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화. 승전보
한편 사천감 권종실 안에서는 계연이 여느 때처럼 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는데, 잔뜩 흥분한 얼굴의 언상이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 군사들이 대승을 거뒀다 합니다, 대승이요!”
언상은 원래 말도 그리 크게 하지 않는 성정이었으니, 지금처럼 큰 소리를 내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마음의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얼른 계연과 이 소식을 나누고 싶어 했다.
“선생님, 제주에서 승전보가 왔습니다. 우리 군사들이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언상이 이렇게 말하며 계연이 앉은 곳으로 걸어가니, 그의 발치에 술주전자 하나와 술이 따라져 있는 술잔 두 개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언상은 즉시 무릎을 꿇고 앉아, 사양하지 않고 바깥쪽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그러자 매운맛이 목구멍을 통해 입안에 퍼져 언상은 하마터면 기침을 터뜨릴 뻔했다.
“대단히 독한 술이군요!”
언상은 계연이 하던 대로 한입에 술을 마신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독한 술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계연은 괴로워하는 듯한 언상의 얼굴을 보더니, 죽간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기쁜 소식이니 마땅히 한잔해야죠. 더욱이 그냥 술 말고 이런 좋은 술로요.”
“선생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계연은 자신의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러분들보다는 조금 더 일찍이요.”
계연이 이렇게 대답하며 언상에게 다시 술을 따라주려 하자, 언상이 얼른 손을 펴 술잔을 막았다.
“아아, 아닙니다, 저는 그만 마시겠습니다. 참, 선생님, 이번 공세를 쭉 이어가서 우리 군사들이 곧장 조월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까? 듣자니, 군중에 대단한 수선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던데요!”
계연은 그 말에 따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대단한 수선자라면 물론 있기야 있었다. 백약도 분명 그중 하나일 것이고, 그 외에도 둔갑한 요괴며 따로 선문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수선자들도 있을 것이다. 청송 도인의 도행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점치는 능력만은 천기를 엿볼 정도의 수준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도행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가 별로 없을 테니, 그는 그 실력만으로도 다른 이들의 경외를 사기에 충분할 것이었다.
다만 조월국에 비하면 대정국 쪽은 아직 많이 부족했다. 조월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요마(妖魔)와 귀신, 정괴 등이 횡행하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무애귀성이 있으니 이 전쟁이 귀도(鬼道)의 수행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대정국은 이 방면에 있어 ‘자원’이 무척 모자랐다.
옥회산과 같은 정도(正道)의 선문들은 절대로 속세의 분쟁에 뛰어들려 하지 않겠지만, 옥회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수행계의 세가(世家)들은 개입할 가능성이 있었다.
계연은 속으로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언상에게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한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대정국은 어쨌든 승리할 거예요. 속세의 기운은 사람에게 묶여있는 법이니, 사도(邪道)를 닦는 이들에게 기대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죠. 음, 이곳의 자료와 서적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많아 걸음을 떼기가 아쉽군요. 다음에 다시 와서 읽어야겠어요.”
그 말에 언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 가시려고요? 하, 하지만 아직 조월국과 교전 중인데…….”
언상은 마음이 약간 불안해졌다. 그에게 있어 계 선생의 존재는 마치 정해신침(*定海神針: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훔친 용궁의 기둥. 바다를 안정시키는 침이란 뜻으로, 안정제와 비슷한 뜻)과 같았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은 겉으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만약 대정국에 위험이 닥치면 선생께서 분명 나설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언상은 계연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전장에 나타난 소위 선사(仙師)라는 이들보다 계연이 훨씬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두장생은 일찍이 그에게 은밀히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다른 이들이 그저 수사(修士)라면, 선생님은 선(仙)입니다.”
그 말 한마디로 계 선생과 다른 이들의 경지를 신선과 범인으로 나눈 것이다.
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언 대인, 그리 걱정할 필요 없어요. 대정국은 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연추산에 가보는 것뿐이니, 그리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가 언상을 안심시킨 뒤 술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언상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바닥에 있던 죽간과 종이로 된 서책 등이 공중으로 떠올라 각자의 자리로 날아갔다.
그 뒤 계연은 술병과 술잔을 들고서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언상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그를 뒤쫓아가며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금주(金州)로 가십니까, 아니면 제주로 가십니까? 혹시 직접 나서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계연은 웃으며 언상의 손에서 술잔 하나를 다시 가져왔다.
“그저 연추산 산신을 보러 가는 것뿐이에요.”
이렇게 대답한 계연은 곧장 권종실을 나섰다. 그러자 언상은 눈을 찌르는 햇빛 때문에 멀어지는 계연의 뒷모습이 모호하게 보였다.
하지만 몇 발짝 뒤떨어져 있던 언상이 밖으로 나왔을 때, 계연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계 선생님? 선생님! 계 선생님-!”
사천감은 엄밀히 말하면 그리 경계가 삼엄한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계연이 온 이후로는 서고 밖을 지키고 서 있는 자들을 물린 상태였다. 그래서 언상이 밖으로 나왔을 때, 뜰 안에는 언상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고, 계연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계연은 이 정도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상에게는 연추산에 간다고 말했지만, 곧장 그리로 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에 그는 사천감을 나와 도성을 거닐며, 차례로 도성에 모여드는 기인과 도사들을 한번 살펴보려고 했다.
