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머리맡의 요괴
이때 황궁 안에서는 천보국 황제가 피향궁에서 혜비를 안고 단잠에 빠져있었다. 두 사람은 알몸으로 살을 맞대고 있었는데, 황제는 그것이 무척 편안했다. 황제는 대부분의 밤 동안 혜비를 안고 잠이 들었고, 그러다 밤중에 잠이 깨면 슬슬 손을 움직이기도 했다.
이때 황제는 잠이 든 듯 깬 듯도 한 몽롱한 상태에서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그 순간 멀리서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댕…… 댕…… 댕…….
이에 황제가 천천히 눈을 뜨니 달빛이 창을 통해 침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 누운 혜비를 보자, 달빛 아래 뽀얀 살결이 드러나 있었다. 황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혜비의 몸을 만져보았다. 그렇게 혜비의 등을 쓰다듬던 황제는 돌연 몸을 떨었다.
어쩐지 촉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던 황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그곳을 살폈고, 곧 황제의 심장은 떨어질 듯 덜컹했다.
“이, 이게……?”
황제는 호흡이 급해지며 당황한 얼굴로 침상 곳곳을 살폈다.
‘염주, 염주가 어딨지? 내가 대체 그걸 어디다 놨지!’
“폐하, 무얼 찾으십니까?”
혜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황제는 놀라 몸을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황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느꼈다. 혜비의 얼굴은 온통 가느다란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코와 입은 삐죽 튀어나왔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있었다. 코 옆에는 여우의 길고 가느다란 코털이 나 있었으며 여전히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는 하얀 여우의 귀 두 개가 솟아있었다.
이게 언제나 온화하고 단정하던 혜비란 말인가? 이건 분명 요괴였다.
“폐하, 어찌 그러십니까?”
“아악!”
그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누워있던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던 황제는 눈이 어두운 실내에 적응하자 곧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꿈속에서와 같은 침상, 같은 달빛이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보니 혜비는 여전히 온화하고 아리따운 얼굴 그대로였고, 피부도 수분을 잔뜩 머금은 것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폐하, 어찌 그러십니까?”
갑자기 혜비의 목소리가 들리자 황제가 놀라 흠칫했다.
“별, 별일 아니오. 고(孤), 고가 악몽을 꿨소…….”
천보국 황제는 창백한 얼굴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입술을 덜덜 떨면서 더듬거렸다. 혜비는 황제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걱정스러워하며 더욱 온화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하지만 황제는 혜비의 얼굴 위로 여우의 모습이 겹쳐 보여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폐하, 어찌하여 땀을 이리 많이 흘리십니까! 신첩이 닦아드리겠습니다.”
“아…….”
황제는 피하지도 못하고 잔뜩 긴장한 채로 혜비의 다정한 손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쿵쿵 뛰는 심장은 도통 가라앉질 않았고,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그러다 그는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얼른 혜비의 손을 밀어냈다.
“사랑하는 혜비, 고(孤)가 볼일이 급하여 측간에 좀 가야겠소.”
황제는 이렇게 말하며 침상에서 일어나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혜비는 그의 뒤에서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다정스레 말했다.
“폐하, 볼일이 급하시면 관방(官房: 변기통)을 가져오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황제는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신었다. 그는 고개는 돌리지 않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평정을 찾은 후였다. 이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그대가 머무르는 피향궁의 침전이 아니오. 그러니 고가 직접 측간에 갔다 오는 게 낫겠소.”
황제는 신발을 신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꿈속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염주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연 어찌 된 일인지 떠올랐다. 혜비와 정을 나누기 전, 그녀가 차마 불가(佛家)의 성물에 불경을 저지를 수 없다며 염주를 잠시 태감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그 말에 따랐던 것이다.
“폐하, 밖이 추우니 외투를 걸치세요.”
혜비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황제의 뒤에 서서 어깨에 대창(大氅: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입는 외투)을 걸쳐주었다. 그러자 황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웃으며 가볍게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고는, 침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서둘러 방문을 닫았다.
그러자 바깥에서 대기하던 태감이 황제가 나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휴식을 취하던 난방(暖房: 난방 설비가 되어 있는 방)에서 달려 나왔다.
“폐하, 분부하실 것이 있으신지요?”
황제는 좋지 못한 안색으로 소리 낮춰 물었다.
“고의 염주는 어디 있느냐? 혜동 대사가 주고 간 염주말이다!”
“아, 난방 안에 있습니다.”
“어서 가서 가져와라. 조용히!”
“예, 예.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황제는 곧바로 태감을 따라 난방으로 향했고, 태감이 염주를 갖고 나오자 허겁지겁 그것을 손목에 찼다. 그러자 심리적인 작용인지 아니면 혜동 대사의 말이 사실이었는지는 몰라도, 신기하게도 염주를 차자마자 초조함과 두려움이 가라앉았다.
황제는 심호흡한 뒤, 아무런 말 없이 소매를 떨치고는 성큼성큼 떠나갔다. 그러자 태감도 얼른 황제의 뒤를 따라갔다. 황제는 측간에 들른 후에도 피향궁의 침전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침전으로 향했다.
