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화. 대정국의 민심
“선생, 그래서 후에 어떻게 되었소? 표정을 보니, 우리 군이 아직 완전히 패배한 건 아닌 것 같소만?”
누군가 이렇게 묻자 설서선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말이오. 사실 조정의 삼로 대군은 모두 의기 높고 용맹한 이들이지만, 진정한 볼거리는 바로 이 마지막 세 번째 대군이라오. 정북장군(征北將軍)인 매사(梅舍) 노장군이 원수인 이 대군은, 조정에서 이름난 무관들을 이끌고 제림관(齊林關)으로 향했다오. 그중에는 여러분이 아직 잘 모르는 맹장도 있는데, 바로 윤 공의 차남(次男)인 윤중도 있소. 그리고 이 윤씨 집안의 둘째 공자는 첫 전투에서 단번에 큰 공을 세웠다오!”
“그런 일이 있었소?”
“오? 윤 공의 집안에 무장이 났다니?”
“윤 공께서는 대유(*大儒: 학식이 높은 선비)로 명성이 자자하신데, 집안의 둘째 공자는 무인이란 말이오?”
“윤 재상의 집안에서는 과연 인걸(*人傑: 뛰어난 인재)만 길러내는군!”
찻집 안에는 다시 의견들이 분분해졌다. 그러자 계연은 호(*虎: 윤중의 아명)가 정말 다 컸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설서선생은 이때 또 고질병이 도져 다시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곧장 전투가 어땠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오히려 윤중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모르는 게 있소. 이 윤씨 집안의 둘째 공자는 출발 전에 고작 영교위(*翎校尉: 무관의 관직 중 하나로, 시대마다 다르지만 6품 혹은 8품 정도의 낮은 직위)였을 뿐이었소. 이는 그 자신이 공도 전적도 없이 벼슬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윤 재상의 신분에 어찌 곧바로 장군에 제수되지 못했겠소? 하지만 이번에 세운 전공으로, 매 원수가 곧장 그의 직위를 장군으로 높여주었다 하오. 그야말로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설서선생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뒤, 청중들이 윤중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하는 듯 보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윤 장군은 윤 재상의 차남으로, 자연스레 뱃속에 먹물이 가득한 인재라 할 수 있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장군은 어렸을 때 황실에서 공부했고 성적도 항상 우수했다고 하오. 그런데 무예에는 더욱 뛰어난 자질을 보여, 군중에서도 유일무이한 무기를 사용하는데, 바로 한 쌍의 검은 쌍극(*雙戟: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이라 하오. 장군이 쌍극을 들고 두 팔을 휘두르면 아무도 막아낼 자가 없다던가. 그에 더해 모략도 출중한 데다 그 용맹함은 만부(*萬夫: 많은 장정)를 너끈히 당해낼 수 있다더군!”
그의 설명이 끝나자 찻집 안이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설서선생은 이때 무척이나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었으므로, 성목(*醒木: 설화자(說話者)가 책상을 두들겨 청중의 주의를 끄는 데 쓰는 나무토막)을 들어 탁자를 한번 때렸다.
딱!
그러자 찻집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군사들이 북쪽으로 향한 후,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는 바로 윤중 공자가 이름을 날린 그 전투요. 그는 적군의 목적을 간파한 후, 원수께 출정을 청한 뒤 한밤중에 기병들만을 이끌고 적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렸다오. 그러고는 아주 많은 군사를 끌고 온 것처럼 적의 눈을 속여, 달려온 적들의 지원군을 퇴각시켰소. 그 뒤에도 멈추지 않고 백여 명의 정예 기병만을 이끌고 서둘러 퇴각하는 것처럼 적들을 유인해, 적군의 부대 하나를 포위시킨 뒤 적장의 목을 베었소…….”
설서선생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감정이 끓어올라 부채를 더욱 빨리 부치기 시작했다. 찻집 안의 사람들도 이야기를 들으며 피가 끓는 듯하여, 조금 전보다 주먹을 더욱더 세게 말아 쥐었다.
계연은 설서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한입 음미했다. 찻물은 맑고 향긋했는데, 아마도 진피(*陳皮: 오래 묵은 귤껍질로, 약재로 쓰임)를 넣은 듯했다. 설서선생의 감정이 점점 더 격렬해지는 것을 들으며, 계연은 윤중이 세운 전공에 무척 흡족해했다. 그와 동시에, 만약 이 전술을 조월국의 병사들이 썼다면 설서선생은 이를 비열하다고 표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연은 설서선생이 늘어놓는 전투뿐만이 아니라, 청중들의 반응도 유심히 들으며 민심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찻물이 떨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력은 강성하고, 백성들은 한마음이니, 대정국은 비록 일시적으로 좌절을 겪었다곤 해도 조월국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차박사가 찻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자자, 손님 여러분, 차를 더 따라드리겠습니다!”
정신없이 설서선생의 이야기를 듣다가, 차박사의 말에 자신의 찻잔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두 서생은 비범한 분위기를 지닌 선생에게 무어라 의견을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찻잔 세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묵옥 비녀를 꽂고 하얀 장삼을 입은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찻잔 옆에는 동전 2문(文)이 놓여 있었다.
“저, 대형, 조금 전 여기 있던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두 서생 중 하나가 근처에 서 있던 중년 남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자는 설서선생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가 그가 말을 시키자 흘끗 한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모르오, 몰라. 나는 본 적 없소.”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은 모두 찻집 안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어, 두 서생은 서로 한번 눈빛을 교환한 뒤 계연을 찾을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휴, 그 선생께서는 기품이 범상치 않은 것이 분명 아주 박학다식해 보였는데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다니. 아쉽게 됐네!”
