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화. 거미 요괴는 빌어먹을
“상대는 거미 요괴인 게 분명해, 불을 써!”
“불의 바람을 일으켜라, 하압!”
화륵……!
두 사람은 동시에 법력을 펼쳤다. 한 사람이 부적을 꺼내 던지자 칭칭 감은 실 위에 불이 붙었고, 다른 한 사람이 소매 안에서 노란 가루를 꺼내 뿌리자 이에 닿은 실들이 쾅쾅 터져나갔다.
그때 이미 백 장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뒤쫓아온 청송 도인은 언짢은 얼굴로 눈썹을 찌푸리더니 욕을 퍼부었다.
“거미 요괴는 빌어먹을, 이 몸은 도사다! 너희 둘은 천시(*天時: 하늘이 내린 때), 지리(*地利: 땅이 주는 이득, 지리적 조건), 인화(*人和: 사람의 화합과 단결) 중 어느 하나도 점하지 못했고, 북두성이 명(命)을 밝게 비추니 오늘 밤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얌전히 받아들여라!”
청송 도인이 불진을 세차게 휘두르자, 공중에 떠 있던 검은 장포를 입은 두 사람은 무언가가 자신들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한편 별빛이 흐르는 실선 위에 붙은 화염은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추락하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보니, 불진을 든 도인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 * *
한편, 대정국 정북군의 군영에서 두장생의 막사는 윤중과 매사의 막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정북군에서 제일 중요한 두 장수를 지키기에 가장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대정국의 국사인 그가 도착하자, 일찍이 군영에 투신해왔던 수행자들은 모두 두장생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현재 전세(戰勢)는 대정국에 불리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순조롭게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두장생은 막사 앞에 서서 서쪽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사천감에 오래도록 몸담아 온 데다 수행자가 지닌 장점까지 더해져 이미 별을 읽는 법에 일찍이 통달한 참이었다. 그에 더해 그는 법안까지 갖추고 있었으므로, 서쪽 하늘의 별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더욱 쉽게 확신할 수 있었다.
“국사, 무언가 발견하신 겁니까?”
두장생이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 막사를 나온 윤중이 자기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렇소, 저쪽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건 절대 자연 현상이 아니오. 누군가 법력을 펼친 게 분명하오.”
그러자 윤중이 미간을 찡그리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실력이 대단한 자입니까?”
그러자 두장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는 알 수 없으나, 저건 일반적인 수행자가 갖추고 있는 능력은 아닙니다!”
두장생 자신도 자신이 저런 변화를 부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는 그의 도행이 충분치 못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저 정도 능력이 있다면 도행이 결코 그보다 도행이 낮은 자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 * *
어느새 하늘이 점점 밝아왔다. 교전 지역의 정북군 병사들에게 있어 매일 밤을 보내기란 절대로 쉽지 않았다. 이는 윤중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해가 막 뜨자마자, 윤중은 갑옷을 갖춰 입고서 등에는 쌍극을 매고 허리춤에는 검을 찬 채 수하들을 이끌고 군영 곳곳을 순찰했다. 그가 군영 수비의 요지(要地)에 들르면 그곳을 책임지는 군사가 그에게 전날 하루 동안의 상황을 보고했다.
주위 병사들의 공손한 인사와 존경 어린 눈빛을 받으며, 윤중은 순찰 상황을 책임지고 기록하는 막사로 향했다. 윤중이 다가오는 것을 본 서기관은 즉시 나가 그를 맞이했다. 그는 복잡한 인사나 예절을 생략하고 간략히 양손을 맞잡아 인사한 뒤, 곧장 이렇게 보고했다.
“윤 장군, 오늘 새벽에 돌아왔어야 하는 순찰대 중 두 부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오전이 지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백 명의 병사들을 잃은 셈입니다.”
그러자 윤중은 아무런 동요 없는 표정으로 담담히 물었다.
