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다
영정관 밖.
백약은 마치 검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용과 함께 움직였다. 용의 머리, 꼬리, 그리고 발톱은 모두 실제 교룡이 공격하듯이 움직였고 그 공세는 갈수록 더욱 매서워졌다. 백약이 용의 검세를 펼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력은 더욱 커지기만 해, 천둥이 치며 검기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임곡의 두 노인과 다른 두 사람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콰광!
휘익-!
용이 꼬리로 검기와 벼락으로 이루어진 회오리바람을 만들더니, 한곳에 모여선 네 사람을 향해 날아가 그들을 몇 리 밖으로 날려 보냈다. 이에 그들의 옷자락이 검기에 의해 찢겨나갔고 피부에도 길게 그인 혈흔이 남았다.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네 사람은 북쪽 하늘에 떠 있고, 백약은 남쪽에 서서 검을 거두고 뒷짐을 진 상태로 대치했다. 반면 그 용은 그녀의 옆에서 쉬지 않고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임곡의 두 노인이 서로를 살펴보니, 각자의 다리며 팔, 몸 곳곳 그리고 얼굴에 검에 베인 상처가 남아있었다. 깊이 베인 곳도 있고 얕게 베인 곳도 있었지만, 다행히 전부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들을 도우러 온 동료 둘 중 하나는 요괴고 다른 하나는 돌로 된 정괴였다. 요괴는 비늘로 피부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는데도, 곳곳이 떨어져 나가 그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정괴의 피부 표면은 도끼에 찍힌 것 같은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미 반 시진이 넘게 싸운 후였으므로, 이제 네 사람은 모두 저 백씨 성의 여인이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잠시 주저하던 임곡의 노인 중 하나가 백약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백 선자(*仙子: 신선을 일컫는 말), 이왕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다면 오늘 밤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청컨대 여기서 우리를 놓아주시지요.”
그러자 백약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들을 향해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로써 상대의 제의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었다.
임곡의 두 수행자와 다른 두 일행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천천히 후방을 향해 멀어지다 일정 거리가 되자 둔광(遁光)을 뿜으며 사라졌다.
그들은 백씨 성의 여인에게 발이 묶였지만, 각도를 바꿔보면 저 여인도 그들을 상대하느라 발이 묶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다섯 명의 동료들을 제주로 먼저 보냈으니, 시간을 계산해보면 지금쯤 아마 도착했을 터였다.
네 사람의 둔광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백약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법력을 거두었다. 그러자 옆에서 움직이던 용의 형체가 사라지며, 그것이 휘감고 있던 거대한 돌들이 지면으로 떨어져 굉음을 냈다.
그녀가 펼친 용의 검세는 위력이 컸지만, 능숙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아직 수련이 부족해 무척 피곤했다.
그녀는 임곡의 두 노인만 있을 때는 사실 정말로 그들을 죽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도우러 지원군이 오자, 백약은 잠시 생각해 본 뒤 만약 자신이 여기서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자기도 치러야 할 대가가 작지 않음을 깨달았다. 최소한 상당한 원기(元氣)를 소모하여 몸이 상하게 될 것은 틀림없었다. 상대는 조월국 군영에서도 결코 이류나 삼류에 속하는 그저 그런 수행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대정국 쪽은 그녀가 살펴보니 능력이 뛰어난 이가 몇 있었다. 하지만 그녀조차 실력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청송 도인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사실 그저 그런 편이었다. 두장생 또한 사실 그녀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적군을 따라 움직이는 법사들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외 대단한 실력을 지닌 요괴나 사도(邪道)를 닦는 수행자를 상대하기는 꽤 힘이 부칠 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 거둔 전과(*戰果: 전쟁에서 올린 성과)가 적지 않구나!”
백약은 남쪽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제주의 하늘은 불타는 듯한 붉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래 바라보고 있으려니 전쟁터의 혼란한 소리가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백약이 다시 바람을 타고 한 산봉우리에 내려서자, 흰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얼른 다가와 방석과 작은 소반, 다기, 작은 향로 등을 내려놓았다.
“정말 대단하세요, 부인! 저렇게 많은 요괴와 수행자들도 모두 부인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군요. 이 교아(巧兒)는 정말 탄복할 따름입니다!”
“하하,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렴. 참, 홍아(紅兒)는?”
교아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백약이 자리에 편히 앉도록 부축한 뒤, 털이 달린 피풍의를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며 대답했다.
“홍아는 귀가 저보다 밝아서, 서쪽에서 무슨 큰 소란이 났다며 자기가 보고 오겠다고 했어요.”
“알겠다.”
백약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서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서쪽 멀리에는 광활한 연추산이 펼쳐져 있었다.
* * *
동이 터올 즈음, 전투가 일어난 곳곳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무로 세운 군영의 건축물이며 막사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조월국의 여러 군영에서는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대정국 병사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곳곳을 순찰했는데, 혹시 죽은 척하고 있는 적군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각기 사인이 다른 조월국 병사들의 시신들을 제외하고, 대정국에 항복해 목숨을 구한 병사들은 한데 모여 덜덜 떨고 있었다. 이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추위 때문이었다. 어젯밤 대정국 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병사 대부분은 이불 아래서 자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대로 목이 베여 죽었고, 누군가는 얇은 옷만 입은 상태로 대정국 군사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왔다. 이에 지금 그들은 서로 딱 붙어 온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윤중은 손에 쌍극을 든 채, 친위병 세 명과 함께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이곳은 원래 조월국 군대의 주력이 되는 군영 세 군데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군영의 병사들은 모두 조월국 송씨 조정의 정예병들이었다. 이제 죽을 이는 모두 죽고, 항복할 이는 항복하여 운 좋게 도망친 이들은 아주 극소수였다.
