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화. 무살원강(武煞元罡)
육산군은 말을 마친 뒤 옆에서 달라붙는 기녀들을 떨쳐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포주는 잠시 멍한 얼굴로 서 있다가 얼른 그를 뒤쫓아갔다.
“우씨 어르신을 찾으러 오셨군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좀 곤란해서요, 아니면 제가 먼저 그분께 가서 상황을 전달하고 손님을 모셔다드리면 어떨까요? 에고, 손님, 천천히 가세요!”
“데려다줄 필요 없소.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육산군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이렇게 소리친 뒤 더욱 속도를 내 걸었다. 그러자 포주는 그를 따라가지도 못했다.
기루 뒤편의 널찍한 건물 안에서 우패천은 좌우로 기녀들을 끌어안고서 잔뜩 취한 얼굴로 묘령의 여인이 맞은편에서 금을 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마치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금을 타는 여인의 얼굴과 몸매를 훑자, 여인은 그의 눈빛에 뺨과 귀가 빨개졌다.
한편 우패천에게 안긴 한 여인은 그에게 포도 껍질을 까서 먹여주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가끔 술잔을 입에 대 주었다. 그들은 우패천의 손이 자신들을 자유로이 쓰다듬도록 놔둔 채로 때때로 교태 어린 웃음소리를 냈다.
쾅……!
그때 대문이 바깥에서부터 활짝 열렸다.
“꺅!”
“어머!”
기녀들이 놀라 펄쩍 뛰자 우패천이 온화한 목소리로 그들을 위로했다.
“괜찮다, 괜찮아. 내 친우야, 친우. 산군, 드디어 생각이 트였나? 자, 이리 오게. 내 한 사람 양보해주지. 여기 앉게. 저 금 타는 여인만 빼면 이 기루에 있는 누구든 말만 하면 불러주겠네.”
우패천은 끌어안고 있던 한 여인에게서 손을 떼고는 열정적으로 탁자 옆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서 헛소리하고 있을 시간 없네. 연비가 방금 돌아와서 선생님께서 자네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거든.”
“뭐? 지금? 설마, 지금 바로 가야 한다고? 아직 돈도 다 안 썼는데!”
육산군은 입꼬리를 쭉 늘리며 웃고는 일부러 구체적으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무슨 말이 이렇게 많나? 그래서, 갈 건가 안 갈 건가? 안 간다면 나는 갈 터이니, 이다음엔 계 선생님께서 직접 오시겠지. 그때 되면 선생님께 여기 어느 낭자 하나를 들이밀어 보게.”
그 말에 우패천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을 타던 기녀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루만 시간을 줄 수는 없겠나? 하룻밤이라도, 아니, 오늘 오후만이라도 여기서 보내게 해주게. 해가 지면 돌아가겠네…….”
육산군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금 연주를 멈춘 여인을 흘끗 바라본 뒤에 물었다.
“여기 온 지가 언젠데 왜 여태까지 일도 안 치렀나?”
“아잇, 대낮에 어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우패천이 이렇게 대답하자 어이가 없었는지 육산군의 입꼬리가 부들거렸다.
“선생님께서 자네가 무도에 대해 가진 견해를 듣고 싶어 하시네.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건 아니었으니, 후에 다시 돌아와도 될 걸세.”
그러자 우패천은 한층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류 낭자, 오늘은 일이 있어 가 봐야 할 듯하니, 다음에 내가 오길 기다리시오!”
그는 말을 마친 뒤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육산군을 따라 나갔다. 그는 기루의 여인들이 자기에게 진심으로 연정을 품고 있다며 육산군에게 잔뜩 허풍을 떨어댔다.
* * *
우패천과 육산군이 성 밖의 작은 장원에 도착했을 때, 계연과 연비는 이미 겨루기를 끝낸 뒤였다. 우패천은 한 걸음 앞서 장원으로 들어서며 이렇게 소리쳤다.
“계 선생님, 연 동생, 저 왔습니다.”
