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62화 (662/892)

662화. 늙은 용이 찾아오다

작은 글자들은 조낭의 주위에서 쉬지 않고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대추나무가 마침내 사람이 되었어!”

“아직 사람이라고 할 순 없지.”

“최소한 말은 할 수 있잖아.”

“맞아, 맞아. 이젠 말을 할 수 있어!”

“근데 왜 여인의 모습이지?”

“이 바보야, 대추나무는 열매를 맺잖아, 어떻게 사내의 모습이 되겠어?”

“일리 있네.”

“헛소리하지 마, 어르신께서도 저번에 대추나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던 거 못 들었어?”

“그러니까 말이야. 너희들이 어르신보다 똑똑해?”

작은 글자들은 조낭과 대추나무 근처를 돌아다녔고 때때로 묵광(墨光)이 반짝였다. 이를 보던 응약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종이학을 여러 번 만나기도 했고 계연에게 특이한 정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글자들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낭은 이제 막 정령이 되었고, 또 여인의 모습을 갖췄으니 아직 알아야 할 게 많을 거야. 약리야, 며칠 동안 네가 많이 가르쳐주렴. 나는 나가서 책을 좀 사 와야겠구나.”

“네, 심려치 마세요, 숙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거안소각을 나섰다. 그는 대추나무가 아주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낭은 처음으로 정령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니 속세의 예의 같은 것은 잘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조낭을 위해 책을 사러 가기로 한 것이다.

글자들이 흥분한 것에 비해, 이론상으로도 또 실제로도 가장 들떠야 마땅할 조낭은 반대로 조금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종이학과 작은 글자들을 마음 깊이 아끼고 있었으므로, 날아다니며 토론을 멈추지 않는 글자들과 함께 주위를 빙빙 돌기도 했다.

응약리는 비록 대추나무를 알게 된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조낭에 대해 이미 아주 친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 그만하고 여기 와서 앉아, 조낭. 지금은 그저 정령으로 변한 것뿐이지만, 그래도 이걸 네게 줄게.”

응약리는 이렇게 말하며 돌 탁자 위로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안개 섞인 바람이 불더니 곧 탁자 위로 붉은색의 정교한 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직접 조낭의 손을 끌고 와 함께 앉더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빗과 비녀, 정교한 장신구들이 들어있었다. 모두 진주나 바다의 진귀한 보석, 혹은 희귀한 산호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들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의해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종이학과 글자들은 단번에 몰려와 상자 주위를 감쌌다.

“호오, 이거 꽤 값어치가 나가겠는데?”

“당연하지, 전부 보석이잖아!”

“강신마마가 주는 거니 당연히 값진 것이 분명하지!”

“정말 예쁘네, 나도 마음에 들 정도야.”

“그러게!”

글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며 소리쳤고 조낭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응약리가 웃으며 물었다.

“네게 뭘 주면 좋을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걸 줬어. 조낭, 마음에 들어?”

조낭은 상자 자체도, 상자 안의 장신구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는 여인들이 대부분 이런 장신구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이학이나 글자들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마음에 들어요. 고맙습니다, 강신마마!”

“하하, 그냥 약리라고 불러. 첫눈에 서로 마음이 맞았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신분으로 따져도 너는 영근목인걸. 참, 이거 마음에 들면 다음번엔 몇 수레 더 보내줄게!”

그러자 쉬지 않고 재잘대던 글자들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종이학조차 고개를 들어 응약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야 응약리가 엄청난 부자임을 알아차렸다. 조낭조차 멍한 표정이 되었을 정도였다.

“약리마마, 정말 고맙습니다만 이 상자만으로 족해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가 없어요…….”

“뭘 사양하고 그래. 어차피 너무 많아서 둘 데도 없는걸!”

일각(一刻)쯤 뒤, 영안현의 한 책방에서는 계연이 직접 적당한 서책들을 고르고 있었다. 윤재성의 책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었고, 경전이나 역사책도 있었다. 그렇게 고르다 보니 거의 백 권에 가까워져, 계산대 위에 겹겹이 몇 층이 쌓였다. 이를 본 책방 주인의 얼굴에 함빡 웃음꽃이 피었다.

종이는 비싸고 책은 더 비싸다는 말도 있듯, 이렇게 많은 서책은 당연히 값이 꽤 나갔으니 책방 주인으로서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월 초하루에 문을 연 책방은 많지 않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오늘 문을 연 게 정말 다행이었다. 책방 뒤편은 바로 그가 사는 주택이어서, 사실 책방 문도 별다른 생각 없이 연 것이었다.

계연이 악기에 관한 책 한 권을 마지막으로 계산대에 올리자, 주인은 활짝 웃는 얼굴로 계연에게 말했다.

“손님께서는 정말로 박학다식하신 분이군요. 우리 영안현은 윤 공(公), 윤 문곡(文曲)의 고향으로, 여기서 책을 사시면 반드시 윤 공의 문기(文氣)를 담아갈 수 있지요!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격도 잘 쳐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손에 주판을 들고서 계산대 위의 책을 착착착 계산해나갔다. 계연은 주인이 자신을 외지인이라 여겼는데도 구태여 해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순간, 그는 돌연 마음속에 감응을 느끼고는 책방 밖으로 나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먹구름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우르릉……!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이런 한겨울에도 천둥 벼락이 칠 모양이었다.

“주인장, 언제쯤 계산이 끝나겠습니까?”

