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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627화 (627/892)

627화. 같은 뿌리

젊은 도사는 손을 재빨리 놀려 눈 깜짝할 사이에 길바닥에 펼친 물품을 전부 짐에 싸 등에 지었다. 요즘에는 구사 법사로 밥 빌어먹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 두 선생처럼 비범한 풍모에 딱 봐도 돈이 있어 보이는 손님이 석류 골목을 찾다가 행여나 다른 법사에게 뺏기면 그에게는 너무나 큰 손해였다.

“자, 이제 다 됐습니다! 제가 두 분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참, 두 분 선생의 존함을 제가 아직 묻지 않았군요?”

“저는 계 씨이고, 이쪽은 연 대협입니다.”

“아아, 소인은 개여령(盖如令)이라 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자, 어서 저를 따라오시지요!”

도인은 팔던 물건을 등에 지고서 친절한 태도로 그들을 석류 골목 방향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 두 사람이 먼저 값도 묻지 않는 걸 보니, 후에 돈을 낼 때도 호탕하게 내리라고 생각하며 내심 기뻐했다.

“두 분 선생, 바로 저 앞입니다. 대문 앞에 등롱이 걸린 집이요!”

개여령은 길을 이끌면서도 기회만 생겼다 하면 계연과 연비와 말을 섞으려 했다. 이는 손님과 친밀감을 쌓기 위해서였는데, 이렇게 하면 후에 손님의 생각이 바뀌더라도, 미안함을 느껴 선뜻 다른 곳을 찾지 않기 때문이었다.

석류 골목은 골목이라 이름 붙여진 만큼 당연히 길이 넓지는 않았다. 보통 크기의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였다. 하지만 개여령이 사는 저택은 예상외로 그리 작지 않아서, 뜰도 꽤 널찍했다.

“두 분 선생, 바로 이곳입니다!”

개여령이 이렇게 말했을 때 안쪽에서 퉁퉁한 남자가 하나가 나와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사형, 오셨군요? 이 두 분 선생은 사부님께 법사(法事)를 부탁하러 오신 분들입니까?”

“그래, 어서 가서 손님 모실 준비 하거라. 사부님은 계시지? 계 선생, 연 선생, 이쪽은 제 사제인 이박(李博)입니다.”

개여령이 지고 온 등짐을 사제에게 건네며 이렇게 소개했다.

이박은 계연과 연비에게 공손히 인사한 뒤, 건물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부님께선 저 안에 계세요. 사부님, 사부님! 사형이 선생 두 분을 데리고 오셨어요, 법사를 부탁하러 오셨대요!”

“사부님, 저 왔습니다! 손님도 같이 오셨어요! 두 분은 일단 뜰에 앉아 좀 쉬고 계세요. 제가 사부님을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박아, 두 분 선생께 차를 대접해라!”

“예!”

계연과 연비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박이라는 이름의 살집 있는 도인은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기다란 걸상 두 개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차를 준비하러 서둘러 떠났다.

이 도인의 체형만 봐도 계연은 이들의 생활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세태에는 아무 집이나 이런 뚱보를 건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연과 연비는 건물을 좀 살펴보다가 뜰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 대협, 안이 어떻게 되어있나요?”

그 말에 연비는 그제야 계 선생님의 눈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떠올렸다. 하지만 계 선생님과 함께 무엇을 할 때마다 그의 눈이 장애가 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연비도 쉽게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연비는 최대한 자세하게 계연의 물음에 대답했다.

“공간이 꽤 널찍하고 사람 모양의 나무말뚝 두 개와 모래주머니 하나, 그리고 매화장(*梅花樁: 무술 연습용으로 땅에 박은 커다란 말뚝)도 있습니다. 채소잎을 널어 말리는 커다란 체와 건물 몇 채가 보입니다. 안채 앞에는 팔괘(八卦)가 그려진 작은 깃발이 걸려있습니다.”

