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화. 두 깃발이 만나다 (2)
한편, 대정국 병주의 운산에 깔린 은하수 진법이 돌연 밝게 빛났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별의 힘이 쉼 없이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은하수가 운산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운산관 옛 뜰의 대전 안에서는 별자리 깃발이 그와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별의 힘을 받은 별자리 그림에서 빛이 솟구치더니, 대전의 지붕을 뚫고 상공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관주(觀主)인 청송 도인을 포함해 도문의 제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청송 도인은 침상에서 일어나 벌떡 앉더니, 순식간에 겉옷을 걸치고 새로 지은 도관의 뜰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냐? 별자리 그림이냐?”
“사부님!”
“사부님! 저게 대체 뭐죠?”
“끽끽끽!”
“도장(道長)!”
손아아를 비롯한 운산관 제자들은 각기 휴식을 취하거나 수행을 닦다가, 뜰로 나와 운산관 옛 도관 쪽을 바라보았다.
“잘 모르겠구나, 내려가서 보자!”
그들이 채 걸음을 떼기도 전에, 산을 따라 흐르는 은하수의 ‘강물이 불어나더니’, 은하수 저 끝에서 한 줄기 별빛이 높은 하늘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천(北天)에 뜬 별이 멀리 남천(南天)을 부르니, 은하수를 매개로 두 깃발이 만나노라.”
그러자 은하수의 흐름을 따라, 두 개의 별자리 깃발에서 각기 뿜어져 나오는 가느다랗고 굵은 별빛의 기둥 두 개가 서로 충돌했다. 뒤이어 멀리 있던 별자리 깃발이 천천히 이쪽으로 당겨졌다.
“앉아라! 모두 앉아서 입정에 들도록!”
청송 도인이 이렇게 명을 내리자, 운산관 제자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땅바닥에 앉아 수행의 입정 상태에 들었다.
* * *
이때 다른 이들은 모두 꿈을 꾸는 듯한 상태였으나, 계연만은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두 장의 별자리 깃발 사이에 앉아있다가, 아득한 거리를 사이에 둔 두 깃발이 점차 가까워지다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콰앙……!
은하수 전체가 거세게 진동하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추원선과 그의 제자들, 멀리 운산관의 청송 도인과 그의 제자들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한 배 위에 올라타 있는 듯했다.
두 개의 별자리 깃발이 하나로 합쳐진 순간, 그 위에 수 놓인 별이 더욱 찬란해지며 모습이 완전해졌다. 갖가지 색깔이 그 위에서 반짝였으나 동시에 무척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끼기기긱……!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자 계연은 온몸에 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깃발을 향해 걸어가더니 소매를 세차게 휘둘러 그것을 ‘베어’ 버렸다.
솨앗-!
두 깃발이 합쳐진 곳에서 한 줄기 빛이 폭발하더니, 은하수가 거세게 흔들리며 순식간에 산산이 깨어졌다. 하늘에 뜬 별의 모습도 전부 사라졌다.
콰르릉대는 소리와 함께 운산 전체가 살짝 진동했다.
쿠구구궁……!
그러자 쌍화성도 미약하게 흔들렸는데, 뜰 안에 서 있는 네 명의 금갑 역사는 이때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들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계연을 제외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든 이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다 땅바닥에 쓰러졌다. 계연은 잠시 별자리 깃발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착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별빛조차 희미하게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쌍화성의 진동은 자연히 이곳의 귀신들을 놀라게 했다. 이에 성황당과 토지신당의 신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각자의 방식으로 쌍화성의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 바깥도 살펴봤지만 결국은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성황당 지붕에서는 쌍화성의 성황신이 몇몇 기관장들과 함께 성안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조금 전 있었던 진동은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였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쌍화성의 토지신이 이미 지진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알려왔으니 그럴 가능성도 없었다.
진동이 발생한 후에는 내내 별다른 동정이 없었고, 성 안팎을 살펴도 아무런 이상을 감지할 수가 없었으므로 쌍화성의 귀신들은 희미한 불안감을 누르며 계속 경계를 높이기로 했다.
* * *
한편, 석류 골목에서는 추원선을 비롯한 이들이 땅바닥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모두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뒤, 한쪽에서 가만히 별자리 깃발을 쳐다보고 있는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제가 꿈을 꾼 것은 아니지요?”
계연은 추원선을 흘끗 살핀 뒤 다시 연비를 비롯한 이들에게 시선을 던졌지만, 그들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깨어있기도 하고 깨어있지 않은 듯도 하니, 그저 꿈이라고 치세요.”
계연은 이렇게 대답한 뒤 다시 화제를 돌렸다.
“추 도장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별자리 깃발은 원래 양면으로 만들어졌어요. 그중 하나는 이곳에 있고, 다른 하나는 멀리 남쪽, 국경선 바깥에 있어요.”
“대정국 말씀입니까?”
추원선이 이렇게 묻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이 깃발은 쌍화성에 두기 적합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이곳을 떠날 계획이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럴 생각이 있다면 제가 대정국으로 모셔드릴게요. 그걸 원하지 않으신다면, 이 깃발만은 제가 가지고 가도록 해주세요.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니, 그에 걸맞은 보상은 반드시 할게요.”
추원선이 몸담은 도문(道門)의 조상들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조월국에 와 터를 잡았다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들 모두가 여기에 자리 잡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중 일부가 계속 남하했고, 그 일파가 운산관 도사들이었던 것이다.
