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59화 (659/892)

659화. 사고 친 응약리

얼마 지나지 않아 손복의 목소리가 깊이 생각에 잠긴 응약리를 깨웠다.

“낭자, 여기 주문하신 국수하고 내장입니다.”

손복은 쟁반을 받쳐 들고 다가와, 국수와 내장 한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응약리는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꺼낸 뒤 면발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가만히 국수 맛을 음미하다가, 다시 내장을 집어 면과 함께 씹어 삼켰다.

손복은 내내 응약리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이 낭자는 보통 대갓집 규수들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호쾌한 태도로 식사를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국물 한 방울 바깥으로 튀지 않는 것이 무척 우아해 보였다. 그 모습은 어쩐지 계 선생님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손복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물었다.

“낭자, 국수 맛이 입에 맞으시는지요?”

응약리는 입에 있던 음식을 삼키고는 미소 지으며 손복에게 대답했다.

“네, 맛이 괜찮네요.”

“아, 그럼 다행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응약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 뒤 국수를 집어 먹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한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느끼기에 이 국수 맛은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선문이나 현궁(*玄宮: 수행을 닦는 장소)의 요리는 물론이고, 속세의 유명한 주루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잘 쳐 봐야 그저 그런 맛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입맛에는 조금 짜기까지 했다.

하지만 응약리는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였다.

‘계 숙부님께서 이 국수를 즐겨 드시는 것은 사실 이 분위기나 운치…… 혹은 어떤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때, 국수를 반 정도 비운 응약리가 돌연 젓가락질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약간 살집이 붙은 몸에 비단 장포를 입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 통통한 남자는 바로 위무외였는데, 시종일관 얼굴에 띤 미소는 옛날과 전혀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는 노점 안에 채 들어오기도 전에 손복을 향해 말했다.

“손씨, 국수 하나, 내장 하나 내주게. 설마하니 벌써 다 팔리진 않았겠지?”

“그럴 리가요, 아직 있습니다! 위 가주님, 일단 먼저 앉으시지요. 아, 참. 계 선생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손복은 위무외를 잘 아는 듯, 반갑게 인사하고는 얼른 요리를 시작했다. 반면 위무외는 그의 말을 듣고도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도 어차피 계 선생께서 집에 계시지 않을 거라는 걸 예측하고 온 것이었다. 어차피 열에 여덟, 아홉은 언제나 이랬으니, 이제 와 실망하고 말 것도 없었다.

위무외는 노점에 앉은 다른 손님들과 웃는 얼굴로 새해를 축하한다는 둥, 돈 많이 벌라는 둥 하는 인사를 나누다가 마침내 응약리를 향해 다가왔다.

“하하, 이쪽 낭자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돈 많이 버시고요!”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응약리도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서 이런 잔챙이 수선자를 만날 줄이야. 설마 옥회산 사람인가?’

위무외는 응약리와 정면으로 눈을 맞춘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저 수려한 용모의 여인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별안간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조금 전까지 그녀를 왜인지 아름답다고만 여겼다.

‘수행자구나. 게다가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야!’

위무외는 곧바로 이렇게 깨달았다. 그의 도행은 높지 않지만, 대신 안목은 그리 낮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응약리에게 살짝 허리를 굽히며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소인 위무외라 합니다. 낭자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하하, 이름이 정말 재밌네요. 가만히 들으면 꼭 ‘이모 왜?’처럼 들리잖아요.”

“아, 하하, 그렇군요…….”

만약 이런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위무외는 분명 기분이 언짢았으리라. 하지만 눈앞의 낭자가 이런 말을 하니 그로서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행의 수준으로 봐도 그러했고, 용모만 봐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위 선생, 싫지 않으시다면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응약리의 말은 마침 위무외의 뜻에도 맞았기 때문에, 얼른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러자 다른 쪽 식탁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역시 돈이 있으니 다르다는 등의 이야기를 소곤거렸다.

위무외는 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여인이 별로 개의치 않자 그도 곧 평정을 되찾았다.

“계 숙부님을 아세요?”

‘계 숙부?’

위무외는 멍하니 이렇게 생각했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압니다. 오래전에 계 선생님을 알게 된 후로, 연말이 되어 시간이 나면 선생님을 초대하러 직접 영안현에 오고 있습니다. 신년을 쇨 물건을 가져다드리기도 하고, 우리 집에 와서 새해를 보내시라고 초대하기도 합니다.”

“아…….”

응약리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위무외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조심스럽게 물었다.

“낭자께서는 계 선생님과…….”

“저는 그분의 질녀(*姪女: 조카딸)예요.”

“아, 그러셨군요.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위무외는 다시 한번 정중히 양손을 맞잡으며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계 선생님께 질녀가 있었다니, 혹시 다른 친척도 있는 걸까?’

하지만 응약리는 가만히 웃은 뒤 아무 말 없이 다시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계연은 구름을 타고 영안현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공에서부터 위무외와 응약리가 함께 국수를 먹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저 두 사람이 어쩌다 같이 있게 된 거지?’

그래서 위무외가 막 자기 몫의 국수를 받았을 때, 계연은 이미 두 사람 근처에 나타나 있었다.

“두 사람이 대체 어떻게…….”

계연의 목소리를 들은 응약리와 위무외는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는, 기뻐하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 숙부님!”

“계 선생님!”

“계 숙부님, 저희도 여기서 방금 만났어요. 어서 앉으세요. 약리도 숙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국수를 먹고 있었어요, 과연 맛있네요!”

