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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670화 (670/892)

670화. 황망히 도망치다

저 멀리 아득히 요원한 곳에,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아주 높고 거대한 산맥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해저에서 서로 뿌리가 단단히 휘감기고 줄기가 뒤얽힌 채로 자라나 셀 수 없이 많은 가지를 펼친, 엄청난 위엄을 지닌 나무였다…….

이를 본 교룡들은 아예 말을 잊을 정도였고, 용왕들마저 경악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계 선생, 저건 아무래도 함께 얽혀 자란 거목 같소. 그런데 저, 저게 대체 무슨 나무지? 저렇게나 굵다니, 산이라 해도 믿겠소!”

늙은 용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연의 표정은 어째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흥분 속에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것처럼도 보였다.

“바다에는 신목(神木)이 있어 태양이 이곳에 머문다. 부상신수(*扶桑神樹: 신령한 나무인 부상을 이름. 부상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나무로, 태양이 교대로 머무는 동쪽 바닷속의 나무이며 그 가지는 물 위로 뻗어있다고 함)……. 부상신수라……. 정말로 있구나, 정말로 있어…….”

계연은 여러 해 동안 자신이 이 세계를 관찰해오면서, 밑바닥부터 가장 위까지 속속들이 알고 수많은 중생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 생에 들었던 상고시대의 전설 속 동물들이, 용과 봉황을 제외하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어떤 흔적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흔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계연이 느낀 충격은, 어떻게 보면 맨 처음 산신당에서 깨어났을 때와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그때는 놀라고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놀라움이 훨씬 큰 것뿐이었다.

용족들도 저 멀리 서로 얽혀 자라난 거대한 나무 두 그루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경악에 찬 상태였다. 진룡들조차 저 나무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좁쌀같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저 나무는 수면 위로도 뻗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계연이 너무 놀라 중얼거린 말을 들은 진룡들과 몇몇 교룡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부상신수? 계 선생, 저 나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오? 저게 대, 대체 무엇이오?”

하지만 계연은 거대한 충격이 지나고 나자, 늙은 용의 질문보다 훨씬 중대한 일이 생각났다. 그 순간 무언가 알아차린 그는 얼른 손가락을 접어 점괘를 쳐 보더니 아연실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이제 해가 지겠어!”

계연은 곧이어 높이 뛰어올라 용족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서, 어서 따라오세요! 뒤처지면 큰일 납니다! 용왕님들, 함께 법력을 펼쳐 주세요,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요!”

챙-!

그러자 계연의 등 뒤에서 검이 울더니, 한 줄기 검광이 뻗어나가며 그들이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계연은 즉시 그쪽으로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곧 해가 떨어질 거예요, 지금 안 가면 늦어요! 저를 믿으세요!”

말을 마친 계연은 양손으로 응약리와 응풍의 수염을 한 가닥씩 잡고는 먼저 왔던 길을 따라 날아갔다. 넝쿨검은 혼란스러운 해류가 용족들의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검광을 내뿜으며 전방에서 물살을 갈랐다.

용왕들은 계연의 이런 반응을 보고는 즉시 눈짓을 교환하며 행동을 시작했다.

“뭇 용들은 모두 명을 따르라, 당장 계 선생을 따라 도망쳐라!”

“가십시다!”

응굉, 공융, 황유중, 청우(*靑尤: 청룡의 이름) 네 용왕은 모두 진룡의 몸으로 변신해 교룡들을 감싼 듯한 대형을 만들었다. 그러자 교룡들은 생사존망이 달린 심각한 문제라는 걸 깨닫고는, 계연과 용왕들이 펼친 법력의 힘을 빌려 즉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촤아앗……!

콰앙, 콰광……!

일대 수역에 폭발하듯 물보라가 일어났고 암류(暗流)가 흐르기 시작했다. 뭇 용들은 계연을 따라 재빨리 이동했는데, 이는 거의 도주하는 것에 가까웠다. 사실 계연의 목적도 용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넝쿨검은 앞에서 가벼운 검명을 내며 검광으로 주변 해역을 비추는 동시에 해저에 흐르는 암류의 흐름을 끊어내고 있었다. 계연과 용족들은 법력을 아끼지 않고 쓰면서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이는 그들이 황해로 나온 이래 가장 빠른 속도였다.

계연은 엄숙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선두를 이끌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자연히 용왕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계연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도 이제 모두 아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계연과 용왕의 이런 모습은 교룡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맨 앞의 검광만을 따라갔다.

주위에는 온통 물살이 흐르는 소리와 맨 앞에서 들려오는 검의 울음소리뿐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자 오히려 사위가 무척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약 이각(30분) 정도를 질주하던 그들은, 해저의 어둠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머리 위를 붉은빛이 은은하게 비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그 변화에 뒤따라 즉시 수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한 교룡이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위의 해역은 온통 금빛을 띠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오래 보면 눈이 타들어 가듯이 따갑기도 했다.

“앞만 보고 움직이고, 위쪽은 보지 마세요.”

계연은 용들에게 전음을 보낸 뒤, 더욱 많은 법력을 펼쳐 속도를 올렸다. 그도 비록 금오(*金烏: 태양 그 자체, 혹은 태양 속에 산다는 발 세 개 달린 까마귀)를 직접 보고 싶긴 했지만, 지난 생에 읽었던 신화에 의하면 금오는 태양 그 자체이거나, 태양의 정령이었다. 그러니 금오가 태양을 등에 지고 오는 것이든, 혹은 그 어떤 모습이든 간에 부상신수 근처에 머무는 것은 핵폭발의 현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둥…… 둥…… 둥…… 둥……!

