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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650화 (650/892)

650화. 너무 낮잡아 봤구나

한편, 피향궁 안에 있던 혜비는 그다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가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저러지?”

그때, 바깥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혜비가 깜짝 놀랐다.

“여봐라, 바깥에 대체 무슨 일이 난 건지 알아보아라.”

그러자 궁녀 하나가 즉시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피향궁을 나서자마자 곧장 금군에게 가로막혔다. 바깥은 횃불과 등롱으로 인해 대낮처럼 환했고 병사들의 살기(煞氣)가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이때 혜동 대사와 금군 통령(統領)은 진열의 맨 앞에 서 있었다.

“대사,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선재 대명왕불, 통령께서는 병력을 지휘해 피향궁을 포위해 주십시오. 그 외 다른 것은 소승이 처리하겠습니다.”

혜동 대사는 이렇게 말한 뒤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그의 합장한 손안에서 법전 두 닢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에게서 전에 없이 강력한 불성(佛性: 중생이 부처가 될 성질)과 불력(佛力: 부처의 위력 또는 공력)이 솟구쳐올랐다. 이에 혜동 대사는 가볍게 흥분에 찼지만, 불심으로 이를 차분히 다스렸다.

강력한 불력이 치솟음에 따라 혜동 대사의 몸에서 금색 빛이 쏟아져나왔고, 곧 그와 똑같은 얼굴에 누각처럼 거대한 승려의 허상이 그의 등 뒤로 떠올랐다. 승려의 머리 뒤로 일곱 가지 빛깔의 광륜(光輪: 둥근 빛)이 떠올라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명왕불의 정법(正法) 사악한 요마를 처리하러 왔노라. 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옴…… 마…… 니…… 반…… 메…… 훔…….”

화앗-!

불광이 밝게 빛나며 혜동 대사가 진언(眞言: 부처와 보살의 덕이나 가르침을 간직한 불교의 주문)을 외자 그 소리가 하늘과 땅을 울릴 듯이 크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금군을 포함한 다른 궁인들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하지만 피향궁 내 침상 위에 반나체로 앉아있던 혜비는 돌연 귀를 막고는 고통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아악! 저 빌어먹을 중놈이, 으윽……! 당장 죽여주마!”

계속해서 진언이 울리자 분노가 솟구친 혜비는 그 영향으로 둔갑한 형상마저 유지하지 못했다. 혜비의 형상은 기이하게 비틀리더니 곧 사람으로 둔갑한 도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도운에게서는 뾰족한 손톱이 길게 튀어나왔고 두 눈에는 붉은빛이 번뜩였다. 도운은 두통을 참으며 분노에 찬 얼굴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피향궁 밖에 거대한 승려의 형상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분노로 들끓던 도운의 마음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혜동 대사는 오늘 밤 죽었어야 하는 것을 떠올렸다.

‘설마 그들이 전부……?’

도운이 그 거대한 형상에 즉시 경계심을 느끼고 주저하는 순간, 그 승려가 도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괘씸한 요물이로구나, 감히 중생을 미혹하고 속세를 어지럽히다니! 부처께서는 자비로우시니, 내 너를 친히 제도해주마.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러자 그의 등 뒤에 떠 있던 불광이 앞으로 모여들더니, 곧 혜동 대사는 피향궁을 향해 장법을 날렸다.

후욱……!

그러자 주위에 광풍이 일며 거대한 소리가 쾅하고 났다. 동시에 피향궁의 기와가 덜덜 진동했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일었다. 외곽에 서 있던 금군들조차 온몸으로 광풍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도운은 거의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했다. 이 장법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굳이 당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서 원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내 본모습을 보고 싶으냐? 네놈은 아직 그럴 자격이 안 된다!”

도운은 이렇게 소리쳤지만, 대사와 맞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른 동료들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니 그녀로서는 후퇴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도운이 재빨리 속으로 법결을 외자 도운의 형체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황궁 전체에 은은한 빛이 솟구치더니, 도운이 무언가에 튕겨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히히히…….”

“하하하하하!”

괴이쩍은 웃음소리와 함께 도망치지 못한 도운은 공황에 빠진 얼굴로 공중을 두리번거렸다. 상황을 보니 자신이 어떤 진법 안에 갇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왕 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니, 그럼 내가 직접 그렇게 만들어주마!”

법전이 하나씩 차례로 사라지며 혜동 대사의 주위로 불광이 더욱 찬란해졌다. 황궁의 반이 이미 그 금빛에 뒤덮였을 정도였다. 거대한 승려의 형상이 두 손으로 결인을 맺자, 공중에 거대한 ‘만(卍)’ 자가 나타났다.

혜동 대사는 본인의 도행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설령 계연이 준 법전이 있다한들 이 요괴와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심신이 소모되기만 할 테니, 그럴 바에야 곧바로 일격을 가하는 것이 나았다.

“옴…… 마니…… 반메…… 훔…….”

쿠구구궁……!

땅 표면이 진동하며 기류가 어지러워졌고, 주위는 어두운 밤에서 갑자기 대낮이 된 것처럼 보였다.

진언과 불인(佛印)이 더 압박해오자, 도운은 심장이 마치 명왕의 커다란 손에 붙잡힌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실수를, 그것도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 승려의 도행을 너무나 낮잡아 본 것이다. 이 정도로 높은 도행과 고강한 법력이라면, 어느 경지를 넘어선 승려임이 분명했다.

‘만(卍)’ 자로부터 흘러나온 불광(佛光)은 만 장을 넘게 퍼져나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보였다. 하지만 피향궁을 포위한 금군들은 그 빛에도 전혀 눈이 따갑지 않고 오히려 빛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혜동 대사의 위엄 넘치는 불음(佛音)이 주위에 메아리치자 그들은 사기가 높이 치솟는 걸 느꼈다.

