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78화 (678/892)

678화. 일세의 영웅

막사 안에서는 윤중이 내뿜는 흉악한 기운과 살기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서, 노인은 피부를 찌를 정도로 따끔따끔한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때 그녀가 보는 윤중은 이미 갑옷을 차려입은 보통의 장수가 아니라, 온몸의 털이 빳빳이 곤두선 거대한 맹호처럼 보였다. 송곳니를 드러낸 맹호의 두 눈에서는 살의가 번뜩이고 있었다.

“고작 대정국의 군사들을 모욕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지? 윤모(某)는 네가 요괴든 귀신이든, 심지어든 신령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우리 군사들에 대해 불손한 발언을 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윤중의 표정이나 안색은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목소리는 아주 낮고 무거웠다. 그는 자신이 뿜어내는 살기가 옆에 놓인 등불을 불안하게 흔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언뜻 들으면 여지를 주는 듯한 말을 했으나, 실은 검을 빼내 들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더 거슬리면 한순간에 검을 휘두를 요량이었다.

노인은 그의 흉악한 기운과 살의를 느끼고는 윤중의 결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도 마침내 약간의 두려운 기색이 드러났다. 그녀는 얼른 허리를 살짝 굽혀 윤중을 향해 예를 취했다.

“윤 장군, 노기를 가라앉히시지요. 이 늙은이는 대정국과 조월국의 경계에서 수행을 닦는 자인데,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요괴도 아닙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대정국 군사들이 어떤지, 승기를 거둘 만한 힘이 있는지 살펴보고 제가 도울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오늘 장군의 위세를 보니, 과연 천하에 보기 드문 영웅이시군요! 조금 전에 이 늙은이가 혹 무례를 범한 것이 있다면, 장군께서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윤중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잠시 관찰하더니, 마침내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렸으나 경계는 거두지 않은 채였다.

“우리 대군을 돕기 위해 왔다고? 설마 조월국의 오합지졸들이 우리 대정국의 용맹한 군사들을 당해낼 수 있기라도 하다는 것이냐? 조월국은 내정이 불안하니 지금 이 승승장구한 기세를 한번 꺾어주기만 한다면, 그 후에는 결코 우리를 상대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 말에 노인이 살짝 미소 짓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는 과연 일세의 영웅이십니다. 하지만 조월국 군중이라 하여 재주 있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조월국 군사들은 그동안 무기를 내려놓을 새가 없을 정도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아, 피도 본 적 없는 대정국 군사들보다 훨씬 용맹하고 흉악합니다. 또한 이번에 조월국은 큰 도박을 건 셈이라, 사람이 아닌 자들의 도움마저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군께서는 조월국의 오합지졸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지닌 모든 힘을 끌어모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신중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윤중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패검을 집어 허리에 찼다. 그러자 노인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싶은 생각이 스쳤으나, 가까스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윤중이 겉으로 경계를 내려놓은 것처럼 보여도, 실은 전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장군이 병졸들 앞에서 조월국의 적군을 비웃긴 했으나, 실은 단 한 번도 그들을 얕잡아 본 적이 없다. 적군의 동태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고, 네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여봐라!”

윤중이 크게 병사를 부르자 밖에서 병졸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안에 있던 노인을 보고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바로 포권하며 말했다.

“분부가 있으십니까, 장군?”

“가서 원수를 모셔오너라. 본 장군이 상의할 긴급할 일이 있다고 하고!”

윤중은 이렇게 해서 매사 노장군의 안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노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윤중이 명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윤중의 위세를 직접 목격한 후, 이미 대정국을 도울 결심을 한 후였다. 이는 윤중 한 사람만을 보고 내린 게 아니라, 윤중 뒤의 윤씨 일가를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전해 듣기로, 현재 대정국에서 권세가 가장 높다는 윤재성은 세상에 내려온 문곡성이라 불리며, 문인의 우두머리인데다 호연정기를 지닌 천고의 현신(賢臣)이라고들 했다. 게다가 그 아들인 윤청은 제왕을 보필할 만한 재신(才臣)이라 불렸다. 그에 더해 윤재성의 차남인 윤중이 지닌 위세는 일세의 명장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대정국은 본래부터 국력이 조월국보다 강성했고, 이제 윤씨 일가가 문무(文武) 양쪽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있으니 참으로 국운이 대성할 조짐이 아닐 수 없었다.

반각(7~8분) 뒤,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매사 노장군이 갑옷을 입은 채 윤중의 막사로 들어왔다.

“윤 장군, 이리 늦은 시각에 꼭 상의해야 할 긴요한 일이란 게 무엇인가?”

병졸이 막사의 장막을 젖히자 매사 노장군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안에 있던 노인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는 누구인가? 윤 장군의 막사 안에 어찌하여 노부인이 있지?”

윤중은 그가 무탈한 것을 보고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사가 오자, 윤중은 이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가 그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의 품에는 특수한 병서가 한 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노장군을 향해 먼저 포권하며 예를 취했다.

