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두 깃발이 만나다 (1)
추원선은 멍하니 서 있다가 곧 두 제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박, 여령, 어서 가서 문을 닫아라!”
“예!”
“알겠습니다!”
두 제자는 약간 흥분한 얼굴로 재깍 대답했다. 보아하니 이 계 선생님의 법력은 자신의 사부님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들 도문에서 신선이 된 옛 고인이실지도 몰랐다. 사부님께서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면 신선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제 보니 그게 정말인 모양이었다.
두 도인이 돌아오자 계연이 연비를 향해 눈짓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할 필요 없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소매에서 네 장의 역사 부적을 꺼내 던졌다.
“역사는 모습을 드러내라!”
솨앗, 솨앗, 솨앗, 솨앗-!
그러자 금가루가 섞인 듯한 빛이 번쩍이더니, 금갑을 입고 붉은 얼굴을 한 거대한 체격의 역사 네 명이 뜰 안에 나타났다. 그들은 계연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행하며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주인님!”
“각자 사방을 지키고 서 있거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뇌겁의 세례를 받은 역사를 포함한 네 명의 금갑 역사들은 천천히 뜰의 네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침 뇌겁의 힘을 지닌 그 역사가 정문(正門)을 맡았다.
뒤이어 계연이 검의첩을 펼치자 작은 글자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단번에 뛰쳐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어르신!” 혹은 “어르신을 뵙습니다!”라며 인사했다. 하지만 계연이 이번에 그들을 불러낸 것은 맡길 일이 있어서였다.
“오늘은 놀라고 불러낸 것이 아니다. 운산관에 깔린 성하(*星河: 은하수) 진법에 대해 전에 이야기했었지? 그 모양대로 진법을 만들어 보거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되니, 2할 정도의 모습만 흉내 내면 된다. 일단 저 네 명의 역사들에게서 땅의 힘을 빌려 이곳을 다른 공간과 차단하렴.”
그러자 검의첩에서 나온 작은 글자들이 모두 정중하게 대답했다.
“어르신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맑은, 혹은 앳된 목소리가 섞여 이렇게 대답한 뒤 글자들은 뜰 곳곳으로 날아갔다. 곧이어 먹물처럼 검은빛이 곳곳에 스며들었고, 어떤 것들은 금갑 역사의 몸 위에 달라붙기도 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연비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뜰 안의 풍경이 약간 몽롱해졌다. 왠지 그것이 연비는 실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계연은 스스로가 하늘과 더욱 가까워졌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계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자신의 감각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광경에 놀란 다른 이들도 계연의 시선을 좇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자,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구름이 떠 있었다. 이 구름은 마치 안개처럼 보였는데, 이는 구름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여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선장(仙長),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냥 역사를 고증한다고 생각하세요. 술시(*戌時: 오후 7시~9시) 삼각(*三刻: 45분) 정시에 해가 질 테니, 아직 반 시진(時辰)이 남았네요. 모두 앉죠.”
말을 마친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공중에 뜬 별자리 깃발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방석이 나타났다. 그러자 모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계연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계연이 먼저 가장 오른쪽의 방석에 앉자, 연비는 세 명의 도사들을 흘끗 쳐다본 후에 얼른 그를 따라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는 계연의 왼쪽이었다. 그러자 추원선과 그의 제자들도 연비의 왼쪽에 차례로 앉았다.
계연은 더 이상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두 눈을 감은 채로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별자리 깃발의 힘을 빌려 저 멀리 운산관 쪽의 기운을 읽어보려 했으나 명확한 감응이 없었다.
이 별자리 깃발은 운산관 깃발의 예전 상태와 마찬가지로, 척 보기에는 그저 천으로 만들어진 보통의 깃발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연은 이제 이 깃발이 결코 일반적인 깃발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무래도 해가 져야 할 것 같네…….”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린 뒤 추원선을 불렀다.
“추 도장.”
“예, 예, 소인 여기 있습니다!”
“도장의 말을 들으니, 도문에서는 별다른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고요. 그러니 이 별자리 깃발에 대고 아침저녁으로 수행을 했을 리도 없겠지요. 그래도 어쨌든 이건 도문의 물건이니, 세 분 도장께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입정(入靜)에 드는 게 좋겠어요. 이 별자리 깃발과 하늘에 뜬 별을 느껴보세요.”
입정? 이렇게 흥분되는 상황에 어떻게 입정에 들겠는가? 하지만 그는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여령, 이박, 어서 입정에 들어라!”
곧이어 세 명의 도사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자 연비가 그들을 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눈만 감고 있을 뿐, 호흡의 상태나 쉬지 않고 움직이는 눈꺼풀을 볼 때 제대로 입정에 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무인들이 내공을 수련할 때도 실은 입정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는 이 점을 잘 알았다.
하지만 연비는 굳이 그들을 다그쳐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계 선생님께서 술법을 부리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무척 드물었으므로, 그는 곧 눈을 감고 제일 먼저 입정에 들었다.
