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화. 백 부인이 관문을 지키니, 그 검세(劍勢)가 용과 같다
그와 반대로, 제주의 수많은 조월국 군영에서는 맹렬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제림관에서는 이제 관문을 활짝 열고서 대정국 군사의 주력인 기병들을 연이어 내보냈고, 그들은 즉시 조월국 각 군영으로 돌진했다.
함께 이익을 좇을 때의 조월국 병사들은 마치 한 떼의 흉악한 늑대무리 같았으나, 돌연 습격을 맞닥뜨리자 원래부터 한마음 한뜻이 아니던 군영이 온통 혼란 일색이 되었다.
양측이 무기를 맞대며 교전하자 하늘 위로 점차 핏빛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행을 쌓아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밤하늘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구름으로 뒤덮인 듯이 보였다. 청송 도인의 진법은 이미 태반은 그 영향력을 잃은 후였지만, 어차피 이제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 * *
영정관 상공에서 벌어지는 싸움으로 인해, 아래쪽 대지는 법광(法光)에 의해 눈처럼 새하얗게 밝아졌다. 임곡의 두 노인은 아무리 힘을 모아 맞서도 백약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어쩔 수 없이 영전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뒤이어 요광(妖光)과 검은 바람이 조월국 방향에서 날아왔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백약의 용 같은 검세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백약은 비록 사슴 요괴였지만, 그녀가 닦은 선결(仙訣)은 계연이 늙은 용에게서 얻은 옥간(玉簡)을 보고 개량한 것이었으므로, 그 초식에는 당연히 용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백약은 일찍이 신도(神道) 사이에 떠도는 계연의 천경검세의 위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검세의 위력을 깊이 흠모하여,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여러 번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배운 선결의 초식에 상상 속의 검세를 그려내 보았다. 이는 백약도 처음 써 보는 초식이었지만, 놀랄 만치 위력이 대단하여 그녀 자신도 깜짝 놀랐다.
밤하늘 위로 은빛 용이 백약의 검세를 따라 미친 듯 춤추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쉼 없이 천둥이 치며 대지를 울렸고, 거대한 돌들이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그 기세를 돋웠다.
솨아아아……!
백약이 계속해서 용과 같은 검세를 휘두르자 하늘에서 돌연 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빗방울이 검세에 섞이자 용의 기세가 더욱 흉흉해져, 마치 망망대해 위를 꿈틀대는 용처럼 역동감이 넘쳤다.
“쿠워어-!”
그녀가 검세의 중심에 떠올라 전방을 향해 연검을 내찌르니, 거석과 빗방울이 모여들며 검의(劍意)를 담은 용이 길게 울어 젖혔다.
쿠구궁……!
하늘에서는 차례로 벼락이 내리쳐 그녀의 용과 같은 검세 위로 떨어지며, 진룡이 세상에 강림한 듯한 위세를 내뿜었다.
이때 만약 계연이 이곳에 있고, 백약의 정체를 몰랐다면, 그조차 절대로 그녀가 사슴 요괴라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백약은 놀라움과 기쁨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적을 상대했다. 반면 임곡의 두 노인을 비롯해 다른 요마(妖魔)와 정괴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백약의 검세가 내는 용의 울음소리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저자는 어느 명문 선문의 고인이 분명하오. 이렇게 가다가는 결코 꺾을 수 없을 테니, 우리가 여기서 저자를 막고 여러분은 연추산을 통해 빙 돌아 어서 제주로 가시오! 오늘 밤 천기가 혼란스러운 걸 보니, 제주에 큰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소!”
“좋소, 당신 스스로 뱉은 말이니, 후에 저 백씨 성의 여인에게 죽어도 우릴 원망하지 마시오. 갑시다!”
하늘 한쪽을 덮은 요광과 검은 바람 사이로 이런 대화가 오고 가더니, 여러 갈래의 요광이 즉시 후방으로 둔광을 내며 사라졌다. 그들은 언뜻 조월국으로 후퇴하는 듯이 보였으나, 백약은 상대방이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해야 할 자들이 있어 저들을 뒤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 무리가 수백 리를 빙 돌아가자 저 멀리 서로 부딪치는 법광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갈래의 요광은 곧장 연추산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발아래 연추산에서 굉음이 치솟더니 산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앙-!
셀 수 없이 많은 거석이 폭발로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아래쪽에서는 계속해서 굉음이 나고 있었다.
콰과광…….
“하하하하하! 이 몸은 연추산의 산신이다! 이놈들, 감히 이곳을 지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비처럼 쏟아져 내린 거대한 바위들은 다시 중력을 거스르듯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뒤이어 유백색의 얇은 비단처럼 깔린 안개를 찢으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아래에서부터 피할 수도 없이 수많은 바위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자 다섯 갈래의 요광(妖光)은 이를 피할 곳이 없었다.
솨앗, 솨앗……!
날카로운 발톱이 스쳐 지나가고, 금빛이 하늘에서 번쩍이더니 거석들이 차례로 터져나갔다.
펑, 펑, 펑……!
가까스로 날아오는 돌을 파괴하긴 했지만, 요괴들은 이 공격에 완전히 발이 묶여 버렸다.
“하하하하하, 벌레 같은 놈들, 감히 연추산 위를 이렇게 낮게 날다니!”
휘잇-!
그때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광풍이 불었고, 산맥의 일부처럼 보이는 거대한 팔이 아래쪽에서부터 안개를 뚫고 상공으로 솟구쳤다. 높이 솟은 거대한 팔은 달빛과 별빛을 완전히 가린 뒤, 막 법력을 펼쳐 바위를 부수고 있는 요괴들을 향해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든 과정은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이었다.
펑, 펑, 펑……!
