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 (1)
“커헉……!”
뒤이어 움푹 파인 가슴 부근에서 많은 양의 피와 찢어진 내장이 흘러내렸다. 위행은 금갑 역사의 일격에 백 장(약 300m)을 날아가, 커다란 나무에 콰당 부딪혔다.
콰직…… 콰지직……!
그러자 때아닌 재앙을 입은 나무는 그대로 밑동이 끊어져 뿌리가 살짝 들린 채로 쓰러졌다.
이때 위행은 나무의 그루터기 앞에 앉아, 벌어진 가슴 사이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위헌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이제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위헌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몸부림쳤다.
‘따라잡힌다 해도 한번 겨뤄볼 힘이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이미 평범한 사람의 한계를 초월했으니, 신장이라 할지라도 내가 반드시 진다는 법은 없어!’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방향을 돌려 상대와 맞설 용기는 없었다. 그때 뒤에서 공기를 가르고 달려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네 이놈, 거기 서라!”
금갑 역사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 울리는 천둥과 같이 주위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이는 그가 오늘 처음으로 소리 내 말한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위헌은 그와 맞설 용기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휘익……!
그때 뒤에서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위헌은 바짝 경계를 세우고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두 손이 손톱이 순간적으로 자라났고, 그는 뒤쪽을 향해 세차게 내리그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돌려 뒤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끼이익-!
그의 손톱이 금갑을 긁고 지나갔는데도 불꽃조차 일지 않았다. 게다가 금갑 역사는 이미 10장(약 30m) 정도 되는 높이까지 커져 있어, 마치 작은 장난감을 집듯이 반항하는 위헌을 가볍게 손에 쥐었다. 금갑 역사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위행을 살펴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 종이학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금갑 역사의 머리 위에 앉았다. 원래 그는 고개를 내려 위헌이 죽었는지 아닌지 살펴보려 했으나, 그때 금갑 역사가 이마 위로 시선을 들어 올리더니 아래를 내려다보는 종이학을 마주 보았다. 종이학은 눈이 없었지만, 이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친 것은 확실했다.
종이학과 잠시 눈을 맞춘 금갑 역사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손에 쥔 위헌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너무 세게 쥐어 위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쿵, 쿵, 쿵, 쿵……!
금갑 역사가 손안에 위헌을 쥐고 걸음을 내딛자, 그의 걸음마다 땅표면이 진동했다. 그는 곧바로 계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처참하기 짝이 없는 상태의 시신들을 들어 올렸다. 계연의 명령은 ‘잡아 오라’는 것이었으므로, 죽었든 살았든 모두 들고 가야 했다.
금갑 역사가 위행의 앞으로 다가갔을 때, 위행은 흙 뿌리가 드러난 그루터기에 기대앉아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금갑 역사가 날린 장법 한 번에 그는 거의 그대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이미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몸이었으니, 만약 다른 무림 고수였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역사는 위행을 집어 올려 시체가 쌓인 왼손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는 뼈와 근육이 짓눌려 고통을 호소하는 위헌을 꽉 쥔 채로 계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종이학은 이미 한발 먼저 계연에게 날아간 후였다.
장원에 이토록 큰 소란이 일었으니, 장원에 머무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잠에서 깨어난 뒤였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울부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뒤숭숭하여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장원에서 일하는 하인과 그의 가족들은 경악과 놀라움이 담긴 얼굴로 멀찍이 보이는 금갑을 입은 거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도망치는 이들은 없었는데, 저 거인의 겉모습만 봐도 그가 절대 요사스러운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위씨 집안 장원의 문제 있는 이들이 계연이 머무는 곳을 둘러싼 이들 뿐일 리 없고 이들이 전부 사내라는 법도 없으니, 계연이 미처 잡지 못한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어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니, 대부분은 숨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는 게 확실했다.
계연은 잠시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금갑 역사를 바라보았다. 금갑 역사는 계연의 앞에 멈춰서서,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천천히 상체를 구부려 왼손과 오른손을 계연의 눈앞으로 뻗었다.
“주인님, 전부 잡아 왔습니다.”
금갑 역사가 이렇게 말하자 장원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때 위행이 갑자기 힘이 솟아난 것처럼, 금갑 역사의 손바닥 위에 누운 채 경련하며 말했다.
“허억, 선, 선장, 큭…… 소인, 내내 선장을 공, 공손히 접대했으니,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계연은 그저 고개만 저을 뿐 위행의 말에는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시선을 돌려 위헌을 바라보자, 위헌도 즉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선장! 저희 위씨 가문의 자제들은 요괴의 꾐에 넘어간 겁니다, 저희도 피해자입니다! 게다가 그놈은 선장께서 남기신 글과 무자천서를 훔쳐 가버렸습니다. 모두 제가 그의 말에 혹한 탓입니다.
요괴가 무자천서의 대가로 주고 간 공법(功法)을 수련한 것도 절대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강호에는 원래부터 흡공대법(*吸功大法: 상대를 내공을 빨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도 강호의 나쁜 놈들을 이용해 한번 수련해본 것입니다. 저희라고 어찌 사람을 해치고 싶었겠습니까…….”
위헌은 과연 위명의 부친답게 말만은 청산유수였다. 계연은 그의 말을 듣다가 적당히 끊었다.
“당신 말을 믿어요.”
위헌이 다시 말을 이으려던 순간, 돌연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예?”
“저는 당신 말을 믿는다고요.”
계연이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한번 대답하자 위헌은 오히려 믿을 수가 없어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한쪽에 있던 위행도 그 말에 경악한 듯한 표정으로 계연을 보더니, 어쩌면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치솟아 약간 힘이 났다.
