은 그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피가 비치기는커녕, 긁히거나 찢어진 자국도, 부어오른 곳도 없었다.
“선장, 저는 정말로…….”
“그간 적지 않은 고수들의 원기(元氣)를 흡수했겠죠?”
계연의 희뿌연 두 눈과 마주치자, 위명은 마음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생각이 그에게 낱낱이 읽힌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온몸이 차가워지며 두려움이 그를 덮쳐왔다.
“분명 당신을 구해줄 방법을 설명했는데, 왜 또 살려달라고 하는 거죠? 지금 상태로 가다가는, 더 이상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아도 십여 년 후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가 될 거예요. 거기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20년 안에 육신의 활동도 멈춰 그야말로 완벽한 강시가 되죠.
그것도 꽤 대단하긴 할 거예요, 수많은 사람을 해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죠?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제 말대로 혼백만이라도 구하도록 하세요. 저는 그 늙은 거지 정도의 능력도, 보배도 없으니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거든요.”
그러자 위명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린 채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면 볼수록 두려움이 차올랐다. 선장의 모습은 더없이 진지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선장,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단 십몇 년, 이십몇 년이라도 살고 싶습니다. 선장, 저는 정말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위명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무릎을 땅에서 떼려 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의 이마에 닿은 계연의 두 손가락을 뗄 수도 없었다. 마치 그 두 손가락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그의 이마에 딱 붙어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선장…….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무공이 이렇게나 높고, 아직 시간이 십여 년이나 있는데, 제발 살려 주십시오…….”
위명은 격렬히 몸부림치며 두 손으로 계연의 팔을 붙잡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계연의 옷을 훑고 그대로 미끄러졌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보상하고, 빚을 졌으면 돈을 갚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요. 이리 오랫동안 고수 노릇을 하며 사람들의 흠모를 받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해요. 저는 정말로 당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니 그만 포기하세요.”
말을 마친 계연은 입으로 가볍게 붉은빛을 띤 연기를 내뿜었다. 불길이 위명이 몸에 옮겨붙자, 계연은 곧바로 그에게서 손을 놓았다.
“아……! 아아악!”
위명이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튀어 오르더니, 그의 온몸이 곧 새빨개졌다. 그는 온몸에 미세한 숯불이 달라붙은 것처럼, 이리저리 부딪히고 구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쿠웅! 쾅, 쾅-!
“아악……! 불…… 불이야! 선장, 살려 주십시오!”
그가 날뛰자 건물 외벽 곳곳이 무너졌으며, 담장에도 구멍이 여러 개 뚫렸다. 그는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강가로 향했다.
그가 강물에 첨벙 뛰어들자 물보라가 높이 치솟았다.
치지직……!
그러자 강물에서 증기가 치솟았다. 이는 강물이 삼매진화의 열기에 닿아서가 아니라, 위명의 몸에 닿은 물이 끓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물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위명은 여전히 타는 듯한 작열감을 떨쳐내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위명은 그렇게 수십 초간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위명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곧이어 검게 타버린 잿가루가 수면 위로 떠 오르더니, 물줄기를 타고 점점 멀어져갔다.
계연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위명이 사라지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는 거짓이 아니라 정말로 삼매진화로 그의 육신을 제련해준 것이었다. 다만 위명의 마음이 그의 말처럼 그리 선량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위명의 혼백은 육신의 사악한 기운과 너무 깊게 얽혀 있어, 삼매진화를 다루는 데에 도가 튼 계연도 그의 혼백을 따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사실 계연은 예전에 위명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그를 도우려 하고, 사정을 보아준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명은 오히려 더욱 고통을 느끼고 죽었을 뿐이었다. 계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은 달빛이 유난히 밝은 것이, 강시를 비롯한 온갖 사악한 것들이 아주 좋아하는 날씨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금갑 역사가 목표물을 포착하고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그의 속도는 위씨 집안의 자칭 고수라는 자들은 댈 수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앞쪽에서 도망치던 두 사람은 돌연 눈앞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온몸에 금빛이 흐르는 신장(神將)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들의 상반신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으니, 구태여 죽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금갑 역사는 그들을 처리한 뒤에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전방을 향해 달렸다. 그러자 위헌과 위행을 비롯한 이들은 그 진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뒤쫓아오는 금갑 역사와 곤죽이 된 두 시체를 본 그들은 혼이 나갈 정도로 놀라,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
“흩어지자, 흩어져야 도망칠 수 있다! 어서 흩어져!”
그 말과 함께 남은 이들은 순식간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속으로 장원이 너무 크고 외진 곳에 있다고 불평했다. 녹평성은 또 왜 이렇게 먼 것인가? 그들은 본능적으로 인파 속에 숨어 화를 피하려 했다.
금갑 역사는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뒤쫓고 있었는데, 그의 몸에는 때때로 전류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맨 처음 위씨 집안의 고수 두 명을 파리나 모기 잡듯 손바닥으로 처리한 뒤, 순식간에 또 한 명을 따라잡았다. 그러고는 연달아 발로 밟거나 손날과 주먹을 날려 처리했다. 한 번 더 공격할 필요도 없었고, 뛰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살아남은 이가 없었다.
‘이왕 주인께서 위헌을 제외하고는 생사를 불문하겠다 하셨으니, 죽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죽이면 무슨 짓을 더 저지르거나 도망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는 금갑 역사의 간단하고도 순수한 사고방식이었으나, 무척 효율적이었다.
위행은 자신의 진기와 남은 체력을 모두 이용해 전심전력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는 곧 등 뒤로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느껴져, 온몸의 털이 오소소 곤두서기 시작했다. 뒤이어 공기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지면을 뒤흔드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금갑 역사가 이미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자 너무 놀라 혼이 날아가기 직전인 위행은 급히 생각을 짜내 크게 소리쳤다.
“저는 선장과 잘 압니다! 제가 직접 선장을 접대했습니다. 제가 선장을…….”
그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쿠웅……!
위행은 커다란 소가 가슴팍을 들이받은 듯한 느낌이 들자, 본능적으로 사지를 앞으로 뻗었다. 뒤이어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그는 몸을 한껏 구부린 채로 공기를 가르며 뒤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