앞에서는 소태감 두 명이 등롱을 들고 길을 밝혔고, 걸음을 서두르는 황제의 뒤로는 그의 측근 태감과 대내(大內: 황제가 거처하는 곳) 시위가 따랐다. 피향궁에서 나와 꽤 멀어진 후에도 황제는 전혀 걸음을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각 궁으로 갈라지는 교차점에 이르자 황제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지금 시각이 어찌 되느냐?”
그의 물음에 노태감이 즉시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축시(丑時: 오전 1시~3시)가 반이 지났습니다.”
황제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조금 전 꾸었던 악몽은 시간이 지나면서 황제의 머릿속에서 더욱 또렷해지기만 했다. 그는 눈썹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려 태감에게 말했다.
“어명이다.”
그러자 태감은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귀를 쫑긋 세우고 조용히 기다렸다.
“혜동 대사에게 입궁을 명한 뒤 어서방에서 고를 알현하도록 하라. 서둘러라.”
황제는 혜비가 요괴라고 믿고 싶진 않았지만, 왜인지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는 혜동 대사를 청해 해몽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대사를 피향궁으로 데려가 자세히 살펴보게 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외국에서 온 사신을 불러오는 건 예에 어긋났지만, 태감으로서 황명에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차마 황제에게 시간을 일깨워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쨌든 분명 자신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태감은 어명을 받들고 곧장 궁문 방향을 향해 떠나갔다. 황제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어서방으로 향했다. 지금은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홀로 침전에 들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노태감은 나는 듯이 걸음을 서둘러 마침내 황궁의 정문에 다다랐다. 그러자 문을 지키던 금군이 어명을 전해 듣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쿠궁……!
끼이익-!
궁문이 천천히 열리고 태감이 첫 번째로 발견한 것은, 흰 승복에 붉은 가사를 입고서 달빛 아래 서 있는 혜동 대사였다.
이를 본 태감은 놀라 일순 멍해졌다.
“어찌 된 일인가?”
황제를 모시는 대태감이 안에서 나오며 이렇게 묻자, 대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금군 하나가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공공께 아룁니다, 혜동 대사께서는 이각(30분) 전부터 여기에 서 계셨습니다. 대사께서는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으나, 궁문이 닫힌 시각이라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아시고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하셨습니다.”
혜동 대사는 원래 두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는데, 이때 천천히 눈을 뜨더니 궁문 앞에 서 있는 노태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재 대명왕불, 소승 궁중에 돌연 요기(妖氣)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불안한 마음에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공, 소승을 부르러 나오신 것이지요?”
노태감은 그제야 어명이 떠올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상께서 혜동 대사를 모셔오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소인을 따라오시면 됩니다!”
“음, 일이 긴박하니, 소승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공공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혜동 대사는 말을 마친 동시에 눈 깜짝할 사이에 노태감에게 다가와 그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질풍과 같은 속도로 황궁 안의 도로를 지나쳤다. 노태감은 눈앞의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쳐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몰아쳐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았다.
잠시 후, 혜동 대사는 노태감을 데리고 함께 어서방 바깥에 이르렀다. 어서방 근처를 지키던 시위들은 갑작스레 바람을 몰고 인영이 나타나자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챙, 챙!
“누가 감히 어서방에 침입하려는 것이냐?”
“멈, 멈추시오! 혜동 대사는 황상의 부름을 받고 오셨소!”
노태감은 몹시 놀란 상태였으나 그래도 임무를 잊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어서방 안에서 초조해하며 기다리던 황제는 바깥의 소란과 태감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달빛 아래서 유난히 더 눈에 띄는 민머리의 혜동 대사가 보였다.
그때 노태감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와 이렇게 상황을 설명했다.
“폐하, 소인이 혜동 대사를 청하여 출궁하려는 찰나 대사께서 이미 궁문 밖에 서 계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을 지키던 시위를 말을 들어보니, 대사께서도 황궁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선재 대명왕불. 소승, 요괴를 처리하러 왔습니다.”
혜동 대사가 이렇게 말하자 황제는 불안하던 마음이 즉시 가라앉았다.
“혜동 대사, 잘 오셨소이다! 고가 조금 전에 악몽을 꿨는데, 침상 곁에 요괴가 누워있는 게 아니오? 게, 게다가 그것이 여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소…….”
혜동 대사가 엄숙한 얼굴로 황제의 손목에 있는 염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낮에 소승이 보리수의 가지로 만든 염주를 후궁의 비빈들께 바친 것은 바로 그 정체를 숨긴 요괴를 꾀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기척을 잘도 숨겼더군요. 낮에도 희미한 요기만 감지했을 뿐, 하마터면 소승도 속을 뻔했지요.
그러다 밤이 되자 요괴도 더는 버티지 못했는지, 그중 한 염주에서 소승이 기이한 낌새를 찾아냈습니다. 폐하, 꿈속의 상황과 더불어 의심 가는 대상이 있으시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황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안색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꾼 악몽과 의심 가는 대상을 말했다.
일각 후, 궁중 곳곳의 금군과 시위들이 각기 등롱이나 횃불을 들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소란에 궁인들은 모두 놀라 잠에서 깼고,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보이자 감히 나가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직 태후와 황후 등 후궁 안에서도 지위가 높은 이들만이 황궁 안의 병력이 지금 요괴를 잡으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