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귀군(鬼軍)의 정벌
엄청난 귀기를 내뿜는 것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요괴들의 요기(妖氣)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뒤이어 수많은 요광(妖光)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요괴들은 각기 바람을 타고 상공으로 오르거나 높은 산봉우리로 가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리서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귀병으로 이루어진 대군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좌우로 병사들을 나눠 요괴들이 모인 이 커다란 산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쌌다. 귀장(鬼將)은 말에 탄 채 병사들을 이끌었고, 무궁무진한 도깨비불이 대군의 위쪽에 둥둥 떠 있었다.
이때, 바깥쪽의 한 산봉우리 위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빽빽이 난 한 남자가 이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귀군의 행렬 속에서는 전차 한 대가 유달리 빠른 속도로 행진했고, 도깨비불을 내뿜는 거대하고 용맹스러운 귀수(鬼獸) 네 마리가 그것을 이끌고 있었다. 그 전차 위에는 푸른 장삼을 입은 남자와 이무기가 수 놓인 검은 장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채 온몸에 검은 기운이 감도는 귀신이 함께 서 있었다.
머리털과 수염이 빽빽한 남자는 이를 보고 즉시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멀리 보이는 귀군을 향해 포효했다.
“커흥-! 무애 노귀(老鬼),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귀군을 이끌고 이 산속에 온 연유가 무엇이오? 만약 손님으로서 참석하러 온 것이라면 환영이지만, 시비를 따지고 소동을 일으키러 온 것이라면 나도 참지 않겠소!”
그러자 귀군 속의 신무애가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멀리 구름을 타고 공중에 떠오른 남자를 가리키며 계연에게 말했다.
“계 선생님, 저 요괴는 이 아당산(牙當山)에 사는 늑대입니다. 수행을 닦은 세월이 길어 근방의 많은 요괴가 그를 우두머리로 따르고 있으니, 주의해야 할 자입니다.”
“음, 확실히 도행이 높긴 하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위세를 부리려 하다니, 먼저 매운맛을 좀 보여줘야겠군요.”
계연은 그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평가하더니, 곧장 왼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넝쿨검이 날아와 그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고, 계연은 왼손으로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챙-!
그러자 아당산 전체가 한순간에 확 밝아지더니 싸늘한 검의(劍意)와 함께 검광이 번쩍, 하고 빛났다.
“아악……!”
“내 눈!”
“윽, 너무 아파!”
귀군들을 바라보고 있던 요괴들은 검광을 직시한 순간, 두 눈에 따가운 통증을 느껴 눈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도 찌를 듯 아파 와, 요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상공에 떠올라 있던 늑대 요괴는 뻣뻣이 굳은 채,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있는 계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윽, 허억…… 헉…….”
하지만 요괴는 단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온몸의 요기는 어지럽게 날뛰고 있었고, 검에 베인 상처에서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위세의 검기(劍氣)가 느껴졌다. 그러다 마침내 요괴의 몸이 무너지자 요괴가 부리고 있던 구름과 바람이 흩어졌다. 늑대 요괴는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다. 그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요괴 몇은 일찍이 시체가 되어 땅에 떨어진 후였다.
전차 옆에 있던 한 귀장이 이를 보고는 얼른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공격, 공격하라! 아당산의 요괴는, 단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죽여라-!”
“공격!”
“덤벼라!”
“크르릉……!”
수천수만의 귀신이 아당산을 향해 돌격해 산속의 요괴들과 맞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눈을 손바닥으로 덮은 채 고통에 차 땅을 구르던 요괴들은 경황없는 와중에 얼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이리저리 날뛰었다. 어떤 요괴는 바람을 몰고 곧장 도망치려 했지만, 귀군 측에서 빛이 흐르는 커다란 그물을 공중에 던져 그들을 모두 포획해 버렸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도깨비불이 피어오르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귀병과 귀졸들은 무기를 들고 산의 요괴들을 공격했다.
아당산을 중심으로 반경 10리 안에서는 모두가 귀곡성(*鬼哭聲: 귀신의 울음소리)과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 산의 인근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괴들의 포효와 끔찍한 비명으로 인해 두려움에 질려 병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당산의 요괴들은 귀군을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했고, 그럴듯한 반격도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귀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했다. 요괴들의 공격에 죽거나 다친 귀졸들이 꽤 있긴 했지만, 귀군 전체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귀군이 한 차례 휩쓸자 아당산 전체는 쥐 죽은 듯한 적막에 빠져들었다. 요괴들의 모습은 아주 처참했다. 귀신들이 떼로 몰려와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한 후 원기(元氣)까지 흡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고통은 저승의 감옥에서 수많은 악귀에게 뜯어먹히는 것과 비슷해, 요괴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비명을 질러댔다.
신무애와 귀장들도 요괴를 제압하면 곧바로 귀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들의 원기를 흡수하곤 했다. 다만 그들은 다른 귀신처럼 아무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먹는 게 아니라, 적당한 대상에게만 손을 댔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계연은 딱히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지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묵인한 셈이었다. 오늘 무애귀성의 대군이 처음으로 출전한 만큼 귀군의 피해도 상당할 테니, 이 사악한 요괴들을 처리하는 김에 원기를 흡수해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아당산 쪽으로 온 귀군을 제외하고, 다른 곳으로 전진한 귀군들은 이때 조월국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요마가 있는 곳에는 주력이 되는 귀군을 보내 제압하게 했다.