“음.”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박이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이 잠시 찻물을 식히는 와중에, 모습이 꾀죄죄한 도인이 기지개를 켜며 안채에서 걸어 나왔다.

“아으……. 잘 잤다!”

도인이 목을 벅벅 긁으며 나오자 그 뒤로 개여령이 따라 나왔다. 그러고는 얼른 사부에게 손님들을 소개했다.

“계 선생, 연 선생, 이쪽이 제 사부님이십니다. 쌍화법사(雙花法師)라고도 불리시고, 성함은 추원선(鄒遠仙)이십니다.”

“두 분 안녕하시오!”

그는 하얀 머리카락을 산만하게 뻗친 채 옷도 잘 정돈되지 않은 차림새로 계연과 연비를 향해 예를 표했다. 그러자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찬가지로 인사했다.

“추 도장(道長), 안녕하십니까!”

“하하, 그럼 괜히 예의 차리지 말고 어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 늙은이에게 무엇을 부탁하러 오셨소? 법사를 원하시오, 아니면 귀신이나 요괴, 마귀를 쫓는 일이오?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에 따라 값이 다르지만, 절대 가격을 속이지는 않소!”

계연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뚱뚱한 도인 이박이 안채에서 잘 접힌 검은 천을 들고 나와 사부를 향해 말했다.

“사부님, 오늘 햇빛도 좋고 이왕 일찍 일어나셨으니 이 깃발도 좀 널어두는 게…….”

그 순간 계연의 모습이 원래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이박의 앞에 나타났다. 이에 이박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이쿠, 계 선생님! 깜짝 놀랐잖습니까!”

그러자 이를 본 개여령도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즉시 이렇게 아부했다.

“선생님, 경공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계연은 두 사람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 도장, 들고 있는 게 뭔가요? 펴서 좀 보여주세요!”

“예? 이것 말입니까?”

이박은 자신이 든 것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사부님께서 주무실 때 이불로 쓰시는 겁니다, 저희 도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깃발이지요. 사부님, 저, 사부님?”

이박은 원래 사부의 의견을 물으려 했으나, 추원선이 멍하니 계연을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개여령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렇게 물었다.

“사부님, 왜 그러십니까? 사부님?”

“아, 아니…… 아니다…….”

“무엇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사부님?”

추원선은 입꼬리를 떨더니 얼른 의관을 정제하고 계연을 향해 다시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경공이 아니다! 선생, 아니, 이 추원선이 두 눈을 멀쩡히 달고도 선장(仙長)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계연은 추원선을 힐끗 바라보았으나 다시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의 이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이박이 손에 든 검은 천으로 말이다. 그 검은 천에서 확실히 쉰내가 나는 것을 보니, 추원선이 덮고 자는 용도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제가 한번 펼쳐봐도 될까요?”

계연이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원래 햇빛에 널려던 것이니, 선생…….”

“얼마든지요, 얼마든지 보십시오! 이박, 여령, 어서 선생께 그것을 펼쳐드리거라!”

“괜찮아요, 제가 하죠!”

계연은 숨기려는 생각도 없이 소매를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이박은 자신에게 닿는 알 수 없는 괴력에 의해 손을 펼쳤고, 검은 천은 스스로 공중에 떠오르더니 천천히 펼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바탕에 금실과 은실로 자수가 놓인 깃발의 모습이 드러났다.

“별자리 깃발이군!”

도문에서 별을 숭배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지만, 이 별자리 깃발의 양식은 계연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그는 이것과 운산관의 별자리 그림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이 깃발, 여러분의 도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거라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제 사부님께서는 살아계실 적에 제게 이 깃발은 최소 수천 년은 되었을 거라 하셨습니다!”

