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정도(正道)를 닦는 수선자가 해야 하는 일
예부의 관원이 가볍게 계단을 오르자, 뒤를 따르던 선사들도 즉시 걸음을 옮겨 편안한 기색으로 올라갔다. 그들 모두 처음 몇 걸음은 제비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내내 가벼운 걸음으로 오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뒤로 갈수록 걸음이 무거워지는 자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선사들은 대략 반 정도였고, 남은 반의 천사들은 모두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했다. 그중에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자도 있었다.
“육 대인, 천, 천천히 가십시오!”
한 나이 든 선사는 사방 곳곳에서 자신에게 압력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걸음을 떼기도 쉽지 않아, 마치 이 법대가 정상이 보이지 않는 높은 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리를 드는 것뿐만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군중이 흥분에 차올랐다.
“저기, 저기 봐! 땀 난다, 땀!”
“나도 봤네, 저쪽 선사는 얼굴이 다 창백해졌군!”
“저기, 저기 저 사람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 보세. 저 세 번째 사람!”
“그러니까 말이야!”
“어어, 저 사람, 저기 떨어진다!”
“어이쿠, 무지 아프겠구먼!”
흥분한 백성들과 달리,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있는 선사들은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반면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선사들은 내심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아무런 말 없이 예부 관원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들이 법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몇몇이 아직도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숨을 거칠게 내쉬며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중 둘은 이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16명 중 13명만이 법대에 오르게 되었다. 세 명 중 두 명은 계단의 중간쯤에서 멈춰 서있었는데, 사실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남은 한 사람은 모두의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곧바로 계단 위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진산법(鎭山法)! 이건 진산법이오!”
마침내 어느 선사가 깨달았다는 듯 이렇게 소리쳤다. 이 법대에는 알고 보니 정말로 어떤 심오한 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저 저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있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모습을 굳이 꾸며낼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때 예부의 관원이 양쪽에 늘어선 금군들에게 손짓하자, 갑옷을 걸친 이들이 앞으로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법대를 떠났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늘과 땅과 선대 황제들께 예를 올리고 나면, 여러분은 이제 우리 대정국 조정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는 그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듣는 이가 없게 되었다. 법대에서는 사천감 관원들이 의식을 주관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과정이 아주 장엄하고 엄숙해 보여 계연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다른 의식은 그저 상징적 의미에 불과한 것이었다.
계연은 의식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스운 꼴을 보인 선사들도 실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런 법력이 없는 사기꾼이었다면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혹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했던 선사들 중에 사기꾼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로 책봉되었다고 해서 도성에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곧바로 전쟁터로 보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간 큰 사기꾼이 있다 한들 전방에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계연은 연추산의 어느 높은 봉우리에 내려섰다. 그가 그곳에 서서 드넓게 펼쳐진 산수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에서 흙과 돌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쑥 솟아올랐다. 그것은 점점 더 크고 높아지다가, 사람의 키 정도 되었을 때 색채가 더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회색 장포를 입은 사람으로 변했다.
계연이 그곳을 향해 몸을 돌리자, 누군가 그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연추산 산신 홍성연이 계 선생을 뵙습니다!”
“홍 산신을 뵙습니다.”
계연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인사한 뒤,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홍 산신께서는 높은 도행을 지닌 데다 그간 속세의 일에 한 번도 관여하지 않으셨지요. 누군가 산신당을 지어 바쳐도 향불의 힘을 가져가지 않을 정도였고요. 그런데 어찌하여 이번에는 대정국을 도와 조월국에 맞선 건가요?”
홍성연은 계연의 곁에 다가와 연추산의 풍광을 굽어보며 대답했다.
“홍모(某)는 연추산에서 방자하게 굴던 요괴들을 죽인 것뿐이니, 어느 편에 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떳떳한 사람은 뒷공론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홍모도 인간의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요마를 비롯한 사악한 것들이 모두 송씨 황제를 따르며 신하 되기를 청하고 힘을 합쳐 대정국을 공격하는 걸 보니, 큰 난리가 인 후에는 평안함이 크게 온다는 말이 곧 실현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도 그들이 벌이는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고, 또 이 기회를 빌려 계 선생님께 잘 보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홍성연이 솔직하게 대답하는 걸 본 계연도 숨김없이 말했다.
“맞아요, 저는 대정국이 지는 걸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숨김없이 말하겠습니다. 운주 인도(*人道: 사람이 사는 속세를 일컬음)의 기운은 모두 대정국이 자리한 남쪽 아래에 기울어져 있으니 대정국은 절대로 지지 않을 거예요.”
“예?”
홍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계연의 말을 들으니 상황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복잡한 듯했다. 이에 계연이 다시 그를 향해 말했다.
“비록 제가 속세의 일에 간섭할 수는 없지만, 속세 밖의 일에 대해서는 손쓸 수 있어요. 도행이 높은 요마들이 점점 더 많이 조월국 송씨 황조를 도우려 하니, 이는 이미 크게 선을 넘은 일이에요.”