이 빛은 금군과 다른 궁인들에게는 무척 온화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도운에게는 마치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빛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바늘처럼 느껴졌다. 이 빛은 무척 따가웠을 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 그을린 자국을 남길 정도였다.

“천강불광(天降佛光: 불광이 하늘에서부터 강림하다), 받아라!”

혜동 대사의 쩌렁쩌렁한 불음이 황궁 전체에 퍼졌고, 불광으로 뒤덮인 그의 몸에서는 근육이 솟아오르고 푸른 힘줄이 일어났다. 대사는 손안의 불인(佛印)으로 인해 느껴지는 압력을 견뎌냈다.

다음 순간, ‘만(卍)’ 자가 맹렬한 기세로 떨어져 내렸고, 불광은 조금 전보다 훨씬 눈부시게 빛났다. 피향궁을 비롯한 황궁 전체에서는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는데, 사실 궁전들은 살짝 떨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순간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두려움은 사실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크르릉!”

요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피향궁에서부터 들려왔다.

여섯 개의 흰 꼬리가 하늘로 치솟더니, 피향궁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거대한 꼬리가 주위를 훑을 때마다, 궁전 지붕의 기왓조각이 우수수 떨어지고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쿵, 쿵……!

콰광!

흙먼지 속에서 거대한 여우 한 마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여섯 개의 흰 꼬리는 하늘을 향해 바짝 솟은 채, 떨어진 ‘만(卍)’ 자를 떠받치고 있었다. 기름에 물에 떨어질 때 나는 것 같은 치직대는 소리가 그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무궁무진한 요기(妖氣)가 불광과 부딪치며 안개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기류의 파도를 만들어냈다.

콰직- 콰지직-!

여우가 네 발을 살짝 구부린 채 버티자, 황궁 바닥에 깔린 석판에 금이 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요괴의 몸이 감내하는 압력을 땅 표면이 그대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사, 저는 옥호동천의 여우로, 불문(佛門)과도 관계가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황실에 해를 끼치지 않았고,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천보국 황제의 비가 된 것은 오히려 천보국의 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사께서는 불문의 고승(高僧)이신데, 어찌 이리 시비곡직도 따지지 않고 저를 공격하십니까?”

안타깝게도 혜동 대사는 옥호동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옥호동천의 이름을 댄 것만 봐도, 그는 그곳이 대단한 곳이라는 걸 충분히 추측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혜동 대사는 전혀 옥호동천의 체면을 봐줄 생각도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설령 그곳이 정말 대단한 곳이라 해도, 자신도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의 뒤에는 계 선생과 불인 명왕께서 계셨다.

그래서 도운이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아도 혜동 대사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혜동 대사의 몸에 숨긴 법전이 하나씩 사라지며, 불법의 힘이 점차 강해지자 도운이 받는 압력은 더욱 심해졌다.

‘만’ 자의 금빛은 점점 휘황찬란해졌고, 그에 따라 도운이 받는 압력도 커지자 그녀는 이를 꽉 문 채 버텼다. 이제는 말을 할 여력도 없었고, 온몸의 뼈와 근육에서는 잔뜩 짓눌리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고통도 점점 심해져,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의 ‘만’ 자가 어느 순간 거대한 금색 발우(鉢盂: 사발처럼 생긴 승려의 밥그릇)가 되어있었다.

‘금발인(金鉢印)이야! 망했다!’

그것을 발견한 도운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어쩐지 압력이 엄청나더라니! 도운이 다시 자신의 꼬리를 바라보니, 여섯 개 중 몇 개는 이미 금색 발우 안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대사, 어찌 이리 마음이 모지십니까? 저에게 살길을 조금이라도 열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도운은 마음이 급해져 재빨리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승려는 불법이 높고 심오해 자신이 상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바깥에는 진법 혹은 금제를 걸어놓았기 때문에, 자신은 그야말로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신세였다. 그러니 궁인들과 도성 백성들의 목숨을 걸고 협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처께선 자비로우시니, 소승이 너를 직접 제도해주마!”

혜동 대사의 말을 들은 도운은 화가 뻗쳐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요기가 화염처럼 치솟고, 온몸의 요력(妖力)이 폭발했다.

“크릉……! 날 제도하겠다고? 그렇다면 도성의 모든 이들을 함께 데리고 가 주겠다!”

도운은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 올려 피향궁의 건물을 훑으며 무너뜨린 후, 날카로운 요광(妖光)을 일으키며 피향궁을 포위한 금군을 향해 휘둘렀다.

휘이익-!

그러자 광풍이 불기 시작하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피향궁 주변을 둘러쌌던 모호한 빛이 도운의 날카로운 요광과 부딪쳐, 휘어지기도 하고 공중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땅 표면에는 마치 거대한 쟁기가 지나간 것처럼 길고 깊은 골짜기가 파였다. 피향궁을 포위한 금군들이 들고 있던 횃불은 광풍에 의해 불씨가 꺼졌고, 병사들이 입은 갑옷도 찢겨 나가, 많은 이들이 중상을 입었다. 개중에는 바닥에 쓰러져 구르는 이들도 있었다. 곳곳에서 고통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 전열을 유지해라! 물러나지 마라! 명을 거역하면 머리를 벨 것이다!”

금군통령이 검을 들어 올린 채로 진기(眞氣)를 끌어올려 가장 앞에 서서 크게 소리쳤다. 금군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상을 입은 이들은 전열의 뒤로 보내져 즉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날카로운 요광은 무엇인가에 부딪쳐 대부분 튕겨 나갔기 때문에, 금군을 향해 뻗어져 나간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병사들이 내뿜는 살기와 부딪혀 그마저도 산산이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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