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44화 (644/892)

644화. 구경거리

요물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는 일은 흔했지만, 요괴의 도행을 잘라내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이런 말을 하자 왠지 모르게 류생언은 그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에 류생언은 엄청난 공포에 빠졌다.

계연이 담담히 열어준 이 ‘살길’은 아예 죽이거나 혼백을 뽑아내 제련하는 것보다 류생언에게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계연은 곧 왼손을 살짝 들어, 엄지와 약지를 둥글게 맞대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곧게 뻗은 채로 류생언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그녀를 향해 천도(天道)의 기운이 덮쳐왔다.

계연의 동작은 느릿하고 부드러웠으나, 그와 함께 한순간에 시간이 되돌려진 느낌이 들더니 류생언이 곧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조금 전까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던 여인은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이 쉬지 않고 덜덜 떨렸다.

“안, 안 돼! 안 돼! 여우로 변하고 싶지 않아, 제발!”

류생언은 자신이 정말로 야생 여우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때 몸을 숨길 곳도 없는 산꼭대기에는 엄청난 위력의 뇌운(雷雲)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자신의 원신과 의식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류생언 자신은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여우의 본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듯 흐리멍덩해 보였다. 여우는 원래 뱀이나 쥐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곧이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으로 인한 공포를 맞닥뜨렸다. 그것은 무궁무진한 암흑과 미지 그 자체였다.

쿠구궁……!

하늘에서 천둥과 함께 벼락이 떨어지자, 산꼭대기에 있던 여우가 “우우우!”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천뢰를 맞은 영향인지 또렷했던 원신이 점차 흩어지더니 그녀의 의식이 점차 혼몽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포였다…….

다음 순간, 몸이 한번 덜덜 떨리더니 류생언은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아직 가시지 않은 두려움이 담긴 망연한 눈빛으로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완전히 정신을 차린 류생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느새 자신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계 선생님, 저, 저는 과거에 확실히 잘못을 저지른 바 있습니다. 하, 하지만 저는 항상 선(善)을 지향하고 부단히 수행을 닦아왔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여우로 되돌리지 말아 주세요!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혜동 대사, 제가 대사께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다시는 여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류생언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꿇어앉아 계연과 혜동 대사를 향해 간청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마치 비에 지는 배꽃과도 같았다. 그녀의 말은 별로 논리적이지 못했으나, 이는 조금 전 느낀 두려움이 너무나 사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재 대명왕불. 류 시주, 먼저 계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시지요.”

혜동 대사는 이렇게 말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는 방금 이 여우 요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으나, 그녀가 몹시 놀란 것만은 확실했다. 그때 계연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첫 번째 질문부터 대답하세요. 그 여우는 황궁에 있습니까?”

류생언은 마침내 두 손을 꼭 쥐고 이를 악문 채 이렇게 대답했다.

“도운(涂韻)은 황궁에 있습니다. 지금 이름은 혜소유(惠小柔)이고, 명의상으로는 제 딸로 되어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천보국 황제의 총애를 받는 혜비입니다…….”

“그 여우의 이름이 도운이었군요. 보아하니 도사연과 같은 일맥이겠네요.”

계연은 마치 도운의 이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실은 일찍이 시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약 일각(15분) 뒤, 혜원교(惠遠橋)는 관아에서 돌아와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관사와 마주쳤다.

“노야, 돌아오셨습니까.”

관사가 그를 예의 바르게 맞이하자 혜원교가 얼른 상황을 물었다.

“어찌 되어가고 있나?”

“노야께 아룁니다. 지금 부인께서 직접 연량국 장공주와 혜동 고승을 접대하고 계시는데, 귀빈들께서도 무척 흡족해 보였습니다. 그 외에 강호의 이름난 협객인 감청락도 방문해 있습니다.”

“음, 장공주와 혜동 고승을 보러 가겠네.”

혜원교는 비록 감청락의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그는 강호의 일개 무인이었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그도 기꺼이 만났겠지만, 오늘은 더 귀한 손님이 와 있었으므로 즉시 그쪽으로 향했다.

응접실 밖에서 혜원교는 다시 한번 옷차림을 점검한 후, 급히 달려온 듯한 모양새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바로 준수하고 비범한 외모를 지닌 혜동 대사와 광채가 나는 듯한 수려한 용모의 초여언이 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앞이 다 환해지는 듯했다. 그런 뒤에야 그는 자기 부인과 육천언을 발견했다.

“혜원교가 연량국 장공주마마와 혜동 대사를 뵙습니다! 과연 직접 보는 것이 듣는 것만 못하군요. 이토록 비범하실 줄이야!”

“혜 지부를 뵙습니다!”

“혜 노야!”

몇몇이 일어나 그를 향해 인사하자 혜원교도 다시 정중히 인사한 뒤, 그들을 접대할 식사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직접 도성까지 가는 여정을 설명해 주었다. 이 혜동 대사는 천보국의 태후가 황제에게 청해 모셔온 승려였으므로, 절대 대접에 소홀할 수 없었다.

* * *

그 시각, 이곳보다 좀 더 작은 다른 응접실 안에는 감청락과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계연이 앉아있었다. 그들도 비록 차를 대접받았지만, 이 대우는 다른 쪽 귀빈들에 비하면 천양지차였다.

“감 대협, 보아하니 대협의 이름을 빌려도 소용이 없군요. 혜 노야가 돌아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얼굴도 비추지 않네요.”