“북쪽으로 정탐을 보낸 순찰대 말이냐? 어느 부대들이지?”
군중의 장수들은 매일의 순찰과 수비 상황에 대해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었고, 윤중 또한 각 순찰대의 상황과 그들의 대장이 누군지 전부 알고 있었다.
서기관이 탄식하며 아는 대로 보고했다.
“북쪽이 아니라 우리 군 후방의 남쪽 순찰대입니다. 요(姚), 조(趙) 두 도백( *都伯: 백 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군관의 직위)과 그 수하의 부대입니다.”
그러자 검 자루를 쥔 윤중의 왼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더니, 한참 뒤 윤중이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깝게 되었구나!”
서기관도 윤중이 말하는 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윤 장군은 요 도백에게 장수가 될 자질이 있다며, 그를 얼마간 눈여겨보다가 발탁하려 한다고 말했었다.
“아직 너무 상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저 의외의 일이 생겨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윤중이 서기관을 한번 보더니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윤중이 고개를 들어 군영 밖을 내다보니, 아침 햇빛을 받으며 말들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에 정말로 순찰대가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한 윤중이 얼른 군영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가까워지자, 윤중은 이들이 순찰대가 아닌 강호 무인의 행색을 한 무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를 본 윤중은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윤중은 속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고 몸을 돌려 다른 곳을 순찰하러 갔다.
* * *
반각(半刻) 뒤, 왕극은 좌무극과 다른 무인들을 데리고 한 차례 신문을 거친 뒤 정북군 군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군영 안의 군기가 삼엄하고 내부가 잘 정돈된 것을 본 왕극은 정북군에 대한 인상이 단번에 좋아졌다.
그들이 가져온 두 요인(妖人)의 머리통을 살펴본 군중의 천사(天師)들이 이들이 적군의 법사라는 것을 공언하자, 군영 내에서 이 무인들에 대한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에 병사들이 무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왕극은 좌무극을 데리고 군영 안 허가 받은 구역을 구경해볼 수 있었다.
“둘째 사부님, 정북군은 정말 대단한 군대군요!”
“당연한 소리, 이 정도 모습은 되어야 우리 대정국의 군대라 할 수 있지!”
왕극도 관리의 신분이었으므로 군영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척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멀리서 선풍도골의 모습을 한 사람이 뒷짐을 진 채 제자들을 이끌고 지나가는 것을 본 왕극이 즉시 무언가를 알아채고 이렇게 말했다.
“무극아, 저분이 우리 대정국의 국사시다.”
좌무극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려 국사를 바라보니, 국사도 마침 그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이쪽을 쳐다보았다. 이에 좌무극이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국사가 돌연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장생은 왕극과 좌무극의 근처에 멈춰 서지 않고,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다급히 군영의 영문(營門)으로 걸어갔다.
그때 군영 밖에서는 등에 검 한 자루를 진 도인이 천천히 걸어왔는데, 그는 한 손에는 불진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람의 머리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청송 도인의 모습은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곳은 없었으나, 그의 분위기나 내뿜는 기운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도포를 표표히 바람에 휘날리며 장검을 등에 멘 그의 팔 아래로는 불진이 장식용 술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에 더해, 다른 한쪽 손에 든 머리통 두 개와 그 담담한 표정만 봐도 병사들은 저 도인이 고인(高人)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니, 대정국 쪽에 선 도인임이 확실했다.
청송 도인이 아직 군영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두장생은 이미 제자 몇을 이끌고 영문으로 다가가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자 주위의 병사며 군관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모여들었다. 두장생과 잘 아는 한 교위가 그를 향해 물었다.
“국사, 저기서 오는 분이 우리 대정국의 고인이십니까?”
그러자 두장생은 웬일로 거드름 피우지 않고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다만 손에 든 두 머리통은 적군의 어느 요인(妖人)인지 모르겠군!”
두장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청송 도인의 목소리가 멀리서 전해져왔다.