그 뒤로 육산군이 그리 좋지 못한 표정으로 따라 들어왔다. 계연이 이를 보고 뭐라 묻기도 전에 우패천이 먼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말했다.
“하핫, 산군 이 자가 풍류를 몰라서 춘행루의 아가씨들이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는 데도 그저 피하려고만 하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피하지 못하게 좀 도와줬지요.”
육산군은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육산군은 여인에게 입맞춤당한 일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가 채 반응하지 못한 사이 우패천이 그의 손발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놀라고 있었다.
“자,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앉으세요. 오늘 이야기의 중점은 무도의 길에 관해서예요. 듣자 하니 요괴의 법체에 관한 핵심 내용을 전수해 주려 하신다고요. 자세히 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요괴의 법체에 관해서가 아니라, 무인의 신체 단련에 대해서 말이에요.”
계연은 이때 모든 무도의 발전에 관해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에 육산군이 입맞춤 당한 일에 대해 계 선생께서 뭐라고 할지 기대하고 있던 우패천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저희 모두 친한 사이고, 별로 엄청난 내용도 아니니 말하지 못할 건 없죠…….”
우패천은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탁자 가까이 다가오더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돌 탁자 위에 작은 산처럼 쌓인 대추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비 앞에만 해도 이미 대추 씨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나도 최소한 4, 50개는 먹었을걸. 씨까지 삼켰지.”
육산군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뒤 먼저 아까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러운 태도로 대추를 한 알 집어 아삭, 베어 물었다.
우패천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마침내 우패천은 멍한 상태에서 깨어난 듯이 얼른 빈자리에 앉아 대추 두 알을 집어 입에 던져넣었다. 그가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계 선생님께서 지닌 대추의 수량이 적지 않은 듯했다.
계연도 서두르지 않고 우패천이 대추 네 개를 더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우패천은 곧 자신이 연비를 위해 생각한 무도의 길에 대해 세세히 이야기했다. 심지어 자신이 요괴의 법체를 수련할 때의 비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한번 시작되자 그들은 모두 흥이 올라 신나게 의견을 나눴다. 그들은 장원을 돌보는 부부에게 식사도 찻물도 필요 없다고 전한 뒤, 대추만 먹으면서 그로부터 몇 날 며칠을 떠들었다.
* * *
요괴의 ‘법체’가 가진 장점은 요괴가 가진 본연의 힘을 가장 강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있었다. ‘법체’란 강대한 육신, 왕성한 생명력, 세상을 오만하게 굽어보는 ‘기백’, 강력한 ‘원신(元神)의 힘’과 요괴가 가진 ‘법력’ 등 수많은 요소가 합쳐진 것이었다. 요괴들은 시시때때로 법체를 수련하다가, 관건이 되는 때에 그 힘을 바깥으로 드러내어 자신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우패천은 연비처럼 천부적인 재능이 출중하고, 무인으로서의 정점에 이른 사람들은 이런 방법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비는 당연히 무인으로서의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이 ‘기백’이란 것은 뜬구름처럼 막연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힘과 관련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인답게 기혈이 무척 왕성했고, 인간이라면 모두 지닌 화기(火氣)도 그러했다. 연비는 원기와 양기도 무척 왕성했지만, 그것을 아무렇게나 낭비하지 않았다.
연비에게는 살기도 많았지만, 이는 탁하고 악한 기운과 섞인 악살(惡煞)이 아니라, 무도를 수련하면서 비롯된 굳건한 반석과 같은 무살(武煞)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군사들이 가진 혈살(血煞)과도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연비가 지닌 진기, 특히 선천의 진기는 우패천이 볼 때 중요한 관건이 되는 부분이었다. 진기는 세상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고, 많은 요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융합점으로 삼기에 적합했다.
“저와 연 동생은 몇 년 동안 고민을 이어가다 결국 천천히 조금씩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얼마간 성과를 얻긴 했는데, 실은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무인의 가진 모든 힘을 한데 섞어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지금 연 동생은 그가 가진 잠재력의 3할도 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까운 일이지요…….”
