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34화 (634/892)

634화. 무량산, 양계산

“중 도우는 그로 인해 무량산을 떠나지 못하는 건가요?”

숭륜은 허리 굽혀 계연에게 살짝 예를 올렸다.

“선생님, 사부님에 관한 일은 일단 무량산에 도착한 뒤 다시 얘기하시지요. 하지만 원하신다면 시구에 대해서는 말씀해 드릴 수 있습니다.”

계연은 사실 질문을 던질 때부터 정확한 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계연도 더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숭륜이 화제를 바꾸자 얼른 대답했다.

“네, 자세히 듣고 싶네요.”

“예, 시구는 비록 시요이긴 하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다른 일을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계 선생님께서는 혹 ‘무(巫)’에 대해 아십니까? 사도(邪道)를 닦는 수행자들이 배우는 무술(*巫術: 무당의 방술)이 아니라…….”

“무족(巫族)이요? 시구가 무족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예, 과연 알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시구는 사실 무족이라고 볼 수는 없고, 심지어는 무족을 본 적도 없는 그저 가련한 놈일 뿐입니다. 그는 어쩌다 무족에 대해 듣고는, 법보처럼 대단한 어느 물건과 본인의 수행을 합쳐 무족의 것처럼 강력한 육신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시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상태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숭륜의 어조에는 명백히 비꼬는 뜻이 담겨 있었으나, 얼마간 복잡한 감정도 느껴졌다.

“시구는 제가 자신의 상황을 모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어떤 상태로 변해버렸는지 모두 다 알고 있지요. 그래도 그놈이 감히 계 선생님을 찾아갈 정도로 담이 클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한 숭륜은 조금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정중하게 계연을 향해 대례(大禮)를 올리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기척을 숨기는 재주가 정말로 뛰어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 선생님께서 그놈이 쓸데가 있다고 여기고 목숨을 살려주신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어찌 되었든, 그놈의 명을 곧바로 끊지 않아 주신 데 대해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숭륜은 이렇게 말하며 계연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연의 뒤에 떠 있는 모호한 검의 형태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넝쿨 선검일 것이다. 게다가 사실 그는 계연에게 곤선승이라 불리는 대단한 법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숭 도우와 시구 사이에 무슨 깊은 연이 있는가 보군요?”

“말하자면 깁니다만, 아직 갈 길이 머니 만약 선생께서 제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지만 않으신다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말씀해 주세요!”

사실 계연은 그에게 궁금한 점이 한가득 있었지만, 숭륜은 지금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보였으므로 그저 다른 이야기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 * *

숭륜은 강풍을 뚫고 법력을 아끼지 않으며 열흘 밤을 꼬박 날았다. 이때 그들의 발아래는 온통 망망대해였는데, 시선이 닿는 곳에는 산은 물론이고 자그마한 섬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숭륜이 길을 이끄는 대로 기다렸다.

“계 선생님, 무량산은 저 아래에 있습니다.”

숭륜은 이렇게 말하며 구름을 아래를 향해 몰았고,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그는 해수면과 부딪치기 직전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에 계연은 무량산이 해저에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구름에 올라탄 채로 파도와 곧장 부딪쳤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 방울의 물도 주위로 튀지 않았다. 이는 마치 두 사람은 물론이고 발로 디딘 구름까지 함께 물속에 녹아내린 듯했다.

주위로는 세찬 물살이 흘러, 계연은 강풍을 뚫고 상공을 날 때와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바람이 물로 바뀐 것일 뿐, 풍경은 여전히 휙휙 지나갔다. 두 사람은 빠르게 해저를 날다가 곧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해구(海溝) 안으로 들어갔다. 그 새까만 어둠 속을 한참 날다 보니 점차 눈앞에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천천히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주위의 빛이 점차 밝아졌다. 이런 변화를 겪는 동안, 계연은 의식과 육신이 분리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신은 계속해서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지만, 의식은 계속 위로 날아오르는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계연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 접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솨아아아……!

그때 물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폭포처럼 대량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다 두 사람은 마침내 빛 속으로 들어왔는데, 계연이 얼른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 근처든 먼 곳이든 빗방울이 발아래에서 솟구쳐 올라 구름 위로 재빨리 올라가고 있었다.

‘이상하군!’

계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상공’에 커다란 산이 우뚝 솟아있었다. 즉, 계연의 눈에 지금 산봉우리의 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산은 계속 이어져 대지가 뻗어있었다.

이때 숭륜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그와 계연이 탄 구름이 반원을 그리며 돌았다.

솨아아아……!

그러자 이제는 빗방울이 계연의 머리와 어깨 위로 후두둑 떨어져 마침내 구름 아래로 떨어졌다. 이 각도야말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여전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계 선생님, 이곳이 바로 무량산입니다. 아니면, 양계산(兩界山)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이제 내려가시죠, 사부님께서 오래 기다리셨을 겁니다!”

