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24화 (624/892)

624화. 활기 넘치는 천수호

연비가 말했다시피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연회는 없었다.

며칠 뒤, 그들은 장원 바깥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우패천과 육산군은 함께 북쪽으로 향했는데, 이들은 정확한 방향보다는 목적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었다.

연비는 계연을 따라 천수호에 함께 들린 뒤 대정국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어차피 자기 혼자 대정국으로 돌아가려면 몇 달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한편, 낙경성 바깥의 작은 장원은 그곳에 남은 부부에게 잘 가꿔달라고 맡겼다. 말로는 맡겼다고 하지만 실은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비는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돌아와봤자 한번 들르는 게 전부일 것이다. 게다가 연비가 이곳에 없다면, 우패천은 설령 이 근방에 들른다고 해도 차라리 기루에 가서 머물 터였다.

* * *

천수호는 조월국 내에서 손꼽히게 커다란 호수였다. 조월국의 수많은 백성이 천수호를 끼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계연이 연비를 데리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무도에 관해 토론했을 때로부터 5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때 계연과 연비는 호숫가 근처의 갈대밭 앞에 서 있었다. 연비의 시야에 천수호는 끝없이 멀리 뻗어 있었다. 계연의 모호한 시야에도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수령(*水靈: 물의 영물)의 기운으로 경계를 판단하는 것이 더욱 정확했다.

연비는 천수호가 얼마나 큰지 보려고 좌우로 두리번거리다가 멀리 어선 한 척이 유유히 떠다니는 걸 보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황야였다.

“저, 계 선생님, 호수로 곧바로 들어가야 하나요? 어선이라도 한 척 찾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계연이 웃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연비를 바라보았다.

“어선을 저어서 강바닥까지 가려고요?”

하지만 이 말을 마치자마자 계연은 예전에 늙은 용이 자신을 그의 생신 잔치에 데려갔던 걸 떠올렸다. 확실히 어선을 타고 강바닥 아래로 저어갔었다. 이에 머쓱해진 계연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가죠, 제가 있는데 뭘 걱정하세요. 숨을 참을 필요 없으니 따라오세요.”

계연은 가볍게 뛰어올라 활공하듯 수면으로 내려갔고, 두 발이 물에 닿자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연비는 기슭에 서서 “예.”하고 대답한 뒤, 이를 한번 꽉 물고는 계연을 따라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는 경공을 이용해 계연이 낙하한 정확한 지점에 내려서더니 습관적으로 두 발로 수면을 밟고 열 걸음 정도를 걷고 말았다. 그러다 연비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더는 경공을 펼치지 않고, 천근이나 되는 무게로 변한 것처럼 제 몸을 물속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계연은 아래에서 연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연비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물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숨을 참고 있는 걸 보고 계연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연비처럼 무공이 정상에 오른 이라 할지라도 심리적인 장벽은 말 한마디에 깨뜨릴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연비의 등 뒤로 가서 가볍게 그의 등을 한번 때렸다.

펑……!

자그마한 거품이 물속에 떠올랐다.

“컥…….”

연비는 생각지 못하게 등이 공격받자 즉시 기침을 했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는데, 그제야 입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육지에서처럼 호흡이 자유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손가락 사이로 물살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가 입은 옷이나 신은 전혀 물에 젖지 않은 상태였다.

“선생님, 이게……?”

입을 열자마자 연비는 자기가 물속에서 말을 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피수술일 뿐이에요. 가죠, 고천명을 만나야 하니까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걸음을 떼자 연비도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물속을 걷는 촉감은 부드러웠으나 걷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수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었다. 물살이 가볍게 몸 주위를 스치고 지나갔고, 손발은 물론이고 얼굴에도 물에 이는 파문과 물의 온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바로 근처로 물고기들이 떼로 지나가기도 했다.

이에 연비는 신기한 마음에 동심을 되찾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뻗어 물고기들을 만져보았다. 심지어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인의 힘으로 지나던 물고기를 한 마리 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물고기가 당황하며 이리저리 움직이자 놔주었다.

천수호는 교룡이 사는 곳이니만큼, 몇 미터 정도 되는 수역을 지나자 더욱 깊어지고 더욱 어두워졌다. 연비는 계연을 따라 걸음을 떼며 내내 신기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계 선생님, 고 선생께서는 정말로 이 호수 속에 사십니까?”

“그가 저를 속이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 누군가 오네요.”

계연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검은 구렁이가 천천히 암흑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연비는 저도 모르게 경계심이 일어 허리춤에 찬 장검에 손을 갖다 댔다.

“이 앞은 천수호의 금지(*禁地: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지역)다. 방문한 자는 이름을 대라.”

그러자 계연은 이 거대한 구렁이에게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고 호주(*湖主: 호수의 주인, 고천명을 이름)께 계연과 연비가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거대한 구렁이는 원래 몇 마디 더 물어보려 했는데, ‘계연’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선생이 바로 계 선생님이십니까?”

거대한 구렁이는 뱀처럼 가볍게 물살을 가르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계연과 연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다른 것은 그리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계연이 머리에 꽂은 묵옥 비녀만은 또렷하게 구렁이에게 보였다.

“정말 계 선생님이셨군요. 어서 저를 따라오시지요. 어르신께서는 일찍이 선생께서 찾아오시면 알릴 필요 없이 곧바로 궁으로 모셔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참, 두 분 선생께서는 굳이 걷지 마시고 제 등 위에 타시지요!”

