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36화 (636/892)

636화.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계산은 무척 특수한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여기가 정말로 바깥세상과 완벽히 단절되거나 모든 영향을 끊어낸 것은 아니었다. 이에 그들은 감히 아무런 말이나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계연과 중평휴는 겁수(劫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계연은 물론이고 중평휴도 진정한 진선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심오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계연은 그간의 견문과 여기에 와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고는, 다른 세계와 유리된 이곳 양계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 내력을 알 수 없는 산이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중압감을 견뎌왔는지 계연은 알 수 없었다. 중평휴와 그전에 머물던 고인이 가장 많이 한 일은, 법력을 펼쳐서 이 산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곳의 산세를 유지해오다 보니, 이곳은 어느새 금과 철만큼 단단한 산이 되었다.

양계산은 특수한 동천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먼 곳의 산세는 아득하게 뒤틀려져 있었다. 양계산이 지닌 단단함과는 정반대로, 마치 이 산의 존재는 이 공간에서 배척받고 있는 듯했다.

계연과 중평휴가 듣고 본 것을 종합해보면, 양계산은 잠시 지금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이었다. 중평휴는 자신이 이곳에서 천여 년 동안 머물며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산을 어떻게 있어야 할 위치에 나타나게 할 수 있을지, 또 언제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혹 인위적인 조정이 필요할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비록 수가 많지는 않지만, 미래에 닥칠 겁수와 운주 남부에 발생할 관건이 되는 사건에 대해 아는 이들은 조금 더 있었다. 고선을 찾아야 하는 걸 아는 중평휴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비록 전승은 거의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별자리 깃발을 물려받은 두 일파의 도사들도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마치 청송도인과 계연의 만남처럼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이다.

계연은 중평휴와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실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중평휴와 숭륜은 대겁(大劫)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 계연은 그저 자신이 아는 겁수에 관해서 너무 드러내놓고 말하지만 않았을 따름이었다.

“선생의 뜻은, 천하의 모두가 함께 이 대국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감정이 있는 모든 중생이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중생의 마음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모든 중생이 마음을 합치는 것이 어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하 곳곳의 도려내야 할 고질병부터 일찍 처리하는 게 좋겠지요. 그 외에 제가 요즘 신경을 쓰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깃털 하나를 꺼냈다. 바로 그가 예전에 나루터에서 샀던 특이한 요괴의 깃털이었다. 그가 깃털을 꺼내 들자마자 중평휴가 동작을 멈추고는 괴이한 것을 보는 눈빛으로 깃털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요기(妖氣)군요! 보통의 요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보통 요괴와는 다르지요. 혹 중 도우께서는 이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계연은 이렇게 물으며 깃털을 중평휴에게 건넸다. 중평휴는 그것을 정중히 받아들더니 손에 들고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숭륜도 눈썹을 찡그린 채 깃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는 원래 깃털에 요기의 흔적이 남은 것만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사부의 말에 즉시 법안을 열어보고는 자신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요기를 뿜어내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중평휴는 깃털을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계연에게 물었다.

“상고시대의 요괴 아닙니까?”

중평휴는 이곳에서 물려받은 가르침 중에서 이와 비슷한 존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건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요괴였다. 이에 그는 계연의 말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곧장 추측해낼 수 있었다.

“계 선생님, 예전에 제가 경현해각에 막역한 지기가 있어 전에 그곳에 도움을 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로는, 예전에 그곳 유리 바다 아래에 상고시대 요괴의 피가 흘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의 살기가 너무 무겁고 요기도 강해, 경현해각의 조사(* 師: 어떤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들이 하마터면 그 영향에 의해 마도(魔道)에 들뻔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깃털의 주인도 그와 비슷한 존재일 듯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고시대의 괴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중 어떤 것은 신수일 것이고, 어떤 것은 흉수일 테고요. 그리고 그중 많은 존재가 최소한 진룡이나 봉황 정도의 존재일 것이고, 당연히 신통력도 대단하겠지요. 그중 대단한 존재들은 정말 마주치기도 두려울 정도죠. 저는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길 바랐으나, 이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군요. 이렇게 흔적이 있으니까요.”

중평휴는 깃털을 계연에게 돌려주면서, 우려 섞인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는 그 상고시대의 괴수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 점은 계연도 깊이 동의하는 바였다. 계연은 세상의 많은 일이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과 그보다는 복잡한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평휴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심상치 않은 깃털을 겁수와 연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이 점이 계연이 은근히 그에게 전달하고 싶던 바였다.

계연이 양면으로 된 별자리 깃발이 전해져 내려온 일에 대해 알리자, 중평휴는 물론이고 숭륜도 그의 예상대로 큰 관심을 기울였다. 두 사람도 누군가 겁수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쪽이 그런 지경에 처했을 줄은 몰랐다.

