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51화 (651/892)

651화. 병사들의 살기는 화염이 되고

“허억…… 헉…….”

여우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생각보다 공격의 위력이 너무 떨어진 것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요광은 무언가에 한 번 튕겨 나간 데다가 뒤이어 금군의 살기와 부딪쳐, 금군에게 이르렀을 때는 광풍과 거의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피향궁을 벗어난 주위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었고, 황궁 전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혜동 대사는 눈썹을 찡그린 채 법전 몇 개의 힘을 또 끌어다 썼다. 그렇게 계속해서 불경을 외자 금빛 발우가 더욱 크기를 키웠다. 이제 거대한 금빛 산처럼 변한 발우는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굳건히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크릉…… 크그그…….”

도운은 꼬리와 발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욱 커진 것을 느끼고, 쉼 없이 요력을 끌어올려 이에 맞섰다. 요광과 광풍이 쉬지 않고 피향궁 주위를 훑고 지나갔고, 금군들은 그때마다 상처를 입거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통령은 그런 공격에도 끄떡없이 맨 앞줄에서 그들을 통솔했고, 상처 입은 이들을 뒷줄로 보내 치료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어쩐 일인지 점점 기세가 올라 곧 살기 충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그들은 박자를 맞춰 무기로 땅을 두드리며 들끓는 기세로 이렇게 소리쳤다. 2천여 개의 창극(槍戟: 창은 날붙이 끝이 하나이고, 극은 끝부분이 두 개로 갈라져 있음)이 바닥을 내리치자, 그 폭발적인 소리가 혜동 대사의 불경 외는 소리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쿵, 쿵, 쿵, 쿵!

상서롭고 온화한 불광이 내리쬐는 가운데, 병사들의 살기는 점점 충만해졌다. 금군 병사들의 태반은 피를 흘리면서도 오히려 살기가 치솟아, 마치 무기가 부딪치고 화염이 불타오르는 듯한 기세를 내뿜었다.

“죽여라!”

“죽여라!”

계연은 근처 궁전의 지붕 위에 서서, 미풍을 받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불광과 살기가 충천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운의 요기는 이미 완전히 짓눌린 상태였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네놈들을 곱게 살려두진 않겠다!”

공황에 빠진 도운은 미친 듯이 포효하며 입에서 흰빛에 감싸인 동그란 구술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은빛 한 줄기가 번쩍이며 구슬을 치고 지나가 다시 도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아아악!”

도운의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온몸의 힘이 이 일격에 태반은 뽑혀 나간 듯해, 더는 금빛 발우를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도운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큰소리로 인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 부부로 단 하루를 살았어도 그 정은 평생을 간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폐하, 제가 비록 여우 요괴이긴 하지만, 천하에 손꼽히는 영호(靈狐)이고 폐하를 진심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폐하와 부부가 된 후로, 갖은 방법을 써서 폐하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고, 그저 요괴의 몸으로 폐하께 자손을 낳아드릴 수 없는 것을 늘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승려가 저를 죽이려 합니다. 폐하께 품은 제 깊은 정을 봐서라도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폐하……. 너희들은 천보국의 병사들인데, 어찌하여 저 승려와 결탁하여 폐하의 비빈을 해하려 하느냐? 내 그동안 너희 중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거늘…….”

애처롭기 그지없는 호소에 금군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동요를 드러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황제는 그 처량한 목소리에 마음이 아파 와 참지 못하고 피향궁 방향으로 향했다.

“폐하, 폐하, 가시면 아니 됩니다!”

“폐하, 저곳은 지금 요괴를 상대하는 중이니 위험합니다!”

“폐하, 요괴의 말에 현혹되시지 마십시오!”

황제를 지키던 태감들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하나같이 앞으로 나가 황제의 길을 막아섰다.

“폐하! 아아악……!”

쿠궁……!

그때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금빛 발우가 마침내 땅으로 떨어져 여우를 그 안에 가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고통에 찬 처참한 비명과 귀를 찢을 듯한 광풍이 한순간에 뚝 끊겼다. 그저 찬란한 금빛이 사라진 발우만이 피향궁 폐허 위에 남아 있었다.

혜동 대사는 이렇게 강력한 불문의 법인을 처음으로 써본 것이었지만, 발우의 형태가 그 약점이 된다고 여기진 않았다. 이 지경까지 왔으니 어쨌든 여우도 땅으로 숨어들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후우…….”

혜동 대사는 희미하게 떨리는 호흡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서는 여전히 불광이 빛나고 있었고, 등 뒤의 일곱 빛깔 광륜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때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껴 몸이 살짝 기우뚱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누구도 지금 그가 모든 힘이 다 빠진 상태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천보국 황제가 마침내 피향궁 바깥에 이르렀다.

“황제 폐하 납시오!”

태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피향궁을 포위한 금군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열었다. 황제를 따라온 태감과 시위들은 이 금군들 대부분이 상처를 입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모두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힌 듯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는데, 피를 흘리면서도 그 흥분된 얼굴과 고양된 사기를 숨기지 못했다.

피향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하지만 은은한 빛을 뽐내는 금색 발우였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불광으로 빛나고 있는 혜동 대사였다.

“혜동 대사, 혜비는……?”

