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화. 사제가 만나다
마침 딱 알맞게도, 계연과 숭륜이 묘구산 언저리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석양빛에 찬란하게 뒤덮여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묘구산에 음기 섞인 바람이 불고 사기(死氣)가 들끓는 것이 보였다.
이곳 산봉우리 몇 곳의 무덤 중에서 어떤 것은 크고 호화로웠으며, 어떤 것은 다른 무덤과 다닥다닥 붙어 작게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백성들은 모두 이곳의 풍수가 좋다고 여겼으므로, 권세나 돈이 있는 이들은 자연스레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집안에서 지은 무덤은 일반 백성들의 것과는 달랐다.
많은 고위 관리들과 귀족들이 이곳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묘구산에는 일찍이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 오래 살아남은 이가 없게 되자, 점차 누구도 이곳의 묘지기를 하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계연과 숭륜이 산자락 아래 서서 바라보니, 묘구산 전체는 괴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깊은 산중 맹수의 울음소리나 심지어는 새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동물들도 밤에는 이곳을 피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숭 도우, 어떻게 시구를 잡을 계획인가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숭륜은 수염을 쓸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바람과 물이 모이던 이곳의 산세는 진작 그놈에 의해 음기와 삿된 기운이 모이는 형세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마침 달이 꽉 찼으니, 분명 모습을 드러내 달 아래에서 수행을 닦으려 할 것입니다. 그때 제가 진산법으로 그놈을 제압하겠습니다.”
그러자 계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별말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산 위에 올라 무덤을 차례로 지나치던 두 사람의 모습은 곧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 *
밤이 깊어 묘구산에 둥근 달이 높이 걸리자, 적막한 산속에서 회백색 빛 한줄기가 어느 산봉우리에서 솟아올랐다. 뒤이어 보통 사람보다 머리가 한 개는 더 큰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나타났다.
“후우…….”
남자가 회백색 빛을 한 줄기 뱉어내자, 그 빛이 주위로 퍼지며 산 전체에 사기(*死氣: 죽음의 기운)가 모여들었다. 뒤이어 거대한 깃발이 꽂힌 높은 축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특이한 진법을 형성해 서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달빛이 아래를 환히 비추자, 사기가 짙게 깔린 묘구산 위로 은빛 광채가 한 겹 덮인 듯 빛나며 기이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그러자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시구에게서는 왠지 모를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진법과 달빛에 의해 사기의 형태가 변하자, 다른 이들이라면 시구가 지금 시도(尸道)나 사술(邪術)을 닦고 있는 거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편 황량한 산봉우리 위에 서 있던 숭륜은 이를 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계연은 곧 숭륜의 손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가느다란 금침(金針)이 쥐어진 것을 발견했다. 금침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 끝의 날카로움이 이미 주위에 깔린 사기를 어지럽혔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내가 수행하는 것을 엿보는 것이냐?”
낮게 깔린 시구의 목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그는 곧 조금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지는 걸 감지하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의 땅 표면이 펑펑 터지더니 건장한 체격의 강시 네 구가 솟구쳐 올랐다.
“크르르…….”
“크헝!”
거칠고 잔뜩 갈라진 강시의 포효성은 그 어느 맹수의 것보다 소름 끼쳤다. 붉게 변한 네 쌍의 눈이 산봉우리 위로 시선을 향하자, 밤이 되어 깔린 안개 사이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시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못난 놈, 순순히 포기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숭륜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시구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사부님?! 어찌 이런 일이!’
그는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두 팔을 가슴 앞으로 뻗었다.
휘익-.
푹!
그와 동시에 가느다란 금빛 한 줄기가 백옥처럼 하얀 시구의 왼쪽 손바닥을 통과했고, 시구는 뒤이어 오른손으로 영광(靈光)이 번쩍거리는 금침을 잡아챘다. 시구는 오른손으로 금침의 뒷부분을 단단히 잡고 있었는데, 그 날카로운 끝은 이미 시구의 가슴에 박힌 뒤였다. 금침의 첨단이 그의 가슴을 뚫는 순간 금속끼리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음?”
숭륜이 의아한 얼굴로 생각했다.
‘금침이 시구의 가슴을 뚫지 못했단 말인가?’
콰광!
펑, 펑, 펑……!
그 순간, 묘구산에 나타난 실체 없는 축대가 폭발하듯 터져나가더니,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었던 그 위의 깃발들이 형체를 갖추며 땅에 단단히 뿌리박혔다. 그러자 우중충한 회색빛이 순식간에 산 전체를 뒤덮었다.
“크릉……!”
“끄아아악!”
“아……아…….”
뒤이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괴이쩍은 온갖 소리가 들려오더니, 실체를 갖추지 못한 무수한 원혼과 역귀들이 튀어나왔고, 거대한 체구를 지닌 사이한 시체들이 곳곳의 무덤에서 솟아올랐다. 시구 본인은 오른손으로 금침을 단단히 쥔 채, 가슴이 꿰뚫리지 않도록 그 힘에 반항하는 동시에 산으로 숨어들었다.
“버릇없는 놈, 감히 내게 맞서려는 것이냐?”
숭륜의 노호성이 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묘구산 곳곳에 꽂힌 깃발이 차례로 ‘콰광!’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무궁무진한 죽음과 시체의 기운이 묘구산을 덮자 귀신들의 사이한 성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숭륜의 목소리를 듣자 정신없이 도망치던 시구의 가슴에 공포가 물 밀듯 차올라, 시구의 도망치는 속도는 저도 모르게 몇 배는 빨라졌다. 동시에 시구는 가슴에 파고든 금침으로 인한 고통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후로 아주 오랫동안 이 정도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통각을 느껴보니, 너무 아파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날 어떻게 알아보셨지? 내가 진작 죽은 줄로 알고 계시는 줄 알았거늘! 대체 날 어떻게 찾으신 거지?’
