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압박감
계연은 사실 아직도 완전히 마음을 굳힌 건 아닌 듯, 계속해서 눈썹을 찡그렸다 폈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꼭 가 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먼저 가세요. 저는 영각(靈覺)도 예민하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혼자 도망치는 게 더 편하니까요!”
말을 마친 계연은 주위의 용족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고 곧바로 어수술을 펼쳐 목숨을 걸고 도망쳐온 길을 되돌아갔다. 만약 그의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가장 위험한 시각은 태양이 떨어질 때뿐이었다.
“계 선생, 나도 선생과 함께 가겠소!”
응굉은 얼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이렇게 소리치며 어수술을 펼쳐서 그를 뒤쫓아갔다. 그는 떠나기 전에 두 오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는 먼저 용왕들을 따라 떠나거라. 나는 네 숙부와 얼른 갔다가 돌아오마!”
“어이쿠, 응 용왕, 기다리시오! 나도 같이 가겠소!”
청 용왕인 청우도 이렇게 말하더니 서둘러 어수술을 펼쳐서 뒤따라갔다. 남은 백여 마리의 용족들은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이었고, 다른 두 용왕도 실은 내심 뒤쫓아가고 싶었으나, 지치고 혼란스러워하는 주위의 교룡들을 살피더니 곧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그들이 다급히 도망치던 순간, 계연과 뭇 용들은 힘을 합쳐 물속에서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냈었다. 그래서 반 시진(1시간)도 되지 않아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계연과 두 용왕은 급할 게 없었으므로 속도를 내지 않아, 올 때보다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응굉과 청우는 이때 둘 다 사람의 모습을 한 채 계연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방을 향해 갈수록 온도가 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도망쳐 올 때처럼 뜨거운 것은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빛도 최소한 응굉과 청우에게는 전보다 많이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까처럼 너무 환해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세 사람이 이동하는 동안 해류에는 어떤 기복도 일지 않았고, 거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해류의 일부분인 것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전방을 향해 움직였다.
대략 한 시진(2시간) 뒤, 그들이 조금 전에 있었던 위치에 가까워지자 청우는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군!”
그러자 계연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청 용왕께서도 알아차리셨군요? 조금 전에 목격했던 위세대로라면, 저희가 이 정도로 가까워졌으면 이미 불편함을 느꼈어야 해요. 만약 제 예상이 맞았다면, 이번에는 가까이 가도 그리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음, 최소한 여명 전까지는 말이죠.”
응굉과 청우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지만 결국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계연이 그들에게도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일단 조용히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일각(15분)이 채 지나기 전에, 세 사람은 해저에 자리한 그 거대한 산맥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금색과 붉은색이 섞인 빛이 번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혼탁한 바닷물과 섞여 그쪽 해역 전체를 불타는 것처럼 물들였다. 그래서 세 사람이 보기에 그쪽 풍경은 마치 금홍색(金紅色) 빛을 뿜는 먹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주위의 온도는 그리 뜨겁지 않았고, 그들이 처음 왔을 때와 비슷했다. 아마 태양이 내려오면서 가장 뜨거웠던 최고점에서 많이 낮아진 것이 분명했다.
세 사람은 그곳에 잠시 멈춰 섰고, 응굉과 청우는 모두 계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 결정권을 그에게 넘긴 것이다. 계연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가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속도를 늦추고 기척을 최대한 숨겨야 해요. 섣불리 움직이지 말도록 하죠.”
“이 늙은이도 사안의 경중을 아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소!”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자부심 넘치고 오만한 진룡들조차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들은 모두 이견 없이 ‘전문가’인 계연의 말대로 따랐다.
세 사람은 주위의 물고기들과 같은 속도로 물살을 따라 헤엄치며 천천히 산맥을 넘었다. 그러자 금홍색 빛이 그들의 눈앞에 정면으로 펼쳐지며 세 사람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뒤이어 계연과 두 용왕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강대한 무언가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일개 평범한 사람이 신비롭고 거대한 요괴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들은 강력한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았고, 그런 기운을 뿜어낼만한 요괴의 요기(妖氣)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두 용왕은 그들을 질식하게 할 정도로 압박감을 뿜어대고 기세는 하늘과 바다를 아우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요기를 마주칠 거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고, 지금 느껴지는 이 강대한 기운은 그저 정신적인 측면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가까웠다.
