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695화 (695/892)

695화. 칙봉 부적?

무애귀성의 유명귀부 안.

계연은 신무애가 특별히 계연을 위해 준비한 조용한 별실 안에 홀로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탁자에는 금빛 문서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그는 마침 그중 한 장을 손에 들고서 그 속에 담긴 오묘함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이 금색 종이는 척 보기에도 일반적인 종이가 아니었다. 그 크기는 조정에 올리는 상주문과 비슷했고, 두께도 금박지처럼 얇았다. 하지만 또 무척 단단해서 쉽게 구부러지거나 접히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계연은 이 종이 위에 확실히 금가루가 입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 종이를 만든 목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여분이 꽤 넉넉하게 손에 들어왔으므로, 계연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각종 방식을 써 보기 시작했다.

일단 종이 위의 글자는 무척 또박또박했고, 한 자 한 획이 찍어낸 것처럼 표준적인 해서체였다. 계연은 서법의 대가였지만, 아무런 특징도 없는 이 해서체만으로는 상대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이게 상대가 일부러 이렇게 쓴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서체를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 계연은 이것을 물에 담그고 불에 그을려 보는 등,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종이를 훼손해 보았다. 하지만 이 특수한 칙령은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았다.

그래서 계연은 검지 끝에 소량의 검기(劍氣)를 모아 종이 위에 대고 가볍게 그었다. 그러자 종이 위로 베인 듯한 흔적이 나타났으나 곧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검으로 물을 가른 뒤, 수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과 같았다.

“쉽지 않군.”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린 뒤, 정신을 집중하고 기운을 가라앉히고는 경금(*庚金: 경(庚)은 양금(陽金)에 속하며 천간(*天干: 육십갑자의 위 단위를 이르는 요소) 중 일곱 번째로, 광물, 금속 등 모든 단단한 것을 뜻함)의 기운을 폐부에서부터 이끌어낸 뒤, 그 힘을 극대화해 다시 한번 검지로 종이 위를 그었다.

치익-!

계연의 검지 끝에 검광(劍光)이 번쩍이더니 종이가 두 장으로 갈라졌다. 살아있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영험했던 글자는 찢어지는 동시에 법안 아래에서 어두워졌지만, 그 영기 어린 빛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것은 찢어졌음에도 신비함을 지니고 있었다.

계연이 찢어진 종이 중 하나를 들고 부채처럼 흔들자, 얇은 금속판을 흔드는 것처럼 탁탁 소리가 났다. 그것을 계연이 반으로 접어보니 아주 쉽게 접혔는데, 다시 폈을 때는 또 접혔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다.

계연은 찢어진 종이 중 다른 한 장을 보며 생각했다.

‘다시 원래대로 붙일 수도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계연이 두 종이를 한데 모으자, 그 위로 빛이 흐르더니 서로 합쳐져 다시 특수한 칙령이 되었다. 다만 그 영기 어린 빛은 처음과 달리 약간 어두워져 있었다.

“훼손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계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검지로 한번 그은 것뿐이지만, 그것은 절대 만만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또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계연은 다시 새로운 문서를 하나 들고는, 살짝 입을 벌려 삼매진화를 끌어냈다. 그러자 주위의 음기가 순식간에 증발하더니, 불길이 금빛 문서에 닿았다.

화앗!

금빛 문서는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계연도 그와 동시에 손을 놓았다. 그러자 종이는 공중에 떠오른 채 불에 타올랐는데, 그것은 삼매진화의 불길 속에서 수 초를 버틴 후에야 완전히 타버렸다. 당연히, 한 조각의 잿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계연은 다시 새 문서를 집어 정신을 집중한 채 그 위의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 끝으로 지면 위의 글자를 만지며, 글자 하나하나를 느끼려 했다.

“누가 쓴 걸까?”

