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77화 (677/892)

677화. 대의(大義)와 천시(天時)

윤재성이 고개를 들어보니, 막 자기 며느리가 나오는 것이 보여 급히 물었다.

“계 선생께서는?”

서른이 넘은 상평 공주는 여전히 묘령의 나이처럼 고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자기 시아버지와 남편을 향해 간략히 예를 취한 뒤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윤지와 윤전이 재빨리 대답을 가로챘다.

“계 선생님께서는 식사를 드신 후에 도성 전체에서 별을 보기 가장 좋은 데로 가서 달과 별을 감상하신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그랬어요. 그런데 저희가 따라가도록 허락해주지는 않으셨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거기가 어딘지 아세요?”

상평 공주는 두 아이의 어깨를 주무르며 웃는 얼굴로 윤재성과 윤청을 향해 말을 이었다.

“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피곤하실 테니 먼저 좀 쉬셔야 하지 않겠니? 아버님, 상공, 식사 준비가 되었으니 일단 식사 먼저 하시지요. 곧 날이 어두워질 거예요.”

상평 공주도 총명한 이였으므로, 시아버지와 상공이 계 선생님을 찾으러 가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도성에서 가장 별을 보기 좋은 곳이라면, 중요한 제례에나 사용하는 대법대(大法臺)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옛날에 원덕제가 수륙법회를 개최하기 위해 지었던 가장 큰 법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좋겠구나. 청아, 일단 가서 식사부터 하자.”

윤재성은 거의 칠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였으나 여전히 걸음에 힘이 있었고, 그 나이의 노인처럼 구부정한 모습도 아니었다. 윤청과 상평 공주는 그의 뒤를 따라 두 아이를 이끌고 함께 걸어갔다.

* * *

그 옛날 수륙법회를 위해 지은 커다란 법대는 여전히 위용이 넘치고 기세가 남다른 모습이었다. 계연도 이 법대를 짓는 것이 분명 큰 공사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엄청난 노동력과 금전을 써서 지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수륙법회가 끝난 뒤, 이 법대는 조금 특수한 곳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때 계연이 친히 법력을 펼치고, 뭇 용들이 위에서 벼락을 내리쳐 요사한 것들을 물리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황실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기까지 하니, 이 법대에는 어딘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 계연은 법대 위에서 뒷짐을 지고 선 채, 하늘에 두둥실 뜬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달도 밝고 별도 드물지 않게 점점이 떠 있었다. 하지만 금오를 목격했기 때문인지, 계연은 왠지 저 밝은 달 안에 은빛 두꺼비(銀蟾)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륙법회의 주 회장으로 쓰였던 법대인 만큼 당연히 면적이 작지 않았다. 계연이 혼자 이곳에 서 있으니 무척 광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 계연이 뒤를 돌아보니, 윤씨 부자가 아니라 언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태상사 대인, 오랜만이군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윤재성이 꾀병을 부리던 때 언상은 재상부를 자주 방문했었고, 실은 계연도 내내 재상부에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는 계연을 만나지 못했고 계연이 머물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계연을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법대 위에 서 있던 누군가가 언젠가와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하자 언상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옛날에 이곳에서 마주쳤던, 달 아래서 검무를 춘 뒤 그에게 월병을 주었던 선인을 떠올리고는 즉시 감격에 차올랐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이시군요! 선생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언상이 선생님을 뵙습니다!”

언상은 허리 숙여 장읍례를 올린 뒤 재빨리 계연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다시 바로 앞에서 장읍례를 행하자 계연도 그에게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언 대인, 이리 예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

그간 언상은 어느새 머리칼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세어 있어, 검은 머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 자체는 여전히 또랑또랑하여 척 봐도 기력이 쇠한 듯한 노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언모(某)는 그저 별을 살피러 왔을 뿐인데, 이리 생각지 못하게 계 선생님을 뵙게 되는군요! 여러 해 동안 뵙지 못했는데, 풍채가 여전하신 걸 보니 정말 기쁩니다!”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 대인, 나라의 국운을 보러 온 것이지요? 전방의 일이 걱정되십니까?”

별을 살피는 것은 언상의 본업이었는데, 그는 원덕제 말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중용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그도 윤재성과 마찬가지로 삼조(*三朝: 삼대(三代)의 조정)를 모신 노신이라 할 수 있었다.

계연의 말에 언상도 고개를 들어 별을 살피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모는 전방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전방의 군사들이 때로 지기도 하지만, 대정국은 나라와 백성이 부강하고 편안하며, 조정이 청렴하니 별의 모습이나 기운도 강성합니다. 그에 더해 제왕의 별인 자미도 밝게 빛나고 있으니, 조월국 놈들이 이렇듯 기세를 올리는 것도 잠시 잠깐일 뿐일 테지요. 언모가 진정 궁금한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입니다. 별이 예지하는 나라와 사직의 변화이지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내려 다시 언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언 대인께서는 무슨 결론을 얻으셨죠?”

언상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내려 계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선생께서 이곳에 계신 걸 보니,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듯합니다. 대정국의 국운은 필히…….”

언상이 무척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하자, 그가 마지막 글자를 내뱉기 전 계연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언 태상, 굳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께서 물으신 것이 아닌 다음에야, 비록 천기를 누설할 정도의 기밀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중하신 것이 좋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계연은 계속해서 달을 올려다보았고, 언상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나란히 고개를 들어 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윤재성과 윤청이 높다란 법대에 올라서자, 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하늘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이 가까워지자 계연과 언상이 차례로 고개를 내리며 몸을 돌렸다.