방금 있었던 일로 인해 계연은 한 가지 일에 대해 명확히 깨달았다. 그가 처음 청송 도인을 만난 것이 어쩌면 전혀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당연히 계연이 청송 도인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선의 점괘 실력은 계연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으니, 아마 그때 당시 제선은 자신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희미하게 느꼈을 것이다.
추원선은 계연의 말을 듣더니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즉시 대답했다.
“선장, 저희는 대정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여령, 이박, 무슨 다른 의견이 있느냐?”
여기 이 계 선생님은 진짜 신선이 분명했고, 어쩌면 자기 도문의 조상과 깊은 연관이 있는 신선일 수도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 무슨 선택을 내려야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게…….”
“없, 없습니다.”
추원선을 제외하고 그의 두 제자와 연비는 조금 전 일어났던 일이 그다지 사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들은 주위에 빛이 가득하다는 것만 느꼈을 뿐, 은하수는 물론이고 두 깃발이 서로 합쳐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땅에 쓰러졌을 때도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부의 말을 따르는 것은 이미 그들에게는 습관이 된 일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도 이의가 없었다.
계연은 그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별자리 깃발은 절대로 이렇게 바깥에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전에도 그는 운산관의 별자리 그림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낮잡아 본 모양이었다.
방금 두 깃발이 은하수 속에서 합쳐진 순간, 추원선과 운산관 쪽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계연은 얼핏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었다. 두 깃발이 합쳐지자 그 위로 더욱 밝게 빛을 발하는 별 자수뿐만 아니라, 갖가지 빛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주 잠깐 스쳐 가듯 본 것이었는데도 이는 계연을 놀라게 하기 충분할 정도였다.
‘사악한 별이 흑황에 나타나면, 하늘이 갈라지고…….’라는 구절이 글자 그대로의 뜻일 수도 있었다.
“수십 년간 이것저것 궁리해왔는데도 내가 생각한 판이 이토록 작았을 줄이야…….”
“선생님, 뭐라 하셨습니까?”
내내 계연에게 주의를 기울이다, 청력이 뛰어난 연비가 계연이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은 그저 씩 웃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이야기해주는 게 좋을 것 같지도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사제 세 사람은 여러 번 망설이다가 결국 석류 골목의 저택을 팔았고, 연비가 황금 5냥으로 곧바로 이것을 사들였다. 계연은 곧장 이 네 사람을 데리고 함께 대정국으로 향했다.
추원선과 제선의 도문 조상들이 왜 갈라졌는지는 몰라도, 지금에서야 서로를 만나게 된 추원선과 제선은 무척 기뻐했다. 추원선과 그의 제자들은 쌍화성에서는 손꼽히는 구사 법사였지만, 운산관 도문과 비교하면 그 실력이 그야말로 천양지차였으므로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운산관으로 입적했다.
하지만 추원선과 그의 제자들은 그간 쌓아온 수행이 그다지 순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록 도포를 입고 있긴 했지만, 도문에서 보편적으로 배우는 각종 수행법을 한 번도 익혀본 적이 없었고, 심성도 계연과 청송 도인의 눈에는 무척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들은 명성과 재물, 여색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다. 이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욕망이었으나, 세 사람은 나이도 적지 않고 제대로 수행을 닦지도 않은 터라 이미 그것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상태였다. 이박은 그나마 조금 괜찮았지만, 추원선과 개여령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절대 운산관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청송 도인과 계연은 추원선과 그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제대로 도를 닦을 기회와 3년 후에는 계연이 쓴 책을 직접 볼 기회도 주기로 하며 그들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는 아마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 것이다.
* * *
입동(*立冬: 24절기 중 하나로 양력 11월 7, 8일 경)이 되자, 계연과 연비는 마침내 대정국으로 돌아와 의주 서녕부로 향했다. 명성이 자자한 연씨 가문은 서녕부 부성이 아니라, 부성에서 가까운 귀래현(歸來縣) 현성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과 맞닿아 지어져 있었다. 연씨 집안의 건물 대부분은 산자락에 몰려 있어, 집 근처에 난 길을 따라가면 곧바로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계연과 함께 현성 안으로 들어오자, 연비는 온갖 추억이 휘몰아쳐 아득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보니, 이곳의 풍경은 그의 기억에 남은 모습 그대로였다. 오직 그만이 나이가 들어 귀밑머리가 희끗해졌을 뿐이었다.
“귀래현(*歸來: 현의 이름인 ‘귀래’는 돌아온다는 뜻이다)이라. 제비(*燕: 연비의 성씨 ‘연’에는 제비라는 뜻이 있음)가 돌아왔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계연은 이곳 현성의 이름이 아주 흥미롭다고 느꼈다. 동시에 성안을 오가는 무인들의 수가 적지 않은 것을 발견했는데, 대신 무기를 지닌 자는 몇 없었다.
“연 대협, 연씨 집안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요?”
그러자 연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거리를 오가는 무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큰형님이 서신에는 자세히 적지 않아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집에 돌아오면 알게 될 거라고만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왕 이곳까지 오셨으니, 저와 함께 돌아가시지요. 제가 주인 된 도리로 선생님을 접대하게 해주십시오!”
그 말에 계연이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연 대협은 얼른 돌아가 보세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니 할 말도, 할 일도 많겠지요. 저는 방해하지 않고 구경이나 하다가,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기면 알아서 대협을 찾아갈게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연비도 더는 강요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만약 무슨 분부가 있으시거든 언제든 찾아와달라고 재차 말한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연비가 떠나자 계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얼굴로 간단한 점괘를 쳤다. 그러자 계연의 표정이 약간 괴이쩍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