황제는 혜동 대사에게 다가가며 약간 낙담한 기색으로 물었다. 조금 전 혜비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애걸하는 말에 그는 마음이 괴로워졌고, 왠지 모르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혜동 대사는 호흡을 고르게 한 뒤 황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선재 대명왕불. 폐하께서는 부디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 요괴는 꼬리가 여섯 개 달린 여우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는 데 무척 능합니다. 그 요괴는 사실 오늘 밤 다른 요사한 것들을 불러들여 소승을 죽이고 도성에 소란을 일으키려 하였습니다. 또한 황후께서 몇 차례나 유산하신 것도 전부 그 요괴의 소행입니다. 그에 더해 그것은 일찍부터 천보국의 산하(山河)를 어지럽힐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오늘 그 요괴가 이런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며 손을 뻗자, 피향궁 중앙의 거대한 금색 발우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원래의 크기대로 돌아와 혜동 대사의 손에 떨어졌다.

혜동 대사가 수많은 법전을 소모해가며 굳이 발우를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발우가 깨지거나 자신의 불법이 완전히 소모되지만 않는다면 이 발우는 계속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 흩어져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발우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혜동 대사는 자신의 불법을 이용해 이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 피곤할지는 몰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혜동 대사가 발우를 손에 쥔 순간, 계연의 의식 세계 안에서는 별이 된 바둑돌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 단로 안에서는 단기가 가느다랗게 한 줄기씩 바둑돌을 향해 흐르는 게 아니라, 많은 양이 단로 안에서 치솟아 공중에 뜬 바둑돌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물었지만, 예전에도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가장 처음은 아직 영안현에서 훈장 노릇을 하던 윤재성에 의해 일어났었다.

그래서 이번 바둑돌의 변화에도 계연은 자연히 마음이 움직였다. 이에 계연이 의식 세계에 정신을 집중해보니, 하늘에 점점이 별처럼 반짝이는 바둑돌들이 눈에 띄었다.

백돌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흑돌은 밤하늘에 동화되어 그윽한 빛을 내뿜었다. 혜동 대사를 대표하는 바둑돌은 단기에 휩싸인 채로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자 여러 바둑돌도 함께 흰빛과 어두운 빛이 섞여 빛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실체가 갖춰진 바둑돌들이었다.

의식 안 상공이 빛으로 환해지자 계연은 주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많은 바둑돌을 발견했다. 그 수량은 공중에 자리한 흑돌과 백돌보다 많았다. 하지만 점차 빛이 약해지자, 그 모호한 형태들도 밤하늘에 녹아들어 완벽히 사라졌다.

계연의 법상(法相)은 이때 의식 세계 안에서 하늘을 떠받치듯이 우뚝 서 있었다. 법상이 손만 뻗으면 하늘 위의 별들에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계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살짝 고개를 들어 이 ‘별’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혜동 대사의 바둑돌이 금색으로 빛난 것은, 혜동 대사의 불광(佛光)이라기보다는 보리수의 지혜를 뜻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빛이 다른 별들로부터 빛을 끌어낸 덕분에 계연은 빛과 암흑, 정(正)과 사(邪)의 구분이 없는 ‘숨겨진 별(隱星)’들을 볼 수 있었다.

저것은 계연과 얽힌 깊든 얕든, 인연이 닿았던 모든 중생을 대표했다. 사람도 요괴도 가리지 않고 모두 말이다.

저 별들이 진정한 바둑돌이 되려면, 아마도 계연의 승낙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어떤 사건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별이 상징하는 이들의 성장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숨겨진 별’이라지만 계연은 각각의 다른 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계연은 이에 대해 일찍이 추측한 바가 있었는데, 오늘 의식 세계를 관찰한 후에는 더욱 추측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이로 인한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

계연은 저 별들을 즉시 바둑돌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는 모든 일은 순리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기도(棋道: 바둑의 도)의 음양에서 만물이 파생된다(棋道陰陽而生發萬物: 바둑돌 중 흑과 백이 음양을 상징하고, 이로써 천지(바둑판)를 수놓는 게임이기 때문)’는 말은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전에 계연은 이 바둑돌들이 각각 한 사람이나 사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잘 관찰하고 함양하다 필요한 상황에 바둑판에 내려놓으면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떤 바둑돌은 상황이 조금 특수했다. 예를 들면, 좌씨 일가를 대표하는 바둑돌처럼 말이다.

이제 계연은 더욱 명료하게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바둑돌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사물을 대표할 수는 있겠지만, 생겨난 바둑돌을 바둑판에 내려놓기까지, 그 바둑돌이 계속해서 처음의 대상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바둑돌은 천지자연의 오묘함을 따라 생겨나고 성장했다. 두형과 연비 같은 강호의 협사들이 설령 바둑돌이 되었다고는 하나 평범한 이의 수명이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연비는 혹시 범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도의 길을 찾아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계연도 좌무극을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족이 대를 이어나가고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피가 이어지듯, 바둑돌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백 년 후에는 두형도 왕극도, 심지어 연비도 없겠지만, 그들이 강호에 남긴 흔적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지나간 것을 이어받아 미래의 것을 창조해나가고(承前啓後), 옛것을 답습해 새로운 것을 세우는 형태(踏舊立新)로 말이다. 혹은 또 다른 좌무극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짧은 사이, 계연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마치 번개처럼 나타나고 사라졌다. 다시 계연이 천천히 눈을 떠보니, 피향궁의 요기(妖氣)는 완전히 사라져 금발인(金鉢印)으로 만들어진 금색 발우 안으로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병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불광도 여전히 몽롱한 빛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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