물통만큼 굵직한 몸통을 지닌 거대한 구렁이가 계연과 연비의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서로 한번 눈짓을 교환한 뒤,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비와 함께 구렁이의 등 뒤에 올라섰다.

“중심을 잘 잡고 서십시오. 물살을 조종하면서 가니 속도가 좀 빠릅니다.”

촤르르……!

주위의 물살이 재빨리 흐르며 거대한 구렁이가 아래쪽을 향해 헤엄쳤다. 계연은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처음에 살짝 연비의 몸은 흔들렸다. 연비는 곧 발을 앞뒤로 벌리고는 단단히 중심을 잡았다.

천수호가 얼마나 깊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어두워지기만 했다. 연비는 이미 눈앞의 1척(약 30cm) 거리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그마저도 혼탁한 강물과 거품이 다였다. 그러다 가끔 길을 잘못 든 물고기들이 연비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그의 몸에 부딪히기도 했다.

거대한 구렁이는 깜깜한 물살을 뚫고 헤엄치다가 암벽에 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몇 초 뒤, 암흑뿐이던 주위에 은은한 빛이 생겨났다.

계연과 연비는 동굴 벽에 난 수초가 빛난다고 생각했으나, 이들이 자세히 보니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빛을 뿜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점차 이들의 시야가 밝아지더니 벽 주위에 명주(*明珠: 빛을 발하는 진주)가 박혀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다시 수십 초가 지나자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지며, 동굴 안의 세계가 이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는데 신기한 모습의 물속 생물들이 주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척 봐도 이들 대부분이 영지를 얻은 상태였다. 뒤이어 저 멀리 정교히 조각된 난간과 옥으로 만든 듯한 수부의 건축물이 보였다. 궁전의 맨 앞에는 빛을 발하는 거대한 편액이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천명궁(天明宮)’이라고 쓰여있었다.

“하하, 고천명의 궁은 참으로 품격이 있네요. 응 선생의 통천강 용궁보다 훨씬 대단하네요.”

그러자 발아래 거대한 구렁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한번 떨었다. 그는 계연의 말에 차마 대답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는 계연이 말한 ‘응 선생’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대역무도’한 발언이라 할 수 있었지만, 계 선생님이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蛇) 통령, 돌아오셨군요? 이 두 분은 누구십니까?”

상반신은 아름다운 낭자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비단잉어처럼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인어가 헤엄쳐 오더니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어서 가서 어르신께 계 선생과 연 선생께서 방문하셨다고 알리시오. 서두르시오!”

“예, 예!”

인어는 물살을 가르며 약간 긴장한 얼굴로 재빨리 떠나갔다. 주위의 물속 생물들은 구렁이의 말을 듣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곧 약간 떨어진 채로 작은 소리로 저들끼리 무언가를 소곤거렸다.

구렁이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궁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계연은 흥미가 일어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천수호 아래에 사는 물의 족속들은 계연이 전에 보던 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곳은 아주 활기 있게 느껴졌으며 그다지 엄숙한 규율이 있는 곳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고천명의 목소리가 궁 안쪽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그의 아내도 좌우로 물요괴들을 이끌고 계연을 향해 재빨리 다가왔다.

“계 선생님께서 찾아와 주셨는데 제가 미리 알지 못해 멀리 나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실례를 범했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오시는 걸 알았다면 저와 상공이 친히 맞이하러 나갔을 텐데요!”

흥미로운 점은, 고천명 부부가 나왔는데도 주위에서 유영하던 물의 족속들은 멀리 비켜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몰려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위를 빙빙 돌며 이쪽을 구경했다.

계연이 보기에 이 물의 족속들은 전혀 고천명과 그의 아내인 하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예 경외심이 없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활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고천명 부부가 계연 바로 앞에 다가와 예를 행할 수 있도록 중앙을 비워두었다.

“고 호주(湖主), 고 부인, 오랜만이에요. 천수호가 이토록 떠들썩한 곳인 줄 알았더라면 진작 올 걸 그랬네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그들에게 인사하자, 연비도 한쪽에서 그들을 향해 정중히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짧게 인사했다.

“고 호주, 고 부인!”

“하하하하, 계 선생님께서 천수호에 와 주시다니 이 남루한 궁이 다 빛이 나는 것 같군요! 그리고 연 대협, 기운이 왕성한 걸 보니 무예에 더욱 조예가 깊어진 게 분명하겠군요. 자, 어서 저를 따라 안으로 드시지요!”

“그럼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천명 부부가 그들을 정중히 안으로 초대하자 주위에 있는 물의 생물들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계연과 연비는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화려하게 빛나는 궁을 바라보았다.

궁 안에 들어오자 연비는 확연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의 물은 훨씬 맑았으며 물살도 가볍게 흘러, 그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호수 바깥의 기슭과 비교해도 앞으로 걸어갈 때 별 힘이 들지 않았다.

“제 궁은 지어진 지 오래되어 그동안 조금씩 계속 손을 보며 관리해온 곳입니다. 비록 제 궁이 아주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물의 족속들이 살기에 조월국 전체에서 천수호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고천명은 그들을 데리고 걸으면서 궁 곳곳을 가리키며 건물의 용도와 속세 어느 곳에서 본떠 온 건축 양식인지를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계연과 연비는 마치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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