숭륜은 운산관 도사들과 쌍화성 도사들의 일에 대해 들은 뒤에도, 자신의 사부와 계 선생님이 바둑만 둘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일이 우연이었을까요, 필연이었을까요?”

“우연이어도 좋고, 필연이어도 상관없겠지. 별자리 깃발이 두 개 다 온전하게 계 선생과 만나게 되었다니, 결국 그 사명을 어기지 않은 셈이구나.”

중평휴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동굴 밖에 펼쳐진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계연도 그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맞아요. 깃발도 보존되어 있고, 양계산도 있으니 무척 다행인 일이죠. 비록 깃발은 양계산처럼 중 도우 같은 고인의 보호 아래 있진 않았지만, 아직 그 영성(靈性)을 회복하기에 늦은 건 아니니까요.”

“부디 그러기만을 바라야지요!”

중평휴는 탄식을 담아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계연이라는 이 고선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으나, 양계산은 자신만 해도 이렇게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있는 데다 그 이전에 얼마나 많은 선배가 양계산에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별자리 깃발은 이렇게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것을 되살려내려면 갈 길이 아주 멀 것이다.

“깃발에 대한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또, 만약 제가 깨어나서 수십 년, 수백 년이 되도록 별자리 깃발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 힘을 알지도 못하며, 심지어 양계산이 일찍이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살아서 곧 다가올 겁수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어요?”

계연은 웃으며 자신이 아는 일을 너무 많이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었다.

“인간 세상(人道), 선도(仙道), 요도(妖道), 신도(神道), 정괴…… 심지어 마도까지, 모든 일에는 일면만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강자가 언제까지나 강하리란 법도, 약자가 언제까지나 약하리란 법도 없어요. 또한 아무리 마음에 확신과 계획이 있어도 홀로 하늘의 겁에 대항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중생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만이 상책이죠.”

“부디 저희의 생각대로 중생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평휴가 바둑돌을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는 조금도 이를 농담으로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일단 그 스스로가 진선이고, 이제는 계연을 찾아내기까지 했으므로 그는 자신의 말에 믿는 구석이 있었다.

계연도 뒤이어 바둑돌을 놓으면서 여유 있게 대답했다.

“가진 바둑돌만큼 놓는 것이지요. 자, 어서 두세요.”

계연이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중평휴가 활짝 웃으며 대국을 이어갔다.

“사실, 계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저는 고선이 깨어나는 일에 내내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계 선생님을 만나보니…….”

중평휴가 말을 멈추자 계연이 그 틈을 타 농담을 던졌다.

“팔이나 머리가 하나 더 달린 것도 아니었고, 수행도 생각보다 얕아 크게 실망하셨겠군요?”

“하하하……. 그저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어서 두시지요! 이러다 곧 제가 이기겠습니다.”

계연이 다시 바둑판 위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에 이미 크게 뒤처져 있었다. 사실 그와 중평휴의 실력은 작지 않은 차이가 났다.

* * *

이틀 후, 그들이 내렸던 완만한 양계산 어느 곳에서 계연과 숭륜은 중평휴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양계산에는 신령도 요괴도 없어 따로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으므로, 중평휴도 얼마 간은 이곳을 떠날 방법이 없었다.

계연과 숭륜이 구름을 타고 멀어지는 모습을 배웅한 중평휴는 그들이 떠난 뒤에도 기분이 꽤 좋았다. 그는 곧바로 거처로 돌아가 마음 편히 깊은 잠에 들었다.

계연은 어떻게 해야 중평휴를 양계산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온당한 방법은 양계산에 산신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이는 중평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후에도 양계산에는 결국 산신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양계산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다만 양계산처럼 신비로운 곳에 일반적인 정괴나 귀신이 들어온다면, 지맥이나 산세와 연결되기도 전에 산에 들어온 즉시 그 압력에 짓눌려 살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명산(名山)의 산신을 찾아가 부탁하자니, 그가 모호한 설명만 듣고 자신의 수행 길을 끊고 도행에 큰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제 둥지를 떠나겠는가?

‘만약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옥회산이 가진 산악 칙봉 부적을 손에 넣어야만 해…….’

계연은 마음속에 산신에 대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가 잘 아는 토지신이나 산신이 아니라 예전에 보았던 인신신(人身神)이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몸이 견디는 중압감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양계산의 범위를 벗어나 심해에 들어오자 주위의 빛이 어두워졌다.

마침내 하고 물보라를 촤아아 일으키며 숭륜은 계연과 함께 다시 바다 위로 솟구쳤다.

“계 선생님, 드디어 빠져나왔군요. 거안소각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계연은 그의 물음에 생각이 끊겨, 바다와 하늘을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숭륜을 바라보았다.

“혹시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요?”

숭륜도 눈치가 빨랐으므로 그의 말에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지요!”

“그럼 이왕 시구가 숭 도우의 첫 번째 제자였다고 하니 저와 함께 찾아가 보도록 하죠. 그가 천계맹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알아내야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