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18화 (618/892)

618화. 낙경성

강통은 내심 위씨 집안의 장원에서 도망친 하인들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 그 공포와 흥분이 얼룩진 표정은 절대 꾸며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살아남은 위씨 일가는 관아 앞에 꿇어앉아 반항하려는 어떤 생각도 없어 보였다. 조월국과 대대로 숙원이 있는 대정국에 관해서는 그리 많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월국에서 머리가 좀 깨어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현재 상황을 아주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위씨 집안에 일어난 일은 녹평성에서 유명한 기이한 사건이 되었다. 위씨 집안은 자신들이 아주 많은 사람을 해쳤다는 걸 인정했고, 그중에는 강호에서 신분이 꽤 있는 자들도 있었다. 이 사실이 퍼지자 곧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위씨 집안은 이미 무너졌지만, 이 일이 퍼져나감에 따라 예전에 그들이 강호에 쌓은 명성은 깡그리 다 사라져버리고 악하다는 평판만이 남았다. 한편 장원에서 피살된 자들의 명단에서 실종된 자신의 친우나 가족을 본 강호인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에 녹평성 관아에서는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관아에서는 위씨 일가와의 옛정을 고려했는지, 결국 자수하러 온 위씨 일가 중 지위가 약간이나마 낮은 이들만 곧바로 극형(*極刑: 가장 무거운 형벌, 즉 사형을 뜻함)에 처했고, 남은 사람 대부분은 멀리 유배를 보냈다. 하지만 이 방식도 실은 죽으라고 보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쩌면 곧바로 죽이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방식일 것이다.

* * *

계연은 해가 뜨기 전에 이미 장원을 떠난 상태였다. 그는 스스로 위씨 일가를 숙청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녹평성 관아와 강호에 이 사건의 판결을 맡겼다. 그는 그때 바람을 타고 바둑돌의 모호한 감응을 따라 육산군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음 날 정오.

계연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커다란 산의 깊은 곳에 내려섰다. 산간을 흐르는 계곡 근처의 거대한 돌 위에서는 육산군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그의 주위로 영기가 그를 감싸며 돌았고, 맑은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오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햇빛이 그를 내리쬐고 있었는데, 태양의 힘이 모여들더니 자그마한 빛의 점이 되어 그의 앞에 둥둥 떠올랐다.

육산군이 수련하는 한쪽의 계곡 안에서는 작은 미꾸라지가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는 다람쥐가 나뭇가지 위를 통통 뛰어다녔다. 산토끼는 풀잎을 뜯어 먹고 있었고, 작은 새 한 마리도 가지 위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후우……. 후우우…….”

계연이 깊이 호흡을 내쉴 때마다 미약한 바람 소리가 났고, 주위의 영기와 빛의 점이 분분히 육산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뒤이어 천천히 눈을 뜬 그는 곧 너무 놀라 심장이 크게 뛰었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번져나갔다. 멀리서 계연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육산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장읍례를 올렸다.

“육산군이 사존(師尊)을 뵙습니다!”

주위에는 인적이 아예 없었으므로 육산군은 거리낌 없이 이렇게 인사했다.

그러자 계연이 가까이 걸어오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열심히 수행을 닦고 있었구나. 나는 네가 우패천과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연이 우패천의 이름을 꺼내자 육산군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 늙은 소는 돈을 너무 많이 씁니다, 주위에 일어나는 일도 너무 많고요. 여인에게 쓰는 시간이 수행하는 시간보다 긴데, 도대체 그 도행을 언제 쌓은 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자 곁에 붙어있다간 그자가 계속 절 돈주머니 취급이나 하며 제 신경을 살살 긁겠지요.”

“하하, 하긴. 오늘은 따로 일이 있어 일부러 찾아왔다. 일단 우패천을 먼저 찾으러 가자꾸나.”

계연의 말을 들은 육산군은 몸을 일으키더니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제게 내리실 무슨 분부가 있는지요?”

육산군은 언제나 스승을 공경하고 숭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계연의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계연이 무슨 일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심각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계연은 무슨 일인지 곧바로 말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우패천을 먼저 찾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그러고는 먼저 산 바깥으로 향했고, 육산군도 갖가지 궁금증을 내리누르고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한 사람은 푸른 청삼을 입고, 다른 한 사람은 연한 황색 장포를 입고 있었다. 이들이 걷는 모습은 얼핏 아주 느릿해 보였으나 실은 나는 듯이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주위의 풍경을 샅샅이 살필 수 있었다.

계연은 육산군이 자신이 입을 열지 않으면 그도 말을 꺼내지 않고,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구는 모습을 보고 그가 좀 더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 앞에서 그리 조심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수행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된다.”

육산군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예의는 마땅히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요. 제자가 비록 우둔하지만, 지금 당장은 수행에 그다지 큰 문제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처음에 주셨던 가르침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육산군의 대답은 계연의 예상에서 그리 벗어난 답은 아니었다. 이에 계연은 아예 화제를 바꿔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보니 그동안 수행과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더구나. 그러니 이번에는 나와 한담을 나눈다 생각하거라. 음, 나는 적지 않은 선인들을 만났고, 괜찮은 요괴들도 꽤 많이 알고 있지. 속세의 일도 물론 많이 알고. 그중 가장 이야기할 만한 이들은 진룡 하나, 학자 하나, 도사 하나, 신령 하나, 승려 하나가 있는데…….”