추원선은 한 걸음 계연에게로 다가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전에 그는 이것이 죄 헛소리라 생각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제 스승도 그것을 진짜로 믿지는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 오래된 깃발이 무슨 대단한 보물도 아니고, 아무리 견고한들 어떻게 수천 년이나 멀쩡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이런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분 선장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연비는 이 늙은 도사가 자신을 신선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입을 몇 번 달싹였으나, 지금은 때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도 계연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려 했었고, 이제는 이 별자리 깃발까지 발견했으니 더는 미루거나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추 선장, 물을 것이 있습니다. 사악한 별이 흑황에 나타나면, 하늘이 갈라지고, 대지가 무너지며, 십경(*十境: 열 가지 경계, 장소)에 황고(*荒古: 아주 오래된 옛날, 태고)가 일어나며, 일륜(*日輪: 태양의 다른 말. 그 모습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바퀴 닮아 붙여진 이름)이 울부짖으며 천양(*天陽: 하늘의 양기. 즉 태양을 일컬음)이 사라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시나요?”

“그, 그것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말입니다. 장, 장사도 해야 하고 입에 착 달라붙기도 하여 계속 써왔습니다……. 설마 정말로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겁니까?”

추원선은 계연이 자신을 꾸짖는 줄 알고 더듬거리며 대답하다가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이렇게 물었다. 이런 진선(眞仙)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고 호주의 말에 따르면, 당신이 흑황이 어떠한 곳인지 알고 있다던데요.”

계연은 공중에 뜬 별자리 깃발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몸을 돌려 추원선을 바라보았다.

“고 호주요?”

“천수호를 관장하는 교룡이에요. 어쩌다 그 말을 듣게 되고는 제가 천수호에 찾아가자 제게 알려주었어요.”

“교룡이라고요……. 아, 그분이군요! 그 노선생이 천수호의 교룡이셨다니!”

추원선은 크게 깨달은 얼굴로 이렇게 소리치고는 곧 온몸에 닭살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교룡 같은 대단한 요괴와 자신이 대면했었다니.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린 뒤 계연의 물음에 대답했다.

“선생께 아룁니다. 제가 확실히 흑황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그것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말일 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에서 해가 생기고, 달 안에 달이 있고, 해가 울면 달이 소리를 높인다는 말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해에서 해가 생기고, 달 안에 달이 있고, 해가 울면 달이 소리를 높인다…….”

계연은 눈썹을 찡그린 채 천천히 추원선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돌연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았다.

“금오(*金烏: 해의 별칭, 태양 속에 발이 세 개가 달린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서 비롯됨), 은섬(*銀蟾: 달의 별칭, 중국 신화 속에서 달에는 발이 세 개 달린 두꺼비가 산다고 함)……?”

“예? 뭐라고 하셨는지요?”

그 말에 계연이 가만히 고개를 젓고는 왼손을 한쪽으로 휘두르자, 부드러운 힘이 천천히 낡은 별자리 깃발을 훑었다.

펑……!

가벼운 소리와 함께 뜰 안에 희미한 메아리가 울렸다. 별자리 깃발은 한번 격하게 요동치더니 다시 원래의 평평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검은 천 위의 먼지, 땀, 침 등 그 어떤 오염도 사라진 상태였다.

다음 순간, 공중에 뜬 별자리 깃발은 마치 새롭게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검은 바탕에 수 놓인 금실과 은실을 더욱 반짝이더니 기이한 신비감을 내뿜었다.

“비록 별의 모습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게 틀림없어. 추 선장, 몇 대 전, 아니면 도문의 옛 조상 중에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온 일파가 있는지 아시나요?”

추원선은 평소에 손님을 상대할 때는 거짓말도 헛소리도 잔뜩 늘어놨지만, 계연의 앞에서는 차마 그럴 수 없어 아는 대로 착실히 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런 말을 하신 적은 없으시거든요. 그저 도문의 조상들께서 조월국에 와서야 터를 잡았다는 것만 압니다. 그중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신 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긴, 이 별자리 깃발을 제대로 모시고 있지조차 않으니. 곧 해가 지겠네요. 앞뒷문을 모두 잠그고 모두 저를 따라 뜰에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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