뒤이어 북소리와 비슷한 아득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연만이 이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진룡 네 사람도 언뜻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처음엔 묘연했다가 어느새 귀청을 울릴 정도의 소리로 변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교룡도 마침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북소리 같군!”

“무슨 소리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뜨거워 죽겠네!”

“나도 못 참겠어, 용왕께…….”

“여러분, 대화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움직이세요!”

이렇게 말을 하는 계연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는 극도의 긴장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주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뜨겁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북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온다니? 멀기는커녕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머리 위와 등 뒤의 빛이 점점 눈을 찌를 정도로 밝아지기 시작했고, 주위의 온도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이쯤 되자, 교룡들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나마 선검이 검광을 내뿜으며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끌고, 네 명의 진룡들이 법력을 아낌없이 써서 그들을 보호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둥…… 둥…… 둥……!

둥둥둥둥……!

북소리가 점차 빨라지자 계연은 심리적인 압박감이 더욱 커져, 등 뒤의 북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금빛 섞인 붉은색이 그저 붉게만 보일 때까지 법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렇게 다시 주변 시야가 어두워지자 그는 크게 안도하고는 점차 속도를 줄였다.

교룡들은 계연의 속도가 느려진 것을 느끼고 점차 속도를 늦췄다. 몇몇 교룡들은 심지어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있기까지 했다. 그들이 도망쳐온 시간은 채 반 시진(1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 긴장감과 압박감은 그들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긴장감은 계연과 네 용왕, 그리고 마지막에 목격했던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다.

계연이 그제야 몸을 돌려 용족들을 이끌고 다급히 도망쳐 온 방향을 바라보니, 부상신수는커녕 그 거대한 산맥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 은은한 붉은빛이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후우…….”

계연은 길게 한숨을 돌리고는 거대한 진룡 넷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마침 모두 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 선생, 방금 그게 대체 뭐였소? 이 늙은이는 언뜻 무슨 북소리를 들은 듯하오만. 그 빛하고 열기도 말이오. 그런 건 생전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소. 만약 아시면 우리에게도 설명을 좀 해주시오.”

노인의 목소리가 황룡의 입에서부터 들려오자, 다른 용들도 가만히 계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계연은 사실 여전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완벽하게 평온을 되찾은 뒤였다.

“조금 전에 저희가 본 것은 부상신수예요. 부상신수가 무엇인지 잘 모르실 테니 설명해 드리자면…….”

계연은 다시 저 멀리 시선을 던지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부상신수란 태양이 목욕하는 곳이에요. 조금 전에는 태양이 부상나무에 내려앉은 것이고요. 태양의 정령인 삼족(三足) 금오가 돌아온 거예요.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간 아마 저희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요…….”

계연은 지난 생의 기억과 약간의 추측에 의거해 조금 전 위험했던 순간을 설명해주었다. 설령 금오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금오가 무슨 움직임이든 보일 가능성이 더 컸다.

계연은 원래 자신이 가진 깃털을 꺼내 보고 싶었으나,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돌연 눈썹을 찌푸리더니 깃털을 꺼내 들었다.

깃털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고, 그 타는듯한 작열감도 여전했다. 하지만 몇 시진 전에 그들이 지금 이 위치를 지나올 때는 이 빛과 열기가 배는 더 강하게 느껴졌었다. 처음 계연이 자주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지만, 후에 정확한 방향을 찾아 그 방향으로 내내 따라온 뒤로는 그 빛과 열기가 계속해서 강해지기만 했었다. 지금과 비교하니 그 대비가 더욱 확실했다.

지금에 이르자 계연은 이미 이 깃털이 금오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깃털은 고작 팔의 반 정도의 길이로, 조금 크기가 작은 듯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는 깃털의 주인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삼족 금오? 태양의 정령이라?”

황룡은 경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고, 이는 다른 진룡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곧이어 계연,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든 깃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에는 계연에게 물어도 애매하게 굴며 확실히 대답해주지 않더니, 이렇게 천지를 뒤흔들만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니!

하지만 이때 진룡들의 생각은 사실 좀 엇나간 부분이 있었다. 계연이 전에 무어라 확실한 답을 주지 않은 것은, 그조차도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전까지 계연은 이 깃털이 금오의 것이라 여기지 않았었다. 어쨌든 크기가 너무 작았으니 말이다. 그는 사실 필방(*畢方: 다리가 하나뿐이며 학과 비슷하게 생긴 불의 정령)과 비슷한 신조(神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 뿐이었다.

“태양이 부상나무에 내려앉았다니? 그러니까, 조금 전에 우리가 도망쳐온 것이 태양이란 말이오?”

“조금 전의 그 빛은 그럼…….”

“그럼 그 북소리는 무엇이오?”

용왕들이 놀라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표정으로 각자 이렇게 물었다.

“태양을 피해온 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금오가 승천하면 해가 뜨는 건 맞는데, 나무에 내려앉은 건 아닐 수도 있어요. 북소리는…….”

계연도 북소리가 왜 나는 건지는 알지 못했지만, 조금 전 들은 그 소리는 예전에 응약리와 함께 바다에서 새해가 되는 시각에 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이에 그는 돌연 무언가 떠올라, 다시 마음을 바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다시 부상나무가 있는 곳에 가봐야겠어요. 혼자 살펴보고 올 테니, 여러분들은 먼저 떠나셔도 됩니다!”

“예?”

“계 선생?”

“숙부님!”

계연의 말에, 아직도 조금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용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응씨 일족의 반응이 가장 컸다.

“계 선생, 신중히 생각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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