시구는 여러 번 지금의 자신이라면 스승의 실력과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스승님을 대면해보니, 맞설 용기가 나지 않아 정신없이 도망치기만 바빴다.
계연과 숭륜은 묘구산의 진법에 발이 묶였다. 사이한 기운을 가진 깃발이 터져나갈 때마다 삿된 기운이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갔으며, 그 수를 알 수도 없는 시체와 귀신들이 솟아났다. 그것들의 겉모습은 마치 허상인 듯했으나 맞닿으면 전부 실체를 지니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과 삿된 기운은 주위의 영기를 아예 몰아내 버렸고, 그에 더해 달빛의 힘을 받아 마치 소용돌이처럼 묘구산의 모든 것을 단단히 휘감았다. 진법의 진안(*陣眼: 진의 중심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취약함)과 진각(*陣脚: 진의 가장 앞쪽)은 스스로 소멸해버렸고, 진법은 이제 가진 모든 힘을 소모해 숭륜을 붙잡아두려 했다.
펑……! 펑, 펑……!
계연의 옆에 있던 숭륜이 소매를 휘두르거나 손으로 공격을 날릴 때마다 여러 갈래의 법광이 뿜어져 나와, 역귀와 사이한 시체들이 뭉텅이로 사라졌고 진법 안에 가득한 음기와 삿된 기운마저 쓸어버렸다.
계연이 보아하니 시구는 이미 도망친 듯했지만, 숭륜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방식으로 묘구산의 모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계연은 숭륜이 시구가 도망치도록 두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조급해하지 않았다.
잠시 후, 묘구산의 기운이 깨끗해졌고 산 곳곳이 삿된 것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하지만 숭륜이 인을 맺으며 법력을 펼치자, 그 시체들은 빠른 속도로 부패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들어 토지의 자양분이 되었다.
“선생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놈은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겁니다!”
뒤이어 숭륜과 계연은 두 줄기 빛으로 변해 멀리 날아갔다.
* * *
한편, 묘구산 어느 곳에는 생기가 전혀 없을뿐더러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시체 두 구가 누워있었다. 이때 그중 시체 한 구가 살짝 움직이며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 선생께서 해석하신 <운중유몽> 덕분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어. 이곳엔 이제 더 머무를 수 없겠군!’
이런 생각과 동시에 시구는 어느 방향을 향해 재빨리 사라졌고, 다른 한 구의 시체도 소리 없이 그를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어떤 소리도, 법력의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백여 리를 도망치던 시구는 지층 아래에서 속도를 천천히 줄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초조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척을 숨겼다.
그렇게 일각(15분) 후, 시구는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땅속에서부터 지면 위로 올라왔다.
그가 올라온 곳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었고 길옆에는 온갖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시구는 길 중앙에 서서 오솔길이 뻗어나간 멀리까지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으로부터 1장(약 3m) 거리에 계연과 숭륜이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사부님도 계시고, 계연도 여기 있으니, 도망가긴 글렀구나!’
그 순간, 한 줄기 금빛이 반짝였다.
휘잇-!
푹!
시구가 채 반응하지 못한 사이, 금침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시구는 다급히 가슴께로 손을 들어 올렸으나, 이미 자신의 원신이 금침에 꿰뚫린 것을 느꼈다. 그는 결국 비틀대다가 숭륜의 앞에 꿇어앉았다.
“사, 사부님…….”
“하, 내 제자는 200년 전에 이미 죽었다. 나는 네 사부가 아니다!”
숭륜이 차갑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 뒤,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계 선생님, 드디어 이놈을 잡았습니다. 저는 이놈과 일찍이 연을 끊은 지 오래니, 죽이든 베든 선생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 말에 계연이 숭륜을 슬쩍 쳐다보았다. 숭륜은 계연에게는 곧바로 시구를 죽일 생각이 없고, 설령 그런 계획이 있더라도 자신의 체면을 보아 곧바로 손을 쓰진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부님, 제가 비록 사도(邪道)에 빠졌으나, 저는 수행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제자는 사부님을 대면하거나 감히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존경하는 마음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계 선생님, 저 시구는 계 선생님께 어떤 적의도 품고 있지 않고, 오히려 천계맹의 일을 귀띔해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위씨 집안은 제가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큰 재앙을 입었을 것입니다. 또한 <운중유몽>은 어쨌든 제 사문(師門)의 물건이니, 제가 그것을 거둔 것은 마땅히 져야 할 책임…….”
“네 이놈! 네가 감히 사문을 들먹일 양심이 있느냐? 책은 어딨지?”
숭륜이 크게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치자, 시구의 말이 뚝 끊겼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지면에 대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러자 시체 하나가 천천히 지면으로 떠올랐다. 시구는 그 시체의 몸에서 <운중유몽>과 계연의 해석본을 꺼냈다.
“사부님, 계 선생님,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선생님, 이 책은 선생님께서 보관하십시오.”
계연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시구가 건넨 책 두 권을 받아 한번 훑어본 뒤 소매 안에 넣었다. 그는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천계맹의 일에 대해 얼마나 알죠?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위험한 사실을 말해보세요.”
시구는 가슴을 움켜잡은 채로 잠시 숭륜을 보다가, 다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계연의 눈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일에는 최소한 구미호 하나가 관련되어있는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