제주의 승전보는 거의 한 달 전의 일이라 도성에는 이제 막 승전이 알려졌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대정국과 그 근처의 수행계에서는 모두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성에 모여드는 수행자들의 수는 전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다.
과연 전선의 승전보가 도성 전체에 퍼진 모양인지, 대로든 골목길이든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있기만 하면 모두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정국 병사들이 그간 전선 한쪽에서 진을 치고 버티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야말로 당당하게 거둔 대승이었다. 이에 윤중과 매사의 이름은 도성에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도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곳이 전쟁 이전까지는 비교적 썰렁했던 도성의 대제단(大祭臺)이란 것이었다. 이때 백성들은 모두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제단 근처에는 이미 금군이 지키고 있었고 황실의 마차도 서 있는 상태였다. 아마 새로 책봉된 천사(天師)들이 제단에 오르려는 모양이었다.
이에 계연도 구경에 빠질 수 없어, 우르르 몰려가는 인파의 뒤를 따랐다. 다만 다른 이들은 모두 뛰거나 서둘러 걷고 있었는데, 오직 그만이 유유자적하게 걷고 있다는 것만이 달랐다.
“허허, 이쪽 선생, 얼른 서두르지 않으면 좋은 자리는 놓치고 말 것이오! 그리되면 다른 이들 뒤통수만 봐야 한단 말이오!”
“맞소! 자, 어서 서두르세, 오늘은 어느 법사가 웃음거리가 될지 모르겠구먼.”
두 사람이 얼른 그의 곁을 지나쳐간 뒤, 그 뒤로 그들 키 반만 한 아이가 걸상을 들고 뒤따르는 걸 본 계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편 근처에는 패검을 찬 서생들이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외지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인지, 이 소동을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 따라가는 듯했다. 그러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천사들이 망신당한다느니 어쩌니 떠들자, 호기심에 이렇게 말했다.
“왜 저렇게 많은 이들이 천사들이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말하는 거지?”
“그러게나 말일세, 행인에게 물어볼까?”
“응, 그리하세.”
그중 한 서생이 누구든 붙잡고 이에 관해 물으려고 했으나, 서생은 사람들이 모두 너무 빨리 뛰고 있어 결국 묻지 못했다. 서생들이 제단 근처에 이르자 그곳은 이미 인파로 꽉 차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제단의 높이와 규모를 보니, 아래에 있는 이들은 위쪽의 상황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제단 옆에 세워진 건물의 높은 층에서는 아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대형. 어째서 법사들이 저 제단에 오르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서생은 외지에서 왔나 보군. 사실 도성 백성들과 관원들 사이에는 어떤 소문이 하나 떠돌고 있는데, 바로 마음이 올곧지 못한 이들은 저 제단에 오르기가 몹시 어렵다는 말이 있네. 이따 보면 알 것이오.”
이에 두 서생은 서로 어리둥절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물었다.
“설마 저 법대(法臺)에 무슨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이고, 그걸 내가 어찌 아나. 그저 겉보기에는 아주 대단해 보이는 천사들이 저 제단의 계단에 오르기만 하면, 등에 커다란 짐을 진 것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만 알 뿐이오.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있다가 직접 보면 알 것이네. 언제든 한두 명은 꼭 있으니까.”
“정말 그런 일이 있다는 말입니까?”
두 서생은 호기심이 들어 뒤꿈치를 높이 들어 제단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들 가까이 서 있던 계연은 법안을 살짝 열어 살펴보니, 예전에 그가 달빛을 받으며 검무를 췄을 때 남긴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 흔적에는 달빛의 힘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는데, 지난 세월 동안 저 법대와 완벽하게 섞여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계연은 그 당시에도 흔적이 남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법대에 이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왔다, 왔어! 새로 책봉 받은 천사 십여 명이군. 곧 구경거리가 시작되겠어!”
“정말이군, 이제 곧 시작하겠네!”
모여든 백성들이 저마다 흥분하여 소리쳤다. 한편 예부의 관원을 따라 움직이던 천사들은 이 수많은 인파를 보고서 도성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무척 환대하고 있다고 여겼다.
주위의 금군들은 모두 이 사정을 모르는 법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법사들은 주위에서 곧 구경거리가 펼쳐질 거라는 등의 말을 들었지만,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예부의 관원이 법대 옆에 멈춰 서서 자신을 뒤따르던 16명의 천사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취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황상께서 새로 책봉하신 천사시지만, 우리 대정국에는 선사(仙師)들은 모두 제단에 올라 천지에 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위쪽 법대에 공물은 이미 마련되었으니 여러분께서는 저를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부의 관원은 여기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 여러 선사께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법대는 원덕 연간에 지어졌는데, 국사(國師)와 태상사 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완성된 후 어느 진선(眞仙)께서 술법을 부려 이곳에 복을 내렸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법대는 사람의 마음을 거울 보듯 환히 비추며 바르고 삿된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인간들이 오르내릴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수행자들에게는 변화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서 올라가십시오. 정 오르지 못하시겠거든,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또한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든, 끝에 가서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자 선사들은 그의 말을 모두 귀담아듣지 않고, 일개 예부 관원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진선’이라는 칭호가 어디 그리 쉽게 붙일 수 있는 것인가?
“육(陸) 대인,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대인께서 설령 뛰어오르시더라도 저희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정도 법대는 저희 모두 한 걸음 만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예부 관원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한번 예를 취했다.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어쨌든 이들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사들께서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관원은 말한 뒤 먼저 법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