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45화 (645/892)

645화. 알현

계연은 감청락의 얼굴 전체에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사람의 말로 설명해 주면 안 되나!’라고 쓰인 걸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면, 천보국에 커다란 재앙을 일으켜 나라를 멸망시키고 민생을 불안하게 하여, 온갖 이매망량을 불러와 속세를 어지럽히려 한다는 거예요.”

“예? 감히 그런 짓을 하려 한단 말입니까?”

쿵……!

감청락은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어, 이렇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둥근 식탁이 그의 배에 부딪혀, 식탁 위의 접시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여우 요괴가 황궁에 들어간 지는 이미 몇 년이나 되었어요. 그러니 황궁 안에서도 분명 누군가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연량국 대량사의 혜동 대사를 모셔와, 궁중에 있는 사악한 것을 몰아내려는 거죠.”

그러자 감청락의 온몸에 푸른 핏줄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그가 진기(眞氣)를 온몸에 골고루 운용시켜 체내의 술기운을 몰아냈다. 그렇게 다시 또렷한 정신을 회복한 그는 눈썹을 찡그린 채 자리에 앉았다.

“혜동 대사가 그렇게 대단하신 분입니까?”

“대사의 불법(佛法)은 높고 심오하다고 할 수 있죠. 대량사에는 보리수가 한 그루 있는데, 예전에 불문의 명왕이 한 수선자와 그 나무 아래에서 도를 논한 적이 있어요. 혜동 대사는 그 나무 아래에서 오래도록 수행을 쌓았으니,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거예요.”

“그럼 혜동 대사만 계시면 요괴를 몰아내는 데에 실패할 리가 없겠군요?”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혜동 대사의 불법이 높긴 하지만 그건 불문에서의 조예고, 게다가 고작해야 그의 나이가 몇이나 되었습니까? 불법과 달리 법력은 천천히 수련해 익혀가는 것이니, 아직 도운을 이길 수는 없어요.”

“예? 그럼 어쩌면 좋습니까!”

감청락은 이에 마음이 조급해져 발을 동동 구르다가, 계연을 보고는 곧 안심한 기색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금 자기 눈앞에 바로 대단한 고인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조금도 걱정스러워하지 않는 계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그 여우 요괴를 안중에 두지도 않는 게 분명했다. 그가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계연이 먼저 이렇게 말했다.

“혜동 대사의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감 대협은 고강한 무예와 드높은 의기(義氣)를 지녔으니, 대협께서 대사를 도우면 되겠네요.”

“제가 말입니까?”

감청락이 얼떨떨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혹시 무언가 잘못 생각하신 게 아닙니까?”

“아니에요, 제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거든요. 감 대협의 피는 아주 특별하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게다가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제가 있잖아요.”

계연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감청락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감청락은 자신이 들은 소문을 하나 떠올렸다. 대량사의 혜동 대사는 젊은이의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7, 80살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어린 나이인가?’

* * *

초여언과 혜동 대사 일행은 혜씨 저택에서 이틀 밤을 보낸 후, 함께 데려온 행렬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혜원교도 있었고, 황실에 바칠 물건도 잔뜩 실었기 때문에, 행렬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그들이 천보국 도성을 향해 길을 떠났을 때, 술 항아리를 돌려주고 돌아온 계연은 감청락과 함께 그 행렬의 뒤를 쫓았다. 여정 내내 계연은 감청락 덕분에 천보국의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자신도 곳곳의 기운을 관찰했다. 덕분에 이제 계연의 마음에는 천보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섰다.

황제의 부름을 받고 가는 것이니만큼 혜원교는 시간을 지체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초여언과 혜동 대사도 서둘러 도성으로 향하는 데에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 단 2주 만에 연월부에서 도성 바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도 되지 않아, 같은 날 오후 황궁 근처의 역관에 짐을 풀 수 있었다.

계연과 감청락은 당연히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객잔에도 머물지 않고, 황궁 바깥의 종루(*鍾樓: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도성의 중심에 세운 종을 달아 둔 누각)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황궁도 역관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으므로, 관찰하기 좋은 위치였다.

밤이 되자, 역관에서는 술과 요리를 한 상 차려놓고 내일 조회에 참석할 귀빈들을 접대했다. 반면 계연과 감청락은 종루에서 딱딱한 전병을 씹고 있었다.

감청락은 이때 황궁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 황궁 성벽 위를 순찰하는 금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계연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는 성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 선생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묘사방 쪽을 보고 있었어요. 신광(神光)이 불안한 것을 보니,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감청락은 그동안 계연과 계속 함께 있었는데도 무슨 특별한 소문을 들은 기억이 없어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계연이 그를 흘끗 보더니,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도성에 들어올 때, 멀리서 외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몇 년 전에 천보국 황제가 새로운 성황신을 책봉했다고요.”

“정말 황제가 성황신을 책봉할 수 있는 겁니까?”

감청락은 며칠 동안 계연에게서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성황신이 성황당 안에 있는 흙으로 빚은 신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황제라고 해서 당연히 귀신을 책봉할 능력은 없지만, 사람을 보내 옛 신상을 부술 수는 있죠. 또 백성들에게 명해 새로운 성황신을 모시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승의 법도는 지엄해서, 귀신들은 속세의 정세에 절대로 간섭할 수 없어요. 속세를 어지럽힐 위험을 무릅쓰고 황제를 직접 찾아가지 않는 이상, 황제의 꿈에 나타나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따로 방법이 없죠.