그러자 연비는 자신의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 것을 느꼈다. 주위는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고요했고, 마치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봉우리에 자신 홀로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계연은 추원선 사제들이 어설프게 입정의 흉내만 내는 상황을 보고만 있지 않고, 그들을 향해 차례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세 사람의 호흡이 순식간에 길고 느려지더니, 이들은 계연의 도움을 받아 차례로 입정에 들었다.
그러자 작은 뜰 전체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계연은 서둘러 법력을 쓰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밤의 장막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반 시진은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계연이 머릿속으로 자그마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마쳤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햇빛이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점점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연의 시선은 공중에 뜬 별자리 깃발로 향했다. 깃발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그 위에 수놓인 별들 위로 언뜻 은은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는 거의 알아채기도 힘들 정도로 미약한 성력(星力)이었다. 설령 계연이라고 해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추원선이 이걸 덮고 잠을 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의 사부 대, 혹은 그 이전 대부터 이것을 이불처럼 써왔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면 느리긴 하지만 법력의 증진에 도움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만약 이것을 그들 도문의 조상이 알게 된다면, 열이 뻗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몰랐다.
해가 졌으므로 계연도 그제야 눈을 감고 술법을 펼쳐, 자신의 의식 세계를 천천히 바깥으로 펼쳤다. 그러자 뜰 안에 설치한 진법이 그 안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그 순간, 계연은 물론이고 이미 입정에 든 연비 등은 제 몸이 별자리 깃발을 따라서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들이 앉은 방석이 천천히 높은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이 하늘 위를 나는 듯한 기분과 동시에 주위로 눈발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눈송이는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입자였으나 점점 크기를 키우더니, 마지막에는 거위 털처럼 큰 함박눈이 되었다.
그들은 눈을 감은 암흑 속에서 눈이 내리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뒤이어 온통 암흑이던 주위가 점차 밝아지더니, 하늘에서 하나둘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느끼는 이런 감각은 어떻게 보면 꽤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계연이 만든 진법에 의해, 이 작은 뜰은 현재 쌍화성과 유리되어 공중에 떠 있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그들이 눈을 떠 주위를 살펴보면, 뜰 바깥의 모든 것이 짙은 안개에 의해 덮인 듯 몽롱해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황색으로 빛나는 네 명의 금갑 역사들에게서는 희미하지만 무거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글자들로 이루어진 진법이 환하게 빛나며, 모호한 은하수의 형태가 작은 뜰을 가로질러 하늘로 솟구쳤다.
네 명의 금갑 역사와 글자들로 이루어진 진법, 그에 더해 계연이 유몽술과 천지화생을 동시에 펼치자, 이들이 앉은 작은 뜰은 쌍화성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쌍화성에 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 모든 감각을 선명히 느낄 수 있는 자는 이 자리에서 오직 계연뿐이었다.
이 시각 성안의 귀신들을 포함한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은 모두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오늘 밤 별이 유달리 밝다고만 느꼈을 뿐이다.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입정에 들었던 것 같아도 바깥의 시간은 아주 짧은 찰나일 때도 있고, 반대로 아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것 같아도 실제로는 시간이 한참 흘러가 있을 때가 있다. 연비를 비롯한 입정에 든 이들은 이 기이한 감각을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때, 추원선의 마음속에 펼쳐진 풍경에서는 빛나는 별자리 깃발의 모습이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정이 되자 계연이 눈을 떴다. 그는 다른 이들을 곧바로 지나쳐, 별자리가 수놓인 깃발과 추원선 모두가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본 계연은 내심 안도했다. 이 세 사람 중 그나마 하나라도 별자리 깃발과 어느 정도 연결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가 이 깃발을 정중히 받들어 모셨든, 덮고 잤든 간에 말이다.
‘때가 되었군.’
계연의 마음이 변하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성력의 힘이 더욱 거세졌다. 뜰 안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는 마치 폭우 속에 세차게 흐르는 강줄기처럼, 순식간에 너비가 넓어지며 흐름이 거세졌다. 은하수 위의 별자리 깃발도 더욱 밝게 빛났다.
“추 도장, 저를 따라 읊으세요. 북천(北天)에 뜬 별이 멀리 남천(南天)을 부르니, 은하수를 매개로 두 깃발이 만나노라.”
추원선은 이때 꿈을 꾸는 듯 깨어있는 듯 몽롱한 상태였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는 동시에 별이 가득한 하늘에 뜬 별자리 깃발을 볼 수 있었다. 그 자신은 파도가 솟구치는 은하수 위에 앉아있었는데, 그 흐름에 따라 제 몸도 좌우로 가볍게 흔들렸다. 이때 하늘 어딘가에서 계연의 목소리가 무궁한 울림과 함께 전해져왔다.
“북천(北天)에 뜬 별이 멀리 남천(南天)을 부르니, 은하수를 매개로 두 깃발이 만나노라.”
추원선이 계연의 말을 따라 읊자, 추원선의 목소리가 은하수 주위로 울려 퍼지더니 그 흐름을 타고 멀리 전해졌다.
추원선의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계연이 법력을 펼치자, 은하수의 빛이 순식간에 폭발하듯이 밝게 빛났다. 이 은하수는 작은 글자들이 통제하는 중이었으므로, 계연은 그저 멀리 남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