계연은 맨 처음 검을 쓴 후로는 다시 검을 뽑지 않고, 정신법(定身法)만 두 번 썼을 뿐이었다. 그 뒤 부적 몇 장을 던지자 거대한 체격의 금갑 신장들이 나타나 귀군과 함께 전장을 휩쓸었다. 계연 자신은 신무애가 탄 전차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과 다른 곳으로 향한 주력군 몇 군데에도 역사 부적을 몇 장 빌려주었으니, 지금쯤 귀군들은 금갑역사를 유용하게 쓰고 있을 터였다.
* * *
그 시각, 어느 분지에 자리한 숲에서는 요괴 몇몇이 분지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솟아오른 산맥 위에 올라서서 수많은 귀병이 분지를 빙 돌아 전진하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산처럼 우뚝 솟은 금갑을 입은 신장(神將) 둘이 귀군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무애성의 노귀(老鬼)가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글쎄, 하여튼 무슨 좋은 일은 아닌 게 확실해. 우리를 노리고 온 게 아니라 다행이군!”
“전에는 우리 모두 대정국의 기운이 좀 더 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저 무애성의 늙은이가 조월국 송씨의 편에 서서 귀병들을 보내 습격하고 있는 거라면…… 우리도 송씨 황제를 찾아가 천사의 지위를 청해야 하는 게 아닌가?”
바로 그때, 멀리 귀군 중에서 한 기병이 귀마(鬼馬)를 탄 채 행렬을 벗어나더니, 산봉우리를 뛰어넘어 음산한 귀기를 뿜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척 봐도 수행을 2백 년쯤 닦은 귀신처럼 보였다. 게다가 오늘 밤 수많은 요괴의 원기를 흡수하였기 때문에, 그 귀기의 왕성함이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분지 가장자리의 산 정상에 서 있던 요괴들은 그가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기병은 말을 타고 날 듯이 뛰어오더니, 이 요괴 수행자들을 향해 예를 취했다.
“환곡림(環谷林)의 수행자분들을 뵙습니다. 저희 성주(城主) 대인께서는 혹시 모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저를 보내 여러분께 말씀을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저희 유명정당에서는 삿된 무리를 정벌하라는 명을 받들어, 귀군을 이끌고 조월국의 요사한 존재들을 처리하는 중일 뿐으로, 환곡림의 여러분께는 아무런 악의도 없습니다. 또한, 성주 대인께서는 이 말씀도 전하라 하셨습니다. 대인께서는 여러분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아 그냥 지나가는 것이니만큼, 만약 금빛 종이로 된 문서를 받으셨다면 절대 조월국 송씨 황제에게 의탁해선 안 된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 화를 초래하게 될 거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밤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희 유명정당에서는 후에 직접 찾아뵙고 다시 사죄드리겠습니다!”
“아, 괜찮소, 괜찮소. 신 성주께 대신 이렇게 전해주시오, 우리는 원래부터 조월국 송씨에게 의탁할 뜻이 없었다고 말이오.”
“맞소, 신 성주께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기병의 투구 속 두 눈에서 도깨비불이 반짝였다. 그는 다시 한번 요괴들을 향해 포권한 뒤 정중히 인사했다.
“실례했습니다, 소장(小將)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기병이 다시 고삐를 당기자, 말이 길게 울더니 다시 귀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무애귀성의 대군 전체가 나섰다고는 해도, 하룻밤 사이에 조월국 전체의 삿된 무리를 처벌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보다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도망치는 이들을 모두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그들이 올린 전과(戰果)는 듣는 이들을 놀라고, 두렵게 만들었다.
단 하룻밤 새에, 귀군들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이름 있는 요마와 사도(邪道)의 수행자들만 해도 백 명이 넘었다. 그렇게 계연의 손에는 다시 수십 장의 금빛 문서가 들어왔다.
계연은 그 종이들을 하나씩 연구해보았는데, 재질은 물론이고 그 칙령의 힘이 담긴 글자까지 모두 이를 작성한 자의 도행이 높고 심오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 선생님, 여기 또 두 장을 가져왔습니다.”
계연이 전차 위에 앉아 그 문서들을 살펴보고 있자, 또 다른 싸움터에서 돌아온 신무애가 새로 얻은 종이 두 장을 들고 다가왔다.
“음, 고생이 많군요. 오늘 밤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예!”
신무애는 계연의 말에 따라 귀군에게 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명을 하달했다.
이날 밤 무애귀성의 병사들은 군대를 몇 갈래로 나눠, 각자 정해진 노선을 따라 그 주변의 요마들을 정벌했다. 그들은 조월국 곳곳을 온통 하늘과 땅이 뒤집힐 듯이 헤집어 놓았다. 이는 환곡림을 비롯한 요괴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조월국 조정에 천사로 책봉된 이들마저 두려움에 떨게 했다.
전에도 무애귀성의 대단함은 널리 퍼져 있었고, 그 성주인 신무애는 오랜 세월 수행을 닦으며 높은 경지에 이른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한낱 귀신일 뿐이었으므로, 제대로 인정해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그 어떤 대단하다는 요마도 이 무시무시한 귀군과 대적할 수 없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