거대한 팔이 주위의 무수한 바위를 마치 쌀알처럼 가볍게 흩트린 뒤, 그 흉흉한 기세 그대로 요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떨어졌다.
콰광!
폭발음과 함께, 요괴 둘이 거대한 팔에 맞고는 다섯 개의 손가락 사이에 갇혀 버렸다. 다른 세 요괴는 간발의 차로 그 공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끄그그극……!
그때 요괴들의 뼈를 으스러트릴 듯이 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거대한 손안에서 두 요괴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남은 세 요괴는 신속하게 공중 높이 날아올라,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동료를 뒤에 두고 도망치며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연추산 산신 대인, 듣기로 연추산의 산신은 온 마음으로 도를 구할 뿐, 향불의 힘에도 기대지 않고 속세에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모두 조월국의 천사(天師)로, 조월국 송씨 황제에게 친히 책봉을 받아 조정에서 녹봉을 받는 관원입니다. 저희가 이 산을 넘는 것은 그저 조정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함일 뿐, 산신 대인을 노하게 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추산에서는 또 한 번 폭발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쾅, 콰앙……!
거대한 바위들이 다시 한번 상공으로 떠올라 요괴들을 공격했는데, 그 속도가 세 요괴가 움직이는 것보다 빨랐다.
동시에 연추산 산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간에 울렸다.
“연추산 산맥은 내가 관리하는 곳인데, 어찌하여 이게 속세에 간섭하는 것이냐? 게다가 너희 같은 놈들이 조정의 녹봉을 받는다고? 죽어도 가당키나 하겠느냐? 하하하하…….”
산신의 웃음소리가 연추산 상공에 울려 퍼졌는데, 그 말에는 누가 들어도 조롱이 담겨있었다. 이에 세 요괴는 그제야 산신이 고의로 이러는 것임을 알았다. 조월국의 조정이 거의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들, 산신의 도행으로 어찌 그들의 몸에서 관기(*官氣: 관료가 지닌 기운)를 읽지 못하겠는가?
세 요괴는 쉼 없이 법력을 펼쳐 날아오는 거대한 바위를 파괴했다. 그중 한 요괴는 이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의 정체는 높이가 1장(丈)보다 좀 더 큰 천산갑이었다. 그는 다른 두 요괴로 하여금 자신의 등 위에 서게 한 다음, 날카로운 앞발을 휘둘러 날아오는 바위들을 파괴하자 그 위력이 전보다 더 강력했다.
연추산 산속에 낀 안개는 이미 완전히 흩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하늘을 떠받치듯 거대한 높이의 돌로 된 다리 한 쌍이 각기 다른 산봉우리를 밟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그 끝도 없이 높고 단단한 산맥과 같은 몸을 발견한 세 요괴는 겁에 질려 더욱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위들이 날아와 부딪히고 폭발하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한 순간, 세 요괴는 돌연 시야가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이들의 등 뒤에서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콰광-!
“커헉!”
“윽!”
세 요괴는 원래 더 높이 솟아오르려다가, 거대한 충격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늘과 구름은 보이지 않고 단단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토층이 보였다. 그것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구름처럼 상공을 가로막고 있었다.
‘대체 언제? 수천 척(尺)은 더 되는 이 높이에 어디서 온 흙과 돌이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기가 무섭게, 세 요괴는 저절로 답이 떠올랐다. 바로 조금 전까지 공중으로 떠올라 그들을 공격한 바위들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공중에 떠오른 석판에 부딪힌 이들이 정신이 혼미해지며 법력을 잠시 멈춘 순간, 바위들이 다시 중력을 거슬러 비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기세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휘익- 휙- 휙-!
쿠궁! 쿠구궁……!
쿠웅-!
퍼엉!
셀 수 없이 많은 바위가 폭탄처럼 요괴들이 가로막힌 위치를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원래는 그 사이로 요광이며 술법을 펼칠 때 나는 빛이 흘러나왔는데, 지금은 순식간에 완전히 어두워졌다.
“하하하, 이 초식은 ‘천장(*天葬: 망자의 영혼을 직접 하늘로 올려보내는 방식의 장례. 원래는 시신을 잘라 독수리에게 보시함)’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산맥의 일부인 듯한 거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질문했지만, 이에 대답할 수 있는 이들은 이미 없었다.
곧이어 날아오던 돌들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하늘의 달과 별을 가렸던 빼곡한 바위들이 쉴 새 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속도와 압박감으로만 보자면, 땅에 내리꽂히자마자 산맥을 완전히 뭉개버릴 것 같았지만, 지면에 가까이 닿기 전에 돌들은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바람을 타고 연추산 곳곳으로 가볍게 떨어져 내릴 따름이었다.
그렇게 해서 연추산의 겨울밤은 다시 한번 적막에 잠겼다. 산신이 나서서 요괴들을 처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반각(7~8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산신은 고의로 일을 크게 벌여 그 소리가 멀리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반경 10리(里) 안에서 동면하고 있던 동물들은 모두 겨울잠에서 깨버렸다. 그들은 겁에 질려 진동과 소란이 모두 지난 후에도 조금의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한 시진(2시간) 후에야 다시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신의 몸은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다시 험준한 산봉우리가 되었다. 그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회색 장포를 걸친 남자가 홀로 서서 동북쪽과 동남쪽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양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였다.
이 남자는 바로 연추산의 정신(正神)인 홍성연이었다. 그 스스로 말했다시피, 그는 속세의 분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는 아주 거친 방식으로 손을 써 한쪽 편에 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그처럼 높은 도행 수준으로는, 이렇게 속세의 분쟁에 살짝 닿은 정도로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허허, 저 백 부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자군.”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땅속으로 숨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