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찻집 안의 열기
용궁을 나온 계연의 발밑에 수증기가 모여들어 안개가 되자, 계연은 그것을 밟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연은 경기부 부성에 내려섰다.
이곳의 거리는 여전히 번화했고 인파로 떠들썩했다. 계연이 거리를 따라 걷는 동안에도 행인과 행상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전병 사시오! 방금 구운 따끈한 전병이오!”
“빙탕후루(*氷糖葫蘆: 과일을 대나무 꼬챙이에 꽂아 물엿을 바른 후 굳힌 것) 있습니다! 새콤달콤합니다요!”
“활과 화살 팝니다! 이 석궁만 있으면, 백 보 밖에서도 조월국 놈들의 갑옷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
계연이 거리를 따라 걷는 동안, 온갖 시끌벅적한 소리와 호객 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눈앞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거리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이 초겨울에 유생 차림을 한 사람 중 열에 여덟은 모두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게 보였다. 계연 같은 차림새의 유생들은 오히려 무척 드물 정도였다.
그때 별안간 멀지 않은 곳의 찻집 바깥에서 점원이 나와 크게 소리쳤다.
“변경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저희 찻집에 변경의 소식이 있습니다! 오셔서 차를 주문하시면 다과 한 접시를 무료로 드립니다!”
“뭐, 변경의 소식이라고?”
“가세, 가세!”
“기다리게! 어서 자리, 자리부터 잡자고!”
…….
이를 들은 많은 이들이 우르르 찻집으로 몰려갔다. 좌판을 깐 상인들조차 근처의 다른 상인에게 자기 자리를 잠시 봐달라고 말한 뒤 얼른 찻집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러니 거리를 오가는 유생이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계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속도를 내서 그 찻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찻집에 도착했을 때, 안쪽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도 여전히 손님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찻집의 자리는 탁자 하나에 네 사람이 앉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최소한 8, 9명이 한 탁자에 구겨 앉고 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은 통로나 바깥의 주랑(*柱廊: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에 작은 걸상을 놓고 앉아 있었고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찻잔을 하나씩 들고 있어, 차박사가 찻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일일이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찻집은 거의 물 샐 틈조차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들어찼고, 차박사 몇 명이 찻주전자를 들고 곳곳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는 계연이 지난 생에 봤었던 능수능란한 버스 검표원 같았다. 그들은 승객으로 꽉 들어찬 차 안에서도 모든 이들에게 표를 거둘 수 있었다. 이 혼잡한 곳에서도 예외인 단 한 곳은 바로 계산대 옆에 놓인 한 탁자 부근이었다. 그곳에는 종이부채를 든 중년의 유학자가 서 있었다.
“여러분, 조월국의 쥐 떼들이 감히 우리 대정국을 넘보고 있습니다! 변경의 군사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제주로 밀고 들어오다니요! 조월국은 일찍이 내우외환으로 썩어 문드러져, 소위 군사라는 이들이 실은 도적 떼만도 못한 놈들입니다! 이들이 제주의 백성들을 노략질하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자, 조월국 안의 도적들이 점점 변경으로 몰려들고 있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대군을 몇 갈래로 나눠 제주에 지원군을 보냈는데, 그 선봉이 이미 조월국의 도적놈들과 몇 번이나 맞붙었다 합니다!”
“쥐새끼만도 못한 놈들!”
“그러니까 말일세, 내 직접 칼을 들고 전장에 오르고 싶은 심정이군!”
“국력이 나날이 강성해지고 나라가 태평해 가만히 놔뒀더니, 조월국의 쥐 떼들은 감히 우리의 너그러움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죽음을 자초하다니!”
찻집 안의 손님들이 비분강개하며 저마다 이렇게 소리쳤다.
찻집의 건축 양식은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벽이 탈착이 가능한 나무판자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먼지가 많은 날이 아니라면, 나무판자를 떼어내 바깥의 주랑과의 사이에 낮고 기다란 창턱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손님들이 와서 앉을 수 있어, 찻집 바깥의 손님들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벽을 뜯어내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몰려드는 손님들을 위해 공간을 더 넓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계연이 찻집에 이르렀을 때, 앉을만한 자리는 이미 한 군데도 남지 않았고 서 있을 공간조차 부족한 상태라 문가 근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랑(*柱廊: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을 따라 나 있는 난간 자리에는 마침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계연 바로 앞에 도착한 검을 찬 서생 둘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하지만 때로 사람의 분위기나 기품은 무척 유용할 때가 있었다. 계연이 문가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며 조금이라도 덜 붐비는 곳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여기에 서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보다 한발 먼저 들어와 마지막 남은 주랑의 자리를 차지했던 검을 찬 두 서생이 그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 이쪽에 앉으시지요!”
그중 한 서생이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정중히 양보했고, 다른 서생도 계연을 향해 간략히 예를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차례라도 사양하는 말을 던지는 게 미덕이었다.
“두 분이 앉으세요, 저는 서 있어도 괜찮아요.”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던 때, 찻집 안의 민심은 슬슬 달아오르고 있었다. 부채를 쥔 선생 근처의 탁자에 앉은 손님들은 모두 조월국 놈들이 후안무치하다며 성토했다.
두 서생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부채를 쥔 서생이 곧바로 무슨 소식을 전할 것 같진 않았다. 마침 차박사가 그 서생의 탁자 위에 다과와 새로 우려낸 차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손님들이 그 서생 대신 찻집에 주문한 것들이었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모든 일에는 장유유서를 따라 마땅하니, 어서 여기 와서 앉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젊으니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허? 자기들은 젊으니 괜찮다고?’