계연에게 자리를 양보한 서생이 이렇게 탄식하더니 동전 2문을 거둬들였다.
“등(鄧)형, 요즈음 종군하는 서생들이 아주 많다더군. 게다가 듣자 하니, 제주를 평정한 다음에 우리 군사들은 계속해서 북상할 계획이라 하지 뭔가. 조월국의 난을 평정하고, 국토를 개척하는 공을 세울 수 있으니 나도 나라에 충정을 다하기 위해 종군할 생각일세. 설령 모신(*謀臣: 꾀가 많아 모사(謀事)에 뛰어난 신하)이 될 수는 없다고 해도 군중의 서기관은 될 수 있지 않겠나? 등형의 생각은 어떤가?”
“기(祁)형의 생각에 동의하네. 윤중 공자처럼, 우리 서생들도 책상 앞에서는 붓을 들고, 안장에 올라서는 검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는 즉시 피가 끓어올라 벗의 말에 동의하며 자신과 함께 가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곧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스쳐 간 듯,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기형은 참으로 기개가 뛰어나군!”
기씨 성의 서생은 그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는 듯이 보이자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등형은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처자식이 있으니 어찌 나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겠나?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법이니, 훗날 우리도 분명 다시 만날 때가 오겠지! 들을 것도 모두 들었으니, 나는 이만 먼저 가보겠네. 여기 계산해주게!”
“예, 갑니다!”
차박사는 재빨리 다가와 찻잔을 한번 쓱 보고는 총 12문이라고 말했다.
기씨 성의 서생은 돈주머니에서 당오통보 두 닢을 꺼내어 계연이 남기고 간 동전 2문을 함께 건네려다가, 그 동전 두 닢이 심상치 않게 반짝거리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진 다른 동전으로 2문을 냈다.
계산을 마친 기씨 성의 서생은 벗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후 성큼성큼 찻집을 나섰다. 뒤에 남겨진 등씨 성의 서생은 그의 뒷모습을 내내 바라보며, 몇 번이고 걸음을 옮겨 따라가려다 결국 다리를 내리치며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 * *
기씨 성의 서생이 찻집을 나섰을 때, 계연은 이미 한참 멀어진 뒤였다. 그는 사실 찻집에 남긴 두 닢의 동전에 약간의 법력을 남기고 온 참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순간이 되면 그 서생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기운과 생김새를 보니, 그는 기개가 있고 의지가 아주 단단해 보였다. 아마 동전을 만진 순간 그 특수함을 느꼈을 테니, 그가 그 동전을 가져가면 좋은 연을 맺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굳이 그보다 더 큰 도움을 베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계연은 경기부 부성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붙은 포고문을 보았다. 어떤 곳은 여전히 구경꾼들로 북적였는데, 그런 곳에는 내용을 읽어주는 이가 있었다. 이에 계연도 걸음을 멈추고 들어보니, 대략 종군할 뜻이 있는 현사(*賢士: 어진 선비)를 모신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조정에서 붙인 각종 격려와 위국(衛國)에 관한 선전용 문구가 적힌 포고문도 있었는데, 이는 백성들의 애국심을 끌어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보기에 이곳 백성들의 애국심은 굳이 끌어올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민심은 조정의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격렬했으며, 그들은 조정을 무조건 지지하고 있는 동시에, 그중 많은 이들이 직접 전선에 나가려는 뜻을 품고 있기까지 했다.
성안에서 반나절 정도 거닐던 계연은 다시 윤재성의 저택으로 향했다. 칼을 찬 여덟 명의 호위들이 영안가의 윤 재상댁 앞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 이들은 금군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 윤씨 집안에 고용된 이들이었다. 계연은 그중 대부분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그들도 계연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연이 대문 앞에 다가가자마자, 그들이 즉시 계연을 알아보고는 얼른 계단을 내려와 그를 맞이했다.
“계 선생님, 오셨습니까?”
호위 중 우두머리의 목소리는 계연도 귀에 익은 터라 곧바로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포권하며 허리를 숙이자 계연도 그에게 간략히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예, 조(趙) 관사. 윤 훈장님과 청이는 안에 있나요?
변경이 침략당한 상황이니 윤재성과 윤청은 아마 각자 자기의 관청에서 정무를 처리하기 바쁠 테지만, 그래도 계연은 예의 삼아 물어보았다.
그러자 호위가 예를 거두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재상 어른과 상서 대인은 모두 관청에 계십니다. 때로 사흘에서 닷새 정도는 저택에 돌아오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숙직하시기도 합니다. 돌아오신다고 해도 아주 늦은 시각에 오시고, 둘째 공자께서는 종군하느라 변경에 가 계시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하다 자기가 아직도 계연을 밖에 세워두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얼른 그를 안으로 모셨다.
“계 선생님, 일단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저희가 노부인과 공주마마께 말씀 올리고, 재상 어른과 상서 대인께도 얼른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네, 그럼…….”
계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별말 없이 그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윤재성과 윤청은 계연이 방문했다는 걸 알자마자 집에 돌아오지 않고 최대한 할 일을 서둘러 처리한 다음 정상적인 ‘퇴근’ 시각에 맞춰 집에 돌아왔다.
윤청과 윤재성이 막 대문을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윤지와 윤전 두 아이가 잔뜩 흥이 난 얼굴로 달려와 정답게 소리쳤다.
“아버지, 할아버지! 돌아오셨어요?”
“아버지, 할아버지!”
“그래, 그래.”
“착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