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67화 (667/892)

667화. 드넓은 황해

펑-!

수면 위로 물보라가 일며 계연의 얼굴에 바닷물이 느껴졌다. 주위로는 물살이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왔을 뿐 눈앞에 별달리 보이는 건 없었다. 게다가 눈이 보이든 안 보이든 아무 차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어쨌든 그의 ‘초월’적인 시력으로는 바닷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커다란 거품들이 위에서부터 둥둥 떠다녔다. 교룡들이 연이어 바다에 뛰어들면서 물보라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계연과 응굉만이 사람의 모습이었고, 응약리와 응풍도 이제는 교룡의 몸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20장(약 60m)이 넘는 길이의 두 교룡은 온몸이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유리처럼 찬란하게 반짝이는 광채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응약리와 응풍은 양쪽으로 나란히 뜬 채, 계연과 늙은 용의 발치로 낮게 헤엄쳐갔다. 응약리가 응풍보다 먼저 변신했기 때문에 계연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었고, 응풍은 약간의 씁쓸함을 누르고 아버지를 등에 태웠다.

앞에서는 황룡이 길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계연의 일행은 따로 뭔가를 할 필요가 없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눈앞은 온통 뿌옇고 물살도 거셌으나, 용족들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용들이 지나고 나면 바닷물이 좌우로 미끄러지듯 흘렀다. 계연은 자신의 옆으로 휙휙 지나쳐가는 교룡들의 호박색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유일한 광원(光源)이었다.

계연은 용을 말처럼 타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었다. 어쨌든 용족들은 고고하기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응약리는 계연을 등에 태우고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암류가 흐르는 황해 속에서도 그녀는 평온하게 헤엄쳤고, 이에 계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줄곧 편안할 수 있었다.

용들이 헤엄칠 때는 서로 간에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늙은 용과 응풍 그리고 계연과 응약리 사이에는 십여 장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계 숙부님, 이 위쪽은 여전히 강풍의 영향을 받아 해류가 불안정해요. 바람이 너무 거세서 해일이 높게 일거든요. 그래서 해저로 갈수록 해양 생물들이 많아지죠.”

응약리의 경쾌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계연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 그럼 황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렴. 나도 견식을 좀 쌓게 말이야.”

“하하하……. 약리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응약리는 가볍게 웃더니, 황해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들을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황해 상공에 언제나 강풍이 부는 건 아니에요. 어떤 곳은 일 년 내내 바람과 햇볕이 따사로운 곳도 있어요. 그런 곳은 황해에서도 아주 드문 지역이라, 이곳에 사는 요괴들이 점거하고 있죠. 특이한 섬들도 많고요……. 소문에 황해는 끝이 없다는데, 사실 그 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황해 밖으로 가면 갈수록 바다는 더욱 넓어지기만 하니, 누구도 황해의 끝을 탐험해보지 못한 거예요. 다만 언젠가 같은 방향으로 쉬지 않고 날아갔던 용이, 황해의 끝은 거의 죽은 곳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해요. 위로는 파도가 넘실대고 바다 밖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아래에는 화염이 들끓어 바닷물이 거의 끓는 듯했는데, 그런 지대가 얼마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대요.”

계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지대가 얼마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계연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바다가 우주도 아니고, 어떻게 끝이 없겠는가? 분명 누구도 끝까지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계연은 이 세계가 둥근 별이라는 생각을 일찍이 포기한 참이었다. 그는 상공을 날았던 적이 아주 많았다. 이곳의 지면도 당연히 솟기도 하고 푹 꺼지기도 하며 지형이 다양했지만, 어쨌든 하늘에 서서 넓은 범위를 내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제대로 판별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결론적으로 이 세계는 절대 둥근 구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넓은 의미의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옛날의 우주관)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계연은 이곳의 땅이 무궁무진하게 넓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황당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순간, 응약리가 돌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용족의 어느 고인(高人)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적이 있어요. 황해에 끝이 없다는 말은 그저 착각일 수도 있다고요. 어쩌면 우리의 영각(靈覺)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종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같은 곳을 돌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라고요……. 어쨌든 황해 끝까지 가보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을 벌이는 이는 많지 않으니까요.”

계연은 그 말에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 고개를 끄덕거렸다.

용족들이 거침없이 헤엄치는 속도는 하늘을 나는 속도와 거의 비슷했다. 그들이 일정 깊이의 해저까지 내려가자, 과연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 더욱 많아졌다. 해저에 가까워질수록 자신 빛나는 식물이나 특별한 물의 족속들이 나타나기도 해, 어두운 바닷속에 색채를 더해주었다.

이런 곳에 이르니 계연은 저도 모르게 심해공포증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지금의 그라고 해도, 만약 용들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홀로 이런 곳을 헤엄치진 않을 것이다.

“아오오-!”

응약리가 가볍게 울자 그녀의 몸 위로 빛이 흘렀다. 계연의 눈에는 그 빛들이 잔물결처럼 아주 빠르게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빛은 해저를 훑고, 주위의 헤엄치는 어류들을 지나, 황해 곳곳에 가닿았다. 응약리뿐만 아니라, 응풍, 심지어 다른 교룡들도 때때로 이와 비슷한 동작을 했다. 이는 용족들의 울음소리에 더욱 현묘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아우-!”

“우우-!”