“선장께서 제 말을 믿으신다고요?”
위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되묻자 계연이 웃었다.
“네, 장주의 말은 꼭 제 말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하하, 자기가 한 말을 자기도 믿지 못하다니…….”
이렇게 말한 계연이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더 말하고 말 것도 없겠군요, 당신이 말한 그 요괴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세요. 가주인 위헌 당신은 구할 수 없겠지만, 위씨 자제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아직 저승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저승의 벌을 받은 후에는 귀성에서 음수를 누리며 살 수 있겠지요. 당신은 최대한 빠르게 고통 없이 보내드릴게요.”
“저, 저는…… 선장…….”
계연이 희뿌연 눈으로 진지하게 위헌을 바라보았다.
만약 위헌이 말하지 않는다면 계연은 유몽술을 펼쳐서, 강제로 정신을 침투시켜 위헌의 의식을 엿보려 했다. 어떻게 보면 마도(魔道)의 수단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헌은 수행자가 아니고 의지가 강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과 정신을 지키는 법 같은 것은 알지 못할 테니 유몽술을 쓰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큰형님, 크윽!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대, 대체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어, 어서 선장에게 알려드리세요! 고, 공이라도 세워 속죄해야지요!”
위행의 육신은 조금 전보다 좀 더 회복한 상태였다. 아직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다지 어려움 없이 말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것만 봐도 그가 흡수한 원기가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놔두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중상에서 이리 짧은 시간 안에 회복했으니 말이다.
위행은 자신이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장의 말을 듣고 최소한 귀성에서 귀신으로서 살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에 위헌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재차 그를 닦달한 것이다.
“하하하하……. 저자는 말할 수 없을 테니 굳이 그에게 캐물을 필요 없습니다, 계 선생님. 선생께서 저를 뵙고자 하시니, 제가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계연은 즉시 서쪽 멀리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그곳 땅 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는 계연이 단순히 청력으로만 듣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위행과 위헌은 모두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끼이익……!
“선, 선장! 살려주십시오, 아아!”
끼기긱……!
두 사람의 몸이 비틀리기 시작하더니, 곧 엄청난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다음 순간.
펑, 펑!
위헌과 위행은 마치 물이 가득 찬 풍선이 터지듯 피와 내장, 부서진 뼈를 내뿜으며 폭발해버렸다. 그러자 금갑 역사는 쥐고 있던 위헌을 내던지고, 손바닥을 펼쳐 계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이 터지면서 뿜어낸 온갖 더러운 것들은 금갑 역사의 종아리와 손바닥, 주위 땅바닥과 정신법에 걸린 위씨 자제들 위로 쏟아졌다. 오로지 계연만이 홀로 깨끗했다.
지지직-!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금갑 역사는 전류를 일으켜 그것들을 바싹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계연이 주시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십여 장(丈) 밖의 땅바닥에 균열이 생기며 흙이 위로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온몸이 근육질인 갈색 피부에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바로 허리를 숙여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시구(尸九)가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계연이 법안을 크게 연 채 담담한 표정으로 시체 요괴를 바라보았다.
“위씨 집안의 배후는 네놈이었군. 내가 남긴 글과 <운중유몽> 모두 네가 가지고 있겠지? 어째서 진짜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오지 않고?”
‘시구’라는 이름이 진짜든 거짓이든 간에, 시요가 나타난 순간 계연은 그것이 분신술로 만들어낸 꼭두각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건 배후에 있는 자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이 시요는 예전에 계연이 만났었던 시요와 무척 비슷했다. 하지만 실력은 그보다 한 수 위인 듯 보였다.
그는 계연의 말을 듣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저 시구가 비록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다지만, 이런 상황에서 진짜 모습으로 계 선생님 앞에 나설 정도의 담력은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지금 한창 화가 나신 상태인데, 제가 진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목이 잘리기라도 하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으며 시요를 향해 가까이 걸어갔다.
“하하하, 억울? 너 같은 삿된 존재가 감히 억울하다는 말을 쓸 수나 있나?”
“부디 제 말을 먼저 들어주십시오! 위씨 집안의 일은 정말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남기신 글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 천천히 깨우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저들은 더 빠르고 쉬운 길을 찾고자 온갖 법사며 고인을 청해왔습니다.
평범한 자들이 하는 말 중에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게 있지요. ‘필부는 죄가 없으나, 옥을 가지고 있다면 죄다.’(匹夫無罪, 懷璧其罪: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주나라의 속담.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귀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훗날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 게다가 이들에게는 선생께서 남기신 천록서의 번역본까지 있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운중유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 두 가지를 세상 사람들 앞에 내놓으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선생의 글과 천록서를 가지고 간 것은 사실이나, 저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뿐더러 두 편의 가르침을 전해주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는 상승무공(*上乘武功: 더 높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단련하여 금신(金身)을 만드는 방법이었지요. 아, 시신을 단련하여 금신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군요.
그것은 사람을 해하는 사법(邪法)임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는데도, 저들은 그것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도 제 탓은 아닙니다!”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린아이가 금덩이를 쥐고 홀로 거리를 걷는 게 위험하다는 것과 비슷한 억지 논리였다. 강도를 만나 금덩이를 빼앗긴 아이의 잘못보다는, 그것을 훔쳐 간 강도의 잘못이 더 크고 중한 법이다. 게다가 강도가 스스로 이런 논리를 펼치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위씨 집안 사람들이 무고한 어린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시요의 이 말은 계연이 지난 생에도 자주 보았던 피해자에게 죄를 전가하는 방식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