숭륜이 짤막하게 소개한 뒤, 구름을 천천히 아래쪽 산으로 몰았다. 그러는 동안 계연은 어지러운 느낌이 조금 가셨고, 몸에도 다시 중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몽롱한 빗속에서 계연의 시선은 사방을 훑었다. 비록 그의 시력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이 산이 굽이굽이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높은 산봉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무량산은 그 이름처럼 면적 자체가 거대한 산이었다. 산세는 그리 뾰족하거나 험준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완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십여 개의 언덕이 시선이 닿는 곳까지 이어져 있어 이를 보는 계연은 기이한 왜곡감이 들었다. 마치 절대로 닿지 못할 듯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듯했다.

‘무량산? 양계산?’

구름이 점차 고도를 낮춰 아래로 내려가자, 계연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혹은 고도를 조금 낮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이상한 것을 느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리누르는 느낌, 즉 중력이 점점 더 강해진 탓이었다. 그들은 높은 하늘에 떠 있고 무량산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중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구름이 1척(약 30cm) 낮아질 때마다 계연을 내리누르는 힘이 곱절 늘어났다.

‘설마…… 계속 이렇게 가다간, 무량산에 닿으면 고기 반죽이 되어있겠는데?’

계연은 현재의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한번 이런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그는 자신이 그 정도의 압력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정 못 견디겠으면 곤선승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는 숭 도우가 과연 자신도 겁이 나는 그 정도의 압력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계 선생님, 이 구간에서는 압력이 더 강해지지만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그래도 제가 전력을 다해 구름을 몰겠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숭륜은 말을 마치고 두 손으로 결인을 맺어 법력을 펼쳤다. 그러자 법광이 드러나며 그의 등 뒤로 빛을 뿜는 광륜(*光輪: 둥근 빛무리)이 떴다. 계연은 구름이 하강할수록 중력이 말도 안 되게 커지는 것을 느꼈다. 법력을 펼치지 않는 상황에서 계연은 자신의 뼈 하나하나, 근육 하나하나가 힘껏 눌린 용수철처럼 느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해 정신이 아득해지려 하자 계연은 결국 법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그런데도 중력은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계연의 눈에 숭륜이 끊임없이 결인을 맺으며 법력을 아낌없이 쏟고 있는 게 보였다. 그의 주위로 비치는 빛은 뜨거운 여름날 도로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모호해 보였다.

얼마 후, 중력이 마침내 더는 무거워지지 않았고 고도가 내려감에 따라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계연은 내심 안도하며 숭륜을 보자 그도 확실히 한숨 돌린 듯한 기색이었다. 이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력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백 장(약 300m) 정도 떨어진 높이에 이르자 숭륜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선생님께 추태를 보였군요. 무량산은 찾기도 어렵지만 들어오긴 더 어렵습니다. 기백이 강하고 체중이 무거울수록 더욱 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선도의 일정 경지에 이르면 이런 영향을 얼마간 상쇄할 수 있지만, 저도 자주 오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어쨌든 도통(道統)은 이어져야 하니, 바깥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치고 있거든요.”

숭륜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 계연은 멀리 한 산등성이 위에 넓은 소매의 장포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이쪽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것을 발견했다. 딱 봐도 그가 중평휴인 것이 분명했으므로, 계연도 구름 위에 서서 멀리 그를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숭륜도 중평휴를 향해 장읍례를 올렸다. 계연과 중평휴가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천천히 예를 거두자, 숭륜은 조금 더 자세를 유지하다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계 선생님, 저분이 제 사부이신 중평휴 되십니다. 이 척박하고 황량한 무량산에 오래도록 홀로 머물고 계시지요.”

숭륜은 낮은 소리로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자 산 쪽에서도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 선생의 위명을 오래도록 흠모해 왔습니다. 중평휴가 무량산에서 선생을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중 도우,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숭륜이 구름을 지면 가까이 내리자, 계연과 중평휴는 마침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중평휴는 몸에 잘 맞는 회색 심의(*深衣: 상의(衣)와 하의(裳)를 따로 재단해 만든 뒤 그 둘을 재봉해 붙인 것으로 주로 유학자들이 입었음)를 입었는데, 온통 새하얀 머리를 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안색은 불그스름하고 나이 든 티도 나지 않아, 중년 혹은 청년의 나이로 보였다. 제자인 숭륜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반면 중평휴가 보기에 계연은 넓은 소매를 지닌 푸른 장삼을 입고서 머리를 반만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머리를 올릴 때 쓴 묵옥 비녀를 제외하고는 몸에 그 어떤 장신구도 없었다. 한 쌍의 회백색 눈은 깊이 가라앉아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았으나, 마치 세상사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듯했다.

두 사람의 키와 체격은 거의 비슷했다. 그들이 서로 짧은 관찰을 끝내자 중평휴가 손짓하며 계연을 이끌었다.

“무량산에는 누각이나 정자가 없는 데다, 오늘은 비도 오기까지 하니, 계 선생님을 제가 머무는 산 안의 거처로 모시겠습니다.”

“손님은 주인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법이지요. 저는 어디나 괜찮습니다.”

중평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신이 머무는 곳을 손짓한 뒤 몽롱한 빗속을 뚫고 그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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