멀리서부터 이따금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계연이 느끼기에 이는 마치 고래의 아련한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용족들은 서로 간의 거리를 점점 더 넓게 벌려, 해저 전체로 퍼져나갔다. 때때로 두 용 사이의 거리는 십여 리(10리는 약 3.9km), 혹은 수십 리에 달하기도 했다.

“계 숙부님, 예전에 황 용왕께서 황해를 수색하셨을 때는, 이쯤에서부터 이미 용시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대요. 물론 이제는 전부 죽었지만, 그래도 여기서부터 다시 탐색해보려나 봐요.”

계연은 시선을 내려 해저를 바라보았다. 비록 시력으로만 따지자면 지금 그의 시야는 아예 눈이 멀어버린 것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계연은 해저에 남은 뇌화(*雷火: 벼락이 떨어져 일어난 불)의 기운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때 황 용왕이 법력을 펼친 흔적일 것이다.

“용시충은 무리 지어 사는 특성이 있고, 주동적으로 동류를 찾아서 번식하는 생물이에요. 그래서 보통 넓게 군락을 이루죠. 그러니 하나만 발견하면 다른 용시충도 줄줄이 찾을 수 있어요.”

이번에 용족들은 진룡 넷과 삼 백여 마리 교룡의 힘을 모아 용시충을 아예 멸종시켜 버리려고 했다. 그들은 약 5천 리 정도 되는 길이의 수색선을 이루어, 전방 10만 리 정도를 수색하고 있었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용시충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용시충에 대해서는 별로 우려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용족 사이에 도는 소식에 의하면, 용시충 중에는 제대로 수행을 닦아 요괴가 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시충의 주위에는 작은 생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그중 하나만 찾아낸다면 진룡들이 수백의 교룡을 데리고 온 상황이니만큼, 다른 용시충들을 더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아악-!”

멀리서 비명이 들려와 계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요기(妖氣)가 솟구치다가 빠르게 흩어지는 장면이 보였다. 보아하니 황해에 살던 어느 요괴가 용에게 목숨을 잃은 듯했다. 아무리 계연이라 해도, 먼 길을 서둘러 달려온 배고픈 용들에게 무슨 도리를 논하겠는가.

그로서는 용족들에게 요괴를 잡아먹기 전에, 혹 그자가 무고하며 바른 성품을 지닌 자가 아닌지 먼저 알아보라고 간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해봐야 응약리와 응풍 정도나 그의 말을 귀담아들을 것이다.

수색선을 넓게 펼친 후로, 계연은 이미 용들과 함께 3달여를 수색해왔다. 그들은 이미 황룡이 그 거대한 용시충을 죽인 위치를 지나온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계연은 응약리의 목 부근에 난 갈기 근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무언가를 감지했다.

“음?”

“계 숙부님, 왜 그러세요?”

계연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소매 안에서 깃털 하나를 꺼냈다. 조금 전에는 소매 안에서 분명 열기가 느껴진 것 같았는데, 꺼내어 보니 또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자신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별일 아니다. 조금 전에 뭔가를 느낀 것 같았는데, 아마 내 착각인 것 같구나.”

그러자 응약리는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생각했다.

‘계 숙부님께서 착각 같은 걸 하시는 인물인가?’

아마 그게 무엇이 됐든 착각일 가능성은 별로 없을 터였다.

‘혹시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러시나? 아니면 숙부님께서도 아직 확신할 수가 없는 일인가?’

계연은 별일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매 속 오른손으로는 그 금빛이 도는 붉은 깃털을 꼭 쥐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계연 정도의 도행을 쌓게 되면 그가 무언가를 착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이의 술법에 무슨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면, 자신의 직감이 맞다는 뜻이었다. 계연은 자신이 결코 환술에 걸리지 않을 거라 확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랬던 선례가 없었고 또한 이 감각이 외부의 물질에서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자신이 느낀 것이 사실일 거라 믿었다.

용족들은 원래의 계획에 따라 황해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이곳 해저는 위쪽과 달리 해양 생물들이 무척 번성한 모습이었다. 용들에 의해 잡아먹힌 어류나 요괴들을 제외하고, 바다의 다른 생물들은 지금 모두 바닥에 찰싹 몸을 낮추고 있거나 겁에 질려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5일이 지나자, 계연은 깃털의 변화를 다시 한번 감지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일종의 작열감이 계속해서 지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10일 뒤에는 다시 열기가 약해지더니, 아예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계연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용족들을 따라 수색을 계속했다. 수백의 용족들은 의심 가는 구역을 계속해서 순찰했고, 그렇게 그들이 바다에 나온 지 어느덧 6달째가 되었다.

그해 연말, 용족들은 의심 구역의 상당 범위를 모두 수색할 수 있었다. 면적으로만 치면, 그 범위는 심지어 동토 운주보다 훨씬 넓었다.

용족들은 정해진 시기마다 적당한 곳에 모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곤 했는데, 계연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황해의 기이한 풍경이며 갖가지 일들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세상에서 잊힌 채로 홀로 존재하는 듯한 검은 바다의 섬이나, 먹물처럼 새까맣고 괴이한 해류를 만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황해의 어느 교룡은 계연의 무리에서 홀로 떨어진 교룡을 발견하곤 그가 자신의 근거지를 빼앗으러 왔다고 생각하여 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러다 수백 마리의 용이 뒤이어 나타나자, 그자는 너무 놀라 해저의 진흙 속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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