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46화 (646/892)

646화. 이 요괴는 여우입니다

“30년…….”

“그 나이로 보이지는 않는데…….”

“허어, 그럼 정말 대단한 고승이 틀림없군!”

“그럼 대체 저 대사의 연세가 어찌 되는 것이오?”

대전 안의 문무백관들 사이에는 낮은 소리로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힐끗힐끗 혜동 대사를 살폈다. 수려한 외모의 장공주인 초여언에게 시선을 던지는 이는 몇 없었다.

“선재 대명왕불, 외모는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폐하와 여러 대인께서는 외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십시오.”

황제는 이제 혜동 대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좀 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혜동 대사, 대사를 도성으로 들라 한 것은 모후의 뜻이오. 황후는 유산을 두 번이나 했었고, 몸에 지닌 부적이나 호신용 보물도 모두 부서진 데다 자주 악몽을 꿔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소이다. 모후께서는 꿈에서 몇 번 신령을 만났으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해 황궁에 무슨 삿된 것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계시오. 이에 법사나 고승을 청해 법사(法事)를 벌이기도 했으나, 별 효과가 없어 결국 대사를 들라 한 것이오.”

그러자 한쪽에 서 있던 초여언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천보국 황제가 혜동 대사를 ‘들라고 했다’는 말이 듣기에 무척 거슬렸다. 대량사는 명백히 연량국의 사찰인데, 저 황제의 말만 들으면 꼭 자신의 백성 부리듯 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다른 나라에서 그들을 ‘천보상국’이라 부르고 있긴 하지만, 연량국의 장공주로서 그녀는 이 상황이 언짢았다.

황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곧 입을 열었다.

“대사가 보기에, 궁중에 삿된 기운이 있소이까?”

혜동 대사가 고개를 들어 황제를 직시하더니, 두 손을 겹쳐 합장했다.

“선재 대명왕불, 소승 일단 직접 둘러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혜동 대사는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한 쌍의 보리수 법안에는 천보국 황제가 지닌 자미의 기운과 그의 몸에 들러 붙어있는 아주 옅은 요기(妖氣)가 보였다. 만약 그가 황궁에 여우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을 아는 상태에서 보니, 절대 자신이 잘못 본 것일 리가 없었다.

“음, 좋소. 조회가 끝나면 함께 모후를 뵈러 가십시다.”

뒤이어 천보국 조정의 조회가 시작되었고, 혜동 대사와 장공주 초여언은 잠시 대전에서 물러나 황제의 부름을 기다렸다.

약 한 시진(時辰: 2시간) 후, 해가 높이 떠오르자 황궁 안에 따로 배정된 전각에서 쉬고 있던 혜동 대사와 초여언은 마침내 부름을 받았다. 이번에는 육천언이 장공주의 곁을 따르고 있었다.

곧이어 혜동 대사와 초여언 등은 영안궁(永安宮)에 들어 태후를 알현할 수 있었다. 그곳에 함께 자리한 이들은 황제와 황후를 비롯한 다른 비빈들이었는데 혜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

보양을 잘해 정정한 모습의 태후와 황제는 함께 연탑(軟榻: 기다랗고 푹신한 휴식용 가구)위에 앉아있었다. 기타 비빈들은 다른 한쪽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태감과 궁녀를 비롯한 시위들은 양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초여언과 혜동 대사가 예를 올리자, 태후는 두 사람을 유심히 살피다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찍이 혜동 대사가 준수한 용모를 지녔다는 걸 들었었는데, 오늘 직접 뵈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구려. 대사께서 조회에 드셨을 때 황궁 곳곳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다길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사가 곳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잘 모시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혹시 무슨 수확이 있었는지요?”

혜동 대사는 평온하고 담담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재 대명왕불, 태후께 아룁니다. 소승 확실히 삿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태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조급한 얼굴로 혜동 대사를 재촉했다. 황제와 비빈들도 놀란 반응이었는데, 혜비만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두 눈에 재미있어하는 듯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혜비는 흥미가 생긴 얼굴로 이 외국에서 온 승려를 살펴보았다. 혜동 대사의 명성은 그녀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듣던 대로 외양이 몹시 준수하여 무척 입맛이 당기는 얼굴이었다.

“태후마마, 폐하, 그리고 비빈 여러분. 소승이 본 요기(妖氣)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주 옅었습니다. 귀신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소승이 보리수의 혜안(慧眼)을 지니지 못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겁니다.”

황후는 이미 몹시 놀란 상태였는데, 혜동 대사의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요, 요괴라고요? 대체 무슨 요괴입니까?”

혜동 대사는 합장한 채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만 살짝 움직여 대답했다.

“색신(色身: 불교 용어로 육체를 뜻함)은 갖가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어떻게 수행하고 이를 부리느냐에 따라 그 변화가 다양합니다. 하지만 오행(五行)의 기운만은 그대로이지요. 소승이 본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기운은 금행(金行)에 속하였고, 주위에 은은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니 털이 덮인 동물입니다.”

“혜동 대사, 좀 더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은 너무나 현묘해 태후는 그저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짜증 섞인 기색 없이, 소리를 낮춰 이렇게 물었다.

“태후께 아룁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추측해보자면 가능성이 여러 개이긴 하지만, 소승의 생각에, 이 요괴는 여우입니다.”