문서 한 장 한 장을 살피면서 계연은 이것이 절대 간단한 법령이 아니고, 일반적인 의미의 칙령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종이에서는 정말로 칙봉 부적과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종이 위의 내용대로 행동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이 문서를 사용하면 정말로 신령이든 무슨 위치에든 칙봉이 될 것 같았다.

계연은 진정한 칙봉 부적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 옥회산 측에 요청해 한번 빌려보려는 생각은 있었으나, 연달아 일이 생긴 후에는 굳이 찾아갈 생각을 접었다. 칙봉 부적은 본디 무척 귀한 것이라, 하다못해 무슨 작은 강의 신령으로 봉하는 칙봉 부적이라 해도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주 소장 가치가 뛰어난 보물이었다.

수행계에서도 속세처럼 수량이 적고 드문 것을 귀하게 여겨, 이런 것들을 수집하는 이들이 따로 있었다. 칙봉 부적 같은 전설 속의 보물은 쓰면 바로 사라지는 것이니, 누구도 가볍게 이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 문서가 정말로 칙봉 부적이라고 한다면 계연은 믿지 않았다. 책상 위에 쌓인 종이들은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돼지가 뛰는 것도 본 적이 없겠는가? 마찬가지로 계연은 제대로 칙봉 부적을 연구해본 적이 없었지만, 진정한 칙봉 부적은 무척 격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칙봉 부적에는 칙(敕), 고(告), 계(戒), 명(命) 등 따라야 할 정형화된 양식이 있었고, 천지(天地)와 건곤(*乾坤: 하늘과 땅, 혹은 음양)의 오묘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금빛 문서들은 어떻게 봐도 제멋대로 만든 듯한 모습이었다. 이는 오히려 아주 정중한 서신처럼, 자신의 요구와 함께 그에 따른 보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계연은 몇 장의 문서들을 스치며 살펴보다가, 돌연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흠칫했다.

‘설마! 실은 그 차이가 정말로 크지 않은 게 아닐까? 다만 내용이 바르지 않고 법력이 충분하지 않을 따름이라면?’

계연은 그중에서 글자 수가 가장 많은 두 장을 집어 들고는,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칙봉 문서의 형식을 따르고, 충분한 법력으로 보조한다면?’

계연은 떠올린 가능성에 살짝 마음이 들뜨긴 했지만, 동시에 더욱 진지해졌다.

책상 위에 놓인 금빛 문서들이 연달아 공중으로 떠오르자, 계연 앞에 반구형을 이루며 아래위로 세 줄이나 되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두 장도 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계연은 법안을 전부 열고 눈앞에 떠오른 종이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자세도 흩트리지 않고, 눈길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서 그렇게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무수한 금문(金文)이 눈앞에서 반짝이더니 계연의 마음속에서도 빛나기 시작했다. 의식 세계의 산하(山河)에서, 계연은 거대한 법상(法相)의 모습으로 뒷짐을 진 채 상공에 떠오른 현묘하고 심오한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자세와 표정은 바깥 세계의 별실에 있는 계연과 똑같았다.

이 상태는 열흘 밤이나 이어졌다. 마침내 열흘 뒤, 계연은 글자가 가장 적은 종이를 찾아 자기 눈앞으로 끌어왔다. 그런 뒤 왼손 검지를 종이 위의 금빛 글자 맨 첫머리에 갖다 댔다.

치익…… 치지직……!

보랏빛 전류가 그의 왼손 경맥과 규혈을 따라 빛났다. 계연은 법력을 펼치며 입으로는 칙령음을 머금을 뿐 내뱉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검지가 천천히 종이에 닿았지만 움직이는 속도는 무척 느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를 가로막는 것 같았다.

치직…… 치지직……!

보랏빛 전류가 종이 위에서 타닥 튀더니 계연의 검지가 지나간 곳, 가장 첫 글자인 ‘칙(敕)’ 자가 사라졌다. 그러자 종이 위의 영기 어린 빛이 좀 더 어두워졌고, 계연이 느끼는 저항도 훨씬 약해졌다.