또한 이곳은 윤중이 어젯밤 습격한 많은 군영 중 가장 마지막 곳이었다. 그는 거쳐온 군영마다 철저히 무너뜨렸고, 공격이 끝나면 최대 속도로 또 다른 곳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맹렬한 공세는 조월국 병사들이 도망치는 속도보다 빠를 정도였다.
윤중의 갑옷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한 쌍의 검고 커다란 극의 날에도 어두운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조월국의 투항병들은 윤중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동료들에게 딱 붙었다. 그가 든 한 쌍의 검은 극이 어젯밤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지는 이곳의 모든 이들이 명명백백히 목격한 바였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졌고, 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극을 두 번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때 한 병사가 윤중을 향해 서둘러 다가오더니, 포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윤 장군, 저희 측 피해 인원은 대략 8백 명이고, 중상을 입은 이는 그중 백여 명입니다. 상세한 숫자는 아직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어젯밤 공세가 무척 순조로웠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윤중은 고개를 끄덕인 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불에 탄 막사를 쳐다보았다. 그 앞에는 은빛 갑주를 입은 머리 없는 시체가 쓰러져 있었는데, 그는 어젯밤 윤중에 의해 머리가 베인 조월국의 장군이었다.
“이동교(李東蛟)와 간휘(簡輝)는 잡았나? 아니면 혹 죽었나?”
“어젯밤 상황이 혼란스러워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적군의 장수들을 많이 죽이긴 했으니, 이제 막 신원을 조사하는 중입니다.”
이에 윤중은 별다른 말 없이 손짓으로 그를 물렸다.
“알겠다, 가보거라.”
“예!”
간밤 내내 쉬지 않고 싸운 데다 정신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윤중은 이때가 돼서야 약간의 피로를 느꼈다. 그조차 그랬으니 일반 병사들은 더했다. 하지만 어젯밤의 대승으로 인해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서, 그 흥분으로 인해 병사들은 거의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흥분과 기쁨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젯밤 전황에서, 양군이 교전하기만 하면 서로를 애먹였던 천사나 법사들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양측이 교전할 때 그들은 주로 상대와 일대일로 싸워왔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병사들이 내뿜는 살기(煞氣)가 무척 큰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수천수만의 병사들이 용맹하게 맞붙기 시작하면, 도행이 낮은 수행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게다가 군중에 적지 않은 무공 고수들이 있다면, 천사나 법사들은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윤중은 한 바퀴 돌며 몇 마디 분부를 내리면서, 오늘 밤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다만 고기는 최대한 넉넉하게 배급해, 섣달그믐을 배불리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병사들의 환호를 들으며 막사로 향한 뒤, 전황을 보고하기 위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윤씨 집안의 둘째 공자라는 신분 때문에, 군중의 모든 전보(戰報)는 거의 그가 쓰고 있었다.
* * *
이날 밤 거둔 대승의 성과는 그 뒤 며칠 동안 더욱 상세하게 알려졌다. 그들이 조월국 군영을 습격한 것뿐만 아니라, 백 부인이 영정관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심지어는 연추산에서 있었던 큰 소동까지 양측 군영에 널리 퍼졌다.
특히 정확히 어찌 된 일인지, 혹은 그것이 사실인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마지막 소식은,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그 영향력이 더욱 컸다. 이 소식으로 인해 양측 군영의 수행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큰 소란이 일 정도였다.
정확한 증거는 없었으나, 조월국 측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다섯 명의 천사가 연추산 산맥을 넘어 제주로 가려다 실종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정국 측의 대단한 도행을 지닌 선사(仙師)가 나선 것이든, 아니면 연추산 산신이 나선 것이든 간에 이는 조월국 측에는 모두 나쁜 소식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후자일 경우에는 더욱더 말이다.
두장생은 연추산에 갔다 온 수행자들을 이끌고 윤중과 매사 등의 장군들에게 이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윤중은 대군을 이끄는 원수인 매사에게 이 소식이 사실이든 아니든 적군은 필시 이 소식에 몸을 사릴 것이므로, 이 틈을 타서 계속해서 공격하면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윤중은 막 쓰기 시작한 전보를 채 완성하기도 전에,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한번 공세를 이어갔다. 더욱이 조월국 측의 투항병 중 평범한 백성이었다가 징집된 이들은 대정국 군사들을 따르고 싶어 하여,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상세한 전보가 대정국 경기부로 전해졌다. 전보를 책임지는 기수 몇몇은 경기부 동문을 이용해 성안으로 들자마자 목청껏 소리치며 말을 달렸다.
“제주의 승전보요, 제주의 승전보!”
“제주에서 온 승전보요!”
그들은 도성의 대로를 질주하여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이를 들은 백성들은 모두 흥분에 휩싸여,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다른 이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황제와 대신들도 이 승전보를 받아들고는 깜짝 놀라며 크게 기뻐했다. 변경의 군사들이 섣달그믐 밤에 이토록 큰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이고, 곧장 그 기세를 타고 공세를 이어가 제주 영토의 반 정도를 다시 수복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중심지도 되찾아와, 변경의 수세는 이제 완전한 공세로 전환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