혜동 대사는 보리수 혜안으로 확실히 요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상세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우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물러날 여지를 일부러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혜동 대사의 말을 들은 혜비는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마터면 눈을 들어 싸늘한 눈빛을 보낼 뻔했다. 그녀는 즉시 눈꺼풀을 내려 그것을 감추며 다른 비빈처럼 두려워하는 모습을 꾸며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은 모두 모골이 송연해졌다. 혜동 대사의 어조는 침착했고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으며,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마치 더없는 사실만을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이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대사께서는 혹 무슨 대책이 있으신지요? 그 요물은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사람을 해치진 않을까요? 황후가 유산한 것이 혹 그 요물과 관련이 있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 요물이 사람을 해치고 싶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소승이 염주를 조금 갖고 왔으니 이를 호신용으로 드리겠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삿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습니다.”

혜동 대사는 이렇게 말하며 손목보다 굵은 염주를 연달아 꺼냈다. 그 위의 구슬은 보통의 염주에 달린 것보다 좀 더 작고 가늘었으며, 크기가 각기 달랐다.

“이 염주 위의 구슬은 대량사의 보리수 아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다듬어, 대량사 불법의 세례를 받아 만든 것입니다. 황상, 태후마마, 그리고 여러 마마께서는 모두 이걸 손목에 차십시오. 소승이 이에 더해 불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나이 든 태감 하나가 쟁반을 들고 혜동 대사의 앞에 다가오자, 혜동 대사는 들고 있던 염주를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태감과 시녀를 비롯해, 안에 있는 모두는 염주 위에서 빛을 발하는 불광(佛光)을 볼 수 있었다. 척 봐도 엄청난 보물이 분명했다.

태감이 쟁반을 조심스럽게 황제와 태후의 앞에 가져가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후께서 먼저 고르시지요.”

황제가 이렇게 말하자 태후는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염주를 골랐다. 태후는 손에 염주가 닿자마자, 요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긴 두려움과 초조함이 확 줄어든 걸 느꼈다.

잠시 후, 황후와 여러 비빈은 모두 각자 염주를 하나씩 나눠 가졌다. 그러자 황후는 초조한 기색이 훨씬 가라앉은 얼굴로 즉시 염주를 손목에 찼다.

“모두 염주를 차 주십시오.”

혜동 대사는 이렇게 말하며 황제와 태후, 그리고 여러 비빈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는 마치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살펴보는 듯했으나, 실은 혜비를 좀 더 주시해서 보고 있었다. 곧이어 혜비를 포함한 모두가 손목에 염주를 찼지만, 혜비에 새하얀 손목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선재 대명왕불, 참선하여 현묘한 무량법(無量法: 한량없는 법)을 깨달으니, 혜신(慧身: 부처의 몸의 한 부분을 이르는 것으로, 원만하고 밝은 지혜로 법성을 달관한 상태를 뜻함)이 보리수에…….”

낮게 읊조리는 불경 소리가 영안궁에 울려 퍼지자, 그것은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궁전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분명 혜동 대사 홀로 불경을 외는 데도, 사찰의 모든 승려가 그와 함께 외는 듯했다. 동시에 그들이 앉은 실내가 환히 밝아지며, 손목에 찬 염주에도 빛이 흘렀다.

한참 뒤에 혜동 대사가 불경을 모두 외고 난 뒤에도, 실내에는 불경 소리가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

* * *

반 시진 뒤, 일종의 법사(法事)나 다름없었던 의식이 끝나자, 혜동 대사는 초여언 등과 함께 다시 역관으로 돌아갔다. 그는 곧 이것보다 더 크고 진정한 의미의 법사를 준비해야 했다.

한편, 피향궁(披香宮)에서는 미소 띤 얼굴의 혜비가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모든 태감과 시녀를 내보낸 뒤, 가장 신뢰하는 궁녀 두 명만 남겨두었다.

그러자 혜비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손목에 찬 염주를 뜯어내듯 잡아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뒤이어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혜비의 하얗던 손목 위에 그을린 듯한 괴이한 흔적이 생겨났다.

“빌어먹을 중놈, 이 정도의 도행이 있었을 줄이야!”

“마마, 이제 어쩌지요?”

“그 승려를 처리해야 할까요?”

혜비의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그녀는 그을린 손목을 연신 문지르면서 이를 갈며 말했다.

“그들에게 전해라. 그 승려와 초여언 모두 역관에서 죽어야 한다고. 초여언의 죽음은 연량국의 정세를 어지럽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가 말해 줄 필요 없겠지?”

* * *

초여언, 육천언과 혜동 대사 세 사람은 함께 입궁한 사신단을 데리고 역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육천언은 말을 탄 채 다른 호위들을 따라 마차의 안전을 지켰다.

한편 마차 안에 있던 초여언은 궁금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혜동 대사에게 물었다.

“혜동 대사, 조금 전 궁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러자 혜동 대사가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여우 요괴는 절대 얕볼 수 없겠습니다. 보리수로 만든 염주를 찼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걸 보니, 소승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게 분명합니다.”

“염주는 그 요괴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던 건가요?”

혜동 대사의 말에 초여언은 즉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계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비록 그럴 가능성은 작지만, 만약 계 선생님께서 함께 오시지 않았다면 어쩌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