계연은 멈추지 않고 왼손 검지를 움직였는데, 그 속도는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빨라졌다. 잠시 후, 적지 않은 법력을 소모한 계연이 손을 거두자, 종이 위에는 글자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계연이 오른손을 펼치자, 빛 한 줄기가 소매 안에서 흘러나오더니 오른손 위에서 낭호필(狼毫筆)이 되었다. 계연이 글을 쓰는 자세로 붓을 고쳐 쥐자, 붓끝에서는 이미 먹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계연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금빛 종이 위에 붓을 내렸다. 그는 이 종이 위에 적혀 있던 글자와 형식 그대로, 자신이 지닌 칙령의 힘과 이 종이 위에 서린 신의(神意)를 결합해, 붓끝에 법력을 모은 뒤 그대로 써 내려갔다.

계연이 종이 위로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갈 때마다 글자는 점점 더 밝게 빛나더니, 마지막 글자까지 적자 빛을 내뿜었다. 계연이 완전히 붓을 떼자 그 빛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그 영기 어린 빛은 여전히 종이 위에 감돌고 있었다.

“호오!”

계연은 저도 모르게 경탄을 내뱉었다. 붓을 거둬들이고 자신이 쓴 것과 탁자 위의 문서를 비교해보니, 그는 대략 모습만 갖춘 것뿐이었는데도 원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지닌 칙령의 힘을 더하니, 종이에 깃든 신의(神意)와도 6할 정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보니 계연의 칙령술이 좀 더 뛰어났고, 서법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계연이 쓴 것이 더 나았다. 두 개는 더 낫고, 하나는 원래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연이 쓴 것은 정말로 원본과 아주 비슷했다.

계연은 이 문서를 모방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하긴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건 그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니, 아직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계연은 곧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는 다른 종이를 따로 갈무리한 뒤, 자신이 쓴 문서와 다른 금빛 문서 한 장만을 남겨놓았다. 상대가 이것을 만들어냈을 때 설령 모든 실력을 쏟아붓지는 않았더라도, 어차피 계연도 이것을 모방하여 만들어낼 때 전심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별실 바깥에서는 신무애가 이미 하룻밤 내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와보니 금갑 역사 하나가 바깥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계연이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계연은 이미 그에게 길어봐야 열흘이면 밖으로 나올 거라고 말했었다. 이제 열흘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도 자신의 존경심을 보일 겸해서 밖에서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룻밤을 기다리는 동안, 하릴없이 지루하던 신무애는 또다시 손에 들어온 금빛 문서들을 꺼내 보았다. 따로 무언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저 조월국 측에서 다른 요마와 사도(邪道) 수행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그가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을 때, 그가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니 종이새 한 마리가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그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펄럭였는데, 보아하니 귀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종이 인형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움직임이 그런 것들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신무애는 왠지 모르게 이 종이새가 금빛 문서 위의 내용을 열중해서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이로 된 새라? 설마 특이한 정괴 중의 하나인가?’

신무애는 궁금한 마음에 종이새를 잡아 자세히 살펴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저 날개를 퍼덕일 줄만 알 거라 생각했던 종이새가 순식간에 흐르는 빛줄기로 변하더니 금갑 역사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러자 시종일관 바깥 세계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금갑 신장이 눈알을 굴려 머리 위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런 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신무애를 바라보았다. 그 알 수 없는 눈빛에는 무언지 모를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해, 무애귀성의 성주인 그조차 잔뜩 긴장하게 했다. 그 순간 신무애는 이 금갑 신장은 그가 본 다른 금갑 신장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돌연 방문이 열리더니 계연이 미소 지으며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자 금갑 역사의 머리 위에 있던 종이학이 즉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 계연의 어깨 위에 앉았다. 이에 계연이 고개를 내려 종이학을 바라보자, 종이학은 날개 한쪽을 쭉 뻗어 신무애를 가리켰다.

이를 본 신무애는 난처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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