손복도 마침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다가, 응약리의 말을 듣고는 기뻐하는 얼굴로 웃었다.

“선생님, 항상 드시던 대로 드릴까요?”

“예, 부탁드려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사람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러고는 자신도 같은 식탁의 빈자리에 앉아, 흘끗 위무외를 바라본 뒤 다시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응약리를 바라보았다.

“약리야, 무슨 일이 생겼느냐?”

계연은 응약리가 웬만한 일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영안현에는 더욱이 온 적도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통천강에 들른 걸 보고 뒤따라온 것이 분명했고, 무슨 일이 생긴 것도 확실해 보였다.

계연은 속으로 혹시 늙은 용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니면 용시충이 다시 나타난 건 아닐지 고뇌하고 있었다. 그러자 응약리가 그의 물음에 어색한 듯이 미소 짓고는 소리 낮춰 말했다.

“계 숙부님…… 약리가 이번에 작은 사고를 좀 쳐서, 아버지가 저만 다시 통천강으로 돌려보내셨어요. 제가…… 남해 공(共) 용왕의 아들인 공수(共綉)를, 불구로 만들었거든요.”

“불구로 만들었다고?”

“네…….”

응약리는 평소와 달리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표현하는 손짓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렇게 한번 잡으니 부서졌어요. 아마 대를 잇지 못할 거예요…….”

그 말에 계연은 미간을 맹렬하게 찌푸렸고, 이를 들은 위무외는 별안간 하체 부근이 스멀스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수도 있지.’

계연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사고를 좀 친 수준인가?’

계연은 애써 놀란 마음을 다스린 뒤, 다시 사건의 본질로 생각을 돌렸다. 그러고는 지금 공 용왕의 아들이 어떤 끔찍한 모습일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공수란 자가 대체 어쩌다 네 노여움을 샀길래?”

응약리는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이더니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계 숙부님, 용의 성정이 방탕하다는 말은 들어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비록 일부로 전체를 평가하는 면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공수는 남해 공 용왕의 장자이니,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애했다면 저도 뭐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진룡의 아들인 만큼 제가 아무리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드러내놓고 무안을 주진 못하니까요. 다만 최근 2년간 용족들의 모임이 잦아졌는데, 그동안 여기저기 낯부끄럽게 씨를 뿌리고 다니지 뭐예요? 그런 주제에 저를 찾아와 집적거리길래, 좀 얌전해지라고 한 번 패줬어요.”

응약리는 본래부터 존귀한 신분이니, 진룡의 아들을 좀 패줬다고 해서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공수 자신이 도행이 뛰어나지 않아 응약리에게 맞았으니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일반적인 싸움이었다면 응약리도 그런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계연은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위무외도 가만히 앉아 그녀의 말을 경청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응약리는 계연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걸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 숙부님께서 알지 모르겠지만, 용족에게는 전용결(纏龍訣)이라는 기술이 있어요. 이는 싸움 중에 상대를 제압할 때도 쓸 수 있고, 용의 형태로 교미하거나 사람의 모습으로 교합할 때도 쓰죠. 용들은 대부분 성질이 포악해서, 수컷들은 교미할 때 이 기술을 써서 암컷이 달아나거나 공격하는 걸 방지해요. 물론 암컷이 이를 써서 수컷용을 제압하는 때도 있어요.

그놈도 사실 이 사태를 자초한 거나 다름없어요. 어느 날은 저한테 사과하고 싶다며 불러내길래,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응했죠. 그런데 제가 방심한 사이 저한테 전용결을 쓰지 뭐예요? 그러면서 자기가 곧 직접 아버지를 찾아가 혼담을 꺼낼 테니, 얌전히 받아들이라고 하더군요, 흥…….”

응약리는 코웃음을 친 뒤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그놈이 자기 수준을 착각한 모양이에요. 아니면 제 도행을 얕잡아 보았던가요. 전에 저한테 얻어맞았던 게 우연인 줄 알았던 모양이죠. 그놈이 그렇게 저와 억지로 교미하려 하길래, 저도 화가 폭발해 그놈의 제압에서 빠져나와 중요 부위를 잡아채 부숴버렸어요.”

그녀는 이렇게 설명하면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이를 갈기도 했다. 위무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사타구니 근처가 차가워지는 걸 느꼈고, 계연마저 배 아래가 긴장으로 빳빳이 당겨졌을 정도였다.

설명을 끝낸 응약리는 다시 부드러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계연은 드물게도 살짝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공 용왕이 드러내놓고 저를 탓하진 않았고, 오히려 그 아들에게 크게 화를 내긴 했지만, 용족은 가족을 두둔하는 경향이 심하니 속으로는 분명 저를 미워하고 있을 거예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무척 화를 내셨지만, 공수의 상황이 좀 더 나쁘니 드러내놓고 화를 내진 못하셨어요. 그저 저를 통천강으로 돌려보내시고는, 백 년 안까지는 멀리 나가지 말라고 명하셨어요.”

그때, 손복이 계연과 위무외의 요리를 갖고 왔다.

“계 선생님, 위 선생님, 여기 두 분께서 주문하신 국수와 내장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소!”

계연과 위무외는 얼른 손을 뻗어 쟁반에서부터 그릇을 옮겨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손복은 허허 웃는 얼굴로 쟁반을 들고 가버렸다. 그는 조금 전까지 이들이 어느 사내든 들으면 두려워 식은땀이 날 만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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