“윤 재상, 윤 상서!”

언상이 조정의 고관 둘을 발견하고는 즉시 예를 취했다. 그는 이 두 사람이 나타난 것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았고,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언상이 이곳에 있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계 선생님, 언 대인!”

“언 대인께서도 여기 계셨군요!”

“윤 훈장님, 청아, 어서 와서 앉으세요. 제가 비록 조정 관원은 아니지만, 오늘은 세 분 조정 대신들과 함께 국사(國事)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계연이 웃으며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눈앞에 방석 여러 개와 낮은 탁자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사양하지 않고 곧장 방석으로 다가가 앉았고, 윤청은 탁자 위의 찻주전자를 들어 한 잔씩 차를 따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시다면, 전방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조월국에서 군사들을 일으킨 것은 확실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긴 하나, 우리 대정국에 있어서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닙니다. 소위 대의(*大義: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큰 도리. 대의명분을 뜻함)와 천시(*天時: 하늘의 도움이 있는 시기)가 모두 우리 쪽에 있으니…….”

* * *

이 시각, 저 멀리 제주 남쪽에서는 대정국의 대군이 자리 잡은 군영에는 막사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각 부대는 명확한 순서로 순찰을 돌고 취침을 했는데, 군영 외곽에는 다섯 걸음마다 보초가 서 있고 열 걸음마다 초소가 있었다.

군영의 한 커다란 막사 안에는 유등이 밝게 내부를 비추고 있었는데, 윤중은 그 안에서 갑옷을 차려입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손에 든 책을 읽고 있었다. 제주는 초겨울인데도 무척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에, 장군이 된 윤중의 막사에는 당연히 화로가 놓여 있었다. 화로 안에서는 목탄이 불그스름한 빛을 내며 타올라 장막 안을 더욱 밝게 비췄다.

그의 왼쪽, 병기를 보관하는 걸이에는 검은색 극(戟) 두 개가 있었다. 그것은 척 보기만 해도 무게가 꽤 나가 보였다. 오른쪽 병기 걸이에는 정교하고 용맹해 보이는 장검이 놓여 있었는데, 검집 위에는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당금의 황제인 양성이 윤중이 출정을 나가기 전 친히 내린 것이었다.

휘이- 휘이이-!

밤바람이 불어오자 장막의 천이 가볍게 흔들렸고, 장막 안의 유등 심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멎자 윤중은 고개를 들어 쇠꼬챙이로 유등의 심지를 가볍게 찔러서 불빛이 더욱 밝게 타오르도록 했다.

다시 빛이 환해진 순간, 윤중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휙 들어 올리자 책상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자는 백발이 성성하고 구부정한 노인이었는데, 윤중은 분명 조금 전까지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었다.

“너는 요괴냐, 아니면 귀신이냐?”

윤중이 고저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께서는 과연 당대 호걸이십니다. 제가 사람이 아닌 걸 아시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군요!”

노인이 윤중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존경과 감탄이 담겨 있었다. 윤중의 모습과 자기를 응대하는 자세만 봐도 장수의 풍모가 느껴졌다.

윤중은 심지를 찌르던 손을 거두고 들고 있던 책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슬쩍 곁눈질로 양쪽 무기 걸이를 살폈다. 그가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검이 놓여서, 그가 검 자루를 쥐어 당기기만 하면 곧장 검집에서 빼낼 수 있었다. 윤중은 유등의 심지를 찌르던 쇠꼬챙이도 내려놓지 않고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니 그럼 어디서 온 어떤 자냐? 나는 대정국 정북군(征北軍)의 편장군(*偏將軍: 현재의 부대대장 정도의 계급)인 윤중이다. 감히 군중에 너 같은 이매망량이 함부로 난입하다니!”

윤중은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세를 바로 세워 눈앞의 백발노인을 형형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동시에, 언제든 한쪽의 패검으로 손을 뻗을 준비를 마쳤다. 윤중의 안색은 조금도 변함없이 침착해 보였지만, 노인의 눈에는 윤중에게서 살기(殺氣)와 살기(*煞氣: 흉악하거나 사악한 기운)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장막 전체가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이 된 것 같았다.

그 거센 화염 같은 기세에 노인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녀의 마음은 겉보기처럼 그리 평온하지 못했다.

‘과연 일세의 맹장이로다!’

“하하,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이 늙은이는 악의를 지니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온 것은 대정국의 대군이 과연 전세를 역전할 힘이 있는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 매사 노장군의 장막에도 들렀었는데, 그 노장군은 위세가 범상치 않긴 하나 그래 봐야 한낱 재주가 평범한 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정국의 다른 두 대군은 이미 크게 패했고, 이 세 번째 대군도 만약 모두 그들과 같다면 이길 가망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요…….”

윤중은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노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자를 보고 있자니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윤중은 언제라도 그 힘을 폭발시킬 듯한 기세로, 보검을 천천히 검집에서 뺄 준비를 했다.

눈앞의 노인은 사람이 아니었고, 어조에서는 대정국 병사들에 대한 멸시가 느껴졌다. 게다가 높은 확률로 사술(邪術)을 사용하는 자처럼 보이니, 만약 그렇다면 대원수인 매사의 상황은 아마 그리 좋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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