감청락은 이제 계연이 비범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므로 좀 더 공손한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과도하게 조심스러워하진 않았다. 계연의 말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관리이고 저는 일개 무부(武夫)인데, 응당 눈에 차지 않겠지요. 게다가 오늘은 다른 귀빈이 와있지 않습니까.”

그때 관사가 들어와 무척 죄송스러워하는 태도로 말했다.

“감 대협,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저택에 귀빈이 와계셔서, 노야께서도 무척 대협을 뵙고 싶어 하셨으나 당장은 몸을 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미 주방에 명해 대협께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라 하셨습니다. 만약 괜찮으시다면, 남아서 식사를 들고 가시지요!”

감청락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순간, 계연이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

“네, 그럼 혜 노야의 호의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혜 노야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감 대협께서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관사가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하자, 감청락이 낮은 소리로 계연에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하하, 일단 배부터 채웁시다. 안 먹으면 아까우니까요. 그리고 저와 함께 도성으로 가시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을 거예요.”

“재미있는 구경이요?”

감청락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는 자신이 꼭 신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흥분을 느꼈다. 그러자 계연의 법안에 그의 수염이 살짝 붉은색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계연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오늘 혜씨 집안을 방문한 귀빈은 연량국 장공주와 대량사의 고승인 혜동 대사예요. 그들을 따라 함께 도성으로 가면, 혜동 대사가 황궁에 있는 삿된 요물을 쫓아내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감청락은 계연에게 그들이 왜 자신들과 함께 가겠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계연은 술법을 부리는 고인(高人)이었기 때문에, 감청락은 보통 사람은 하지 못하는 일을 계연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비록 혜원교는 감청락을 만나러 오지 않았지만, 그들을 접대한 관사는 일을 아주 요령 있게 처리했다. 감청락은 강호에서 명망이 높은 대협이었으므로 그는 결코 두 사람을 소홀히 대접하지 않고 탁자가 세 개는 들어갈 듯한 크기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안에는 커다란 식탁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생선과 고기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드시면 됩니다. 오늘은 저택에 일이 많아 저택에 묵고 가시라 초대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대신 식사를 마치시면 두 분을 마차로 모시고 가서, 객잔에 상방(上房) 두 개를 예약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이(李) 관사. 저택에 귀빈이 오신 상황에 이미 저희가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어차피 시간도 늦었으니 식사를 마치면 저희가 알아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수고를 끼칠 수는 없지요.”

그러자 이 관사가 정중히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 대협. 계 선생께서도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편히 식사하시지요. 분부하실 일이 있으시면 하인을 부르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청락과 계연은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 뒤, 이 관사가 식당을 나가는 것을 보고는 계연이 곧바로 문을 닫았다. 계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커다란 식탁 위에 정성껏 차려진 식사를 바라보았다.

“과연 대갓집이군요, 이렇게 많은 요리를 대접한다고 바로 내올 수 있다니요. 그렇다면 저희도 사양할 필요가 없겠네요. 감 대협, 어서 앉아서 식사합시다!”

“하하, 정말 풍성하긴 하군요. 선생님도 어서 앉으십시오!”

두 사람은 마음껏 즐기며 식사하기 시작했다. 감청락은 계연을 앞에 두고도 전혀 거리끼는 기색 없이 한입에 최대한 음식을 많이 쑤셔 넣었다.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집기도 했다. 계연은 기품있는 태도로 앉아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했지만, 밥에 반찬을 얹어 입에 밀어 넣는 속도가 마치 국수를 먹는 듯했다. 그가 후루룩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식탁 위의 요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를 본 감청락은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꺼억! 아, 이젠 더 못 먹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상대도 되질 않는군요…….”

감청락은 배를 문지르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는 자기보다 많이 먹는 사람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보았다. 이 한 상 가득 차려진 식사는 원래 십여 명의 사람이 와도 충분히 먹을 만한 양이었는데, 반 정도가 전부 계연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식사량만 보아도 계 선생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계 선생님, 그래서 당금의 황상 곁에 여우 요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감청락은 무공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주위에 듣는 이가 없다는 걸 알고 편하게 질문했다. 게다가 계연은 이미 이 방 안에서는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는 밥을 먹다가 끊긴 화제를 다시 이어가려고 했다.

계연은 천두호를 꺼내어 오늘 산 술을 술잔에 따라 마셨다. 감청락 쪽에는 아직 식탁 위에 원래 준비되어 있던 술 반병이 남아있었다. 그는 감청락이 이렇게 묻자 술을 한 입 마신 뒤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운이라는 이름의 둔갑한 여우예요. 도행이 절대 낮지 않죠.”

“그 요괴가 황상을 해치려고 하는 겁니까?”

살짝 술기운이 오른 감청락은 다시 술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천보국 황제는 자미의 기운을 지녀, 요물이라 해도 그를 쉽게 해칠 수 없어요. 그랬다간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을 당하게 되거든요. 그 요괴의 목적은 천보국 황실 사람의 목숨뿐만이 아니에요. 위로는 자미의 기운을 부패시키고, 그다음으로는 사림과 병권을 교란하고, 아래로는 경생(*耕生: 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 농민 백성을 뜻함) 연화(*煙火: 연기와 불, 백성을 뜻함)를 어지럽혀 천보국의 기운을 완전히 썩히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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