이대로라면 수십 년 내에 신위(神位)를 내어주게 될 테니, 지금의 성황신은 명분도 없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계속 저승을 다스려야 해요. 그러니 지금의 성황신은 새로운 성황신이 완전히 힘을 갖추기 전에, 향불과 원력의 힘을 가로채어 상대가 신령의 몸을 갖추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이게 아니면, 백성들의 꿈을 빌어 자주 나타나 본인을 경외하도록 만들어, 자신에게 소원을 빌도록 만들어야 하죠.”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다시 깊이 탄식했다.

“휴우, 성황신들은 모두 덕이 높고 현명한 신령이에요. 그들은 이매망량을 대할 때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신위가 바뀌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어느 삿된 것이 수작을 부린 것이 확실한 게 아니라면 정당하지 못하거나 조잡한 수단을 쓰려 하지 않을 거예요. 성황신들은 차라리 저승의 기관장으로 지위가 격하되거나, 금신법체(*金身法體: 수행을 쌓아 도달하는 영원불멸의 신체)가 무너지더라도 몸을 빼내어 다른 길을 찾는 걸 택할 거예요.”

“그럼, 성황신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겁니까?”

감청락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묻자, 계연도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걸 눈치챘다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 않았겠죠. 도운은 옥호동천의 가르침을 계승한 요괴로, 정도(正道)를 걸었다면 모든 이들에게 호선(*狐仙: 여우가 오랜 세월 수행을 쌓으면 변하게 된다는 신선)이라 깍듯하게 불렸을 거예요.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죠. 실은 여기 오기 전에도, 그들이 도성의 성황신처럼 눈에 거슬리는 존재를 없애려 할 거라 예상했었어요. 자, 저희도 그만 자는 게 좋겠어요. 내일은 연량국 사신단이 입궁하는 날이니까요.”

오경(五更: 새벽 3시~5시)이 되자, 연량국 사신단은 종루를 지나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들뿐만 아니라, 천보국 관원들도 차례로 조회에 참석하러 입궁하기 시작했다.

감청락은 아직 자고 있었고, 해도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계연은 옆으로 누운 채 쉬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귓가에 황궁의 태감이 쩌렁쩌렁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황명이오, 연량국 사신단은 대전에 들어 알현하시오!”

그러자 대전 바깥에 서 있던 금군이 황명을 다시 한번 복창했다. 잠시 후, 기품 있게 차려입은 초여언과 귀한 가사(袈裟: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는 법복)로 바꿔 입은 혜동 대사가 함께 대전에 들어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천보국 문무백관은 이 한 쌍의 남녀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량국 장공주는 광채를 내뿜듯이 아름다웠고, 준수한 외양을 한 대량사 고승에게서는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연량국의 초여언이 천보상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소승, 대량사의 혜동이 폐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차례로 예를 올리자, 높은 용의(龍椅: 황제가 앉는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의 황제가 마음속의 놀람을 감추고 말했다.

“두 분 모두 예를 거두시오. 일어나서 이야기하여도 무방하오.”

이때 대전 안은 무척 조용했고, 초여언과 혜동 대사는 황제의 말에 따라 예를 거두었다. 황제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혜동 대사를 보고 있었고, 대전 안의 모든 사람은 황제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고(孤: 옛날, 임금이나 제후가 자신을 겸손히 일컫던 말)는 천보국 도성에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대량사의 위명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도성 안의 법연사(法緣寺) 방장도 일찍이 대량사는 불문의 성지이며, 혜동 대사는 높은 덕을 지닌 고승이라고도 했었다오. 오늘 직접 보니, 대사께서는 고의 예상보다도 훨씬 젊으시구려. 말로만 듣던 반박귀진(返璞歸眞: 수행이나 무공이 일정 경지에 이르면 오히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일컬음. 여기서는 다시 젊어지는 것을 뜻함)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오. 고가 기억하기로, 고가 아끼는 어느 신하가 예전에 대량사에 가서 대사를 만났다고 들었는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군.”

황제가 이렇게 말하며 문무백관을 둘러보자, 한 문관이 앞으로 걸어 나와 공손히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바로 소신입니다. 작년 봄 연회에서 말씀드린 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턱수염을 가슴께까지 기른 기품있는 모습의 문인이었다.

“아, 친애하는 류(劉) 경이었군. 류 경, 혜동 대사를 기억하는가?”

천보국 황제는 사실 저 준수한 젊은이가 그 유명한 혜동 고승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혜동 대사가 비록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저 스님은 어떻게 봐도 스물이 갓 넘은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세)을 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류씨 성의 문관이 혜동 대사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다시 황제를 향해 공손히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30여 년 전에 소신은 잘못을 저질러 잠시 감옥살이를 하다가, 변경의 전해부(田海府)로 귀양을 갔었습니다. 그때 연량국의 동추부에 들렀다가, 대량사에서 3일 동안 묵으며 혜동 대사를 뵌 적이 있었습니다. 대사의 풍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으십니다.”

“30여 년 전……?”

황제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문관은 능력이 그럭저럭한 수준이라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절대 자신에게 거짓을 고하지는 못할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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