감격을 금치 못한 듯, 내내 담담하지만 약간의 냉혹함이 섞인 육산군의 표정에 마침내 약간의 흥분이 묻어났다. 처음으로 그에게 스승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육산군은 항상 계연을 존경해왔고 그는 스승의 모습을 언제나 마음속에서 또렷하게 떠올릴 수는 있었지만, 그 외에 스승의 다른 부분은 항상 수수께끼였다. 스승님은 그에게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육산군은 처음의 흥분이 가시자, 더는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고 때때로 질문을 하기도 하며 무척 감격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육산군의 마음에서는 계연에 대한 색채가 더욱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스승님을 떠올릴 때면 항상 산수(山水)가 배경이었는데, 그 배경에는 이제 더 많은 사람과 일들이 늘어났다. 그가 원래부터 알고 있던 윤씨 일가는 물론, 통천강 용왕의 일맥과 대량사의 승려, 운산관 도문(道門)의 도인들…….

들려줄 만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데다, 그것들은 전부 말 몇 마디면 끝나는 내용이 아니었다. 계연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순서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일은 한마디 언급만 하기도 했고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좀 더 길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속세의 일, 선도(仙道)에 관한 일 모두 가리지 않고 이야기하다가 어떤 신통한 술법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화제는 다시 우패천으로 돌아왔다. 육산군은 스스로 엄격한 성품을 지녔으므로 우패천 같은 이를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가 기루만 찾을 뿐 양갓집 규수를 희롱하거나 싫다는 사람을 겁박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의 처세술에도 그만의 원칙이 있다는 것 등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하루 밤낮이 지나가 버렸다. 사실 육산군은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스승님의 인정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계연에 대해 가지는 존경심은 지금도 예전과 같았지만, 이제는 전처럼 과도히 조심스러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계연과 육산군은 조월국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 중 하나인 낙경성의 외곽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 * *

때는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두 사람은 저 멀리 우패천과 연비가 사들인 장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래는 고작 4, 5칸이었던 작은 장원이 지금은 주방 건물을 포함하여 총 8칸의 건물로 늘어나 있었다. 재배하는 식물의 종류도 훨씬 많아졌다.

“그 두 사람이 한곳에 이리 오래 머물 줄은 몰랐습니다.”

육산군이 멀리 솟아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보며 회상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예전에 여기서 반년 정도 머무르다가 떠났는데,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더는 우패천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는 아홉 명의 소협들이 자신과 한 맹세에 따라 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한 후, 잠시 수련을 닦다가 대정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육산군은 사실 두 사람이 일찍이 여길 떠났을 거라 여겼다. 십여 년 정도는 육산군에게 있어 ‘잠시 수련을 닦은’ 정도의 세월이었다.

계연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낙경성 같은 큰 도시는, 특히나 조월국 같은 나라에서는 광활한 토지의 자원이 모두 여기로 집중되게 되어있지. 그러니 연지와 수분 냄새가 가득한 기루도 번화했을 것이고, 이제 연비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실력을 겨룰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우패천도 이곳을 급히 떠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지.”

두 사람은 장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속도를 늦췄다. 그들이 장원 앞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보통 사람의 속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순간 계연과 육산군은 모두 멍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장원 안에서는 한 부인이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그녀의 배가 부풀어 오른 모양을 보니 회임을 한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우패천의 부인인가?’

이것이 그들 사제(師弟)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뇌리에 떠오른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우패천의 성격에 한 사람에게 정착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설마 연비의?’

한편 대나무 장대 위에 부지런히 옷을 널던 부인은 일을 마치고 몸을 돌리다가 바깥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이미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걸 보니, 이 장원을 찾아온 것이 확실해 보였다.

“두 분 선생은 누구십니까?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혹시 우 대협과 연 대협을 찾으시나요?”

그러자 계연과 육산군은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우패천도, 연비의 아이도 아닌 듯했다. 육산군이 먼저 한발 앞으로 나아가 대답했다.

“제 성은 육 씨이고 이쪽은 계 선생님이십니다. 저희는 우 대협과 연 대협을 찾아왔습니다. 예전에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얼른 두 사람을 향해 예를 차렸다.

“두 분 대협의 옛 친우셨군요.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와 앉으세요!”

한편 건물 안에서는 낯선 중년 남자가 바깥의 기척을 듣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육산군의 말을 듣고, 찾아온 두 사람의 서생 같은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나와 두 사람을 뜰 안으로 들였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위해 차를 내왔다.

“두 분 선생님, 연 대협께서는 며칠 전 출타하셔서 어디로 갔는지는 소인도 잘 모릅니다. 우 대협께서는 분명 낙경성에 계실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정오가 되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네, 급한 일은 아니에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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