우패천은 그들과 의견을 나누다가 그간의 일을 털어놓고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 우패천과 연비 두 사람뿐이었을 때는 항상 어딘가 막힌 부분이 있어 생각을 발전시킬 수가 없었는데, 도를 논한 경험이 풍부하고 무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갖춘 계연이 오자 계연에 의해 단번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계연도 그 점을 깨닫고는 무척 아쉬워하며 탄식했다.
“그렇네요, 정말 아쉽군요. 연 대협이 시도하기엔 조금 늦었네요. 무술을 연마하는 초기에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육산군도 연비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아쉽게 됐군…….”
연비도 조금 낙심한 듯했으나 곧바로 시원스레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는 아쉽게 됐지만, 대신 이제 희망이 생겼지 않습니까. 후에 제가 계 선생님과 우 형님께서 기대하시는 성취는 이루지 못할지라도, 저보다 뛰어난 제자 몇 명은 길러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 제자가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대에 이루면 되지요. 선생님과 우 형님께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사실 테니, 언젠가 그날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연 동생…….”
“하하하하……. 방금은 제가 너무 저답지 않은 말을 했군요. 저 연비는 반평생을 오만하게 살았는데, 어찌 이리 금방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 길을 이루지 못하리란 법도 없지요!”
계연은 연비의 이런 태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무인이 가진 기백이었다.
“대단한 기백을 지니셨네요, 연 대협. 그렇다면 이 무도의 길을 어찌 부를지 대협께서 이름을 정해주세요!”
“예? 선생님께서 정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협께서 정하세요!”
이에 연비가 다시 우패천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 형님…….”
“동생이 정해야 하네!”
육산군마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이들은 앉아있는 작은 뜰이 왜인지 밝다고 느꼈으나 실제로 주위는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일출이 멀지 않아 동쪽 하늘 지평선 근처에는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연비는 무도의 길에 대해 더욱 또렷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수행계에서 쓰이는 용어에도 익숙해진 후였다. 만약 무도에서의 지위를 논하자면 확실히 지금 그를 능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비는 지평선에 번진 금빛을 한참 바라보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이 눈썹을 펴며 힘차게 말했다.
“그럼, 무살원강(武煞元罡)이라고 부르죠!”
짝!
“연 동생, 거참 좋은 이름이군! 내 법체에도 지지 않겠어!”
우패천이 손뼉을 치자 폭죽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연비가 지은 이름은 듣기만 해도 가슴에 와닿았다.
“음, 정말 좋은 이름이에요!”
“맞소, 좋은 이름이군!”
계연과 육산군도 이렇게 말하며 동의했다. 그야말로 그들이 토론했던 내용을 모두 포괄하는 이름이었다.
“비록 아주 힘들겠지만, 이것은 수행의 또 다른 길이 될 거예요. 정도(正道)이자, 더 많은 사람이 발전할 수 있는 길로요!”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무도의 돌파점을 무척이나 보길 원했다. 설령 이론적인 기초가 생겼다 해도 이제 이 길은 무인들 스스로가 모색해내야 했다. 계연이라 해도 정확히 이 길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선천 경지에 이른 무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오래 살지만, 일반인과 대단히 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무살원강의 길을 걸어온 무인이 나온다면, 그의 수명도 엄청나게 길어질 것이다. 다만 그 길이 어떨지는 아무도 가보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연비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를 준비해야 했다.
연비 본인뿐만 아니라, 계연과 우패천, 그리고 육산군도 이 길이 보통 사람들이 무공을 수련하듯이 많은 이들이 수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실제로 고수로 거듭나는 무인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더라도 이것은 인간 세상을 좀 더 번성하게 할 한 가지 방법이었다. 무도는 속세에 단단히 뿌린 내린 데다 인간 세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무도의 길과 소매 속에 나타난 또 하나의 바둑돌, 이것은 계연의 예상을 벗어난 수확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