계연이 조급한 듯 밖에 서서 이렇게 묻자 책방 주인은 계속 주판알을 튕기며 고개도 들지 않고 급히 대답했다.

“곧입니다, 곧이요. 몇 권만 더 하면 됩니다.”

탁, 탁, 타닥……!

주인은 마침내 주판알 튕기는 걸 멈추고는 문가에 서 있는 계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다 됐습니다, 손님. 총 은자 두 냥에 3문(文)입니다만, 끝자리는 떼드리겠습니다. 은자 두 냥만 주십시오.”

계연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각기 1냥짜리 은덩이 두 개를 꺼냈다. 주인은 얼른 중량을 잰 뒤, 가격이 틀림없다는 걸 확인하고서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계연에게 말했다.

“손님, 책이 이렇게 많은데 전부 싣고 가실 마차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사람을 시켜 손님께서 머무시는 객잔이나 친지 집으로 보내드릴까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가게 밖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제가 타고 온 마차가 있잖아요?”

주인이 한번 내다보니, 과연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런데 분명 조금 전까진 못 봤던 것 같았다.

“아, 잘됐군요, 그럼 제가 손님을 도와 차에 실어 드리겠습니다!”

책방 주인은 계연과 몇 번 오가며 책을 모두 안에 실었다. 그런 뒤 마차가 떠나는 걸 배웅한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며칠 만에 벌 돈을 오늘 하루에 전부 번 셈이었다.

한편, 계연에게 당연히 타고 온 마차가 있을 리 없었다. 또한 책방 주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몇 번이나 책을 옮기려고 오가지도 않았다. 계연은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매 안으로 책을 모두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계연이 걸음을 서둘러 집에 돌아와 보니, 뜰에는 조낭과 응약리 말고도 응굉이 와 있었다. 아마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그는 조낭을 위아래로 살펴보는 중이었다. 반면 종이학과 작은 글자들은 전부 대추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하하하, 계 선생, 오랜만이구려! 법보(法寶)를 제련하며 음양오행의 변화를 담은 천서(天書)는 아직 시간이 없어 보지도 못했소!”

계연이 돌아온 것을 발견한 늙은 용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성큼성큼 걸어와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자 계연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천서는 내내 운산관에 보관 중이니, 보고 싶으실 때 언제든 가시면 돼요. 이번에 거안소각에 오신 것은 약리를 돌려보내기 위해서인가요?”

그러자 늙은 용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아니오. 오늘 이 늙은이가 온 것은, 선생을 청해 갈 곳이 있어서요. 혹 시간이 좀 있소?”

그러자 계연이 웃음을 거둬들이며 뒤돌아 대문을 닫았다. 그런 뒤 늙은 용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용시충 때문인가요?”

“꼭 그것뿐만은 아니오!”

그들은 막역한 사이였으므로 늙은 용이 오랜만에 찾아와서 하는 부탁을 계연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제 자신에게 응굉을 도울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선생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일이니, 저도 당연히 힘닿는 대로 도와야지요.”

“좋소! 이왕 그렇다면, 이 일은 서두를수록 좋으니 바로 출발합시다!”

이렇게 빨리? 계연은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이렇게 생각했으나, 별말 없이 소매를 휘둘러 백여 권의 서책을 돌 탁자 위로 불러냈다. 이는 그가 책방에서 사 온 서책들이었고, 그 뒤로 다시 십여 권이 소매 안에서 날아와 따로 한 묶음을 이루었다.

“조낭, 이 서책들은 내가 방금 산 것이다.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고, 속세의 도리를 깨닫기에도 좋지. 이쪽은 내가 항시 곁에 두고 자주 읽는 책들이니, 시간이 나면 보렴. 참, 글자는 아느냐?”

조낭은 기뻐하는 얼굴로 책을 한 권씩 쓸어보다가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어르신께서 뜰에 서서 글자를 쓰시는 것도 자주 보았고, 윤청이 호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도 보았으며, 아아가 글자 연습을 하는 것도 자주 보아서 문자의 묘리(妙理)는 이미 깨우친 상태입니다.”

조낭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작은 글자들은 자신 안채 안에 있던 <검의첩>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들은 계연이 자신들을 잊고 갈까 두려웠던 듯, 곧이어 <검의첩>이 스스로 날아왔다. 계연이 소매를 들자 <검의첩>은 스스로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종이학도 마찬가지로 날개를 움직여 계연의 가슴팍에 있는 비단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음, 그럼 잘되었구나. 나는 용왕님을 따라 가볼 곳이 있고, 약리도 이곳에 더 머물지 못할 듯하니 너는 대신 집을 지켜주렴.”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분부를 내리자 조낭이 가볍게 예를 올렸다.

“예!”

“자, 그럼 어서 가십시다. 약리도 나와 계 선생님을 따라오너라.”

늙은 용이 소매를 한번 펄럭이자, 거안소각 안에 운무(雲霧)가 모여들더니 계연과 응약리를 천천히 상공으로 들어 올렸다. 늙은 용은 정말로 단 일각도 지체하려 하지 않았다.

지면에서 백 장(丈: 약 300m)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 계연은 돌연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늙은 용을 향해 물었다.

“응 선생님, 제게 물을 게 있지 않으세요?”

그러자 늙은 용이 고개를 돌려 응약리와 계연을 바라보더니, 입을 삐죽이다가 기가 찬다는 듯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 말이오? 공수를 위해 화조(火棗)를 좀 달라는 말? 허! 하하하…….”

늙은 용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더 말을 잇지 않자, 계연과 응약리도 자연스레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