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41화 (641/892)

641화. 취하지 못해 아쉽구나 (2)

어느새 태양이 높은 뜬 시각이 되었기 때문에, 산길에는 관을 든 장례 행렬도 있었고 제사를 지내러 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젯밤 짧은 대치 끝에 숭륜이 특별히 손을 써놓았기 때문에, 이곳의 무덤 중에 무너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무덤의 흙이 한번 파헤쳐졌었다는 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다.

“가세, 가세……. 떠나세, 떠나세……. 취하지 못해 아쉽구나……. 취하지 못해 아쉬워…….”

계연은 지난 생에서 들은 어느 노랫가락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덧붙여, 말도 안 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때때로 술을 한입 머금었다. 비록 원래의 가락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성량이 힘이 있고 목소리가 부드러운 데다 선인이 본인의 기분에 취해 부르는 노래라 그런지 자유롭고 소탈한 운치가 있었다.

큰길가에는 어제처럼 권세 있는 가문의 행렬은 없었고, 지나가는 행인을 만나더라도 대부분 계연에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의 이런 모습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가게 했다. 계연은 남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술과 노랫가락에 푹 빠져 오래간만에 잔뜩 흥이 난 상태였다.

뒤쪽의 묘구산은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고, 그의 앞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오래된 정자가 보였다. 그곳에는 지난 생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이규(*李逵: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인물)나 장비의 것처럼, 바늘처럼 빳빳하고 굵은 검은 수염이 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계연의 노랫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돌려 점점 가까워지는 푸른 장삼을 입은 선생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이때 두 눈을 살짝 감은 채로, 비록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기분에 취해 흔들흔들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계연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자에서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흥미로워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내가 막 정자 밖에 도착해 걸음을 멈췄을 때, 계연은 백옥으로 된 천두호에 더는 술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천두호는 예전에 응풍이 효심을 보이려고 선물한 것으로, 이 안에는 엄청난 양의 영주(靈酒)가 담겨 있었다. 용연향은 아무렇게나 마시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었으므로, 그동안 계연은 내내 이 천두호의 술만 마셔왔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그것이 바닥을 보일 줄이야.

“하하, 천 두(*斗: 곡식이나 액체의 분량을 재는 단위)를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으니, 정말 흥이 다 깨는군. 에잇…….”

그러자 정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눈을 반짝 빛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 기백이 대단하십니다! 마침 제게 좋은 술이 있으니, 싫지 않으시다면 가져가 드시지요!”

그 말에 계연이 남자를 바라보니, 비록 그자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특별한 수염을 지녔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에 계연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흥미가 생겼다.

반면 남자는 먼저 말을 뱉은 뒤, 허리를 구부려 근처에 놓인 나무 상자의 옆에 달려있던 가죽으로 된 술통을 끌렀다.

남자가 그것을 손에 들고 두어 번 흔드니, 안에서 액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남자는 가죽 통을 계연을 향해 휙 던졌다.

“여기, 술 받으십시오!”

술이 날아오자 계연은 얼른 두어 걸음 다가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으려 했다. 그러자 술통은 계연의 목 아래에 부딪힌 후 그의 손으로 떨어졌다. 보아하니 계연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더라면 손을 뻗어 바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계연의 이런 몸짓은 그리 당황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정자 안의 남자는 저도 모르게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티 내지 않고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께서도 들어와 쉬시지요.”

계연은 술통을 받아 마개를 열더니 코를 갖다 댔다. 그러자 짙은 술 향기가 코를 찔러왔다. 냄새만 맡아도 이건 독주인 것이 분명했다.

계연은 주둥이를 입에서 조금 뗀 채 곧바로 술통을 기울여 입에 머금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술맛을 음미한 뒤 꿀꺽 삼켰다.

“음, 좋은 술이군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정자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술통을 들어 꿀꺽꿀꺽 술을 몇 입 마신 뒤, 남자에게 술통을 건넸다.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고 한입 마시더니, 계연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선생, 주량이 대단하십니다.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이리 독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다니요. 감(甘)모도 이제야 선생이 천 두(斗)를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단 말을 믿겠습니다.”

남자의 성정은 아주 호쾌해 보였다. 그는 술을 마신 뒤 다시 계연에게 술통을 건넸다. 그러자 계연도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연달아 몇 입을 더 마셨다.

“이 술통 안에는 술이 10근(斤) 들어있습니다. 아까 보니 하얀 술병이 있으시던데요. 그 안에 이 술을 채워가시지요.”

“하하, 아주 호탕하신 분이군요. 하지만 저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게다가 양이 얼마 되지도 않고요.”

그 말에 남자는 웃으며 이 술은 그가 마시기에도 부족하다는 뜻이라 여겨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이 앞을 지나는 장례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 행렬을 따르는 이들은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곧 낮은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묘구산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신 걸 보니, 오늘 아침에 가까운 분께 제사를 지내고 오신 모양이군요.”

‘구슬픈 노래라니? 내가 언제 그런 노래를 불렀지?’

계연은 자신이 흥얼거린 노랫가락이 비록 즐겁진 않았을지라도 슬프게 들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으나, 별달리 할 말이 없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남자의 발 옆에 놓인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그 형태가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서생들이 지는 책궤처럼 등에 메는 형태였다. 묘구산에 오르는 이들 중에는 보따리를 든 사람도 있었고 이런 상자를 메고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상자의 경우에는 홀로 제사를 올리러 올 때 물건을 가져오기가 더 편했다.