“빈도(貧道)는 북쪽에 처음 오는 것이라, 이 두 놈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소. 그러니 국사 대인께서 대신 판별해 주시는 것이 좋겠소. 어젯밤에 서둘러 죽이느라 미처 묻지 못했구려.”
그의 목소리가 채 흩어지기도 전에, 청송 도인은 이미 십여 걸음 만에 백 보 거리를 걸어와 영문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가 오른손을 휙 펼치자, 사람 머리통 두 개가 땅바닥에 쿵쿵 떨어져 한쪽으로 굴러갔다. 동시에 청송 도인은 두장생을 향해 일반적인 읍과는 조금 다른, 도문(道門)만의 읍례(揖禮)를 했다.
“빈도의 이름은 제선이라 하고, 도호(道號)는 청송이오. 본래는 수행을 닦으며 세상일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이번에는 우리 대정국과 조월국 간에 숙명을 건 전쟁인 만큼 돕기 위해 왔소!”
그러자 두장생도 제자들을 이끌고 함께 공손히 예를 취했다.
“이 몸은 두장생이라 하고, 조정에서 작은 관직을 맡아 녹봉을 받고 있소. 우리 군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와 주시다니 참으로 고맙소, 청송 도장.”
그는 이렇게 말하며 땅바닥에 떨어진 머리통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두 사람은 사도(邪道)를 닦는 이들이 분명하지만, 꽤 실력이 있는 자들이군요. 게다가 오늘 아침 들어온 다른 머리통 두 개까지 합하면, ‘임곡사선(林谷四仙: 임곡의 네 신선)’ 넷이 완전히 모인 셈이로군, 흥, 잘됐구먼! 아, 접대가 소홀하였소.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청송 도인은 그를 따라 군영으로 들어가며 주위의 기뻐하거나 호기심 어린 얼굴들을 하나씩 살폈다. 이들은 모두 대정국 정북군의 병사들로, 비바람을 맞은 거친 얼굴에 굳센 기개가 깃들어 있었다. 몸에는 군데군데 금이 가거나 떨어져 나간 갑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모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다만 그들 모두에게 죽음의 기운이 얽혀 흩어지지 않는 걸 보니, 앞으로의 운명에 길(吉)보다는 흉(凶)이 더 많은 듯했다.
그는 속으로 깊이 탄식한 후, 두장생을 따라 막사로 향했다.
도중에 등이 굽은 노인이 나타나 예를 취했고, 체격이 우람한 남자가 요기(妖氣)를 뿜으며 나타나 인사하기도 했다. 물론 일반적인 수행자들도 있었다. 청송 도인은 그중에 수행의 길이 그다지 바르지 않은 자도 봤지만, 지금은 모두 한 군영에 몸담은 사이이니 마찬가지로 인사를 해주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눈 청송 도인은 그제야 두장생을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간만에 진정한 고인을 만난 두장생은 무척 공손히 그를 접대했고, 차와 다과를 들이라 명했다.
청송 도인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차도 마시고 다과도 좀 집어 먹다가 돌연 이렇게 물었다.
“참, 국사 대인, 백 부인은 어디 계시오?”
두장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물었다.
“백 부인? 그게 누구십니까?”
“아, 백 부인은 아직 군영에 오지 않은 모양이로군? 백 부인은 도행이 무척 높은 선도(仙道)의 수행자인데, 제주의 경계를 넘기 전 빈도가 별빛을 받으며 토납(*吐納: 입으로 묵은 기운을 내뿜고 코로 새 기운을 들이마시는 수행법)하고 있을 때, 백 부인이 나타나 빈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소. 그녀도 이번에 북방의 전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왔다고 했소. 게다가 도행이 나보다 높으니 아마도 이미 도착해 있을 것이오.”
그러자 두장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분은 정말로 뵌 적이 없소이다. 혹시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겠소?”
“그럴 수도 있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