계연은 살짝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바닷물이 혼탁하긴 해도 계연의 법안에는 부상신수가 아주 또렷하게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 일인지 나무가 약간 모호하게 보였고, 부상나무의 어느 가지 위에는 금홍색의 거대한 삼족오(*三足烏: 금오(金烏)를 일컬음. 중국 신화에서,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가진 까마귀)가 털을 고르고 있었다. 그 새는 몸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주위로 무궁무진한 금홍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금오는 진룡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의 크기였다. 게다가 지금 저 새가 앉아 있는 부상나무가 일반적인 산맥과 비슷한 크기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동그란 태양이 가지 위에 걸려있는 듯해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크기는 계연이 생각하는 태양에는 여전히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았지만, 계연은 이제 그런 것에는 그리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계연은 무언가 찾는 것처럼 부상나무 근처를 관찰하다, 마침내 밑동 아래에서 거대한 수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굉과 청우, 두 진룡은 법력을 아낌없이 끌어다 최대한도의 시력으로 부상나무를 관찰해보아도 안개가 낀 듯 희미한 형태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 부상나무 위에는 거대한 금홍색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화염은 날개 같은 것을 펼치기도 했다가, 불길 속에서 뾰족한 부리 같은 게 튀어나오기도 했으며, 때때로 통통 튀어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희미하긴 하지만 거대한 다리 같은 화염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것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언뜻 본 것에 지나지 않아, 대부분은 그저 흐릿한 형태가 빛과 화염 사이로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금오의 기운이 너무 강력해 그들의 감각을 어지럽히는지도 몰랐다.
“삼족금오, 삼족금오라…….”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소매 속에서 다시 금오의 깃털을 꺼내 들었다. 깃털은 이 순간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심지어 허상의 불길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청우는 이를 보고 깜짝 놀라 계연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그가 보기에 계연의 이런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가 볏짚이 깔린 방에서 불장난을 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 선생,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응굉마저 너무 놀라 펄쩍 뛰어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연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므로, 목구멍까지 올라온 “계 선생!”이란 소리를 다시 뱃속으로 꿀꺽 삼켰다.
“안심하세요, 청 용왕. 저 금오는 저희를 보지 못해요.”
계연은 마음속의 압박감을 살짝 내려놓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친 순간, 멀리 부상나무 위에서 깃털을 고르던 금오가 돌연 동작을 멈추고는 천천히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금빛 화염이 모여 만들어진 듯한 한 쌍의 눈동자가 계연의 일행이 있는 쪽을 직시했다.
이에 계연과 두 용왕은 한순간에 얼음이 되어버린 것처럼 빳빳이 굳어버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는 그리 큰 압력을 느끼지 못했던 세 존재는, 마치 보통 사람이 만 장 깊이의 심연에 떨어진 듯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꼈다. 거대한 태양이 하늘을 뒤덮는 불바다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무궁무진한 압박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금오는 눈초리를 가느스름하게 뜨더니 잠시 뒤 까마귀가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까악-!”
그 소리는 계연의 귀에 깊고 깊은 심연의 골짜기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들렸다. 반면 응굉과 청우에게는 무척 아득하여 누군가 천산만수(*千山萬水: 수없이 많은 산과 강)를 사이에 두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금오는 한번 울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자신을 청결히 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휴우…….”
“허…….”
세 사람은 단번에 긴장이 풀려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계연을 포함한 세 사람은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었다. 이때 다시 정신이 돌아온 두 용왕은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계연은 예상과 달리 담담한 표정으로 조금 전의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계연도 조금 전에는 무척 긴장해 미소를 띤 그대로 굳어버렸었다. 그러나 이때 두 용왕이 모두 자기를 바라보자, 그는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계연은 운산관 도문의 다른 일파가 남긴 예언과 양면 깃발에서 읽어낸 기운을 합쳐, 조금 전의 추측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제 추측이 맞았네요. 저 금오는 사실 저희가 있는 이곳 대지와 바다에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해가 떨어진 후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저 금오와 부상나무는 지금 좁은 의미의 ‘하늘 밖’에 있는 거예요. 넓은 의미로 보자면 여전히 ‘천지간’에 있긴 하지만요. 저희는 지금 멀리서 모호하게 저들을 볼 수 있지만, 접촉할 방법은 없어요. 그나마 부상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처음에 저희도 저 나무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던 거죠. 그러나 이제는 금오가 내려왔으니, 부상나무까지 함께 이 천지에 존재하지 않게 된 거예요.”
응굉은 그의 말에서 즉시 관건이 되는 부분을 짚어냈다.
“그럼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 가장 위험하겠구려?”
“맞아요, 해가 지고 뜨는 시각에 금오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무를 떠나 날아오를 거예요. 그럼 다시 부상나무와 대지의 연결이 강해지고 그와 동시에 태양의 정령인 금오도 가장 환히 빛나겠죠. 태양의 열기가 가장 셀 때가 바로 그 순간이고, 그 영향을 받아 저희가 지금 서 있는 이곳도 생명체가 머물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지는 거예요!”
계연은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응굉과 청우를 바라보다가 돌연 낮은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고, 부상나무가 여기에 있으니 여길 동쪽이라 하면, 후에 해가 떠오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해가 진 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
“그건…….”
여전히 조금 전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두 용왕은 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늙은 용은 그들 중에 답을 아는 이는 계연밖에 없겠다 싶어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께서 이 의혹을 좀 풀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