계연은 제 머리카락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또 무심코 눈가를 만져보았다.
‘머리카락은 새까맣고 눈가에는 주름도 없는데, 저 두 사람 눈에는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연은 그들에게 양손을 맞잡고 인사 후 두어 걸음 다가가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발은 찻집 밖으로 내어놓은 채였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차박사가 즉시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이쪽 손님들, 무슨 차를 원하십니까?”
그러자 계연 옆에 있던 서생이 대신 대답했다.
“상등급의 우전춘(*雨前春: 24절기 중 하나로 봄비가 내리는 시기인 곡우(穀雨) 이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봄 차) 석 잔 주시오, 계산은 내 몫으로 달아두시오!”
“예, 알겠습니다!”
계연처럼 바깥쪽 주랑에 일렬로 앉은 손님들은 오히려 차박사가 일을 하기가 편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찻잔을 하나씩 전해주며 일일이 차를 따라주었다.
“손님 여러분께서 양해를 좀 해주십시오, 더는 찻잔을 내려놓을 탁자나 걸상이 없어 잠시 들고 계셔야 할 듯합니다.”
“아이, 괜찮소. 바쁠 테니 어서 가보시오!”
“예, 예!”
계연은 주랑의 가장 끝쪽에 앉았으므로, 옆에 한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더 있었으나, 가까운 벗인 듯한 두 서생은 누구도 그 자리에 앉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찻잔을 내려놓는 자리가 되었다.
그때 찻집 안의 목소리들이 점점 열기를 띠기 시작했고, 손님들도 부채를 쥔 서생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선생, 어서 전방의 소식을 알려주시오!”
“그렇소, 어서 이야기를 시작해 주시오!”
“모두 기다리고 있소이다!”
부채를 든 선생은 척 봐도 설서선생이라 이렇게 사람들을 조바심 나게 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찻잔을 들여 목을 축인 뒤, 종이부채를 촤악 펼쳤다.
“최근 있었던 전투를 이야기하자면 정말 심장이 다 덜컹하지 뭐요. 한동안 어떤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는데, 실은 그게 조정에서 보낸 지원군이 내내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지 뭐요. 사실 조정 대신들의 자제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구려.”
“뭐요?”
“이런!”
“지원군들도 졌단 말이오?”
찻집의 손님들이 깜짝 놀라 이렇게 소리치자, 손이 떨린 어떤 이들의 찻잔에서는 찻물이 넘쳐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부채를 쥔 선생이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듯이 침착한 모습인 걸 보자, 눈치 빠른 이들은 후에 큰 반전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선생, 뜸 좀 그만 들이고 어서 이야기해주시오!”
“그렇소, 거기서 멈추면 듣는 우리는 조바심이 나잖소!”
그러자 설서선생은 종이부채를 살살 흔들었다. 찻집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꽉 차 있어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좋소, 그럼 전방에 일어났던 일련의 변화에 대해 알려 드리겠소. 반년 전 조월국의 도적놈들이 우리 변경의 관문들을 공격해왔지 않소? 2, 30만이라 하던가,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다 말 그대로 도적놈들이었지 뭐요! 원래 조월국 병졸 놈들은 우리나라가 빈곤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주에 쳐들어가 보니 우리 백성들이 아주 부유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오. 그 후로는 그야말로 도적 떼가 금은보화를 발견한 마냥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오. 마을 전체가 완전히 도륙당한 곳도 꽤 있다고 하더이다. 재물은 깨끗이 그놈들 주머니로 들어가고, 부녀자들은 치욕을 당했으며 어린아이와 노인들까지 놓아주지 않았다더군…….”
“대역무도한 것들!”
“저, 저, 칼 맞을 놈들!”
“하아……. 정말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군!”
찻집 안의 손님들뿐만 아니라 계연도 그 말에 굳게 미간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놈들은 노략질하는 재미가 들려 오히려 군의 사기가 올랐다고 하오! 제주 변경이 뚫린 후로는 주 안의 병사들만으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더이다. 그에 더해 우리 대정국은 그간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살기 편안함)하고 백성들의 교화에 힘써 와,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소소한 도적 무리는 모두 사라진 후가 아니오. 그러니 변경을 지키는 군사들을 빼면 제주 각 성의 병졸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오. 제주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 아니고 뭐겠소!”
찻집 안의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하고 탄식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설서선생은 부채를 한번 흔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소식이 전해진 후, 당금의 성상께서는 성지를 내려 조월국의 도적놈들을 물리치기 위해 지원군을 세 길로 나누어 파병하셨소……. 하지만 그놈들은 그야말로 비열하기 짝이 없어, 병사로서의 긍지는 전혀 없이 각종 후안무치한 수단을 동원했다 하오……. 그로 인해 먼저 나선 대군은 수만 명의 병졸을 잃었으며, 두 번째 경로로 보낸 대군도 수차례나 패배했다 하오…….”
계연은 설서선생에게서 시선을 옮겨 찻집 안의 손님들을 관찰했다. 많은 이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쥐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허리춤에 찬 검을 꼭 쥐고 있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공동의 적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설서선생의 ‘적군이 비열하고 수치를 모른다’를 말은 그저 아군의 패배를 미화하기 위한 화법이었다. 병법에 ‘전장에서는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 아무리 조월국 사람들이 가증스러워도 진 것은 진 것이었다.
“빌어먹을 도적놈들!”
“우리 대정의 군사들이 어찌 저런 놈들에게 질 수 있단 말인가!”
분노한 나머지 계연의 곁에 서 있던 두 서생의 칼자루를 쥔 손의 관절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