“선생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계연은 가만히 고개를 젓더니 동북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미 책봉을 받은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막 나서려 하는 이들은 아직 처리할 수 있어요. 하늘에는 호생지덕(*好生之德: 살아 있는 것을 아끼어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 품덕)이라는 게 있고, 도를 구하려는 자는 출신을 묻지 않는다고도 하죠. 그러니 만약 그들이 진리를 얻으려 고행하는 수행자라면 놔줄 것이고, 소동을 벌이려 하는 이매망량이라면 깨끗이 처리할 거예요. 정도(正道)를 닦는 수선자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죠.”
계연의 말에서는 아무런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홍성연은 매서운 바람처럼 날카로운 무언가가 스치는 걸 느꼈다. 확실히 아직 엄동설한의 날씨이기는 했으나 그것과는 달랐다.
계연은 동북쪽을 한번 보더니, 돌연 고개를 돌려 홍성연에게 물었다.
“이런 제 생각에 대해, 홍 산신께서는 혹시 제게 가르침을 주실 것이 있으신지요?”
그러자 홍성연은 얼른 손을 젓고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감히요, 이 홍 모(某)가 계 선생님께 가르침을 드리는 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다만 선생께서 연추산에 오신 것이, 제게 그저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이십니까?”
그의 말에 계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돌리지 않고 바로 말하겠습니다. 이왕 대정국 쪽에 서셨으니 조금 더 나서 주시지요.”
“전에 나선 것만으로도 제 입장을 충분히 보인 게 아닙니까? 설마 이 홍성연에게 대정국 도성으로 가서 책봉을 받으라는 소리는 아니시겠지요?”
홍성연은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얼마 전 그가 그렇게나 큰 소란을 일으키며 다섯 요괴를 죽인 것은, 말로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 요사한 것들은 연추산을 넘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대정국이 천하의 국세를 평정하면 조월국의 모든 생령(*生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이 혼란에 휩싸이게 될 거예요. 연추산은 마침 이곳의 중앙에 자리해 있고, 대정국에서 가장 큰 산이기도 하죠. 산이 높고 봉우리는 험준하니, 능히 일국(一國)을 안정시킬 만한…….”
계연이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홍성연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처럼 높은 도행을 쌓은 산신이 이만한 학식이 없을 리는 없었으니, 곧바로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설마 대정국 황제를 연추산으로 오게 해 봉선(*封禪: 옛날, 제왕이 태산(泰山)에 가서 제단을 쌓고 천지(天地)에 제사 지내던 것)을 하게 하라는 건 아니시지요?”
“홍 산신의 말씀대로예요, 제가 뜻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홍성연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만약 이런 말을 한 것이 계연이 아니었다면, 손까지 쓰지는 않았을 테지만 최소한 상대도 하지 않고 곧장 모습을 감춰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계연이고,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았기 때문에, 홍성연은 마음을 다스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계 선생님, 일국의 중앙이라니 아직 어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설령 대정국이 반격해 조월국을 뒤엎는다고 해도, 연추산 산맥의 큰 부분은 연량국에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설마 대정국이 조월국을 무너뜨린 후, 곧바로 군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진 않을 것이 아닙니까? 윤 공이 아직 세상에 있는 한, 홍모는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믿지 않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거절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뜻은 이미 명확했다. 게다가 산신인 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설령 대정국 황제가 연추산에 와서 일국의 기운을 이곳과 엮으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산에 오르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진정하세요, 아마 산신께서는 제가 한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신 듯하군요. 운주 인도(*人道: 사람이 사는 속세를 일컬음)의 기운은 모두 대정국이 자리한 남쪽 아래에 기울어져 있다고요.”
홍성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계연을 보았다. 그러자 계연이 탄식하며 말했다.
“조월국 송씨의 기운이 약해진 지는 이미 아주 오래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요마(妖魔)와 귀신, 정괴들이 돌연 황제의 명을 따르다니 무척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죠. 하지만 산신께서 이번에 나서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대의를 보인 것이니, 저도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홍성연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개운치 않았으나, 그렇다고 곧장 승낙할 수는 없었다. 대정국의 황제가 연추산에서 봉선 의식을 치른다면, 천지에 절한 후 가장 먼저 할 일이 바로 연추산을 봉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되면 자기가 곧장 황제의 책봉을 받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홍성연은 자기가 이에 대해 말하면 계연이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보장해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때로 머리가 아둔해지기도 하니, 황제가 언젠가 권력에 마음이 흐려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전의 대정국 황제들은 잘 알지 못했겠지만, 지금 대정국에는 많은 수행자가 있으니 그중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심사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는 그가 계연을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홍성연은 그저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선생께서는 참 뛰어난 제자를 두셨습니다. 백 부인께서 하룻밤 내내 영정관을 지켰는데, 그 검세의 오묘함이 실로 보기 드문 경지더군요.”
“산신께서도 <백록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조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만약 제가 백록이 실은 제가 탈 짐승으로 쓰던 사슴이 아니라고 하면, 산신께서는 믿으시겠어요?”
“하하하하, 믿습니다!”
“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