“소장(小將)이 원수를 뵙습니다! 이자는 자칭 산간을 떠도는 수행자라는데, 조월국 병사들의 상황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고하길래 대인과 상의하고자 급히 모신 것입니다.”

노인은 미소 지으며 매사를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혔다. 그녀는 이미 매사를 보고 왔으나, 그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윤중이 있으니 당연히 달랐다. 이왕 윤중이 법도와 군중의 규율을 중히 여기니, 그녀도 윤중의 앞에서 매사를 얕잡아 보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이 늙은이는 본디 연추산에 살던 백선(白仙)인데, 마침 제주 변경에서 수행을 닦다가 두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대정국의 백성들이 고난을 겪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도움을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조월국 군중의 형세는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중에는 고명한 요괴며 온갖 사악한 것들이 돕고 있으니, 이미 평범한 인간들 간의 전쟁이 아니게 된 지 오래입니다…….”

윤중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계 선생님께서 그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소위 ‘백선’이란 것은 사실 요괴가 된 동물이 자신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했었다. 뱀 요괴들이 자신을 가리켜 류선(柳仙)이라고 하듯, 백선이라는 명칭은 고슴도치들이 자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윤중은 이를 굳이 짚어내지 않았다. 이왕 자신을 백선이라 칭하는 것을 보니, 다른 이들이 자신을 축생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비록 윤중이 조금 전까지 살기를 뿜어내긴 했으나, 그렇다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조차 버린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이렇게 말을 끝맺더니 소매 안에서 향낭 두 개를 꺼내, 각각 매사와 윤중을 향해 건넸다.

“이 늙은이가 일단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두 분 장군께 이것을 선물로 먼저 드리겠습니다. 이 향낭 안에는 이 늙은이가 제련한 부적이 있는데, 그 안에 법력이 담겨 있어 꽤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매사는 윤중이 살짝 눈썹을 찌푸린 걸 보더니 먼저 손을 뻗어 향낭을 가져갔다.

윤중의 손이 향낭에 닿자, 일단 온기가 먼저 느껴지며 온몸에 열이 번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향낭 위로 푸른 연기가 갈래갈래 치솟기 시작했다.

쉬이익……!

푸른 연기는 향낭에서 1척(약 30cm) 정도까지 올라가자 저절로 공중에서 흩어졌으나, 향낭이 지닌 열기는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윤중은 원수인 매사를 즉시 뒤로 보내며 보호한 뒤, 눌러 두었던 살기를 삽시간에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의 눈에 막사 내부가 다시 불길이 들끓는 연옥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겁을 먹은 노인이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났는데,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실태를 보였다는 걸 깨닫곤 얼른 입을 열었다.

“장군, 윤 장군, 이 늙은이가 드린 향낭은 절대 해를 끼치는 물건이 아닙니다. 부디 저를 믿어주십시오!”

노인은 윤중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자 얼른 허리를 굽히며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윤중이 내뿜는 기세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여서, 그녀는 이 무장이 자기를 죽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무언가 떠오른 듯 재빨리 덧붙였다.

“윤 장군, 부디 이 한마디만 들어 주십시오! 장군께서는 필시 어느 고인께서 주신 호신용 보물을 지니고 계실 겁니다. 혹은 어느 고인께서 장군이 몸을 지킬 수 있도록 고명한 술법을 걸어주셨겠지요. 아, 그렇지! 영존(*令尊: 상대의 아버지를 공손히 이르는 말)이신 윤 공께서는 속세의 대유(*大儒: 학식이 높은 선비)이시고, 호연정기를 지니고 계시니 장군께서 오랫동안 영존 곁에 머물며 아마 그 기운에 물드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늙은이가 닦는 수행은 일반적인 정도(正道)와는 조금 달라서 향낭이 이렇게 반응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군, 여기 보십시오. 향낭의 위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지 않았습니까? 이건 정말로 호신용 보물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노인은 전처럼 침착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이마에 식은땀이 다 솟을 정도였다.

그녀의 말에 윤중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에 든 향낭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 위의 온기는 전과 다를 것이 없었고, 호신용 보물이라면 자기가 지금 지니고 있기도 했다. 바로 계 선생님께서 주신 자진(*字陣: 글자들이 이루는 진법) 병서였다. 게다가 저 긴장한 기색을 보니 거짓을 고하는 건 아닌 듯했다.

“확실히 온기가 있군. 그렇다면 너를 한번 믿어보도록 하겠다!”

윤중은 이렇게 말하며 마침내 향낭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희미한 푸른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잠시 후 향낭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좀 더 편안하게 변했다.

윤중이 자신을 믿는 걸 보고 노인은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곧이어 자신의 이런 반응에 자조했다. 자신이 일개 평범한 인간인 윤중을 이렇게나 두려워하게 되다니. 하지만 동시에 윤중의 비범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그녀는 이제 윤중이 하늘에서 내린 운명을 타고난 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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