“장사(壯士)께서는 제사를 지내고 온 건가요?”

계연의 물음에 남자가 깊이 탄식하며 대답했다.

“휴……. 몇 년 동안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더니, 벗이 이미 세상을 떠났지 뭡니까. 후에 다시 연월부(連月府)에 왔을 때는 저와 함께 술을 마셔줄 이가 없겠지요. 아, 참. 제 이름은 감청락(甘淸樂)이고, 본디 상영부(上榮府) 사람입니다. 지금은 온 천하를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참으로 풍모가 비범하시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공손히 포권했다. 그러자 계연도 술통을 쥔 채로 살짝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계연이라 합니다. 계책의 계, 인연의 연입니다. 술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술통을 감청락에게 돌려주었다. 감청락이 술통을 받아들고 정자를 나서는 계연에게 인사를 하려던 찰나, 그는 손에 느껴지는 무게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가 한번 흔들어보니 술통 안의 술이 반은 줄어 있었다.

계연이 술을 물처럼 마시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그래도 술이 이 짧은 순간에 이렇게 줄어들어 있으니 땅에다 쏟아버렸을 리도 없었다. 그는 계연의 얼굴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걸 보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량이 대단하군!”

감청락은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술통을 다시 상자 옆에 걸고서 한 손으로 상자를 들어 올려 어깨에 멨다. 그리고는 걸음을 서둘러 아직 정자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은 계연을 쫓아갔다.

“계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이 감모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이 대교주(大窖酒)는 연월부에서 그리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볼 때는 이름난 명주와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건 최소한 10년은 묵어야 맛이 좋거든요. 제가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계연은 이자가 싫지 않았고 조금 전 마신 술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연월부 부성은 묘구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조금 전 그들이 앉았던 정자가 이미 그 중간쯤의 위치였다. 그래서 신통한 술법 없이도 계연은 감청락의 빠른 걸음을 따라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 부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성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성문이 멀찍이 보일 때부터 계연은 그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성에 들어섰을 때는 온갖 소음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소리만 들어도 시정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고, 길을 바삐 오가는 행상인들과 걸음을 서두르는 행인들의 모습이 벌써 생생했다.

감청락은 연월부 사람은 아니었지만, 걸어오며 나눈 대화를 통해 계연은 그가 이 부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면 반 시진 넘게 동행하다 보니 감청락도 계연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계 선생은 학식이 깊고 풍모가 비범했으며, 상대가 가까워지게 하고픈 생각이 드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을 도와 길 안내를 해줄 수 있으니 감청락도 기꺼워했다.

“계 선생님, 혜(惠)씨 집안을 먼저 방문하실 겁니까, 아니면 먼저 술을 사러 가실 겁니까?”

“술 먼저 사러 가죠. 저는 항상 술을 갖고 다녀서, 이제 술병이 텅 비니 좀 힘드네요.”

“하하, 호쾌하시군요. 그럼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계연 같은 인물을 알게 되자 감청락은 가까운 벗이 세상을 떠난 슬픔이 조금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겠지만, 말이 통하고 성격이 맞는 이를 벗으로 사귀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 할 수 있었다.

천보국은 대정국과 마찬가지로 행정 구역이 주부(州府)로 나뉘었다. 연월부 부성은 한 부(府)의 수도 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작지 않았다. 계연과 감청락은 번화한 큰길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서 비교적 한산한 거리에 도착한 뒤, 폭은 넓지만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바라보니, 흐릿한 시야에도 골목 끝에 있는 다른 입구 근처의 가게에 커다란 삼각형 깃발이 달린 게 보였다. 거리가 조금 멀지만, 추측을 더해 읽어본 결과 ‘교(窖)’ 자가 확실해 보였다.

“선생님, 바로 이곳입니다.”

감청락이 웃으며 이렇게 안내하더니 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아직 점포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커다란 목청으로 소리쳤다.

“요(姚)씨, 상등급의 대교주로 주시오! 10년 묵은 걸로!”

“감 대협 오셨군요. 그거라면 얼마든지 있습지요!”

그의 말을 들은 한 노인이 점포 바깥으로 몸을 쑥 내밀더니 마찬가지로 커다란 목청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웃는 얼굴과 목청은 대교주처럼 강렬했다.

계연이 감청락을 따라 함께 가게 앞에 도착해보니, 이 점포는 한쪽에 측문이 나 있고 계산대는 바깥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벽 한쪽에 널빤지가 세워진 걸 보니, 저녁에 장사가 끝나면 안쪽에서 대문에 빗장을 가로질러 잠그는 방식인 듯했다. 가게 안에는 따로 점소이가 없었고, 튼튼하고 건장한 체격의 주인장이 전부였다. 아직 들어가기 전인데도 이미 짙은 술 냄새가 풍겨왔다.

“이쪽은 계 선생일세. 내 특별히 요씨네 술을 팔아주려고 모셔왔지. 그러니 감히 질 떨어지는 걸 내놓을 생각은 말게!”

“어찌 감히요! 대교주의 명성을 지켜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분은 대협께서 데려오신 손님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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